5학년 독서부 아이들의 수준은 이렇게 천차만별이다. 12명인데 오늘은 1명이 결석했다. 5명의 아이는 교실에 있는 그림책을 읽었다. 고학년 중에는 독서력이 아직 저학년 수준이라 두꺼운 책, 글밥 많은 책만 봐도 머리 아파하는 부류가 있다. 그런 아이에게 억지로 두꺼운 책을 강요하면 역효과가 날 게 분명하다. 그림책을 읽어도 괜찮다는 분위기를 마련해주는 게 가장 우선일 듯하다. 책과 영영 이별하는 것보다는 그림책이라도 보는 게 훨씬 아이에게 득이 되지 않을까. 그 아이가 그림책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도록 재미있는 동화책을 추천해주는 역할은 어른이 해야 한다.
본교는 동아리 활동을 2시간 블럭 타임으로 운영하는데 난 1시간은 오로지 책 읽는 시간으로 할애하고, 나머지 1시간은 간단한 독후활동을 했다. 2시간 내내 책 읽어라 하면 지겨워할까 봐. 독후 활동은 엄청 간단했다. 일명 " 책 속의 보물 찾기"라고 해서 책을 읽다 감동적인 부분, 창의적 표현이 있는 부분을 그대로 필사하고 왜 그걸 보물이라고 생각하는지 간략하게 적는 거였다. 그것 마저도 성의껏 하지 않고 장난을 쳐서-물론 잘하는 친구도 있다.-방법을 바꿨는데 그게 괜찮은 듯하다.
자신이 고른 책을 2분 정도 읽어주는 것이다. 다 읽은 후에 내가 간단히 질문을 던졌다. " 지금 그 부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하고 말이다. 아주 간단한 활동이지만 효과가 큰 것 같다. 아이가 읽어주는 걸 들으면서 생각도 하고 질문도 만들 수 있다. 친구가 읽어주면 다른 친구들은 짧지만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듣는 셈이다.
오늘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를 읽은 아이는 작년부터 독서부를 하는 아이인데 그림책 보는 아이였다. 항상 우리 교실에 오면 쉬운 그림책만 읽곤 하였는데 오늘은 일찌감치 교실에 와서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를 찾는 거다. 음~ 드디어 도약할 때가 온 거구나! 싶었다. 40분 독서를 하는 내내 초집중하여 책 읽는 모습을 봤다. 아이마다 첫 키스처럼 달콤한 바로 그 책을 만나는 날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이 아이처럼 말이다.
<내 짝꿍 최영대>를 읽은 아이 또한 그림책이나 저학년 동화책을 주로 읽는 아이이다. 이 아이가 읽어준 부분은 반 남자아이들이 영대를 집단 구타하는 장면이었다. " 그 부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 질문하자 " 나쁘다고 생각해요." 하며 자신이 3학년 때 반아이들에게 따돌림 당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지금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이 아이는 이 책을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꼈을 게 분명하다. 이 아이 또한 2년 내내 독서부를 하는 아이인데 처음보다 많이 성장했다. 자신의 상처를 말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지기도 했고.
두 명의 여자 아이가 있는데 둘은 꼭 자신이 읽을 책을 챙겨온다. 나머지 아이들은 책도 안 가져오고 우리 교실에 있는 책을 가져다 읽는다. 벌써 태도부터 다르다. 독서부가 자신이 읽을 책 정도는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말이다. 두 여자 아이는 책벌레다. 넷째, 다섯째 번 책이 여자 아이가 가져온 책이다. 읽어주는 걸 들어보니 주인공 혜린이가 아프다. 마음이 아파 몸까지 쇠약해졌다. 이유인즉 엄마가 공부를 너무 많이 시켜서이다. 의사 선생님이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고 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독서부가 읽어준 그 부분에서 엊그제 뉴스가 오버랩되었다. OECD국가 중에서 또 학생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게 나왔단다. 새삼 놀랄 것도 없다. 우리 아이들 모두 혜린이처럼 잠이 부족하다. 초등학교 까지는 마냥 행복했던 딸도 영어 학원 하나 다니기 시작하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학원 2-3개 다니는 아이는 오죽 할까.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취미 활동을 할 여가 시간"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 너는 어때? 잠 충분히 자나요?" 하자 책 읽어준 아이가 자신 있게 " 전 9시에 자요" 한다. 아주 바람직하다. 캐나다에서는 대부분 8시 이전에 잠을 재운다고 알고 있다. 잠을 충분히 자야 학교에 가서 능동적으로 학습에 임하고 여가 시간이 있어야 창의성도 생기는데.... 잠이 부족한 아이는 짜증이 많아지고, 학교에서 부족한 잠을 자고, 혜린이처럼 쇠약해질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행복지수를 높여줄 수 있을까! 어른의 잘못과 욕심 때문에 아이들이 너무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서울시교육감이 경기도에 이어 " 9시 등교"를 추진한다고 하는 게 생각나, 독서부에게 물어봤다. " 너희들 생각은 어때요? 찬성이야 반대야?" 묻자 한 명 빼고 9시 등교에 찬성한다고 손을 들었다. 나도 찬성이다. 학부모 입장에서도 찬성, 교사 입장에서도 찬성이다. 잠이 턱없이 부족한 아이들, 아침이라도 좀 여유있으면 좋겠다. 수퍼남매도 매일 아침 일어나는 걸 너무 힘들어한다. 그런 아이들 보면 마음이 짠하다. 5분이라도 더 자라고 7시 35분에 깨우는데 아들은 벌떡 일어나는 반면, 딸은 꼼지락꼼지락 가관이다. 겨울로 갈수록 해가 안 떠 컴컴하니 생체 리듬이 깨어나질 않는다. 겨울에는 사람도 잠을 더 많이 자야 한다고 한다. 잠도 더 자고, 아침밥 꼭 챙겨 먹을 수 있게 " 9시 등교"가 잘 추진되었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