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의 말씨앗 사계절 저학년문고 38
문선이 지음, 정지윤 그림 / 사계절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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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괴물은 정말 싫어>의 작가 문선이 작가의 전작이다. 

마두는 주인공 이름이다. 참 특이한 이름이다.  마두는 입버릇처럼 <~ 죽겠네>를 달고 사는 아이이다.  외아들인 마두는 아빠에게 불만이 많다. 다른 아빠처럼 잘 안 놀아 주는 아빠가 싫다.   그래서 아빠를 바꿔 주세요 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소망이 이뤄진다. 그리고 마치 게임의 규칙처럼 아빠는 4회까지 바꿀 수 있지만 바꿀 때마다 진짜 아빠에 대한 기억은 사라진다고 한다. 그리고 4회 바꾼 후에는 처음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고 한다. 이 위험한 게임에 마두는 들어 선다. 마두가 원하는 아빠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씨앗이 내려와 그걸 심으면 다음 날 마두가 원하는 아빠로 바뀐다는 것이다.  

마두는 가장 먼저 어떤 아빠를 원하게 될까?

작가님 말씀이 어린이들에게 어떤 아빠가 좋냐는 설문 조사 결과 잘 놀아주는 아빠, 부자 아빠, 오냐하는 아빠 순으로 나왔다고 한다.   

마두는 잘 놀아 주는 아빠를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러자 다음 날 잘 놀아주는 아빠로 바뀌어 있다. 온종일 신나게 놀아 주는 아빠. 바로 마두가 원하던 아빠의 모습이었다. 회사도 안 가고 자신과 놀아 주는 아빠 때문에 집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게 되자 마두는 놀아 주는 아빠보다는 부자 아빠를 원하게 된다. 다음 날 부자 아빠로 다시 바뀌었다. 부자 아빠는 마두를 백화점으로 데리고가 비싼 걸 몽땅 사 준다. 하지만 돈을 투자하는 만큼 마두에게 원하는 것, 시키는 것도 많다. 이 부분에서 설득력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 부자 아빠가 싫어지는 이유가 자연스럽지 않았다. 부자 아빠 다음에 원한 건 바로 마두가 원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는 오냐 아빠였다. 오냐 아빠를 만나자 마두는 제 세상인 것 같은 자유를 누린다.  하지만 뭐든지 오냐 하는 아빠 때문에  마두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혼자 누워 있으면서 예전에 자신을 밤새 간호해 줬던 진짜 아빠가 그리워진다. 이제 기회는 한 번. 더 늦기 전에 진짜 아빠를 찾아야 겠다고 생각한 마두. 아빠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빠를 찾을 수 있을까? 

읽으면서 <시험 괴물은 정말 싫어>와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둘 다 재미있다. 그래서 한 번 책을 잡으면 어린이들도 아마 끝까지 읽고 싶어질 게다. 

둘 이야기를 풀어 가는 방식이 비슷하다. 둘 다 하늘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주인공의 소망을 들어준다는 설정이 똑같다. 그리고 게임의 법칙이 있다는 것 또한 같다.  

셋 현실과 판타지가 적절히 섞여 있다는 점이다.  

넷 그림풍도 비슷하다. 같은 작가가 그린 것 같다. 중국풍의 그림이다. 그림이 적절하게 들어가 있어 보는 이에게 재미를 안겨 준다. 

<시험 괴물은 정말 싫어>전에 읽었다면 훨씬 더 높은 점수를 주었을 거다. 하지만 비슷한 점이 많아서 약간 점수를 깎았다. 작가의 말처럼 아빠들이 먼저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 어린이들이 어떤 아빠를 간절히 원하는지.  잘 놀아주는 아빠, 부자 아빠, 오냐 하는 아빠. 그 말 속에 어린이들의 진심이 담겨 있다.  그래도 잘 놀아주는 아빠가 1등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순수한 우리 어린이들은 아직까지 자신들과 잘 놀아주는 걸 최고로 치니 말이다.  

엄마 버전이라면 어떻게 달라질까? 

일등이 잔소리 안하는 엄마 아닐까 싶다. 내 자녀가 마두와 같은 소망을 가지지 않도록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줘야 되겠다.  실상 자녀가 부모를 필요로 하는 시기는 생각보다 짧다.  그런데 그 사실을 자꾸 잊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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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는 바보가 아니다 우리들의 작문교실 14
안도현 지음, 김준영 그림 / 계수나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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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이란 동시집으로 맛깔스러운 동시들을 우리에게 전해 준 안도현 님의 새로운 창작 동화이다. 

 

알리, 무하마드 알리,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다로 유명한 세계 챔피언  알리.

스포츠에 문외한인 사람이더라도 누구나 한번은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그 이름 알리.  

하지만, 이 책은 그 권투 선수 알리에 대한 책은 아니다. 나도 처음에는 그 알리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고 깜빡 속을 뻔 했다. 

알고보니, 그냥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해서 '알리'라는 별명을 갖게 된 어릴 적 친구 김판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항상 콧물을 코에 달고 다니던 아이, 꾀죄죄한 옷차림에 항상 땅을 보고  걷던 아이. 

며칠 만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가죽 허리띠로 매를 맞으면서도 히죽히죽 웃던 아이. 

공부시간에 똥마렵다고 화장실 간다고 나갔다가, 나비를 쫒아가 버리는 아이.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절친에게 편지를 썼는데도 질투하기는 커녕 답장 잘 써 주라고 말하는 아이.  

그런 아이가 '알리'란 별명을 가진, 판수다. 

당연히 김판수는 아이들에게 바보라고 놀림을 받는다.    

그렇게 다들 알리를 바보라고 생각했지만 화자는 알리가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이 책에 나온 이야기들은 그렇게 왜 화자가 '알리'가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겉모습이나 하는 행동거지들을 보면 딱 바보인데 

그 안을 들여다 보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알리만의 철학이 있다. 

예를 들어 항상 땅을 보면 걷는 것도 혹시나 돈이 떨어져 있을까 봐 아님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행여 자기도 모르게 벌레를 밟을까 봐  조심조심 걷는 것이었고,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갔다가 왜 나왔는지 까맣게 잊고 그냥 나비를 쫓아가버렸던 것도 

수업 시간은 내일도 찾아 오지만, 나비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 못 보니까 라고 대답하는 알리. 

그렇게 겉으로만 보면 바보처럼 보이지만   

'알리'가 말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언제나 사물을 새롭게 보는 그만의 시각이 드러나면서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이런 아이를 그냥 <바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실상 알리는 공부도 그렇게 못하지는 않았는데... ) 

진짜 바보들은... 

알리가 아버지에게 그렇게 이유 없이 맞는데도 말리지 않았던 그 마을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알리가 공산당에 대해서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가죽잠바 샘으로부터 그토록 모진 벌을 받는데도 가만히 있었던 

화자를 비롯한 그 반의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화자가 마을을 떠나야 하는 알리와 나눈 마지막 대화에서 생각했던 그대로... 

 

그런데 책을 덮으며 정말 '바보란 게 뭘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바보는 그냥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보자면 자기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아무래도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모두가 다 약삭빠르고 계산에 능한 사람들이기에 또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지라 더더욱 자기 것을 제대로 챙길 줄 모르는 사람은 바보라고 놀림을 받는 것 같다.

솔직히 지금 우리 세상은 그런 자들로 넘쳐나고 언제나 타인들을 자신의 배를 불려 줄 먹잇감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 오로지 타인에 대한 사랑, 배려 그리고 헌신만이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먹잇감이 되려고 자기 입으로 

걸어오는 바보들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알리를 바보라고 바라보았던 어른들의 눈이, 반친구들의 눈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알리가 그렇게 바보처럼 보였던 이유는 우리가 그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알리가 그 어른들 보다, 반친구들 보다 더 멀리 더 깊이 세상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온 세상을 자기 몸 처럼 사랑하고 그렇게 온 세상을 자기 안에다 품은 친구인지라 

그 어느 것 하나 자기와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아낌없이 배려하고 내어주었으니 

언제나 제 주머니 속에 든 것만 헤아릴 줄 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바보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바보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되었다. 

그러니까 바보라는 것은 단순히 지능지수가 모자른, 그런 '반편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멀리 더 높게 그리고 더 깊이 세상을 바라봄으르써 세상을 자기 품에 가득 안고 

그 모든 것은 제 것 처럼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바보'라고 말이다. 

배려와 사랑이 넘쳐 흘러 사람을 비롯한 모든 다른 생명들이 행복해지지 않고서는 자기도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바보라고 말이다. 그렇게 바보는 지은이가 첫 머리에 써 놓은 대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어떤 꿈을 꾸는 게 삶에서 중요한지, 마음먹은 꿈을 이루려는 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것이며 진정한 바보는 그러한 자세를 제대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란 걸 

새삼 '바보'라는 말에 감동까지 느낄 정도로 깊이 깨닫게 되었다. 

 

  알리는 바보가 아니었지만 그렇게 또 바보였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방식으론 바보가 아니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바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알리를 바보라고 놀렸던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잣대에 의해서도 과연 바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제나 제 것을 잘 챙긴다며 스스로 바보가 아니라고 자부했던 그들은 사실은 그들이 놀렸던 그 바보들이 아니었을까? 

마치 이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마지막에 화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 시절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았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부모나 선생님 같은 어른들에게 고분고분해야 하고, 

 이 세상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존경해야 하고, 반대로 공산당을 가장 증오해야 한다는 것 정도였다. 궁금한 게 있어도  

함부로 질문을 하지 못하게 어른들은 우리의 입이 무거워지기를 바랐다. 알리네 아버지가 알리를 피멍이 들도록 때려도 아무 

 간섭하지 않았으며, 학교에서 가죽잠바가 아이들을 꼼짝 못하게 다루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나쁜 소문 때문에 알리네가 

 이사를 가야 하는 일이 벌어져도 이웃들은 누구 하나 동정을 보내거나 연민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P.134) 

  

 그렇게 자기 것을 잘 챙긴다고 스스로 똑똑하도 여겼던 세상 사람들 조차도 더 큰 거짓말에 놀아난 바보들이었다고... 

 그런데 이 고백은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 시절 그들이 그렇게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서슬퍼런 권력에 자기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기 때문

이듯이 지금의 우리도 여전히 내어주기 보다는 악착같이 제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살아가니까 말이다. 

아직 우리는 나눠줌으로서의 행복 보다는 쌓아놓는 것에서의 안도감을 더 좋아하고 나를 죽여서 남을 배려하기 보다는 무시 

당하지 않으려 먼저 남을 업신여기기 좋아한다. 경쟁에서 배려는 언제나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여기고 더불어 행복해지 

기 위해 나를 희생하기 보다는 나만 행복하기 위해 악착같이 움켜지려고만 든다. 알리가 가죽잠바 샘에게 피멍이 들도록 맞는 

데도 누구하나 나서지 않았듯 지금의 우리도 그런 불의한 일을 만나도 스스로 나서서 표적이 되기 보다는 누군가 먼저 나서서 

무임승차하려고만 든다.  

 지하철에서 내가 필요한 자리는 서 있는 만큼이지만 그 나머지 부분이 없다면 전혀 움직일 수 없듯이 사실 세상은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 내 것만 악착같이 지키려 다른 생명들을 또 타인들을 희생시킨다면 그것이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뒤 

통수를 치게 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그저 자기만, 바로 눈 앞의 것만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는 식견이 좁은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좁은 세상 밖에는 품을 줄 모르는 우리들은 우리들 잣대에 의해서도 바보인 것이다. 

 

 그래서 알리의 마지막을 읽으면서 더욱 부끄러워진다. 

 그렇게 마을을 떠난 알리...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알게 된 그에 대한 소식은 최근 노조위원장이었던 그가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113일 동안이나 크레인 에서 농성을 하다가 끝내  하늘 나라로 가버렸다는 것이었다. 

 아... 그는 그렇게 끝까지 남들을 위해 살다가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그 마지막을 읽으면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새 나도 몰래 스며든 눈물에  

 눈 앞에 하얗고 작은 날개를 달고 티없이 맑고 푸른 저 하늘로 훨 훨 날아가는 나비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자기가 품었던 세상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버린 그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안녕, 알리... 나는 그렇게 조용히 읊조렸다. 

 넌 정말 꿈 꾸는 자였어... 혼자만의 꿈이 아닌 모두가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꿈을 꾸는... 

 그렇게 작별을 보내며 문득 깨달았던 것은 나도 몰래 스며든 눈물이 

 작별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이었다는 것이었다.  

 알리와 같은 진짜 바보에 대한 그리움... 

 그렇게 맑고 푸른 하늘이 우리들에게 새로이 희망을 주듯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늑대들로 가득한 이 콘크리트 정글과도 같은 세상에 가슴 가득 청명함을 느끼게 해 줄 바람과도 같은 

 진정한 바보가 그리웠다. 너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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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영웅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타고르가 들려주는 이야기시 이야기 보물창고 20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지음, 신형건 옮김, 조경주 그림 / 보물창고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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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감동을 느끼지 못한 책을 가지고 서평 쓰기가 쉽지 않구나 절실히 깨달았다.  

그동안 참 다행이도 나랑 맞는 책들이 내게로 와서 서평을 신나게 썼었는데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나하고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일단 이야기시라는 것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진다. 

 

타고르하면 예전에 중고등학교때 <동방의 등불>이란 말을 타고르가 사용했다와 인도의 시인이 

라는 정도만 배웠지 타고르의 시를 읽어 본 적은 없었다. 

<작은 영웅>이 처음이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아주 유명한 문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몰랐다는 것이 부끄럽긴 한데  

그래도 사실이니 어쩔 수 없지.

일단 엄청 기대를 하며 읽었는데 

시가 가슴에 와닿질 않는다.  <떡볶이 미사일>이 훨씬 재미도 있고 감동적이었다.

몇 번을 읽어도 그냥 맴돌뿐 감동이 오지 않는다. 

이름 모를 꽃과 나무들만 눈에 들어온다. 인도에 흔한 꽃들인가 보다.

슐리꽃,  털시나무, 챔파꽃 (그림이 무척 예뻤다)  

고작 일곱 편 밖에 되지 않는 시집인데 왜 이리 가슴에 와 닿지 않지? 

인도 사람과 코드가 안 맞나? 

 

그나마 가장 맘에 와닿은 시는 

형과 동생이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하는 <천문학자>이다. 

현실적인 형과 이상적인 동생이 서로를 바보라면서 이야기하는 이 시는 

동생의 천진무구한 모습이 참 좋았다. 

현실적인 형의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를 보여 주는 동생의 모습이 참 꿋꿋하고 대견해 보인다. 

바로 겉표지에 그려진 그림이 바로 이 시다. 

 

<천문학자> 

-중략- 

넌 정말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바보로구나. 

만일 달이 아주 가까이 다가오면 

넌 그게 얼마나 커다란지 알게 될 거야  

 

형, 형이야말로 학교에서 

말도 안 되는 것만 배우나 봐! 

엄마가 우리에게 뽀뽀하려고 고개를 숙일 때 

엄마 얼굴이 그렇게 커다래 보여? 

 

기회가 된다면 <초승달>시집이나 <기탄잘리>를 읽어보며 타고르로부터 전해지는  

감동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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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미사일 동심원 16
김영 지음, 눈감고그리다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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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들 덕분에 시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어제도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여러 편의 시를 읽어주셨는데 

딱딱한 설교 시간에 시를 듣다 보면 어느덧 마음이 무장해제 되어 있음을 느낀다. 

설교 시간에 시를 읽어 주는 목사님이 계시다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아이스크림, 떡볶이, 자장면이 싫어지면 늙었다는 증거라는데 

난 아직도 아이스크림을 빼곤 두 가지를 모두 좋아하니 아직 젊다는 증거겠지?  호호호

제목부터<떡볶이 미사일>이라니 정말 궁금증을 자아낸다. 

떡꼬치는 들어 봤어도 미사일이라니? 표지 그림도 떡볶이가 미사일처럼 우뚝 솟아있다. 

표지만 봐도 왠지 재미 있는 시가 들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읽다 보니 첫 부분에는 재미를 주지만 뒷 부분에 가면 생각 거리를 던져 주는 시다. 

  

<떡볶이 미사일> 

-중략 -

전쟁놀이 하는 어른들에게 

떡볶이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우와, 생각만 해도 신이 나요. 

 

피융- 매운 맛 나가신다. 

피융-피융- 달콤한 맛 받아라. 

떡볶이 맛에 빠져 

전쟁놀이는 잊어버릴걸요. 

 

제발 그랬으면 하는 바램을 나 또한 가져 본다. 

오늘도 남한은 연평도에서 사격 훈련을 한다고 하고 

북한은 엄포를 놓고 있는데 이런 긴장감을 주는 전쟁 놀이는 달콤, 매콤한 떡볶이 미사일에 

날아가 버렸음 좋겠다. 

  

<받아쓰기 나빠요> 

받아쓰기 나빠요 

맛있는 떡볶이로 시험 문제를 만들다니. 

 

나 역시 떡볶이 인지 떡볶기인지 헷갈린다.  그러니 어린이들은 오죽하랴. 

매번 변하는 맞춤법에 어른도 헷갈린다. 

  

<옆집 아이> 

나보다 키가 크고 

나보다 특공 무술 품새도 높고 

나보다 그림도 잘 그리고 

나보다 공부도 잘한다는 옆집 아이. 

-중략 -

내가 엄마 아들인데 

엄마는 옆집 아이에게 더 관심이 많다.

 

언제간부터 우리들이 자주 쓰는 말 엄친아, 엄친녀  

비교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 비교가 가장 상처 주는 일인 줄 알면서도 

형제끼리 비교하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고 ... 

어제 목사님이 읽어 주신 이해인 수녀님의 <작은 기쁨>이라는 시처럼 

작은 기쁨과 친해져야 하는데 말이다.  매일 작은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비교로 

상처 주는 일은 훨씬 줄어들 것 같다. 

비슷한 맥락의 시로  이 시를 소개한다.

<울 아빠 자랑거리> 

 공부 좀 못하면 어떠니 

건강하면 제일이지 

 

달리기 꼴찌 하면 어떠니 

끝까지 달려 보는 거지 

 

뚱뚱하면 어떠니 

아픈 데 없으면 되는 거지 

 

노래 좀 못하면 어떠니 

신나게 춤출 수 있으면 되는 거지 

생략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노력해야지. 

수퍼남매도 그렇고, 내 반 아이들도 그렇고...  

이게 바로 작은 기쁨인 것이지. 

 

<얼굴> 

-중략 -

뜨거운 햇볕에 

상추 잎이 축축 늘어지고 

까 놓은 완두콩을 

비둘기가 집어 먹는 줄도 모르고 

알토란 같은 

낮잠을 주무신다. 

생략

  

거리를 걷다 보면 이런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곤 한다. 노령에 자식들 효도 받고 사셔야 할 터인데 

뜨거운 햇볕에, 강한 한파에도 길거리에 나오셔서 생업을 하시는 경우를 종종 본다. 

참 마음이 아프다. 차를 타고 출근하다 보면 한 수레 가득 폐휴지를 담아 힘들게 끌고 가시는 

분들을 보곤 하는데 정말 가슴이 아리다.  이런 분들을 위한 정책이 빨리 마련되었으면 한다. 

 이 시와 같은 맥락으로 다음 시를 소개한다.

<돌 먹는 아이> 

-중략 -

배불리 먹다 

남겨 두었던 피자 

맛있는 햄, 새우만 빼 먹고 

막 버리려다 

 

돌 먹는 아프리카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배만 볼록 튀어나온 

아기 공룡화석 같은 

앙상한 팔다리와 

유난히 크고 검은 눈동자가 

텔레비전 속에서 

먼지와 돌을 입에 넣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내 목에 딱딱한 돌멩이가 걸렸다 

   

세종대왕이 백성들에게 가졌던 측은지심으로 한글이 만들어졌다. 나이 먹으면서 이 측은지심이 세상살이에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 한다.  측은지심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바로 타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것 같다. 피자를 먹기 싫어 버리려 하다가도 돌멩이를 먹는 아이를 보고 불쌍하여 끝까지 먹을 수 있는 그 마음. 더 나아가 그들을 위하여 뭔가 도우려 하는 마음과 작은 실천들. 측은지심이야말로 이 세상을 환하게 비춰줄 수 있는 유일한 등불인 것 같다. 예수님이 측은지심으로 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권정생 할아버지가 측은지심으로 평생을 허름한 집에서 쥐와 친구하며 지내신 것처럼 말이다. 

내가, 우리 수퍼남매가,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이런 측은지심을 지닌 사람이 되길 바란다. 바로 이 시를 끝으로 소개한다. 

<흔적 남기기>  

중략  

결석한 친구 찾아가 

알림장 보여 주기 

 

준비물 하나 더 가져가 

잊고 온 친구 챙기기 

모둠 숙제 힘든 것 맡기 

 

선생님 마음에 

친구들 마음에 

오래오래 스며들기 

이런 흔적들을 남기는 자들이 되었으면 한다. 나도, 우리 아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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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빵호돌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23
이금이 지음, 이누리 그림 / 네버엔딩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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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가 1996년에 출간한 책을 새롭게 제목을 바꿔<나는야 빵호돌>이란 책으로 다시 발간하였다.  

14년 전의 시차가 있기에 다소 낯선 이야기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읽다 보면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빵호돌 같은 아이가 존재하고, 빵호돌이 사는 가난한 달동네가 있으며, 선생님 할아버지처럼 일을 하고 싶어하는 노인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이 이야기가 비단 14년 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에도 존재하는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와 매우 흡사하다.  빵호돌과 할아버지의 관계가 바로 제제와 뽀르뚜가 아저씨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제제처럼 빵호돌도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외로운 아이이며 장난꾸러기인 점도 닮았다.  

빵호돌이란 아이가 참 매력적이다. 언뜻 보기에는 장난꾸러기처럼 느껴지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애어른 같은 구석이 있다. 하루종일 가죽 냄새에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스스로 연탄불을 피워 따끈하게 아랫목을 데울 줄도 알고, 옆 방 분희 누나가 아프니깐 자기 집의 연탄을 빌려 줄 생각도 할 만큼 마음도 넓다.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한바탕 당하고 나서 할아버지의 마음이 아플까봐 몰래 할아버지 집 앞을 서성댈 만큼 사려 깊기도 하다.  아버지가 교도소에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수도 있건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엄마에게 함께 아버지를 보러 가자고 말할 만큼 씩씩하고 용감한 아이이다.  

할아버지는 또 어떤가? 평생 교직에 몸담고 계시다 정년퇴직을 하신 후 의사를 하고 있는 서울 아들 집에 오셔서 편안히 효도 받으며 사셔도 되건만 며느리 불편할까봐 매일 놀이터를 배회하시는 배려심 많은 시아버지이시다. 뿐만 아니라 정둘 곳 없는 빵호돌을 우연히 놀이터에서 만나 다정하게 이름 불러 주시고, 학교에 가지 못하는 빵호돌 마음을 헤아리시고 모래밭학교 선생님을 자처하시며 빵호돌을 가르쳐 주신다. 엄마가 공장에 나가면 하루종일 혼자서 놀아야 하는 빵호돌을 데리고 목마를 인수하시어 함께 장사를 하시는 할아버지. 교사로서 정년퇴직을 하신 분이 직업에 귀천이 없다시며 그런 일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에서 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을 배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면서도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는 내 모습을 반성해 보았다.  그렇게 측은지심으로 빵호돌을 돌봐주었건만 빵호돌 어머니로부터 엄청난 말을 듣고서도 아무 변명 하지 않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처연해지까지 하다. 그렇게 모진 소리를 들으시고도 나중에 빵호돌 어머니가 아플 때 아들의 병원을 알선해 주시고 병원비에 죽까지 끓여 오시는 모습에 결국 빵호돌 어머니도 감화감동 받아 눈믈을 쏟고 만다.   

주변 사람들에게 늘 장난꾸러기로만 대접받던 빵호돌을 그 자체로 소중하게 생각해 주시고, 아껴 주시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성인군자의 모습이 떠오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이런 분들이 없다는 게 진짜 안타까울 뿐이다.

빵호돌과 할아버지는 객관적으로 볼 때 친구가 될 수 없어 보인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이도 그렇고 살아온 환경도 그렇고.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알고 서로를 이해하며 진심으로 존중하고 서로를 걱정해 준다.  두 사람 사이에 그런 장벽은 아무런 이유가 되지 않는다. 

<최기봉을 찾아라>에서 최기봉 선생님이 어렸을 때 자신을 배려해 주고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평생 교사를 하면서도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못하시고, 머리 한 번 쓰다듬지 않는 냉랭한 교사로 살아온 것과는 정반대로 할아버지는 빵호돌에게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 있다는 걸 몸소 보여 주신다. 할아버지가 빵호돌을 배려하는 마음은 빵호돌에게 전이되어 목마를 타고 싶지만 돈이 없어 하루종일 목마만 향해 쪼그리고 앉아 있는 어떤 꼬마 아이를 그냥 태워 주자고 말하는 또 다른 배려를 낳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는 어떤가? 

빈곤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이렇게 할아버지처럼 따뜻한 배려를 하고 있는가? 

14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돈 벌러 나가면 자기 혼자서 밥 차려 먹어야 하는 빵호돌 같은 아이들이 존재하고, 여전히 연탄 걱정에 추운 겨울이 두렵기만 한 빈곤층이 부지기수이며, 독거노인 또한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들에 대한 지원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요즘의 큰 화두가 되고 있는 무상급식 문제만 해도 그렇다. 

예전엔 나도 무상급식보다 다른 게 더 급선무인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이 쓴 글을 읽고 나서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요지는 이렇다.

왜 무상급식을 해야 하는가? 그건 빈곤층에 대한 배려이다. 그들이 입을 상처에 대한 배려 말이다. 단순히 한달 4만원 정도 하는 급식비를 도와 준다는 의미보다 무상급식을 하는 아이로 낙인 찍혀 학교 생활에서 주눅 들고 마음 고생을 해야 하는 그들에 대한 배려를 해 주자는 취지이다. 모든 학생이 친환경으로 무상급식을 하게 되면 무상급식과 유상급식자에 대한 구별은 자연히 없어진다. <소희의 방>에서도 앞부분에 소희가 무상급식자임이 드러나면서 아이들에게 받았던 모멸감이 나와 있었던 것처럼 무상급식자들은 그런 모멸감을 느낀다. 그것을 없애주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데 700억(서울)이 든다고 하는데 4대강 사업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돈을 가지고 반대하는 작자들은 정말 빈곤층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는 작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흔히 말하는 가난한 사람은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고 본다.  출발부터 다른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게 못사는 거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본다. 한창 인기있는 <시크릿 가든>이란 드라마에서도 부자로 태어난 현빈과 가난하게 태어난 하지원을 보자. 출발부터 다른 그 둘을 놓고 부자인 현빈은 부지런해서 부자이고, 가난한 하지원은 게을러서 그렇게 된 거라고 결과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출발이 달랐기 때문에 그들은 현재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가? 지금의 상황에서는 도저히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가 없다.  부자 또는 가난하게 태어나는 것은 그야말로 운이다. 내가 나라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담 최소한 출발점이 비슷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라가 할 일이라고 본다.

빵호돌이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려고 한다. 그런데 무상급식자로 이름이 올라가 색안경을 쓰고 선생님들이 보게 된다면 (가뜩이나 한 해 늦게 들어온 것도 그런데)그 여린 마음에 상채기가 생기지 않을까? 빵호돌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그래도 따뜻하며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선생님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런 배려를 체험한 사람은 분명 또 다른 배려를 낳을 것이며 그 배려가 점점 더 번져서 지금보다 더 포근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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