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은 엉망진창! 미래그림책 85
마티아스 조트케 글, 슈테펜 부츠 그림, 김라합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부모를 보기좋게 한 방 먹이는 이 아이의 영특함이 대단하긴 하지만... 어차피 다시 대혼란에 빠질 저 방을 뭐하러 엄마아빠가 힘들게 같이 치워줘야 하는거야 ㅠ.ㅠ 그러나 나도 결국은 같이 치워주게 되겠지. 이거슨 부모된 자의 슬픈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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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저녁에 만났을 때 처음 하는 말이 무엇인가요?

"엄마가 시킨 것 다 했어?"

"야, 이게 뭐냐. 지저분하게. 빨리 정리해!"

매일 보는 사이라도 첫 말은 중요합니다.

그 사람 하면 떠오르는 정서를 결정하니까요. -275쪽 

 

그 사람하면 떠오르는 정서라니... 제대로 뒤통수 때려주는 말.

짜증내지 말자...

방학 시작한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힘든 글귀를 만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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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앤드 해리스를 돌아다니다 보면 서점 주인인 케이트 해리스의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기분이 든다. 매장 구성이 케이트의 면면을 그대로 닮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말은 어떤 손님이 케이트에게 들려준 말이다. 서점 주인을 실재하는 책으로 표현하는 서점,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서점은 바로 그런 곳이다. -87쪽

 

주인을 꼭 닮은 가게라는 건, 그게 서점이면 더 재미있긴 하겠지만 서점이 아니더라도 무진장 흥미롭다. 요즘은 이런저런 이유로 집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일이 꽤 가까운 사이에서도 굉장히 희귀한 일이 되어버린데다가, 모든 게 기업화되어있는 상가들이 태반이라 이런 사사로운 재미가 있는 공간이 거의 없어서 안타깝다. 그나마 몇 개 안 남아있는 나의 소중한 단골가게들이 계속 그 자리를 지켜줄 수 있도록...  또 조만간 쇼핑을 나가야하나보다. 왜 이런 결론이 났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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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이란 상상 이상으로 강인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아무런 면역력이 없다.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기존의 내 가치관은 크게 흔들렸다.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들과의 만남을 지속하면서 나는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관계성의 존재방식을 배워나갔다. 각자 자신으로 존재하면서도 서로 섞이고 마음을 나눌 수 있음을 배웠다.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소설 속 방대한 대화가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서로 소통하는 기쁨을 가르쳐줬다.

그 무렵 내가 그곳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모든 지식과 교양은 사람과 사람이 한없이 가까워지기 위한 관용성을 연마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119쪽

 

타인을 이해한다 내지는 하지 못한다고 크게 가르는 것은 또다른 종류의 폭력일 수도 있다. 남을 이해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의 틀 안에 넣고 재단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A는 그러니까 A이고, B는 이래서 B다, 그냥 이렇게만 받아들여줘도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A 안에도, B 안에도 분명히 내게 걸리는 연결고리 하나쯤은 있을 거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고 좋은 일 중 하나는 나누는 것이고, 뭔가를 나누려면 내가 가진 게 있어야 한다. 가진 것이 꼭 유형의 자산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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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곰돌이가 있다.

 

안타깝게도 순남이 연남이 술빵이처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애정전선을 과시하고 있는 어깨 으쓱한 곰돌이라고는 못 하겠지만, 어쨌건 31년간 쭉 나를 따라다닌 곰돌이가 있다. 음.... 옷장 안에.

정확한 상품명은 이렇다. 당시에 어린이 대상 잡지에 주로 실렸던 광고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트-하트-베비(베이비 아님)-베어.

 

이 곰인형은 세 가지 모델로 나왔었다. 아마도 여아와 남아로 갈라놓은 게 분명한 베이비 블루와 베이비 핑크색의 털과 깔맞춤한, 슬리핑 수트라고 불러야 맞을 원피스 스타일의 잠옷을 입은 아가곰들과 얘네들보다 쬐끔 더 덩치가 크고, 굳이 성별을 드러내지 않은 옅은 베이지 브라운 색의 털에 아이보리색 바탕의 아주 연한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잠옷과 세트로 요정모자 같았던 잠옷 모자까지 쓰고 있는 곰(얘는 하트 베어)까지, 이렇게 세 종류의 디자인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자신없지만, 가격은 일반 베어가 18,000원이고 베이비 베어가 각 12,000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곰돌이의 가장 큰, 유니크하고 독보적이며 차별성 두드러지는 점이라면 역시 심장이 뛰는(...) 소리와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었겠지.

 

그 곰인형 광고가 아이들 마음을 꽤나 들썩였던 건 틀림없다. 당시의 나는 제법 많은 집을 무단방문하는 무법자 스타일의 (민폐끼쳐 죄송했습니다 어머니들...) 동네 친구였는데, 거의 모든 집들에 그 사랑스러운 곰들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곤 했다. 남들이 다 가져도 나는 못 가질 수 있다는 걸 전혀 이해하지도 이해할 생각도 없었던 저만 아는 어린이였으므로, 나는 수시로 엄마를 졸라 댔다. 엄마, 하트 베어 사 줘. 얘네는 심장도 뛴단 말이야. 진짜 곰이라구.

엄마는 귀에 뭐라도 덮어놓은 사람처럼 내 말에는 아무 반응도 안 했다. 엄마는 계모가 틀림없어. 무슨 엄마가 딸이 이렇게 소원을 하는데 들은 척도 안 할 수가 있어. 나쁜 엄마야. 옛날 이야기에나 나오는 그런 못된 여자야. 등등의 식으로, 유치한 헛바람이 든 열 살 좀 넘은 어린이는 할 수 있는 소심한 반항은 다 했었을 것이다.

 

그 반항의 정점에서 나는 일기를 썼다.

시위용 일기였다.

잘 시간에 방 불을 끄러 와 주는 엄마가 읽어주기를 내심 기대하며 매일같이 일기를 써서 보란 듯이 책상 위에 넓게 펼쳐놓곤 했다. 이 곰인형의 대단한 점과, 사랑스러운 포인트와, 이 곰돌이의 유행에 편승하지 못한 엄마의 소중한 딸이 얼마나 소외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절절하게 썼다. 이게 지금 유실됐다는 게 아쉬운 동시에 너무너무 다행일 정도로 유치찬란한 소동이 아닐 수 없었다. 잡지에서 찢어낸 페이지를 정성껏 오려 풀칠해 붙였고, 몇천 원 더 비싼 하트 베어가 아닌 분홍색 베비베어를 가질 수만 있어도 세상에서 최고 행복할 거라는 둥의 거짓부렁을 아낌없이 나불거렸다. 그 노력이 가상했는지 가증스러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엄마가 된 입장에서 헤아려 보자면 알면서도 속아주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어쨌건 생일이었나, 크리스마스였나, 무슨 이벤트가 걸쳐지면서 결국 나는 그 곰을 손에 넣었다. 인간승리.... 개뿔. 고집데기 철부지가 엄마를 이겨먹은 창피한 기억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그 곰인형은 서른 해가 넘도록 나를 따라왔으니 함께 추억을 되새기는 사이가 된 셈이다. 물론, 가끔 옷장에서 꺼내어 먼지 털어줄 때.

 

곰인형에 대한 애정이 뿜뿜한 다정한 글을 쭉 읽었는데, 내게도 하나 있는 그 곰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래서 옷장을 열고 곰돌(순일까...)이를 꺼내서 머리도 털어주고, 등짝도 쓸어주고, 손도 만지작만지작 하고 콧등에 삐져나온 검은 실밥들을 대충 손질해 주었다.

 

 

아이고,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사는 게 바쁘고 정신없고... 비글 같은 어린이 세 명이 종종 이성을 흐려놔서 말야... 내가 좀 그래.. 그래도 너 보니 반갑다. 근데 네 꼴이 말이 아니긴 하구나.

소매 고무줄은 다 빠져 너덜거린 지 오래이고, 발은... 발?? 발??

 

물론 내가 자주 들여다보고 안부를 묻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러니까 나도 잘못이야, 라고 단정짓기엔 너무나 또렷하게 남은, 의도적으로 누군가가 잘라내간 흔적이 보이는 이 가슴아픈 범죄의 현장은 뭔가. 물증이 없어도 우리 집에 이런 짓을 할 만한 놈이 누군지는 너무 확실한 심증이 있기에 바로 붙잡아다 추궁했더니 반성하는 기미가 1도 없이 냉큼 "어 나 맞는데" 하고 시인한다. 왜때문에!! 라고 물었더니, 자기 곰인형에게 양말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적당한 양말감이 없길래 오래 된 곰인형 옷 발 부분만 도려냈단다. 아오...

난 엄마가 그거 버리는 건 줄 알았지, 이렇게 뻔순이 같은 대답도 곁들여서.

그래 다 내 탓이다.

 

괜히 미안해서 잘린 옷자락 속에 손가락을 넣어 아기 발 만지던 기분으로 곰 발바닥을 쓸어봤다. 요즘 날씨도 추운데 발 시리겠다, 생각하면서. 너덜대는 소매도 조여주고, 예쁜 원단 조금 가져다 덧신 만들어 신겨줘야겠네... 그런 생각도 하고.

 

그러니까 이건 모두 이 책 덕분이다. 요즘 찾기 힘든 아날로그 현상소에 언제 찍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오래된 필름을 맡겼다가, 설레는 기분으로 내 이름이 적혀있는 종이 봉투를 열어 비닐 안에 들어있는 몇 장의 사진을 한 장씩 넘겨보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같은 종류의 두근거림이 있는 순간을 아끼는 친구에게 읽어주고 싶은 책이다.

 

우리나라에 <테디 베어의 사랑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넘치게 사랑받은 Much Loved>이라는 사진집에는 곰 인형 사진이 가득하다. 이 책은 아일랜드 사진가 마크 닉슨이 낡디낡은 곰 인형들을 사진 찍고 주인들한테서 사연을 받아 기록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수십 년 동안 주인 곁에 있던 인형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닳아빠진 모습은 제목 그대로 '넘치게 사랑받은'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22쪽

 

"이게 다 똑같지가 않거든요, 표정이..... 조금씩 다 다르거든요."

설명을 덧붙였는데도 반복일 뿐이잖아! 나는 내 안의 이 진지함을 알려줄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뒤로 침묵했다. -79쪽

 

"사람한테나 좀 신경 쓰고 그러지." 이 말을 한참 곱씹었다. 어쩐지 들어 본 말인데. 아프리카 아이들, 먼 곳의 난민들을 돕는 사람들한테도 비슷한 비난의 말을 한다. "우리나라에도 굶는 애들이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한테나 신경 쓰고 그러지."

우선순위 때문에 감수성이 좁아지고 좁아지면, 그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 -177쪽

 

마지막 인용문에 대해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저렇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상처받을 마음 한 구석자리를 허하는 것조차도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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