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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플로렝 에밀리오 시리
주연 : 브루스 윌리스, 케빈 폴락, 벤 포스터
개봉 : 2005년 3월 18일
관람 : 2005년 3월 14일

오랜만에 개봉되는 액션 영화인 [호스티지]는 명백히 브루스 윌리스의 영화입니다. [다이하드]와 [아마겟돈]으로 한때 독보적인 액션 영웅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던 브루스 윌리스. 그러나 어느덧 50살을 바라보는 고령의 나이로 인해 그는 더이상 날렵한 액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그의 최근작들은 제겐 너무나도 실망스럽기만 했습니다. [밴디트], [하트의 전쟁], [태양의 눈물]등 [나인 야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흥행 실패작의 멍에를 써야만 했던 브루스 윌리스. 급기야 그의 최근작인 [나인 야드 2]는 브루스 윌리스의 영화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개봉했다가 어느덧 조용히 사라져 버렸네요.
그러한 브루스 윌리스의 실망스러운 행보 때문에 저는 [호스티지]에 대해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요즘들어 너무 축 쳐진 영화들을 많이 본 것같아서 오랜만에 화끈한 액션 영화로 기분 전환이나하자는 마음가짐으로 극장에 들어섰습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과연 이 영화가 화끈한 액션 영화일런지는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저는 점점 영화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제가 기대했던 화끈한 액션 영화는 아닙니다. [다이하드]때처럼 일당백으로 활약하는 브루스 윌리스의 듬직한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단지 가족을 인질로 잡히고 눈물을 흘리는 나약한 모습만이 자주 눈에 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화끈한 액션은 없지만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잘 유지해주는 영화이며, 특히 후반부에 가서는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무서운 장면들이 느닷없이 펼쳐져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도 부리니까요.
[네스트]로 기름끼를 쫙 뺀 담백한 프랑스 액션 영화를 선보였던 플로렝 에밀리오 시리 감독은 데뷔작의 성공이후 헐리우드로 진출해서도 여전히 담백한 액션 영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호스티지]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최고의 액션 영화는 아니지만 최선의 영화적인 재미를 이끌어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암튼 오랜만에 브루스 윌리스가 이름값을 한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




[호스티지]의 시작은 불안했습니다. 어느새 액션 영화의 공식이 되어버린 주인공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며 시작하는 오프닝씬을 이 영화 역시 너무나도 뻔하게 적용시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실수로 인질들을 죽인 제프(브루스 윌리스)가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LA의 인질협상가라는 직업을 버리고 시골 마을의 평범한 경관이 된다는 설정은 앞으로 이 영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눈앞에 휜하게 펼쳐지는 꼴입니다. 저는 이젠 제프가 과거의 죄책감을 떨치고 다시 영웅이 되는 길만이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제 예상이 맞다고 맞장구라도 치는 듯이 이 영화는 그 이후에도 전형적으로만 흘러갑니다. 요새와도 같은 주택을 점거한 10대 소년들의 인질극, 그리고 정체모를 괴한들에게 납치된 제프의 가족들. 과거의 상처때문에 괴로워하는 제프는 모든 아픔을 떨쳐버리고 홀홀단신으로 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며 다시 액션 영웅적인 면모를 갖추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분명 [호스티지]는 영화의 전반부만으로는 그렇게 흘러갈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브루스 윌리스에게 영웅의 모습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가족들이 괴한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들었을때 제프가 처음 보인 반응은 바로 울음이었습니다. 17년전 [다이하드]에서 아내가 테러리스트들의 인질이 되었을때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냉정하게 테러리스트들과 맞서 아내를 구해냈던 브루스 윌리스가 이번엔 나약한 눈물을 흘리며 허둥거립니다. 괴한들이 제프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요구한 DVD를 구하기 위해 제프는 용감하게 요새와 같은 대저택에 잠입하여 직접 DVD도 가져오고 인질들의 생명도 구하기는 커녕 어렵사리 도망친 꼬마 아이에게 DVD를 찾으라는 위험천만한 짓을 시키며 자신은 저택의 밖에서 안절부절하며 10대 인질범들을 설득하기만 합니다.
플로렝 에밀리오 시리 감독은 [호스티지]의 연출을 하며 가장 먼저 해낸 일이 바로 브루스 윌리스라는 헐리우드적인 액션 스타에게 액션 영웅적인 면모를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화끈한 액션 영화는 되지 못했지만 최소한 결말이 눈에 보이는 뻔한 액션 영화는 되지 않았습니다. 브루스 윌리스도 어울리지 않던 코미디 연기나, 이젠 힘겨워보이는 액션 영웅 연기에서 벗어나 인질범에게 눈물을 보일만큼 나약하지만 결코 가족들을 포기하지 않는 평범하지만 강인한 한 가정의 가장 연기를 해냄으로써 제게 깊은 인상을 안겨줬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브루스 윌리스가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악당들도 처치하지 않냐고 반문한다면 솔직히 할말은 없습니다. 그 정도의 사건 해결도 없이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될수는 없는 법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브루스 윌리스의 활약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겁니다.
대저택에 잡힌 인질들과 자신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은 괴한들의 요구사이에서 당황하던 제프가 처음으로 행한 행동은 인질범들을 설득하여 부상을 당한 저택의 주인 스미스(케빈 폴락)를 밖으로 데려나오는 일입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부상자를 최우선적으로 구출하고 그 다음엔 노약자들과 어린이, 여자들을 구출하는 것이 순서죠. 그런데 스미스를 밖으로 데려나온 제프는 그를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하지않고 스미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에게서 괴한들이 요구하는 DVD의 정체를 캐내려합니다. 스미스의 묵숨보다는 가족의 안위가 더 중요했던 겁니다. 액션 영웅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행동이지만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어쩌면 당연한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그 외에도 제프가 여느 액션 영웅과 달랐던 이유는 많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인질범들에게 겨우 도망친 어린 꼬마 아이를 감언이설로 꼬셔 DVD를 찾게하는 위험천만한 행동은 물론이고, 10대 인질범들에게 거짓말을 해서 사건을 해결하려는 얍삽함마저 보입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하이라이트는 10대 인질범중의 한명인 마스(벤 포스터)가 저택에 불을 지른후 제프가 저택에 침입하는 장면입니다. 입에 피를 흘리며 불길속을 헤치고 유유히 걸어오는 마스의 그 무시무시한 카리스마와 비교해서 제프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해보이던지... 괴한들의 총에 맞고 순순히 DVD를 건네주는 제프의 약한 모습과 마치 슬래셔 무비의 초인적인 살인마를 보는 듯한 마스의 여유만만한 습격을 비교해보면 제가 브루스 윌리스에게 이전 영화의 영웅다운 면모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을 쉽게 이해하실 겁니다. 겨우 10대 인질범에게 압도당하는 주인공의 카리스마라니...
하지만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재미있으며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예측할수 없기에 장면 하나하나에 스릴을 맛보게 됩니다. 바로 그러한 점이 이 영화가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의 액션 영화인 이유입니다. 이제 브루스 윌리스의 불후의 히트작인 [다이하드]의 네번째 이야기 [다이하드 4]가 조만간 개봉된다니 그땐 최고이면서 최선의 액션 영화를 맛볼 수 있겠죠.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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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그레그 마크스
주연 : 힐러리 스웽크, 패트릭 스웨이지, 레이첼 리 쿡
개봉 : 2005년 6월 2일
관람 : 2005년 5월 26일

[PM 11:14]라는 이상한 제목의 스릴러 영화에 제가 주목을 한것은 결코 힐러리 스웽크, 패트릭 스웨이지라는 주연 배우의 이름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분명 [소년은 울지 않는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회나 수상한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연기파 여배우 힐러리 스웽크와 [더티댄싱], [사랑과 영혼]으로 왕년의 헐리우드 최고의 로맨틱 가이로 이름을 날렸던 패트릭 스웨이지의 출연은 [PM 11:14]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이기는 하지만 출연배우만으로 스릴러의 재미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영화들을 통해 처절히 체험했던 저로써는 그들의 이름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FUNNY 스릴러라는 이 영화가 내세운 새로운 장르입니다.
FUNNY... 즐겁다, 우습다, 익살맞다 뭐 대강 이런 뜻입니다. 예전에 [퍼니게임]이라는 영화로 제게 익숙하게된 단어인데 [퍼니게임]은 제목과는 달리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상당히 괴롭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죠. 암튼 스릴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단어가 [PM 11:14]라는 스릴러 영화의 광고문구에 사용하게된 이유가 저는 너무나도 궁금했던 겁니다. '어떻게 스릴러가 익살맞을 수 있단 말인가?', '[퍼니게임]처럼 반어법적인 제목일까?' FUNNY 스릴러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제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궁금증은 [PM 11:14]의 시사회에 시간관계상 결코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는 저를 극장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FUNNY 스릴러의 실체는 실망스럽게도 제겐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스릴러로의 체험이었습니다. 관객에게 두뇌싸움을 걸어온것도 아니고, 마지막 반전따위도 없으며, 그냥 여러 사건들을 어지럽게 펼쳐만 놓은채 서둘러 끝을 내버리는 이 영화를 보며 약간은 허탈해지더군요. 하지만 새로운 형식의 스릴러라는 점은 인정해야 할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새로움으로 이 영화의 아쉬움을 달래야할듯...




일단 제가 이 영화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PM 11:14]는 FUNNY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내세우긴 했지만 분명 스릴러 장르의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전혀 스릴러답지 못합니다. 그것은 기존 장르의 법칙을 깼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새로움이 과연 신선한 즐거움인지, 아니면 생뚱맞은 시도인지가 중요하겠죠. 그런 면에서 [PM 11:14]는 제게 생뚱맞은 시도를한 스릴러였습니다.
이 영화는 제목처럼 오후 11시 14분에 일어난 5가지 사건이 영화의 소재입니다. 영화는 별개의 사건처럼 보였던 5가지 사건들을 차례로 보여주며 이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처음 사건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관객들은 다른 사건들을 보여 '아하 그렇구나'라고 무릎을 치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영화속 캐릭터가 아닌 오후 11시 14분이라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PM 11:14]는 시간을 소재로한 또다른 스릴러 영화인 [메멘토]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습니다. [메멘토]가 시간의 순서를 역으로 배치함으로써 관객과의 두뇌 싸움을 극에 달하게 했다면, [PM 11:14]는 관객에게 전혀 두뇌를 쓸 이유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단지 편안하게 앉아 서로의 사건들이 하나로 엮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라고 재촉할 뿐입니다.
이 영화가 시작하며 기존의 스릴러에 익숙했던 저는 나름대로 추리를 해가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추리는 영화의 중간부터는 전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레그 마크스 감독이 의도했던대로 그냥 편안하게 지켜보았습니다. 물론 그러한 편안함은 이 영화의 광고처럼 즐거울수도 있습니다.(그러한 편안함을 내세워 이 영화에 FUNNY 스릴러라고 광고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제가 원했던 스릴러는 결코 아닙니다. 그레그 마크스 감독은 자신의 시나리오를 관객들에게 들이밀며 '어때 기발하지?'라고 자신있는 표정으로 말하는 듯이 보이지만 머리가 텅빈채로 지켜만 봐야했던 저로써는 상당히 허탈하더군요. 스릴러 영화를 보고 있는 순간만큼은 감독과의 두뇌 싸움을 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물론 모든 관객들이 저처럼 스릴러를 감독과 관객간의 두뇌 싸움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에 실망한 것은 제 개인적인 취향탓일수도 있습니다. 두뇌 싸움이 없는 스릴러는 '앙꼬없는 찐빵'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써는 그저 단순히 사건을 나열만하는 이 영화가 결코 만족스러울 수는 없었지만 저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신 관객이라면 새롭고 치밀한 이 영화에 만족하실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분명 새로운 형식의 스릴러 영화입니다. 하나의 사건이 진행되면 하나의 의문은 풀리지만 또다른 하나의 의문점이 남는 이 영화의 구성은 새로움에 목말라있는 관객들에겐 분명 신선한 충격과도 같습니다. 첫번째 사건에서 '도대체 왜 시체가 다리위에서 고속도로로 떨어졌는가?'라는 의문이 생겼다가, 두번째 사건에서는 그 의문의 베일이 벗져지는 대신 '셰리는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새로운 의문이 생깁니다. 이 영화는 이런 식입니다. 두번째 사건은 첫번째 사건의 의문점을 채워주고, 세번째 사건은 두번째 사건의 의문점을 채워줍니다. 이렇게 다섯번째 사건까지 진행되고나면 이 영화는 하나의 거대한 퍼즐을 완성해내는 겁니다.
물론 그 거대한 퍼즐에 두뇌싸움이라는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진 것은 아쉬웠지만 흔한 소재에 억지스러운 반전이 판을 치는 요즘 이러한 새로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PM 11:14]는 중간 이상은 하는 스릴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중간 이상을 뛰어넘지 못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네요. 그냥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닌 관객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추리할 여백을 남겨주었다면 어쩌면 [메멘토]와 버금가는 스릴러가 될수도 있었을텐데... 생각할수록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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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박광현
주연 : 정재영, 신하균, 강혜정,임하룡
개봉 : 2005년 8월 4일
관람 : 2005년 7월 20일

1950년 11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동막골이라는 문명과는 동떨어진 깊은 산골마을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군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미군에게 쫓겨 달아나던 인민군 리수화(정재영)일행, 전쟁이 싫어 탈영한 국군 표현철(신하균)일행, 비행기 추락으로 말도 통하지 않는 이 이상한 마을에 갇혀버린 미군 스미스(스티브 태슐러)까지... 이제 그들은 동막골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거를 시작합니다.
[웰컴투 동막골]은 이상한 매력을 지닌 영화입니다. 한국전쟁이라는 우리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지옥과도 같은 시간적 배경 속에서, 순수함으로 뭉쳐진 그 시절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장 이상적인 천국과도 같은 동막골이라는 마을을 영화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 영화는 시간적 배경은 지옥인데 공간적 배경이 천국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들이 충돌하며 관객들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웃음과 감동을 안겨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웰컴투 동막골]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울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반만년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했으면서도 관객들의 얼굴에 미소를 띄우게 하는 힘. 다른 코미디 영화처럼 아주 대놓고 관객들에게 웃으라고 윽박지르는 식의 억지 웃음이 아닌,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박장대소를 하게 되는 아주 자연스러운 웃음을 이 영화는 선사하는 겁니다.
영화를 보는내내 곧 다가올 엄청난 비극을 예상하면서도 동막골 사람들의 순수함에 동화되어 마냥 행복하게 웃게 됩니다. 그리고 예정대로 다가온 마지막 비극에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던 제게 이 영화는 말합니다. 웃으라고... 이 엄청난 비극마저도 행복한 웃음으로 만드는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영화가 바로 [웰컴투 동막골]입니다.




이 영화의 웃음의 원천지는 바로 순수함입니다. 총이 무엇인지, 수류탄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동막골의 순수한 사람들은 오랜만에 마을을 찾은 외지인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합니다. 리수화 일행과 표현철 일행이 만나자마자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고함을 질러대도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왜그러는지 알지못합니다. 단지 다음날 아침이면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일상 생활을 위해 밭으로 나갈 뿐입니다.
이러한 마을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순수함은 리수화 일행과 표현철 일행이 당혹스러워하는 것만큼 관객들에게도 웃음을 안겨줍니다. 사람의 몸따위는 산산조각으로 만들수 있는 그 무시무시한 전쟁 무기들이 마을 사람들에겐 그냥 이상한 막대기나 신기한 장난감으로 보였을테니, 당연히 무서워 벌벌 떨어야하는 장면에서 그들은 오히려 태연스럽게 사람좋은 웃음만을 지어 보이는 겁니다. 이러한 순수함이 전쟁의 긴박함 속에서 여유로움을 잃고 지내던 리수화 일행과 표현철 일행의 마음까지도 동화시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마저도 얼굴 한가득 웃음을 짓게 되는 겁니다.
간혹 영화들은 순수함을 무기로 관객들을 유혹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순수함들은 대부분 어린 아이들을 내세워 관객들이 잊고 살던 동심을 자극하는 정도로 마무리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순수함은 그러한 동심이 아닌 문명의 세계와 동떨어진... 어쩌면 우리 모두 문명의 세계에 물들이지 않았다면 지니고 있었을 그러한 순수함을 보여줌으로써 관객 자신의 모습을 다시한번 되돌아보게끔 만듭니다. 휴대폰을 지니고, 컴퓨터를 하루종일하며, TV에 빠져사는 지금 우리들은 모습은 과연 행복한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동막골 사람들의 생활이 더 행복하지 않은가? 하고 말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문명의 혜택을 받았기에 서로 죽이는 전쟁을 하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던 순수한 옛날 그 시절이 더욱 행복하지 않았을까라고... 이 영화의 순수함에 동화되어 저도 모르는 사이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습니다.




이 영화가 순수함을 관객에게 설파하는 영화라면 광녀 여일(강혜정)은 그러한 순수함을 극대화시키는 캐릭터입니다. 사실 처음엔 강혜정이 과연 여일역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여일은 순수한 동막골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그런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혜정은 아직 [올드보이]의 그 충격적인 이미지를 채 벗기 전이었으니...
그러나 그러한 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리수화와의 첫만남에서부터 그 엉뚱함으로인해 제 웃음보를 터뜨렸던 여일은 영화내내 순수함과 그로인한 웃음을 이어주는 주요 캐릭터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해냅니다. 그리고 물론 그 중심에는 근친상간을 하는 미도라는 캐릭터의 강인한 이미지를 완벽하게 벗어낸 강혜정이라는 배우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녀의 연기 인생은 [웰컴투 동막골]을 시작으로 활짝 열린 느낌입니다.
물론 정재영과 신하균, 임하룡의 연기도 전혀 군더더기가 없었습니다. 인민군의 그 강렬한 카리스마를 연기한 정재영은 카리스마가 순수함에 동화되는 순간을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게 연기함으로써 이 영화의 재미에 톡톡한 몫을 해냈으며, 신하균 역시 전쟁이 가져다준 마음의 상처로인해 쉽게 가슴을 열지 못하는 표현철 역에 이보다 더 적역은 없다싶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해냈습니다.
이렇게 배우들의 잘 조화된 연기는 영화의 마지막으로 치닫으며 제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영화의 중간중간 미군의 동막골 폭격을 예감하는 씬들을 넣어줌으로써 영화를 보는 저를 불안하게 하더니만 결국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던 그 비극의 장면이 영화의 후반에 펼쳐집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눈물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비오듯이 쏟아지는 폭탄의 세례속에서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그 순수함을 지켰다는 리수화, 표현철의 그 환희에 찬 표정은 눈물을 흘리지 않더라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전해오는 진정한 감동의 순간을 제게 선사합니다.




[웰컴투 동막골]을 연출한 박광현 감독(영화를 보기전에는 [퇴마록]의 박광춘 감독과 이름이 헷갈려 자칫 영화 자체를 포기할뻔 했습니다.)은 영화를 환상과 현실의 기묘한 조화로 만들어냈습니다. 수류탄이 옥수수 창고에 터져 옥수수들이 팝콘이 되어 비오듯이 떨어지는 장면은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표현하고자하는 것들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동막골이라는 마을을 통해, 동족간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죽고 죽였던 전쟁의 아픔을 잠시라고 잊고 편히 쉬라고 말하는 이 영화의 순수함은 전쟁 영화를 흑과 백의 단순한 논리로 마치 액션 영화 찍듯이 만들어내는 다른 전쟁 영화와 너무나도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에 더욱더 돋보입니다. 결국 나쁜 것은 전쟁 그 자체일뿐, 이유도 모르는채 그 전쟁에 뛰어든 남 혹은 북의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이 영화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처참한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천국과도 같은 동막골에서 잠시라도 진정한 행복을 맛본 영화속 캐릭터들의 그 마지막 행복한 표정처럼 각막한 세상에서 단 2시간만이라도 완벽한 천국을 맛본 저 역시도 그 순간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저를 동막골로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동막골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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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마이클 베이
주연 : 이완 맥그리거, 스칼렛 요한슨
개봉 : 2005년 7월 21일
관람 : 2005년 7월 18일

올 여름에 개봉한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중에서 [아일랜드]만큼 기대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헷갈리는 영화도 드물것입니다. 이유는 감독이 바로 마이클 베이이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는 마이클 베이가 감독을 했기 때문이 기대되는 영화이기도 했지만 그와는 반대로 봐야할지 망설여지는 영화이기도 했던 겁니다.
마이클 베이... 한때는 헐리우드의 감독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감독으로 다섯 손가락안에 꼽혔던 인물입니다. 그의 연출 데뷔작인 [나쁜 녀석들]은 그야말로 유쾌한 액션영화였습니다. 액션버디무비에서 언제나 떠벌이 역할만 하던 흑인들을 서로 묶어 새로운 감각의 액션버디무비를 창조해낸 [나쁜 녀석들]은 약간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액션버디무비중에서 [리쎌웨폰]다음으로 뛰어난 영화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를 좋아하게된 계기가 된 영화는 그의 두번째 연출작인 [더 록]입니다. 저는 [더 록]을 통해 니콜라스 케이지가 액션 영화의 주인공으로 어울리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되었으며, 영원한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가 액션 배우로 아직 건재함을 알게되었고, 그저그런 배우로 알고 있었던 에드 해리스를 발견하였습니다. [더 록]은 이렇듯 배우의 발견뿐만 아니라 시원시원한 마이클 베이식 액션 쾌감과 액션 영화로는 드물게 여운이 남는 캐릭터, 그리고 감각적인 영상으로 완전히 절 사로잡았죠.
하지만 제가 마이클 베이에게 실망을 느끼는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기대를 잔뜩 안고 개봉당일 극장에서 봤던 [아마겟돈]의 그 허황된 영웅주의는 뭐 그런대로 참고 넘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주만]의 삐뚤어진 애국주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더군요. 국가를 위해서 개인은 희생되어야 하는 그 말도 안되는 상황을 웅장한 음악과 함께 비장하게 표현한 장면에 이르러서는 구역질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나쁜 녀석들 2]도 [진주만]에 비해 전혀 나을 것이 없는 졸작이었죠. 도대체 내가 좋아했던 마이클 베이가 어쩌다가 이렇게 변해버린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아일랜드]를 극장으로 달려가 봐야할지, 아니면 비디오로 출시되기를 기다려야할지 정말 난감했습니다. 다행히 네이버 시사회가 있었길래 망정이지, 아마 시사회조차 없었다면 아직도 저는 극장앞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을 겁니다.




일단 결과부터 이야기한다면 [아일랜드]는 마이클 베이의 [아마겟돈]이전의 영화로의 귀환과도 같은 소중한 영화입니다. 물론 [더 록]과의 비교는 아직 무리지만 [아마겟돈], [진주만], [나쁜 녀석들 2]와 비교한다면 마이클 베이의 솜씨가 아직 여전하다는 것을 증명해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아일랜드]는 인간복제라는 사회 이슈적인 문제를 액션에 접목시킨 영화입니다. 이러한 이 영화의 주제는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배양이라는 연구성과에 대해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즉각적으로 반대 입장을 천명했기 때문이죠. [아일랜드]는 바로 그러한 부시의 입장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영화속에 표현해놓고 전세계 관객들에게 부시의 반대입장을 설득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오락 영화에 대한 정치적 해석은 제 취향이 아닐뿐더러 [진주만]의 노골적인 정치성향과 비교한다면 상당히 양호한 편이기에 이 글에선 그러한 점을 철저히 배제하겠습니다.
이렇게 정치적인 면을 배제하고 본다면 [아일랜드]는 충분히 즐길만한 잘만들어진 액션 영화입니다. 부자들의 장기 이식을 위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지하의 비밀 실험실에서 생활하는 복제 인간들. 그들은 자신이 복제 인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채 단지 오염된 지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행운의 존재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지구의 오염으로 인하여 건물안에 갇혀살듯이 생활하는 그들에게도 한가지 희망이 있었으니 그것은 추천을 통해 유일한 지상 낙원인 아일랜드로 떠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복제 인간들 속에서도 '과연 이 모든 것이 사실일까?'라는 의문을 품은 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링컨6-에코(이완 맥그리거)입니다.
이제 영화는 링컨의 이러한 의문이 현실로 드러나며 링컨의 어마어마한 모험담을 시작합니다. 물론 여기에 아름다운 여인이 빠지면 안되겠죠. 복제 인간들에겐 사랑이라는 불필요한 감정을 배제했다고 복제 인간을 창조한 메릭 박사(숀 빈)는 말하지만 링컨은 액션 영화속 주인공답게 굳이 조던2-델타(스칼렛 요한슨)라는 매력적인 여성의 손을 잡고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영화는 숨 쉴틈을 주지않는 액션의 향연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마이클 베이의 솜씨가 펼쳐집니다. 링컨과 조던은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치고, 외인부대까지 동원한 메릭 박사의 추격은 집요하게 펼쳐집니다. 입이 딱 벌어질 차량 추격씬은 보통이고, 건물 한층을 박살내고, 도심의 거리를 아수라장으로 만들며 액션 영화의 재미를 맘껏 펼쳐보여줍니다.
바로 이러한 순수 액션 영화의 재미... 어쩌면 그것이 제가 마이클 베이 감독에게 원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마겟돈]은 너무 과도하게 영웅주의에 집착했습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한사람의 영웅을 희생시키는 그 낯뜨거운 마지막 장면은 [더 록]의 깔끔한 마무리와는 달리 영화 전반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최악의 라스트씬이었습니다. 전쟁 영화이면서 액션 영화적인 재미만을 추구했던 [진주만]의 무책임함은 아직까지 제게 최악의 헐리우드 영화로 기억에 남습니다. 마약 사범을 잡기위해 다른 나라의 도시를 완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히히덕거리는 [나쁜 녀석들 2]도 물론 말할것도 없죠. 이들 영화는 단순 액션 영화이지만 왠지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것이 제 개인적인 취향 탓인지, 아니면 미국내 흥행을 위한 마이클 베이의 의도적인 전략인지는 모르지만 암튼 제가 마이클 베이에게 실망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것이었죠.
하지만 [아일랜드]는 다릅니다. 물론 소재 자체가 정치적일 수도 있는 민감한 소재이기는 하지만 최근의 상황이 이 영화의 소재를 정치적으로 만들었을뿐 사실 따지고보면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는 오래전부터 SF영화에 널리 사용되고 있었으며, 그것을 표현하는 이 영화의 방식은 조금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재미를 위한 설정일뿐 마이클 베이의 이전 영화들처럼 기분이 나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윌 스미스, 니콜라스 케이지를 액션 히어로로 조련시켰던 마이클 베이는 [아일랜드]에서도 그 실력을 발휘하여 액션 블럭버스터에 별로 어울릴것 같지 않던 이완 맥그리거와 스칼렛 요한슨을 멋지게 액션 히어로로 만들어 냈습니다.
결국 이러한 요소들이 [아일랜드]를 멋진 배우들의 매력과 시원시원한 액션을 통해 충분히 무더위를 잊고 충분히 영화속에 빠져들만한 액션 영화로 만든 셈입니다. [아마겟돈], [진주만], [나쁜 녀석들 2]를 보며 무더위를 잊기는 커녕 오히려 짜증만 났던 제게 이러한 마이클 베이의 과거로의 귀환이 얼마나 반가운지...  다시 예전으로 돌아와서 반갑다. 마이클 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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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로버트 로드리게즈, 프랭크 밀러, 쿠엔틴 타란티노
주연 : 브루스 윌리스, 제시카 알바, 미키 루크, 클라이브 오웬
개봉 : 2005년 6월 30일
관람 : 2005년 7월 8일

[우주전쟁]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본 후 기분이 들떠서 이 기분을 또다른 재미있는 영화로 쭈욱 이어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대하고 있는 영화들은 몇 주 더 기다려야 개봉을 하기에 극장으로 달려가고 싶어도 보고 싶은 영화가 없더군요. 그때 제 눈에 띈 영화가 바로 [씬 시티]입니다.
6월 30일에 개봉한 영화를 7월 8일에 본다는 것은 제겐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저는 영화를 재미있게 볼려면 개봉 후 일주일 전에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개봉한 후 몇주가 지나서 보게된다면 알게 모르게 영화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를 듣고 보게 될것이며, 그런 정보들은 영화를 재미없게 만들기때문입니다. 예전에 인터넷 예매가 없을 당시에 상영 극장이 언제나 만원이어서 보지 못했다가 몇 개월 후에 보게되었던 [사랑과 영혼], [타이타닉]이 기대보다 별로 재미없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죠. 그래서 인터넷 예매와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언제든지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게된 요즘은 보고 싶은 영화는 무조건 개봉 일주일 전에 봤으며, 어쩌다가 놓친 영화들은 차라리 비디오로 출시 후 보게 된겁니다.
[씬 시티]가 개봉되었던 지난주에 어쩌다보니 [씬 시티]가 아닌 [분홍신]을 보게 되어서(집앞 극장에선 [씬 시티]가 하지 않았거든요. ^^) 아쉽지만 [씬 시티]는 비디오로 보자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우주전쟁]를 본 후 자꾸만 [씬 시티]에 대한 미련이 절 괴롭혔답니다. 그렇게 저는 [씬 시티]를 봤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본 후 극장을 나오며 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연 이틀동안 맘에 드는 영화를 본 후 느끼는 그 짜릿한 쾌감... 정말 최고의 한주였답니다.




[씬 시티]의 첫 느낌은 굉장히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흑백과 원색의 화려한 조화는 마치 멋진 그림 엽서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로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아름다움의 뒤편엔 치명적인 잔인함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영화의 처음부터 복잡한 파티장을 빠져나와 흑백의 도시의 바라보는 붉은 옷의 아름다운 여인이 화면에 잡힙니다. 흑백의 화면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여인의 붉은 옷과 입술, 순간 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가 끈적끈적한 멘트를 날립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뜨거운 눈빛, 영화는 마치 한편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이 두사람을 이끌어가려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여인은 쓰러집니다. 남자의 총에 맞은채...
[씬 시티]는 이런 식입니다. 흑백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흑백속의 원색의 화려한 칼라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아름다움을 잡아내는 영화의 캐릭터들은 잔인하기 짝이 없습니다. 3가지 에피소드 속에서 3가지 잔인한 액션극을 펼치는 이 영화는 관객에게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주겠다고 결심이라도 한듯이 시종일관 관객을 몰아세웁니다.
아름다움의 잔인함...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그 색다른 쾌감은 2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의 러닝타임동안 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합니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데스페라도]의 춤추듯이 아름다운 액션씬으로 단숨에 제가 좋아하는 감독으로 등극하더니만, [스파이 키드 시리즈]로 몇 년간 유아틱한 영화에만 머물어 저를 실망시키더니, 결국 [씬 시티]로 아직 그가 액션 미학의 거장으로 건재함을 보여줬습니다.




[씬 시티]는 또다른 쾌감은 이 영화에 출연하는 수많은 헐리우드 스타급 배우들의 전혀 뜻밖에 모습을 보는 것에 있습니다. 제가 [씬 시티]를 처음부터 기대했던 것도 물론 화려한 배역진도 커다란 몫을 차지했지만 영화를 보는 그 순간 제가 예상했던 캐릭터를 맡은 배우는 고작 브루스 윌리스, 제시카 알바 뿐이었습니다.
로맨틱 가이 조쉬 하트넷이 냉혹한 킬러로 등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클로져]의 클라이브 오웬은 저렇게 터프했나 의심이 될 정도이며, 미키 루크에 이르러서는 과연 저 배우가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배우인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지경에 이르릅니다. 아마 영화를 보기전 마브라는 캐릭터가 마키 루크라는 사실을 듣지 않았다면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그런데 미키 루크는 어디에 나온거지?'라고 물을뻔 했습니다.
베네치오 델 토로의 능글맞은 악역도 너무 의외여서 유쾌했으며, 브리트니 머피(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안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마이클 매드슨, 마이클 클라크 던칸 등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서 튀어나오는 낯익은 배우들의 뜻밖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습니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반지의 제왕]에서 귀여운 프로도를 연기한 일라이자 우드의 섬뜩한 연기가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실 그가 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처음 안것은 영화 초반 출연진 이름이 나오는 부분에서입니다. '어! 우리의 프로도가 나오네' 저는 영화가 시작하자 선하디 선한 일라이자 우드를 찾느라 분주했고, 결국 제가 그토록 찾아헤맸건 일라이자 우드가 나오는 장면을 봤을땐 한동안 얼떨떨했답니다. 그에게 이런 섬뜩한 면이 있을 줄이야... 그가 연기한 캐빈이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속 수많은 잔인한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캐릭터로 지금도 일라이자 우드의 그 무표정한 얼굴만 생각해도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과연 헐리우드 스타들이 단지 번지르한 외모와 매스컴을 뜨겁게 달굴 스캔들만으로 스타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닌가 봅니다. 그 어떤 캐릭터를 맞겨도 완벽하게 그 캐릭터에 녹아드는 그들의 연기는 영화의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씬 시티]의 그 수많은 헐리우드 스타급 배우들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씬 시티]는 시각적인 쾌감에 충실한 영화입니다. 솔직히 이 영화는 3가지 에피소드를 하나의 영화에 풀어넣다보니 이야기의 짜임새는 부족한 편입니다.(제가 옴니버스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2시간 동안 풀어넣은 것도 아니고 무려 3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다보니 아무래도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겠죠.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스토리의 짜임새를 포기하더라도 '최고'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입니다. 다른 영화에선 결코 느껴본 적이 없는 흑백과 원색의 조화로 인한 아름다움의 잔인함은 물론이고, 폭력 미학의 대가인 3명의 감독들이 연출한 덕분인지 근래 보기 드문 폭력적인 장면들의 거부할 수 없는 쾌감은 '영상 쾌감'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려 보입니다.
사랑하는 어린 소녀를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하는 늙은 형사의 마지막 평온한 눈빛, 하룻밤의 사랑을 알려준 창녀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복수를 실행하고 괴물같은 사내의 상처입은 얼굴, 창녀 구역의 평화를 되찾은 후 몰려드는 한 사나이의 만족스러운 미소, 하나하나의 에피소드와 캐릭터들은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이 '완벽'이라는 단어에 맞게 영화속에 하나로 버무려지며 제게 놀라움을 안겨줬습니다. 과연 언제쯤 또다시 이런 완벽한 영상 쾌감을 경험하게 될런지... 이 영화의 영상 쾌감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며 썸머시즌의 다음 기대작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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