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름달과 일식, 마구간에서 죽어 가는 말들에 대하여>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한다는 건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러니까, 누군가를 알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이고 진지하게 노력하면, 그 결과 우리는 상대의 본질에 어느 정도까지 다가가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잘 안다고 여기는 상대에 대해서,
정말 중요한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일까. - P45

<높은 탑과 깊은 우물, 또는 노몬한을 멀리 떠나서>
p.91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노력만큼 인간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것도 없다.

p93
"법률이란 건, 요컨대 말이야, 지상의 만사를 관장하는 거야. 음은 음이며, 양은 양인 세계 말이야. 나는 나이며 그는 그인 세계지. ‘나는 나, 그는 그, 가을날의 해 질 녘. 그런데 자네는 거기에 속해 있지 않아. 자네가 속해 있는 세계는 그 위거나 아래야."

"그 위거나 아래,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겁니까?" 나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그렇게 질문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건 아니지." 하고 혼다 씨는 말했다.
그리고 잠시 컥컥 기침을 하고는 휴지에 가래를 탁 뱉었다. 그는 자신이 뱉어 낸 가래를 한참 바라보고는, 휴지를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은 나쁘다. 그런 유가 아니야. 흐름을 거역하지 말고, 위로 가야 할 때는 위로 가고, 아래로 가야 할 때는 아래로 가야지. 위로 가야 할때는 가장 높은 탑을 찾아서 그 꼭대기에 올라가면 되고, 아래로 가야 할 때는 가장 깊은 우물을 찾아 그 바닥으로 내려가면 돼. 흐름이 없을 때는,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되고, 흐름을거역하면 모든 게 말라 버려, 모든 게 말라 버리면 이 세상은 암흑이지. ‘나는 그, 그는 나, 봄날의 초저녁‘ 나를 버릴 때, 나는 있어."

..(중략)

"흐름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건 괴로운 일이야. 그러나 기다려야 할 때는 반드시 기다려야 해. 죽었다 생각하고 있으면 돼."
....
"그러니까 저는 한동안 죽은 것처럼 있는 편이 좋다는 말씀인가요?"
"그래", 하고 그는 말했다.
"죽어야 삶도 있으니, 노몬한."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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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한정된 시간밖에 부여받지 못했지요. 그런 와중에 전문 분야에 특화되면 될수록 시야는 좁아집니다. 시야가 좁아지면 세상의 상식과 동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나를 버티고 있던 상식이 어쩌면 세간의 비상식일지도 모른다고는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지요." - P212

"이번엔 범죄자로 취급할 생각이야?"
"그 예비군이지. 잘 들어. 인간은 성실하게 살아도 눈앞에 장벽이 가로막을 때가 있어.
깨부수거나 뛰어넘거나 해서 그 너머로 가려고 하지. 
하지만 장벽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놈은 다른 길을 찾아. 대부분은 편한 길이지. 하지만 말이야, 그 편한 길이란 힘없는 자의 전용 도로야.
그렇게 편한 쪽, 편한 길을 계속 선택하면 제대로 싸울 힘을 잃게 돼. 그리고 편하기 때문이란 이유로 거짓을 배우게 되고, 다른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법을 배우지."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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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수사 결과가 본부로 올라왔고,
이누카이는 보고서를 훑어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일반시민‘이라는 것이 어딘가 추하다고 생각했다. 

익명성 뒤에 숨은 악의를 여기에서도 또렷이 보았기 때문이다. 온라인의 게시물이나 트위터는 간편하고 즉각적이다. 익명으로 가볍게 올린 글에 즉각적으로 반응이 온다. 특정 대상을 욕하고 도망치는 데 이만큼 알맞은 도구는 없다. 무엇을 어떻게 쓰든지 전부 자유고, 책임을 묻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마치 공중화장실의 낙서처럼 열등감을 뒤집어 놓은 악의로 가득하다.  - P122

조건 없이 모여드는 선의만큼 처치 곤란한 것은 없다. 잇속을 바라고 도움을 준 사람에겐 빚을 갚으면 그만이지만, 선의의 제삼자는 타산적이지 않아 기대를 배신당하면 감정적으로 변한다. 호의는 간단히 악의로 반전되고, 어제까지 추대하던 우상을 걷어차 버리며 희열을 느낀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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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라."
‘지식으로 바꿔 말해도 돼. 지식은 쌓아 올리는 거잖아. 사람은 그 지식 위에 서서 세상을 바라봐. 따라서 눈높이가 높으면 목적지와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더 잘 보이지. 뭐, 개중에는 평지에 있으면서 동물적인 감각으로 목적지를 분간해냅다 달리는 사람도 있지만."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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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기대를 배신하는 게 그렇게 죄스러운 일일까.
본인의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일까. - P170

".. 스스로 존엄성을 버리지 않는 한 사람은 그리 쉽게 타락하지 않는 법이거든."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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