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음악은 '말'한다 -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헤르메스 총서 1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지음, 강해근 옮김 / 음악세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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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음악가가 되려면 피아노 연습시간만큼 책 읽는 데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 브람스

읽고 너어어어어어어어무 크으으으으으은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어렴풋하게나마 가지고 있던 음악에 대한 태도나 관점이 사정없이 뒤흔들리는 듯하다. 더 좋은 연주, 더 좋은 감상을 하고 싶으신 모든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은 책! 깊이 고민해봄직한 문제들을 많이 제기하고 있다. (비록 전면적이고 총체적으로 다뤄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 책의 번역 제목대로, 바로크 음악을 해석하는 유용한 팁과 주의점들이 골고루 제시되어 있기도 하다. 빈에서 묵을 당시 친구의 서가에 꽂혀 있던 것을 눈여겨 봐두었다가 이번에 사보게 되었다.

아래는 아르농쿠르가 1980년에 에라스무스 상을 받고서 행한 기념연설문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다소간 길게 인용한다. 작은따옴표에 의한 강조는 저자와 인용자의 것이 섞여 있다.

“중세에서 프랑스혁명에 이르기까지 음악은 문화의 한 기둥이자 삶의 한 기둥이었다.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일반교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음악은 오페라나 연주회에 가는 것으로 공허한 저녁시간을 메우거나 공적인 축제의 분위기를 돋운다거나, 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집안의 적막감을 물리치고 활기를 찾게 하는 장식으로 변해 버렸다. 현대인들은 양적으로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음악을 듣고 있다. 그것도 실로 거의 끊임없이 음악과 함께 하면서도 그 음악이 우리의 삶에서 거의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 채 그저 사소한 장식에 지나지 않는 모순에 찬 상황이 되고 말았다.

(...) 음악의 의미의 전적인 변화는 이처럼 지난 2세기 동안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러면서 동시대의 음악에 대한, 그리고 동시대 예술 전반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나타났다. 음악이 삶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인 한, 음악은 ‘그 시대에’ 작곡된 것만 기능할 수 있었다. 음악은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언어이고, 동시대인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음악은 인간을, 청중과 음악가 모두를 변화시켰었다. 사람들이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정신성에 호응하여 그때마다 새로운 집을 다시 세워야 했던 것처럼 음악도 그때그때 새로이 창작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오래된 음악, 즉 지나간 세대의 음악을 이해하는 것도 활용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과거의 음악에 대해서는 그 훌륭한 기법에 대해 경탄하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음악이 삶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된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즉, 장식으로서의 음악은 우선 첫째로 ‘아름다워’야만 하게 되었다. 음악은 결코 껄끄러워서는 안 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현대의 음악은 보다시피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대음악은 여타 예술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정신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정신적 상황에 대한 진지하고 가차없는 비판이 단지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삶에 파고들어 간섭하고 껄끄러운 존재가 된다. 그리하여 그것이 방해한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방해해야만 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현대의 음악으로부터 멀어지는 모순에 찬 상황이 초래되었다. 사람들은 비판 따위를 바라지 않는다. 회색의 일상에서 치유받기 위해 아름다움만을 원하였다. 그리하여 예술, 특히 음악은 단순한 장식이 되고, 사람들은 역사적 예술, 즉, 옛음악으로 눈을 돌렸던 것이다. 옛음악에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조화가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으로는, 옛음악으로의 이와 같은 지향은 일련의 명백한 ‘오해들’이 겹침으로써만 일어날 수 있었다고 본다. 우리는 아름답기만 한 음악만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현 시대는 보다시피 그러한 음악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런데 사실 아름답기만 한 음악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다. ‘아름다움’이란 음악의 구성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구성요소를 모두 제쳐놓고 무시하는 경우에 ‘한해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특정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우리가 음악을 ‘전체로서’ 이해할 수 없게 된 이후, 어쩌면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은 후부터 음악을 '그 아름다움만에로' 끌어내릴 수 있게 되었고, 말하자면 다리미로 평평하게 펴 버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음악이 일상의 예쁜 장식에 지나지 않게 되자 우리는 옛음악을-즉 원래 음악이라고 부르던 그것을- 더 이상 ‘그 전체로서’ 이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서는 음악을 미적인 것으로 끌어내려 다리미로 펴버리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가 삶을 변화시키는 음악의 힘을 여전히 믿으면서도 현대의 정신적 상황이 음악을 그 중심적 위치에서 주변으로, 즉 감동적인 것에서 '아름다운 것으로 격하’시킨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면, 우리는 거의 출구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하여 그 상황과 타협할 수는 없다. 그렇다. 만약 그것이 우리 예술이 처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나는 음악하는 것을 당장 그만 둘 것이다.

나는 더욱 부푼 희망을 안고서 확신한다. 우리들 모두 마침내 깨닫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음악을 포기할 수 없으며-내가 말한 것과 같은 ‘이해’를 동반하지 않는 ‘저속화’야말로 포기이다-, 예컨대 몬테베르디나 바흐 혹은 모차르트의 음악의 힘과 메시지에 우리 자신을 안심하고 의탁할 수 있음을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음악을 보다 깊고 광범위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이러한 음악이 어떠한 것인지, 아름다움을 아득히 초월하여 그 언어의 다양성으로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에이게 하고 설레이게 하는지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몬테베르디나 바흐 혹은 모차르트 등의 음악을 이와 같이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들의 언어’로 말하는 ‘우리들의 문화’이자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시대’의 현대음악을 다시 찾아야 한다.”


덧) 보잉 표시의 유래에 관한 흥미로운 가설 하나.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당시 생활의 각 영역이 그러했듯이 모든 것이 서열화되어 있었는바, 음표 중에도 고귀한 음표(nobiles)와 비천한 음표(viles), 즉 좋은 음표와 나쁜 음표가 있었다. 그리고 이 때 고귀함, 천함이라는 개념은 강세와 관계된다. 예컨대 보통의 4/4박자 리듬에 이를 대입하면 고귀한 제1박, 나쁜 제2박, 좀 덜 고귀한 제3박, 비천한 제4박(쉽게 말해, 강 약 중강 약 내지는 f p f p. 좀더 세밀하게 표시해보면, f > mp < mf > p)과 같은 식으로 되는데, 이 때의 n v n v 를 찬찬히 보라. 다운 업 다운 업의 보잉 표시를 닮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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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29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르농쿠르 너무 좋아하는데!!! ^^
당장 들어야 겠어요.
울적하면 듣던 건데..예외도 있는거니까..

묵향 2015-01-30 15:45   좋아요 1 | URL
예, 그가 음악을 대하는 자세로부터 참 많이 배웁니다^^
 
괴테와 베토벤 - 시성과 악성의 운명적 만남과 사랑
로맹 롤랑 지음, 박영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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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쓴 두 독일인(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이야기. 로망 롤랑은 앞서 포스팅한 『베(에)토벤의 생애』 외에도 『베토벤의 대창조기』라는 방대한 연구서를 남겼는데, 이는 7권으로 나뉘어 1권 『영웅 교향곡에서부터 열정 소나타까지』, 2권 『괴테와 베토벤』, 3권 『부활의 노래 - 장엄미사곡과 최후의 소나타들』, 4권 『9번 교향곡』, 5권 『마지막 4중주곡들』, 6권 『희비의 종결 - 베토벤 최후의 수개월』, 7권 『베토벤의 연인들』로 되었다. 이 책은 그 중 제2권인 셈이다.

“목적을 위하여 평범한 외부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우리 마음속에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음악의 위대하고 고귀한 특권입니다."

- 괴테

“음악은 인간을 덮고 있지만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더 높은 지식의 세계로 통하는 유일한 무형의 통로이다.”

-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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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생애 에버그린북스 10
로맹 롤랑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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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운명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하여야 할 것이네."

- 베토벤이 의사 프란츠 게르하르트 베겔러에게 보낸 편지(1801. 6. 29.) 중에서

"옳게 또 떳떳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오직 그러한 사실만으로써 능히 불행을 견디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입증하고 싶습니다."

- 베토벤이 빈 시청에 보낸 편지(1819. 2. 1.) 중에서

로맹 롤랑이 『장 크리스토프』를 완성하기에 앞서 낸 『위대한 거장들의 생애』 시리즈(베토벤, 미켈란젤로, 톨스토이 등) 중 제1권. 이휘영 교수님의 번역이 다소 고색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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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전산 이야기 - 불황기 10배 성장, 손대는 분야마다 세계 1위, 신화가 된 회사
김성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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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무지막지한 기업이 다 있어 싶을 정도의 무대뽀 기업 이야기. 여기저기서 언뜻 들어본 것 같아서 헌책방에 싸게 나와있는 김에 사봤다.

시간을 한 순간에 함축시켜 죽음까지도 이승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렇게 매순간 전쟁 치르듯 목숨 걸고 온힘과 긴장을 다 바치는 일본인들의 '이치고이치에(一期一會)' 내지 '잇쇼겐메이(一生懸命)' 정신이 기업에 발현된 한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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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 지향의 일본인
이어령 지음 / 문학사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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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의 책들은 읽을수록 정말...

놀랍다. 경탄스럽다.

비록 헌책방에서 단돈 2,200원에 구입했지만, 페이지 페이지마다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역작이다.

신통방통한 내용이 워낙 풍부하지만, 나는 차도 술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이 부분도 재미있게 읽혔다. 일본에 관한 내용은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정신의 액체, 차와 술

전설에 의하면, 차는 달마의 눈꺼풀이다. 수행중에 졸음이 와서 눈꺼풀이 감기게 되자, 달마는 그것을 도려 내어 뜰에 던졌다. 그것에서 싹이 나와 나무가 된 것이 바로 차나무라는 것이다. 분명히 차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계를 끝없이 응시하는 달마의 맑은 시선이 있다. 그것은 졸음을 깨우는 물이다. 새벽의 샘물처럼 인간의 눈을 투명하게 하는 눈을 뜬 물이다. 과학적으로 카페인이 들어 있는 액체라고 해버리면 그뿐이지만, 우리는 아무래도 한 잔의 차에서 인간의 의식을 눈뜨게 하는 어떤 긴장된 정신 그 자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반대의 극에는 이태백의 전설과 함께 있는 물ㅡ술이 있다. 그렇다. 술도 또한 물의 정(精)이다. 이태백의 환각적인 눈꺼풀, 달을 바라보는 그 몽롱한 눈꺼풀에 덮인 물ㅡ그것은 깨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잠재운다. 그 도취의 힘은 수평선을 향하는 파도의 운동처럼 인간의 의식을 끊임없이 흔들어, 먼곳으로 이끌어 간다. 인간이 만든 이 두 개의 물이야말로, 인간 문화의 두 지향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액체인 것이다. (중략)

술이나 차나 모두 일상적인 정신에 어떤 자극 효과를 주고 있으나 그 특성은 정반대이다. 한쪽은 '잠을 깨우고' 다른 쪽은 '취하며 잠재우고', 더욱이 한쪽은 '마음을 집중시키고' 또 한쪽은 '마음을 느긋하게' 한다.

무소 소세키가 『몽중문답』에서 말했듯이 차는 '몽매함을 물리치고 각성케 하여 도행에 도움'이 되고, 술은 도취를 불러 시인을 환각의 나라로 유인해 준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차의 카페인은 '축소의 문화[다회茶會]'를, 술의 알코올은 '확대의 문화[주연酒宴]'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시대의 기리시탄(크리스찬) 선교사, 자비엘을 놀라게 할 정도로 술을 좋아한 일본인들이었지만, 그리고 다회에서는 술도 나와 차와 어깨를 나란히 해왔지만, 역시 최후의 승리는 차 쪽에 있었다. 그것은 일본의 문화가 확대보다 축소지향이 강했음을 증명한 것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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