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3.0 - 김광수 소장이 풀어쓰는 새시대 경제학
김광수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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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한국경제』(김광수경제연구소, 휴먼앤북스)가 시기시기마다 발표된 보고서 내지 경제시평의 모음집이라면, 『경제학 3.0』은 칼럼집에 가깝다. 후자는 쉽게 풀어쓰긴 했으나 전자와 겹치는 부분이 많고(아니, 오히려 새로운 내용이 그리 많지 않다) 통계자료 등이 생략되다 보니 도리어 임팩트가 떨어져 버렸다. 전자를 읽었을 때의 명쾌함이나 풍부함 같은 게 많이 떨어진다. 보지는 못했지만 강의 CD까지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민간 전문 싱크탱크”를 표방하는) 김광수경제연구소를 소개하기 위해 기획 출간된 책처럼 느껴진다. 『경제학 3.0』을 진작 사놓고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정도만 읽고 (큰 흥미를 못 느껴) 덮어 두었는데, 만약 『위기의 한국경제』를 헌책방에서 발견해(이 충실한 책에 2,000원을 메겨 두다니, 이건 거저에 가깝다) 먼저 읽지 않았다면 아마 한참 뒤에나 읽게 되었을 것 같다. 『위기의 한국경제』를 먼저 읽기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위기의 한국경제』를 읽었다면 『경제학 3.0』은 굳이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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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대한다 - 4대강 토건공사에 대한 진실 보고서
김정욱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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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맥없이 자지러지는 둑이여, 마음이여

  가엾어라 발 앞의 어둠이여

  왜 듣지 못하나 이 강물 소리를


* 장석남 시인의 시구들을 차용해 필자가 작성



 "낙동강 몰개를 막 파 제끼 싸놓으이 글타 카대요. 소문내지 마이소. 잘 모하몬 마카 다 붙들리갈라."

 - 2011. 7. 1.자 경향신문에서 주민 이모씨(44)의 말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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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문학과지성 시인선 112
장석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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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2년 제11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2) 책 표지 뒷면에 적힌 저자의 변(?)

  “나는 춤꾼이거나 歌手거나 아니면 유능한 세션맨이 되었어야 옳았다. 가끔 휘파람을 불며 여기저기 배회할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한참 동안 하곤 한다. 춤이나 음악은 말(言)에서부터, 도덕에서부터 얼마나 자유롭고 즐거운가. (중략)

  타오른다는 것, 아니면 깊이깊이 고요해진다는 것, 어떤 충만함으로 타오르며 그 속에서 파르라한 自己 존재의 떨림을 감지한다는 것, 그게 시보다는 춤이나 음악 속에서 훨씬 용이하리라는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나는 나의 삶이 음악 같아지기를 매일 꿈꾼다. 음악이 가지 못할 곳은 없다. 문맹자의 가슴속에서까지 음악은 쉽게 웅덩이를 파놓는다.

  시는 내가 음악까지, 춤까지, 타오름까지 타고 가야 할 아름다운 뗏목이다.

  뗏목이 아름답다? 그래 그게 일상이니까.”


3) 그리고 시 한 편을 인용한다. 아래 시를 역사시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5월 (장석남)


아는가,

찬밥에 말아먹는 사랑을

치한처럼 봄이 오고

봄의 상처인 꽃과

꽃의 흉터로 남는 열매

앵두나무가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어

앵두꽃잎을 내밀 듯

세월의 흉터인 우리들

요즘 근황은

사랑을 물말아먹고

헛간처럼 일어서

서툰 봄볕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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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중용 동양고전백선 3
주희 / 일신서적 / 199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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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莫見乎隱이며 莫顯乎微니 故로 君子는 愼其獨也니라.

   막현호은이며 막현호미니 고로 군자는 신기독야니라.


   숨은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작고 미미한 것보다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가고 조심한다.

   -『중용장구』제1장 제3절


2) 사서를 다 읽었다. 2006년 봄, 어쨌든 난 연락을 전부 끊은 채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고, 불면과 악몽으로 쇠약해져 갔다. 다음해에 있었던 시험까지 남김없이 방전되어버린 나는 끝없이 추락하는 자존감에 대한 자위책으로, 자괴감과 죄책감에 대한 자학충동으로 어처구니없게도 『논어』를 집어 들었다. 불합격 발표가 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경전 구절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과가 자리잡아갔다. 이후에 있었던 크고 작은 시험들을 준비하면서 그렇게 아침에 읽은 경전들이 『논어』, 『맹자』, 『채근담』, 『명심보감』, 『한비자』, 『법구경』, 『대학』과 같은 책들이다. 오늘(2011. 7. 15.) 『중용』부분을 마저 읽어 일단 사서부터 채운 셈이다. 그리고 『장자』나 『바가바드 기타』 등을 읽다 말았다.


3) 사서를 읽는 순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주희의 권고를 참고할 만하다. “우선 『대학』을 읽어 규모를 정하고 『논어』를 읽어 근본을 세운 뒤에 『맹자』를 읽어 발월(發越=이상주의적 교양)을 본 다음 『중용』을 읽어 古人의 미묘한 데를 구하여야 한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 주자와 같은 대학자가 이토록 준엄하게 타이른 것이겠지만, 어쨌든 『대학』을 읽고 나서 유교라는 과목의 학원 요약집을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든 건 사실이었다. 주자는 『대학』을 학문의 테두리이고, 규모이고, 강령과도 같은 책이라 여겨 중요시했다는데,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서 입문서로 삼기엔 손색이 없다. 주자가 주해한 『대학』을 따라가노라면 무슨 스타 강사의 학원강의를 듣는 듯하다. 반면, 『중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평해 놓았다. “『중용』은 성인의 학문에 있어서 가장 궁극적인 학설로서 후세의 학문하는 사람이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자학이 제시하는 이러한 순서에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겠지만 『중용』은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많아 마지막에 읽는 편이 좋은 것 같다.


4) 시중에는 다양한 번역본이 나와 있다. 좋은 고전 번역본을 고르기 위해 나는 교수신문의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기획을 많이 참고한다. 여기에 소개된 것들은 각 분야의 권위자들이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투표로 선정한 번역들이다. 출판사들이 기획 번역을 할 때에는 기존에 출간된 번역본들, 그중에서도 호평을 받는 판본들은 대체로 참고하기 때문에 믿을 만한 출판사에서 가장 최근에 번역한 책을 고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나는 주로 헌책방에서 책을 사는데, 출판사들이 그렇게 새 번역을 위해 참고했다가 되판 다른 출판사의 책들을 많이 사보았다. 방론이 길어졌는데, 교수신문은 『논어』의 경우 이을호(박영사)와 성백효(전통문화연구회)의 번역을, 『맹자』는 성백효(전통문화연구회), 양백준․우재호(중문출판사), 차주환(명문당)의 번역을, 『대학』과 『중용』은 김학주(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박완식(여강출판사)의 번역을 좋은 번역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들은 정확한 번역이나 꼼꼼한 주해를 평가의 한 기준으로 삼아 선정한 번역본들이고, 특히 동양 고전의 경우에는 현대적인 감각에 맞춰 보다 읽기 좋게 번역한 다른 판본을 골라도 무방할 것 같다. 내가 읽은 판본은 『논어』(김학주 역주, 서울대학교출판부), 『맹자』(우재호 옮김, 을유문화사), 『대학․중용』(김영수 역해, 일신서적출판사)이다. 특별히 이 책들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헌책방에 있었기 때문에 산 것이다. 모두 나쁘지 않았다. 이번에 읽은 김영수 해설의 일신서적 『대학․중용』의 경우는 풍부한 주해로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책을 쓰려면 도대체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자는 무엇이든 둘로 나누고, 양명은 무엇이고 하나로 합친다는 말이 있는데, 부분부분 주자학과 양명학을 비교해 설명한 내용도 대단히 흥미로웠다. 『중용』의 경우 여강출판사에서 나온 박완식의 번역도 용케 헌책방에서 구했으나 분량이 부담되어 읽는 것을 미뤘다. (+) 근래에 나온 김원중(글항아리)의 『논어』도 기대가 된다.


5) 다른 경전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따금 폐부를 찌르는 구절을 만날 때마다 낯이 뜨거워져서 혼났다. 성현들은 우매한 후세의 고민과 마음자리를 어찌 이리도 훤히 내다보아 이러한 도를 미리 세워두셨단 말인가. 관계와 감정, 도리를 모조리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용해시키고 얼버무리는 서구 기독교에 비해 유교는 적어도 그 측면에 관하여는 보다 정치하고 농밀한 궁구를 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중용』 제16장에 나오는 주자의 귀신론이 어렵지만 신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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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지식 2023-02-25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요일 아침에 문득 주희의 책에 대한 영역본을 찾아보다가,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일신서적공사의 동양고전 책들은, 일본의 동양문화대계(?)하는 70년대 위대한 번역 시리즈를 완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일본 최고 권위자들이 쓴 책이기 때문에 수준이 상당할 것이구요.
저도 <도덕경> 편을 읽었습니다.
한국의 베른 저작권법 가입 이전에 번역되어 당시 관행상 판권을 밝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비영리단체의 경영
피터 드러커 지음, 현영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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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좌, 우 진영을 막론하고 사회 전반의 문제를 모두 국가가 해결할 수 있고, 또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투표를 하고 세금을 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늘 한계가 있었으며, 이들 문제들을 시장에 맡긴다 하여 해결될 것도 아니다. 이에 따라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의식적인 개인들의 연합체로서 사회 부문 내지 비영리단체가 대두된다(피터 드러커는 비영리단체가 진정으로 지속적인 ‘성장산업’이라고 말한다). 물론 국가 대 사회라는 허구적 이항대립은 지양되어 마땅하고,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보충하는 이른바 NGO들과의 섬세한 거리두기가 필요하겠으나, 여기서는 그 논의를 생략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관하는 개념으로 ‘비영리단체’라는 용어를 그냥 쓰기로 한다.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면, 비영리단체란 인간과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는 조직이다. 비영리단체는 자아를 실현하고 이상을 펼치며, 신념을 갖고 신념대로 살 수 있는 삶을 돕고 충족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서비스를 제공하여 사회 구성원들이 이를 향유하도록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용자들이 이를 통해 어떤 변화를 겪고 적극적 참여자로 되어, 이제는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비영리단체도 수혜하게 되는 사회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른 사람의 계발과 발전을 도움으로써 나 자신을 계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비영리단체의 중요한 활동영역이다.


2) 비영리조직의 세계에서 ‘경영’이라는 개념은 그간 관심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금기시되어 왔다. 왜냐하면 그 단어는 영리사업과의 결탁을 암시하는 것처럼 여겨졌고, 비영리조직이 영리사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 경영을 둘러싼 그 어떤 것과 연관을 맺어 덕 볼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영리조직에서 성과의 문제가 제기되는 순간 “우리가 선한 일로서 봉사를 하고 있는데 성과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들의 생을 좀 더 선하게 변화시킨다면 그것 자체가 성과이고, 결과가 아닙니까?”하는 반문에 직면하기 십상이다. 그러다가 조직 자체를 선이요, 궁극적인 목적으로 확신해버리는 함정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그런 좋은 의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비영리단체의 이익 내지 성과를 평가하는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더욱 경영을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영리단체는 무보수 내지 낮은 보수로 헌신하는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 기부금 헌납자들의 순수한 신뢰에 바탕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측면에서도 더 신중하게 자원을 운용해야 한다. 강력하고도 효율적이며 목적의식적인 경영은 비영리단체에도 필요하다.

 

  물론 비영리단체에 몸담는 사람들은 각자 어떤 선한 동기에서 일을 맡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동기 자체를 보람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비영리단체가 만약 조직의 관리와 경영에 합당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활동가들이 과로로 인한 Burn-out 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명감이 아무리 투철한 사람이라도 이를 영원히 감내할 수는 없다. 비영리단체의 경영방법을 가다듬는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활동의 지속가능하고 견고한 기반을 고민하고 탐색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할 때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본래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직접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3) 뭐, 그리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피터 드러커의 책(혹은 경영학 서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을 읽다보면 이런 내용에 학문이라는 이름까지 붙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그저 말잔치라고 여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별 내용 아닌 것 같은데도 예상보다 포스트잍 flag를 많이 쓰게 하는 힘이 피터 드러커에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수양록 같기도 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따금 얼굴이 화끈거렸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미국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총연맹(The 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 AFL-CIO)의 위원장, Albert Shanker 씨의 인터뷰가 실린 장이었다.


4) ‘시민’이란 바로 지금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자, 이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슴 뜨겁게, 신나게 비영리단체를 꾸려 경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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