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생활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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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과 위선을 벗어던질 때 인간이 어떤 풍경을 마주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때 어느 정도의 극치를 보여줄 수 있는지, 하여 인간은 인간 앞에서 벌거벗을 수 있는 거다. 허나 요지는 이 사회는 위선과 가식을 필수 요소로 여긴다는 점이고. 인간은 그룹을 지어 서로와 서로 사이에 경계를 짓는다. 그것이 마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듯 번역가 또한 이야기하고. 간만에 활자로 영혼 때 벗기는 작업. 온전한 것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했는데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건 그대로라는 걸 알았다.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 깨닫게 해주는 시간. 많은 것들을 바라는 게 아니라 소소한 걸 원하는 거라는 건 어느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이 법의 경계 안에서 이루어지건 그 바깥 테두리에서 이루어지건. 속 편하게 와인을 마시고 속 편하게 다른 인간에게 고통을 주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것이 또 인간이라는 건 무얼 뜻하나. 화형대에서 어떤 살인사건이 일어나건 군중들은 시선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게 마땅히 옳은 일이라 여겼고 그것이 옳지 않다는 건 화형대 위에 있는 이들이나 화형대와 군중들 사이에 있는 경계선에 있는 이들 모두 아는 일이었다.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어떤 정해진 법칙이라는 건 언제나 그 너머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때 그 사건들이 지금에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그 누가 확신할 수 있는지 시인은 묻는다. 그 시선들의 마주침과 어긋남 속에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과정들. 봄이 얼마나 기다려지던지, 이 시집 안에 봄 이야기는 곳곳에 만발했고 더불어 영하를 넘나드는 서울 하늘 아래에서 얼마나 봄이 기다려지던지, 봄인가, 하면 어느덧 초여름이 올 것을 알기에 더더욱 기다려지는 거고. 하여 그 말들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을지도. 시간 여유를 두고 천천히 다른 구절들도 찾아보기로. 오늘 내 산소호흡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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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에티카 - 진리와 행복을 찾아서
필립 아마도 지음, 조현수 옮김,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원작 / 이숲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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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하자마자 새로운 이들을 만나 생각을 나누는 동안, 자 어디로 나아가나요, 문화 차이로 인한 충격과 더불어 역량 강화 느낌인지라. 그림과 함께여서 이해되기 더 용이했고 스피노자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너의 스피노자와 나의 스피노자가 다름이 얼마나 다행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기에 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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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수업중에 누군가의 죽음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고난 후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졌다. 세세하게 그것들을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악의라는 게 참 깃털 같이 느껴지다가도 그 깃털 같은, 별로 관계성이랄 것도 찾을 수 조차 없는 그런 관계에서조차 그 악의성 짙은 무게감을 느낄 수조차 없는 그 깃털이 누군가의 영혼을 짓누르고 짓눌러서 그 압박감에 숨을 쉴 수도 없게 만든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싶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그걸 누차 궁금해하고 궁금해했는데 이건 말 그대로 싸데팡이더라. 정신없이 2월을 보내고난 후 3월 말에는 얼추 판가름이 날듯 싶다.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겠지만 오늘 꽃다운 아이가 사라진 걸 알고난 후에 이 나라가 좀 끔찍하다 싶을 정도로 징그럽긴 하더라. 물론 나와 얼추 나이가 비슷한 중년의 아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에도 그런 걸 느끼긴 했지만. 정신없이 서초에서 광화문까지 왔다갔다 녹초가 되어 귀가해보니 파스타 해먹을 기운이 없었는데 내 새끼는 배고프다 칭얼거리고 나도 온몸이 노곤하니 와인 생각이 저절로 나서 급히 파스타면을 볶았다. 완전 맛있어 엄지를 척척 내미는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추운 봄밤이 깊어져갔다. 봄이고 밤이고 합쳐져 곧 있으면 더할나위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봄날들이 이어질 터인데 스물을 갓 넘긴 소녀가 이 길이 자신이 택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길이라 여기며 얼마나 외로워했을지, 그 봄밤이 얼마나 소녀에게 춥고 무섭게 느껴졌을지. 판단하고 비판하며 옳은 길이라 여기며 내내 혀로 채찍질을 하는 걸 즐기는 이상한 어른들이 너무나도 많고 많지 않은가. 이 이상한 나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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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고 운동 가볍게 하고 유통기한 지난 우유 처리해야 해서 빅파이 오물거리면서 조금씩 읽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는 걸 또 이런 식으로 마주할 수도 있다는 게.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여섯 시간 채우고 아가들 데리고 삼겹살 먹었다. 당근 거래 끝내고 온 딸아이가 우연히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편의점에서 한 시간 동안 수다를 떨고 와서 이야기, 그 친구가 막 다 읽은 [균형 잡힌 뇌] 이야기를 했노라고. 우리 엄마도 도서관에서 오늘 그거 내내 읽었는데! 라고 반가웠노라고. 자기도 읽어보겠노라고 신나서 이야기. 책읽기에도 카르마가 적용되는 건가, 싶어 후훗 웃었다. 그 아가 괜찮네, 엄마랑 독서 취향도 겹치고. 했더니 그런데 이윤기 선생님 신화책은 안 읽어봤다고 그래서 나는 그거 추천했어, 엄마, 라고 말. 마리 루이제 크노트 30분 읽고 스피노자 만화책 조금 읽으면 오늘은 자정쯤 침대에 뻗을듯. 체조해서 그래도 아직 머리가 쌩쌩 돌아가네. 삼겹살 먹을 때 맥주 자제하여 스스로 머리 쓰다듬어줌. 







워렌은 대화 중에 기본적인 질문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남북전쟁이 끝난 후 새로운 시작을 위해 만일 남부의 노예 소유자와 농부가 노예제도 폐지에 대한 동의를 쉽게 하도록 보상을 받았다면 미국 내부에 더 많은 평화가 있었을지에 대한 의견이었다. 몇몇 정치 평론가는 남부인이 패배를 경험하기보다 보상을 받았다면 굴욕감을 덜 느꼈을 테고, 따라서 노예를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풀어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반복해서 피력했다(워렌은 노예가 겪은 불의에 대한 보상이나 원상회복에 대해 어느 대목에서도 언급한 적이 없다). 그의 두 번째 질문은 흑인의 자기 이해 문제로 직행했다. 일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흑인 미국인에게는 두 영혼, 즉 항상 백인의 시선과 기대를 염두에 두고 스스로를 인지하는 이중의식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의심스러운 경우에 흑인 미국인의 충성심은 누구에게로 향하는가? - P34

그러나 결정적인 질문도 빠트리지 않았다. 워렌은 도발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흑인은 매일 경험했고 경험하는 온갖 불의, 억압, 굴욕 앞에서 비통해하고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었는가? 훨씬 적절한 반응은 복수가 아니었을까? 국가의, 경찰의, (백인의) 폭행에 맞서 고집스럽게 비폭력으로 자신을 묶어두는 것은 영혼이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이 아니었을까?
워렌은 열려 있는 정신으로 대화 상대방의 열려있는 정신을 이끌어냈다. 그는 상대방에게 발언권을 주었고, 상대방은 발언권을 얻었다. 아마도 아렌트는 다음의 이유로 랠프 엘리슨에게 편지를 썼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피억압자에 소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주인이며 자신의 발언권을 행사해야 하고, 또 해야 한다는 엘리슨의 소견에 감사했기 때문이었다. - P35

엘리슨과 아렌트에게 자유란 인간의 행위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과거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원동력이다. 아렌트의 책 [인간의 조건(Vita activa)]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말하고 행위하면서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존재했던 속세로 들어가며, 이런 접속은 말하자면 탄생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제2의 탄생과 같다." 만인은 태어나면서부터 "나타나는", 즉 스스로 속세의 관심사에 섞여서 이런 자신의 세계를 공동으로 형성하는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렌트와 엘리슨은 인간이 존재임을 실현해야 할 필연성이 행위를 통해 가능함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행위하지 않는데 특별한 담력과 자제력이 필요한 순간, 즉 행위하지 않음으로써 위험에서 벗어난다면, 행위하지 않는 것도 행위의 순간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 계속되는 굴욕을 더 보태주는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면, 행위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행위이다. 그리고 아렌트와 엘리슨, 두 사람은 모두 순응의 위험이나 유혹에 대해 경고했다. - P50

그들은 간단히 말해서 순응을 통제의 변주로 보았다. 소설에서 엘리슨의 주인공은 타인이 그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할 채비를 갖춘 성격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의 조상처럼 그 역시도 (너무 오랫동안) 낯선 세상의 톱니바퀴였다. 순응하려는 주인공의 열망은 너무 강렬했다. 주인공처럼 동화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특별함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도 일종의 보이지 않음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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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잡힌 뇌 - 인공지능 시대가 버거운 당신에게
권택영 지음 / 글항아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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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으로 치우치기가 쉬우니 편한대로 가고자 하지만 결국 그렇게 나아가다가는 인간의 삶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자명하다. 아는 척을 적당히 한다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 살아가기는 모던해질수록 더 실용적으로 되어가는데 삶은 왜 그토록 망가지기가 쉬운가. 다른 사람들을 안다는 건 거대한 착각인데 자꾸 그 착각에 사로잡혀 스스로가 옳다고 여기는 것도 착각. 우울하게 살아가지 않도록 우뇌를 조금 더 자주 활용해주면 좋지 않겠는가 싶은. 읽는 동안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는 몇몇 이들과 과거 내 모습도 잠깐씩 겹쳐졌다. 좌뇌에 너무 치중해서 살아가는 게 거대한 시야에서 보자면 잃는 것들이 너무 많은. 맺음말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완독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편안해지더라는. 직접 맞닿는 게 내 뇌에 한결 좋다는 것과 따라서 좀 구체적으로 여러가지 것들을 행해야겠구나 라는 것도. 프로이트를 읽긴 읽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과 쉽게 조금 더 다가서고 싶다는 마음 생겼다. 인간이 인간을 안다는 게 이토록 어려워요. 뇌과학서 주로 읽는 독자들이 젊은 여성들이라는 건 또 뭔가를 느끼게 해주고. 읽고 싶은 책 몇 권 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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