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한별의 문장들을 읽다가 자꾸 멈칫거리는 순간들, 그러니까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 첫 순간이 떠오르는데 그때가 딱 중학교를 졸업하고 막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이 시점이었던 걸로. 아침 운동 나가기 전에 오늘 아침 페이지들.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고 아무에게도 가닿지 못한다."
우리 엄마가 지옥을 표현할 때 하는 말과 흡사.
지옥과 천국 사이일지도 모른다. 싶은 건 에밀리 브론테가 잠깐 스쳤기 때문이지만.
열락의 고통이라는 표현이 인간의 온갖 감정들을 담아낼 수도 있는 거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까지 공통적으로 아우르려 할 때
고개가 저절로 옆으로 기우는 버릇은 아마 죽기 전까지 고쳐지지 않을 거 같다.
홍한별을 읽으면서 멈칫멈칫, 자꾸 생각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이런 에세이는 오랜만인지라 반갑고 또 반가운 마음뿐.


이양수의 [폴 리쾨르]를 완독. 우연히 접한 책 [역사와 사회적 상상에 관한 대화]를 읽고 읽어봐야겠다, 싶어 그러니까 나는 코르넬리우스보다 자꾸 폴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언젠가는 읽겠지 했다가 또 우연히. 이양수가 들려주는 [폴 리쾨르]는 무람없이 그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내주었다. 어제 친구와 공원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다들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공원 벤치에서 너나없이 어울려 수다를 떠는 중년의 아줌마들을 생각없이 바라보다가 텍스트를 읽는 태도가 생을 살아가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걸 알았다. 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모두 다 제각각. 굳이 어둠 속을 헤치고 들어가야 하는가. 물어볼 까닭이 없는 건 그 길을 선택하는 이는 자신이기 때문이다. 판단 유보를 잘 하는 엄격한 얼굴이 자신의 욕망 앞에서는 어떤 표정으로 바뀌는지 그걸 볼 수 있는 이는 그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얼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바라보는 타자가 존재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천천히 읽어나가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