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이다. 날이 춥지만 오늘은 단단하게 여미고 밖으로 나갔다 오려고 한다. 어제도 죽을 먹었고 오늘 남은 죽을 아침에 데펴서 먹었다. 아이는 싫어했다. 온종일 죽만 먹으니까 싫어! 하고 딱 다섯 숟가락 먹고 갔는데 아 그냥 더 열 숟가락 퍽퍽 퍼먹고 가면 얼마나 좋은가 싶었지만 그냥 사과만 먹는 걸 허락했다. 술을 많이 퍼마시고 다니던 시절에는 죽집에 가서 죽을 많이 먹었다. 내 몸은 술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 소화기관 역시 약하기 그지 없다. 조금만 질기고 조금만 역한 걸 먹으면 어린 시절에도 심하게 배앓이를 하며 끙끙 앓았다. 신경줄이 예민해서 큰일이라고 나를 키워준 할머니들은 말씀하시곤 했다. 이 험한 세상에 신경줄이 예민하면 좋지 않다고. 할머니들보다 더 직설적인 우리 엄마는 승질머리가 개 같아서_ 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개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승질머리가 개 같아서 그런가. 지나가는 개들을 보면 안녕 귀여운 멍뭉아, 라고 이제는 말이라도 건넬 태세다. 못 마시는 술을 미친듯 퍼마시던 때, 본죽 말고 할머니들이 이모님들이 하시는 죽집을 골라서 가곤 했다. 그 죽을 먹고 있노라면 행복해서 때때로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했다. 대체 이 아름다운 음식은 누가 발명했단 말인가 하고. 광화문 뒷편에 할머니 두 분이서 하시는 죽집이 있었다. 공간도 협소했고 환기도 잘 되지 않았지만 항상 밥때가 되면 직장인들이 줄을 서서 먹던 곳. 그 죽집의 모든 메뉴를 섭렵했다. 밥때 줄 서는 거 싫어해서 그 전이나 그 후에 가곤 했다. 뭔가 살기가 싫어지는구나 그런 마음이 들 때도 그곳을 찾곤 했다. 어머님들이 해주시는 뜨끈한 죽 한 사발을 다 먹고나면 온몸에서 기운이 넘쳐 흘렀다. 연로하셔서 언제 문이 닫힐까 걱정이 되었는데 다닌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가게 문은 닫혔다. 공간이 사라져 괴롭고 슬퍼서 그 닫힌 가게 앞에서 영업 종료_라고 커다랗고 굵은 매직펜으로 대충 휘갈겨쓴 문구를 바라보며 그 앞에서 오래도록 담배 한대를 폈다. 어머님들이 건강하시기를 빌었고 만일 소천하셨다면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싶은 마음을 담아 향에 불을 켜고 제단 앞에 놓듯 그렇게 그 앞에서 오래도록 담배를 폈다. 종로2가의 지하 재즈 카페 엘르 다음으로 그냥 상호명도 없이 죽집_이라고 쓰인 그 공간에서 얼마나 수많은 위로를 얻었는지 모른다. 사람이 낯선 사람에게 무언가를 건네줄 경우가 생긴다면 거기에 마음이 일부나마 담겨 있다면 좋은 일이로구나 그걸 깨달았다. 천명관의 고래를 이미 읽은 이들은 단톡방에서 기괴하다는 말을 제일 많이 하고 있다. 그 기괴함이 인간 얼굴의 한 면모 아닌가요, 나는 그렇게 타이핑을 치다가 딜리트 버튼을 눌러 문장을 올리지 않았다. 천명관의 고래를 다 읽고난 후 너무 좋아서 오빠를 졸라 천 작가님 한 번만 만나게 해주라 아무리 졸라대도 오빠는 못 만나게 했다. 나빴네, 흥! 삐쳤던 20년 전의 내가 보이는 것 같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독서가 취미라고 시간만 나면 책을 읽는다고 우리집에는 책이 많다고 넘쳐서 속갈이해주듯 한 번씩 내다버린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들을 보면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그냥 가만히 침묵한다. 책에 미친 인간들 사이에 뒤섞여 책에 미쳐서 일정 시간을 살아본 후 어디 가서 함부로 책 좀 읽는다고 나대지 말자, 어린 시절에 언니오빠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더 이상 밤을 지새워 책을 읽지 않는다. 몸을 아끼기 때문이다. 친구 남편이 병에 걸려 일을 관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나마 내가 일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어. 아이들도 지금 항상 클 때고. 병에 걸려 일을 관두고 병원에서 3개월 넘게 입원해 큰 수술을 했다고 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더라, 돈 벌겠다고 지금 한창 벌어야 할 때라고 노후 자금 모아서 노년에 고생하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벌어야 한다 그랬는데 사람이 아프고 나니까 알겠더라. 돈은 아무것도 아니더라. 친구는 오랫만에 회사 사람들과 송년회를 했다면서 소주를 마셨다면서 이야기했다. 친구가 술에 취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통화를 끝내고난 후 엄마가 해준 점쟁이가 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음이 있어야 기도가 제대로 하늘에 가닿는다고 했던. 마음이 이미 떠났는데 이차저차해서 거짓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다면 하늘에 가닿기는 커녕 그 안 좋은 마음을 하늘이 아시고 오히려 벌을 내리실 수도 있다고 한. 그러니 이미 떠난 마음으로는 뭔가 소원을 빌지 말라고 조언을 받았다고 엄마는 이야기했다. 상스럽고 속되게 내 마음을 거울 위에 립스틱으로 형상화하고 싶기도. 민이가 먹다 남긴 사과를 먹으면서 커피를 마신다. 아이는 노래와 영상과 문자 속으로 자기 자신을 통째로 내던져 지내고 있다. 전기값이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나왔다.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들을 아이와 함께 이야기했다. 아이가 강의 하나 더 듣고 갈게, 먼저 자고 있어_ 했고 응, 엄마 좀 졸린듯. 난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스크팩을 얼굴에서 떼어 집어던지고 불을 끄자마자 3분도 채 되지 않아 잠들었다. 새벽에 발딱 일어나 죽을 데피는 동안 만일 뭔가를 해야 한다면 죽을 이것저것 배워 죽집을 차릴까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가 관뒀다. 돈까스를 튀기는 1년 동안 그 시간이 겹쳐졌기에. 그곳에는 어떤 낭만도 어떤 여유도 없다. 나는 넉넉한 시간을 그리고 낭만을 원하고 있는지라 그건 아무래도 무리다 곧 알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아름답고 예쁜 것들이 좋고 그 사이에 마음을 집어넣을 수 있다면 더 좋다. 요리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는 제부는 내게 이야기했다. 다시는 음식 만들어 파는 일은 하지 마, 누나는 이쪽 사람이 아니야. 그 말이 서운하기도 했고 또 좋기도 했다. 난 그냥 아빠 말대로 그렇게 내가 내 마음을 통째로 집어넣을 수 있는, 지쳐 간혹 슬라이스라도 해서 던질 수 있는 그런 작업들을 하면서 살아야겠다_ 하고 오늘 아침에 다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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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12-21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호명도 없는 ‘죽집‘에서 얻는 위안과 안식, 그러니까 벌써 20년 전이겠네요. 그곳에서 수이님을 위로하던 그 음식과 마음이 전해지네요. 역시 사랑은 음식으로 나눠지는 건가. 맨날 대충 먹이는 엄마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걸 알지만... 또 한 번 마음에 찔림을...ㅋㅋ

내가 수이님의 새우 감바스를 포기할게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합니다.

수이 2023-12-22 10:55   좋아요 1 | URL
감바스 정도야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는데 ㅋㅋㅋ 대충 먹여도 잘만 커주니 감사하죠. 단단하게 키우죠. 하긴 먹는 게 중요하긴 한데 하지만 요리 못하니까 그런 엄마를 만난 걸 아쉽게 생각하지 말고 맛있는 걸 스스로 만들어 먹으렴, 아가들아 말해주고 싶은 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12-21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들어 속이 부대끼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얼마 전에도 속이 한번 뒤집어져서 며칠 동안 죽으로 연명했었답니다. 저희 동네는 본죽만 있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그곳만... 아쉬워요. 수이님의 추억의 죽집 넘 좋았을 것 같습니다. 마치 제가 그 공간에 서서 죽그릇을 들고 먹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떻게 나이들어도 안 아프고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그러려면 결국 돈인가... 머리아픈 지점입니다^^; 어쨌든 그래도 아프지 않아야 뭘 해도 가능하니 건강을 더 신경써야겠죠.

수이 2023-12-22 10:57   좋아요 0 | URL
나이들면 아픈 건 당연한 거 같아요.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지점은 아닌 거 같은. 좀 더 건강해진다거나 몸에 안 좋은 것들은 안 하려고 애쓰는 정도. 그래도 병에 걸리면 이것도 다 소용 없어지지만. 결국 돈은 최종 지점은 아닌 거 같아요. 물론 도움이 되는 지점은 존재하지만. 저는 스트레스를 가능하면 덜 받고 살자_ 이 주의입니다. 그럼 산 속으로 들어가 살아야 하나 -_-;;;;;

청아 2023-12-21 15: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는 국밥이 수이님의 죽같은 음식이었어요. 굴국밥,설렁탕,순댓국밥...음식이 주는 위로도 만만치 않죠.
수이님의 예쁘고 아름다운 글 요즘 자주 올라와 좋네요! ^^

수이 2023-12-22 10:58   좋아요 2 | URL
오 저도 굴국밥 좋아해요. 굴 들어가는 건 무엇이든지 다 좋아함. 미미님이랑 겹치는 지점이닷! 음식이 주는 위로가 있는데 어렸을 때는 그걸 잘 모르면서 살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맛있는 것만 찾아서 먹으러 다니는 이들 보고 막 비웃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제가 그러합니다 크크. 제 글이 예쁘고 아름답다고는 여기지 않지만 미미님께서 그리 봐주신다면 감사합니다.
 

프로이트 어조를 좋아하는 거였네, 어린 시절에. 왜 여태 호감을 지니고 있나 했는데 알아버림.

흥분이나 방심, 주의력 장애와 같은 정신 생리학적인 요소들은확실히 설명의 목적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상투어일 뿐이며 이상한 칸막이 같은 것으로서, 우리는 그 이면을 바라보는 것을 단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히려 문제되는 것은, 무엇이 그와 같은 흥분과 특별한 주의력분산을 일으켰느냐 하는 물음입니다. 소리의 영향과 어휘의 유사성, 또 어떤 단어에서 생겨나는 관습적인 연상들 또한 의미 있는것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의미의 변화가 가능한길을 가르쳐 줌으로써 잘못 말하기를 부추기는 작용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길이 내 앞에 놓여 있다고 해서 내가 그 길로 가리라는 것이 자명하게 결정됩니까? 내가 그 길을 가도록 결정하는 데는 어떤 동기가 필요합니다. 이외에도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소리와 어휘 관계도 육체적인 소인들과 마찬가지로 잘못 말하기가 쉽게 이루어지도록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근본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셀 수없이 많은 대다수의 다른 경우에 나의 말은 내가 사용하고 있는 말이 소리의 유사성으로 인해 다른 것을 기억나게 한다든가, 그것의 반대말과 내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든가, 또는 습관적인 연상이 그로부터 생겨나기 쉽다든가 하는 상황으로 인해 방해받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철학자 분트W. Wundt의 설명처럼, 육체적인 피로의 결과로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경향이 그 밖의 다른 정상적인 언어 의도에 대해 우위를 점할 때 잘못 말하기가 생겨난다고 한 것을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경 - P60

우에 육체적인 요인이, 또 다른 경우에서는 잘못 말하기를 조장하는 연상 작용이란 요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경험적 증거를 통해 모순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 이론의 설명은 매우 그럴듯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특별히 재미있는 것은 여러분의 다음 질문으로,
서로 함께 간섭 작용을 불러일으키며 나타나는 두 개의 경향을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아마 짐작조차 못 하실 것입니다. 그 두 개의 경향 중에서 하나의 경향, 즉 방해받는 것은 언제나 의심의여지가 없이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실수를 범하는 사람은 그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인정합니다. 의심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다른 경향, 즉 원래의 의도를 방해하는 경향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들에서는 이 다른 경향도 방해받는 경향만큼이나 분명하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은 바 있고 그 사실을아직 잊지 않으셨을 줄 압니다. 그것은 잘못 말하기의 <효과>를 통해 암시되는데, 우리가 이러한 효과를 인정할 용기를 가지기만 하면 됩니다. 원래 의도했던 말과 정반대되는 말을 하는 실수를 저지른 국회 의장의 예를 들어 봅시다. 그가 그 회의를 개회하려고 했던 것은 확실합니다만, 또한 그에 못지않게 회의를 끝내 버리고 싶었던 것도 확실합니다. 그것은 너무도 확실해서 의심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방해하려는경향이 원래의 것을 그저 왜곡시키기만 했을 뿐이고, 자기 자신을 표출시키지 않는 다른 경우에는 그러한 왜곡 현상에서 방해하는 경향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습니까? - P61

그러나 그러한 간접 증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학문이란 엄정하게 입증된 명제들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오류이며 또 그렇게 요구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이러한 요구는 자신의 종교적인 교리를 다른 것으로 보충하려는 그것이 과학적인 것이라 해도 욕구를 가진 권위 편집증적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학은 그 자체의 교의 속에 단지 아주 적은 양의 명징한 정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것들은 그저 일정한 정도까지의 확률로 뒷받침된 주장들일 뿐입니다. 확실성에 대한 이러한 근사치만으로도 만족하고 마지막 확증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건설적인 작업을 계속해 나간다면, 그것이야말로 과학적 사고방식의 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67

반복적이고 복합적인 실수 행위는 확실히 실수의 종류들 중에서 가장 찬란한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수 행위들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이 문제였다고 한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여기에만 우리의 노력을 한정시켰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실수에서는 아무리 둔한 사람일지라도 그 의미를 곧 알아차리게 되며, 가장 비판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도 그 의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수 행위의 반복은 어떤 집요함을 드러내 주는 것으로서, 그 집요함이란 우연적인 일에는 결코 수반되는 법이 없으나 의도에는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개별적인 여러 번의 실수가 차례차례 이어지고 나서야 드디어 실수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이고 본질적인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실수에 이용되는 형식이나 수단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스스로가 이용하는 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달되어야만 하는 의도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반복된 망각의 한 예를 설명해 보려 합니다. 존스가 보고하기를, 그는 언젠가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동기에서 편지 한 통을 며칠 동안이나 책상위에 놓아두었다고 합니다. 드디어 그는 그 편지를 부치기로 작정했는데 얼마 후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왜냐하면그가 주소 쓰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겉봉에 주소를 쓰고 나서 우체국으로 가져갔으나 이번에는 우표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편지를 보내는 데 대한 거부감을 스스로에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 P75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발이 걸려 뒤뚱거리거나 넘어지는 따위가 그것입니다. 그외의 전조의 다른 부분들은 어쨌거나 주관적인 행위의 성격이 아닌 객관적인 사건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한 사건의 경우에 그것이 이쪽에 속하는지 아니면 다른 쪽에 속하는지를 결정한다는 것이 때때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여러분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행위는 종종 수동적인 체험의 형태로 변장하고 나타나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중 지나온 긴 인생 경험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작은 실수들을 전조로 해석하고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의도의 징조로 실수들을 평가할 수있는 용기와 결단력만 갖고 있었더라면, 많은 실망들과 고통스러운 경악들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런 태도는 과학을 옆으로 우회해서 미신적인 생각을 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전조들이 다 들어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우리의 이론을 통해 이해해야 할 것은, 모든 내용들이 그렇게 다 들어맞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 P79

실수 행위에 대한 분석은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합시다. 한 가지 점만은 여러분에게 확실하게 강조해 두고 싶은데,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이러한 현상들을 다루어 왔던 그 방법을 모범적인 것으로 머릿속에 간직해 두시라는 것입니다. 우리 심리학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여러분은 이러한 예에서 간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현상들을 단순히 묘사하거나 분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영혼 속에서 힘이 상호 작용하는 징조로 해석하고, 함께 혹은 서로 대립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경향들의 표현으로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신적 현상들의<역동적인 해석>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견해에 의하면, 이러한 경향성은 단지 우리가 가정하고 있을 뿐이기는 하지만 인지되는 현상들에 비해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수 행위의 문제들에 더욱 깊이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역의 넓은 부분들을 잠시 한번 일별하고, 거기에서 잘 알려진 것들을 재발견하며 몇몇 새로운 것을 추적하는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이미 처음에 작성했던 잘못 말하기의 세 개의 군으로의 분류에 따라 잘못 쓰기와 잘못 읽기, 잘못 듣기, 또 잊어버린 대상에 따른 소분류(고유 명사, 외래어, 계획, 인상들)가 포함된 잊기, 착각, 잘못 놓기, 분실 등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우리의 관찰 영역에 들어오는 오류들은 부분적으로 잊어버리기와 부분적으로는 착각과 연관이 있습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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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묘비는 당신이 될 거야." 

 

 보부아르 읽을 때 됐네, 

 오늘 아침에 나도 모르게. 

 프로이트는 20년 만에 읽어서 그런가, 

 더 귀에 착착 감기더라구요. 

 딸아이가 부탁한 일을 대강이나마 처리하니 이 시간이다. 

 30분이라도 걷고 오자 싶어 목도리 휘휘 두르고 패딩 뒤집어쓰고 나간다. 

 할 일이 잔뜩 쌓여있고 읽을 책은 더 잔뜩 쌓여있다. 

 별 거 아닌데, 참 그 별 거 아닌 걸로 사람들은 살고 죽고 또 죽이기도 하고 또 살리기도 하고. 

 말 한 마디에 사람이 죽고 또 사람이 살고 그러잖습니까, 

 라는 프로이트의 말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일단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묘비명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했더니 

 묘비명, 말고 묘비_ 라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이제는 거침이 없구나, 라고 대꾸를 하면서도 

 누가 누구를 거침 없게 만들었나? 라는 답을 들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보부아르가 떠오르면서, 

 언니, 저 이제 언니 읽을 때 된 거 같네요, 라고 중얼거렸다. 

 보부아르 읽을 때 됐네. 

 읽기와 쓰기가 체화가 되어서 완전히 본연의 내가 된 것만 같은 그런 거 있잖아,

 라고 친구가 이야기할 때도 알 것만 같은 기분에 고개를 끄덕였는데 

 말 한 마디에 보부아르가 떠오르는 현상을 마주하면서 응, 그래, 그런 것도 같다,

 나 혼자 마음 속으로 대꾸했다. 

 지랄맞은 성격에 더 지랄맞게 말은 나오고 그럼에도 흥, 

 가벼워지는 마음은 겨울이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다. 

 포인트가 어디에 있건 맥락을 찾아서 보자면 

 결국에는 오빠와 나눈 대화 속에 마주하는 현상들, 장면들, 그런 것 속에서 

 나는 계속 보이지 않는 걸 찾았던 것도 같다. 

 그런 게 어디 있느냐, 그런 걸 찾기에는 너무 나이가 든 거 아니냐, 등등 

 속한 제한들이 방어벽처럼 나를 구축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정말로 마주해보니 스스로가 두려워한 것은 결국 하나뿐이었다. 

 오빠는 그런 뜻에서 내 등을 밀어주면서 두려워할 게 뭐가 있겠냐, 동생아_ 

 라고 강하게 응원해주었던건가 싶기도 하고. 

 엑스도 내게 그 말을 하긴 했다. 

 지랄맞은 성격대로 기어코 하고야 마는. 

 달달한 캐롤을 들으면서 온몸을 고양이처럼 늘려 기지개를 켜고 

 엄마와 사촌 언니와 코다리찜 먹으러 가기 전에 후다다다다닥 

 지랄맞은 서로를 십년 넘는 시간 동안 마주하며 함께 한 것도 어쩌면 기적이었으나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긴 했다. 

 짠해지는 순간들과 결국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는 자포자기도 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궁극적으로는 웃음만이 있으면 좋겠다 싶은. 

 그것이 결국 자기 위안이건 서로의 행복을 바라는 원수 같았던 관계이건 

 아이를 위한 마음이건. 한편으로는 또 그런 생각도 들긴 했다. 

 아니 이건 그냥 쓰지 말도록 하자. 

 그 사람이 나를 통해 보는 것들이 무엇이든 

 내가 그 사람을 통해 보고자 하는 것들이 무엇이든 

 그것이 판타지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기로 했는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 말고 

 나눌 수 있는 것들을 나누면서 마주할 것들을 받아들여보도록 하자_로. 

 이제야 책이 슬슬 읽히기 시작한다. 

 

 백수 노릇도 올해 겨울이 마지막이다. 

 말뿐인 걸 알면서도 겨우 말 한마디에 푸른색 나비들이 온몸에서 날아오르는 것만 같은

 오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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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12-19 15: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언가를 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인생은 처럼이 아닌 처음 사는 것이니까요. ^^

수이 2023-12-20 06:14   좋아요 1 | URL
네, 막상 살아보니 그렇더라구요. 역시 살아봐야 끝까지 가봐야 아는 일 같아요, 사는 일도 관계도. :)
 
해독 일기 안온북스 사강 컬렉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백수린 옮김 / 안온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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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배 꼬지 않고도 솔직하게 말하는 이들, 특히 프랑스 언니들을 사랑한다는 걸 다시 알았다. 나는 쓰는 게 겁나 좋아_ 라고 말하는 사강이 표현하는 고독과 광기와 사랑과 나약함이 마음에 든다. 취약한 이들은 아픈 게 아니야, 그걸 다시 말하고 싶었지만 뭐 굳이_ 이제 와서. 기대보다 더 발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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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대한민국 중딩의 상스러운 표현이지만_ 읽다 보니 저절로 나오는 아 사강 언니 개좋아…… 중딩이랑 잠깐 귤 까먹으며 수다 떨다가_ 아이 하는 소리, 엄마 화법에 따르면 세상에는 사강들과 반-사강들이 존재하는 거네?! 아 그러한가, 했다가 그거 엄마가 생각 좀 해볼게, 일단 마음에는 든다 하고 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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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12-18 17: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리 털이 안보이는 카페트다...... 천잰데?

수이 2023-12-18 17:22   좋아요 1 | URL
우리집 먼지 돼냥이는 그새 보일러를 돌리면 제일 뜨끈해지는 저기 마룻바닥 위에 대자로 드러눕고 그릉그릉그르릉 하고 계십니다요.

moonnight 2023-12-26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이님^^ 중딩 아이와 사강을 얘기할 수 있다니♡ 심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