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은 다 이거 읽었네 싶어서 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_를 펼쳐서 읽고 있다가 그만 빠져들었다. 물론 저는 라캉 잘 모릅니다. 알고자 해본 적도 없고_ 근데 정확히 여기에서 갑자기 도끼가 내 머리를 후려치는 거 같아서리 잠깐 아득해졌습니다. 내가 '사는 방식'을 바꾸려고 이혼을 했구나, 살고 싶은대로 좀 살아보겠노라고 이혼을 하고 연애를 하는구나, 라고 깨달았습니다. 연애하고 싶어서 이혼 좀 해도_ 라고 말했더니 전남편이 나를 바라보던 그 시선이라니. 너는 연애 많이 했잖아, 나랑 살면서. 그런데 나는 결혼이랑 연애랑 같이 안돼, 그러니까 나 연애하고 싶거들랑, 그러니 이혼 좀 해도! 말했더니 전남편은 무슨 열일곱 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미친듯 웃었습니다. 이렇게는 더 이상 살기 싫다구! 버럭 소리를 지르니 전남편은 아 이게 진심이구나, 라는 눈으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_가 워낙 재밌어서 아무 생각 없이 쭉쭉 읽어대다가 결국 좀 알아야겠네_라는 모드로 변환되었습니다. '사는 방식'을 바꾸겠노라고 말했더니 엄마는 다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지, 뭘 방식을 바꾼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느냐고 하지만 엄마, 난 엄마처럼 안 살래,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엄마도 허, 저 년이, 기어코 하는구나! 했지만. 그래서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다가 라캉 좀 읽어보려구, 했다가 라캉 같이 읽자! 로. 그렇게 해서 라캉이 땡기는 불토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연말이기도 하고 또 새해도 다가오고 그러니까 라캉 좀 읽어볼까나 라는 읽기 욕망 간만에 불타올라 기분이 좋습니다. 내년 1월에는 그래서 라캉을 질릴 때까지 읽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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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는 방식’을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으므로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3-12-23 23:58 
    "(52) 물론 증상에는 고유한 고통이 있으며, 증상으로 고통받는 현상을 “그것이 당신답게 사는 방식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완전히 긍정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은 그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불만족스럽고 납득할 수 없는 것을 안고 있기에 생기는 것이지, 결코 건강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고통은 자신만의 ‘사는 방식’을 발견하지 못하고,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사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부담에서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
 
 
독서괭 2023-12-2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이님 응원해요!!👏👏👏👏👏

수이 2023-12-23 22:19   좋아요 1 | URL
친구들이 더 잘 읽을 걸요 저는 ㅋㅋㅋㅋ 워낙 게으름뱅이인지라, 그래도 응원 감사해요 독서괭님!

공쟝쟝 2023-12-23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후 같은 부분에 밑줄 그었다! 트랙백 달았쒀요! (찜꼭!) 저도 방금 라캉 책 한 권 샀습니다!

수이 2023-12-24 00:00   좋아요 2 | URL
신나지? ㅋㅋㅋㅋㅋ
 

민이 기다리면서 리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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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3 소설 보다
김기태.성해나.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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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의 보편 교양과 성해나의 혼모노와 예소연의 우리는 계절마다_를 완독. 오랜만에 읽는 한국현대단편. 기대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김기태를 발견한 기쁨이 제일 크다. 성해나와 예소연 또한 담담하게 읽을 수 있었고. 소설은 바운더리가 없어서 그게 좋다. 흔히 말하는 세상사가 소설 안에는 다 들어있지 않나. 물론 그 속에서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고 현실에서 매일 보는 이들의 모습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역시 이래서 소설은 좋구나 다시 느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제일 잘한 일은 역시 이 시리즈를 낸 거 아닌가 싶다. 그것도 겨우 3500원. 커피 한잔 값도 안 되는 가격을 책정한 것도. 앞으로 이 시리즈는 봄여름가을겨울 빼뜨리지 말고 사서 읽어보도록 하자_ 싶다. 이런 마음이 든 건 역시 김기태를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현대소설에 거의 관심이 없는 몸을 살짝 잡아끄는듯한 강렬한 움직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모든 글이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글이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킨다면 무슨 공산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그런 황당무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청소년들을 위해서도 이렇게 작은 시리즈들이 만들어진다면 좋을 텐데. 고등학생이었을 때 그런 꿈 꾸었던 기억 나서. 오래 방황하는 동안 오래 읽지 않았고 그 오래 읽지 않았던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서 미친듯 읽지는 말자_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만 갑이요, 다른 이들은 을이라는 태도는 항상 읽고 쓰는 자들이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먹물들이 싫더라_ 라고 언젠가 내 친구는 술에 취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도 읽고 쓰는 자이니만큼 먹물 싫어_라고 말하고 다니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했더니 친구는 어린 시절에 또 그렇게도 이야기했다. 내가 읽고 쓰는 자이니 다른 읽고 쓰는 자들이 얼마나 지 잘난 맛에 사는지 알기에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 아닌가_라고 해서 나 역시 맥주를 마시면서 그도 맞는 말이네, 했다. 좀 많이 겸손해졌다. 시니컬해지지 말자_ 라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시니컬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특히 좋은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그 소설을 곱씹는 동안에는. 흔히 말하듯 세상 살아가는 일은 더불어 살아가는 거다. 나 잘났다고 갑질하는 이들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그걸 하기 싫어서 읽고 쓰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날이 그걸 느낀다. 김기태 읽고 성해나 읽고 예소연 읽는 동안 다시 느꼈고. 커피 한잔 값보다 더 저렴하게 자신의 영혼을 달래고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김기태의 다른 단편을 읽고 싶어 책 한 권을 더 주문했다. 오늘 도착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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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12-23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기태… 라고 따라 적다가 3,500원?! 😳😳 우아 저도 다음 주문 때 한 권 넣어야겠어요!

수이 2023-12-23 11:48   좋아요 0 | URL
단발님은 어떻게 읽으실까 궁금합니다. 저 이제 책방 가요! 겨울 감기 조심해요. 따뜻한 거 많이 마시고!

단발머리 2023-12-23 11:42   좋아요 0 | URL
아들한테 옮은 듯 ㅋㅋㅋㅋ 콜록콜록!!

수이 2023-12-23 11:48   좋아요 0 | URL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_ 집에서 꼼짝 말고 있어. 밖에 추워!
 

김기태 좀 쓰는데_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옴. 일단 다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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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을 갖고 싶어하는 건 엄마일까? 딸일까? 모든 걸 공유해야 한다는 건 딸의 입장이 아니라 엄마의 입장 아닌가. 모든 걸 알고 싶다_는 바람이겠지. 가스라이팅이 제일 잘 작동되는 건 가장 가까운 관계일 때_ 그러니까 부모자식이거나 부부 혹은 연인이거나 나는 널 정말 아껴, 나는 널 정말 사랑해, 라고 수시로 말하는 친구들이나 선후배 관계 정도 되지 않을까. 그 누구보다 너는 내가 제일 잘 알지. 나 이 말 정말 싫어하는데 이 말 들을 때는 좀 소름 돋는다. 그 비슷한 말도 그렇고. 넌 그렇고 그렇잖아. 내가 이제까지 널 봐와서 아는데 넌 좀 그렇더라. 아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들으면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아는데, 개나 줘, 그런 말은. 하고 저절로 속에서 나온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관계성이라는 것도 생각을 해서 함부로 하지 않지만 속에서 그런 말이 시니컬하게 나올 때는 어쩔 수 없다. 물론 저는 개를 사랑합니다. 맥락상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아서 한 거임. 나는 따로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자꾸 나를 꼬드겨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이렇게 하면 네 삶에 도움이 될 테고_ 그런 짓 하면 천벌 받아 큰일 난다, 이런 식의 말 싫다. 엄마는 대체 왜 그래? 라는 말은 얼마 전에 딸아이가 내게 한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내게 무엇이 제일 좋을지 잘 아는 거 아닌가. 그냥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해서 미리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이는 말했다. 사라 아메드를 읽고 있는데 사라 아메드의 신간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올 뻔 하긴 했다, 아까. 엄마는 대체 왜 그래? 혹은 엄마는 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 물론 나도 안다. 왜 엄마가 내게 그렇게 이야기하는지를. 내가 딸아이에게 말을 할 때 조언이나 충고랍시고 하는 그 마음의 바탕이 어떠한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분노가 일어나는 건 어찌할 수 없지. 꼬드긴다고 넘어가는 게 바보 아닌가. 물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공들여 꼬드기는 마음을 함부로 내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나를 위해서 그런다고 하는데 어쩌겠는가. 나도 모르게 실망이 배어나올 때 있다. 차라리 말을 나누지 말걸, 그런 이야기도. 내가 이혼을 한 수많은 까닭 중에 하나, 엑스가 내게 넌 항상 그렇고 그렇고 그렇잖아, 그 말을 참 듣기 싫어서 한 까닭도 있긴 하다. 가장 가까운 관계, 살도 섞고 몸도 나누었으니 영혼이야 말하나마나. 그래서 잘 안다는 그 착각 속에서 깃든 가스라이팅을 온전한 정신으로 당하면서 잘 살아왔다, 라고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자주 한다. 하지만 엄마와는 이혼이 불가합니다. 엄마가 나를 가스라이팅한다고 해서 내내 그러는 것도 아니고 내내 같이 살아가는 것도 아닌데 절연하는 것도 오바라고 생각하긴 한다. 가스라이팅이 심한 건 비단 우리 엄마 뿐만은 아닌 거 같던데, 딸한테 가스라이팅 당하는 엄마들도 많고.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새삼 깨달았다. 엄마와 사흘 내내 붙어 지내다가 아아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 소리가 나오긴 했다, 내적인 육성으로. 지랄맞음을 꾸욱 눌러참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대체 왜 그래. 이 말은 쏙 빼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내가 잘 아는데 왜 나한테 내가 하기 싫은 걸 내 삶에 보탬이 되리라고 생각을 하면서 마음대로 그걸 해라 저걸 해라, 그러는 거야? 대체 왜? 그래도 이렇게 지랄하고나면 엄마도 생각하겠지. 내 큰딸은 겁나게 착하다고 여겼는데 다 내 착각이었어. 가슴을 치면서. 말 없이 가만히 웃고 있으면 다 착하고 다 바보인 줄 알더라. 그게 더 바보 같지 않나. 엄마가 차 안에서 문득 물었다. 왜 이혼을 하겠다고 갑자기 그런 거니? 그 바탕 속에는 내가 나를 위하는 마음이 제일 크긴 했다. 내가 나를 이렇게 위하는 마음이 큰데 왜 내가 기껏 이렇게 대접 받고 살아가는건지 그걸 알 수가 없었다. 발바닥의 때만도 못 여기는 그 마음이 이제는 마주하기조차 지겨워진 것도 있었다. 너는 내가 당하고 사니까 되게 만만해 보이지? 그러다가 내가 내 본색을 드러내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냐? 나는 여름부터 묻고 또 물어보았다. 뭔가 기회를 주긴 줘야겠다 싶어서. 그때는 뭐 끝이지, 네가 네 본색을 보이면. 그럼 내가 이제까지 당하고 산 것처럼 계속 당하면서 내 시커먼 머리가 파뿌리처럼 시들시들 새하얗게 변할 때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 물어보았다. 그럼 당하지 말고 살아. 라는 엑스의 대답도 도화선이 되기는 했다. 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는 거구나, 내 마음대로, 나 하고 싶은대로. 눈이 반짝반짝거리는 걸 보고 앗차 말을 잘못 한 건가, 엑스는 표정이 잠깐 굳기도 굳었지만 오래 함께 걷는 내내 남산 꼭대기까지 걸어올라가는 동안 나는 이제 당하지 않고 살고 싶다, 너는 너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고 나는 나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각자 살자, 한 번뿐인 인생 아니겠냐, 매미는 울어대고 너무 더워 헐떡대면서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엑스가 내 손을 처음 잡아주었던 그때를 아직까지 기억한다. 당신이 내 손을 놓기 전까지 저는 이 손을 놓지 않을게요_ 라고 짧은 연애를 했을 때에도 편지 속에 써넣었다. 수시로 이혼 이야기가 오고 가고 단 한 번도 나 스스로 먼저 이혼 이야기를 꺼낸 적 없이 이미 떠난 마음은 잡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이혼에 흔쾌히 응하면서도 아 두렵고 불안하긴 했다. 이혼 직전까지 번번이 갔다. 이혼도 해보았다. 다시 취하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올해 여름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다가 문득 알았다. 내가 먼저 손을 놓아버리면 우리는 영영 끝나가는구나_ 이건 중의적이다. 이 손과 저 손이 달랐기에. 잠을 자지 못하고 미친년처럼 서울 거리를 매일 세 시간씩 걸으면서 이 손과 저 손 사이에서 나는 한참동안 말없이 방황을 하기도 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왜 이혼을 하겠다고 갑자기 그런 거니? 엄마는 새삼 물어보았다. 언저리 이야기는 많이 한 거 같은데 엄마가 그런 식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너는 왜 이혼을 하겠다고 한 거니? 물어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내 인생이잖아. 그런데 옆에서 배 놔라, 감 놔라, 내가 그 소리 듣기 싫어하는 걸 알았지. 한 번뿐인 내 삶인데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나 즐겁지도 기쁘지도 않은데 그런 소리 들으면서 참고 살아봤자 나한테 득 되는 게 아무것도 없던데. 엄마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잖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세세하게 아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것도 잘 모르잖아. 남편이랑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구나 그걸 알려준 사람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의 손을 잡고 싶지 않아졌고 그는 너무 일찍 내 손을 놓아버렸어. 설령 내 손을 잡고 있었다고 해도 그건 단순히 민이 엄마로서 그런 거고. 그러니까 나도 내 삶을 살아야 하잖아. 뭐 하러 허수아비 손을 잡고 살아가? 하긴 내가 이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도 처음에 간곡히 내 손을 잡으면서 말하긴 했다. 참고 살아라, 그게 여자 삶이다. 그때도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올뻔 하긴 했다. 세상이 지금 어느 시대인데 대체 엄마는 왜 그래? 라고. 수없이 울고 또 울면서 참아온 엄마의 삶을 어린 시절부터 봐온 까닭도 있지만 뭐 내 삶이 엄마 삶이랑 또이또이 그렇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지만 막상 그렇게 되고보니 아 나도 그냥 참고 살아야 하나, 친구들도 다 하나 같이 이혼을 간절하게 말리는데 했다가 어느 순간 아 하지 않으면 안될 순간이 오긴 오겠구나 광화문을 걷다가 알긴 했다. 불행해지고 가난해질까봐 이혼을 미루고 미루면서도 언젠가는 아 하겠구나 계시처럼 그런 생각이 들 적마다. 이혼을 하겠노라고 했더니 친한 친구들이 대차대조표를 써보라고 해서 대차대조표를 써보려고 노트를 꺼내 펼쳐들었다가 가운데 줄을 쫙 긋고난 후에 쓸 필요가 하나도 없구나 알았는데 가운데 줄을 긋자마자 이혼으로 인해 얻게 될 것들은 쓰기도 전에 쫘라라락 머릿속에서 두루마리 펼쳐지듯 목록이 나오는데 이혼을 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지속할 경우 내가 얻게 될 것들은 나한테 플러스로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까지 내 다이어리 속 한 페이지는 가운데 줄만 달랑 그려져 있다. 무모한 것은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 가장 잘 알았다. 더 이상 잔인한 소리를 주고받지 않아도 되니 좋다 느낀다. 잔인하고 고드름보다 더 뾰족하고 차가운 말을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주고받다보니 마치 얼음 공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가 아직까지도 내 선택과 결정에 대해서 아쉬워한다는 걸 오늘도 느꼈다.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겠지. 순간 울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그렇게 살게 내버려뒀으면 좋았잖아. 왜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불행과 고통을 겪게 만들어, 소리를 지르면서 미친년처럼 소리를 지르고 싶기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결국 그 달콤한 말에 넘어간 건 나였잖아. 내가 선택했고 내가 결정했잖아. 그걸 누구한테 덮어쓰게 하려고 하는 거냐, 더구나 엄마한테 그러면 나쁜 딸년이잖아. 사람들은 엄마는 두 눈을 휘둥그레 크게 뜨고 놀라겠지만 그래도 되는 거라는 걸 안다. 나쁜 딸년_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도 다른 이들이 남몰래 귓속말을 주고받아도 어쩌겠는가. 그냥 생긴대로 사는 거야. 그걸로 족하기로 했다. 엑스에게는 그런 적 있다. 왜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불행과 고통을 겪게 하느냐. 대체 왜? 내가 이혼을 한 까닭은 또 있다. 나는 엑스와 같은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가 싫었다. 그런 식의 생의 태도를 내 걸로 삼고 싶지 않았다. 흔한 말로 내가 하면 연애요, 다른 이들이 하면 불륜이라는 걸 내 삶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당신의 세컨드가 되어도 괜찮아요, 라는 말을 듣고 좀 화가 나기도 했다. 나는 그냥 하나면 족하지 굳이 둘은 필요 없기에. 저는 에너지가 그렇게 남아도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님 손을 잡겠다고 한다면 일단 제가 이혼 좀 하고 올게요. 전 별로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거든요. 그랬더니 모랄리스트라며 웃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도 내가 모랄리스트인 줄 몰랐네, 에피큐리언인 줄 알고 그동안 오래 착각하면서 살아왔는데_ 대꾸했다. 사실 굳이 누구 말을 충고랍시고 들을 필요는 없다. 그런 순간들이 닥쳐온다. 살아가다보면. 말을 하고 페이지를 넘기다보니 알겠더라. 운전하고 있는 엄마 옆모습을 바라보고 또 말했다. 엄마, 나는 사랑이 하고 싶었어. 그래서 이혼한 거야. 라고. 그냥 남들 사는 것처럼 살기 귀찮고 그런 거 번거로워서 그래서 심플해지고 싶어서 이혼한 거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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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12-21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때 엄마들은 다 강요다운 강요를 하셨죠^^
전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딸과 엄마 사이가 어떠해야하는지 내가 보여주리라 맹세했거든요. 우리딸한테 엄만 대체 왜 그래. 하는 말은 ... 저도 별로 듣고 싶진 않네요~~ 아직 안듣고 잘 살고 있으니 저 성공한거 같아요
사라 아메드는 저도 곧 입문해보려구요.
우리에게 책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말입니다^^

수이 2023-12-22 10:54   좋아요 1 | URL
사라 아메드 강추합니다, 은하수님. 사유의 지평이 달라지는.

엄마는 대체 왜 그래, 저는 자주 듣습니다. 부족하지만 뭐 그런대로 서로 맞추면서 살아가면 성공 아닐까 싶어요.

건수하 2023-12-21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마와 내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완전 끌리는데요!

수이 2023-12-22 10:54   좋아요 0 | URL
저도 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