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밑줄

사색이 자동적으로 착취로 이어지진 않는다. 자기반영성이 완벽한 행위성agency이나 자제와 동일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결정론에 대항하는 우리가 가진 몇 안 되는 방어수단일 뿐이다. 이것이 푸코조차도 후기에 자기심문self-interrogation의 힘을 연구하기 시작한 이유일 수 있다. 섹슈얼리티를 포함해 우리의 주체성이 ‘훈육권력disciplinary power‘ 이라는 생명관리정치적 조건화로 형성된다고 설명한 푸코도 결국 능동적인 자기형성의 이상에 의존한 고대 그리스의자기배려care 관념을 들여다보았던 것이다‘
포스트 푸코주의자들은 대부분 능동적인 자기형성보다 생명관리정치를, 후기의 푸코보다 초기의 푸코를 강조했다. 이로 인해 생겨난 문제들은 결론 부분에서 다시 살펴보자. 여기서 우리가 유의할 - P198

대목은, 라캉도 다른 정신분석 사상가들처럼 자기반영성을 (자기 존재를 사색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행위를) 중시하긴 했지만, 완전히 행위적인 자아의 이상에 가치를 두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상 라캉은 자율적인 계몽주의적 주체 시기 초기의 비평가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정신분석적 접근법은 자기반성을 옹호하면서도, 인간이 필연적으로 자기통제self-mastery에 미치지 못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가 완벽한 행위성이나 자기통제를 갖추지 못했다고해서 어떠한 행위성이나 의지력, 자제력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라캉식 주체는 대단히 고집스럽고 반항적이다. 내가 라캉에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라캉 이론이 내가 앞서 언급한 지성적 곤경을어떻게든 해결하기 때문이다. 라캉의 이론은 인간이 자기반영이나자결 능력이 없다고 암시하지 않으면서도 계몽주의적 자유와 자율성 개념들을 피한다. 약간 다르게 말하자면, 라캉은 인간의 주체성이 사회적으로 조건화된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 중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제어할 사람은 없다고 인식하는 가운데서도 사회적 결정론에 빠지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쓴 목적에 더 부합하는 대목은, 라캉은 다른 동물과 인간의 동류의식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성차별주의적·인종차별주의적) 생물학적 결정론이나 진화론적 결정론 같은 것을 피한다는 점이다.
생물학적 결정론biologism을 우회하는 한 가지 방법은, 유성의 신체와 이 신체에 부과되어 온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문화적 신화 차이를 추궁하는 것이다. 라캉은 이 작업에 착수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였다. - P199

이 장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인간의 욕망과 동물의 본능 간의 차이다. 라캉이 뜻한 의미로 이해했을 때, ‘욕망‘은 생물학적 결정론뿐만 아니라 푸코의 생명관리정치 분석이 암시하는 사회적 결정론까지 피할 수 있는 열쇠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욕망은 주권적(완전히 행위적이고 자율적이며 자기통제적인) 계몽주의 주체의 몰락 이후 행위성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한다. 욕망을심문하는 수단으로서의 자기반성과 자기반영성의 기회가 되는 욕망 둘 다 정신분석의 주된 연구 범주에 들어가는 건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둘 다 포스트휴머니즘(포스트계몽주의) 시기의 행위성을 재개념화하려는 탐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라캉은 인간의 생물학이 문화와 사회화의 각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욕망의 기능에 자연적인("생식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입증한다. 사회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주체성은 육체적인 충동의 규율화를 요하기 때문에, 욕망은 우리가 섹스를 함으로써 간단히 충족시킬 수 있는 본능이 아니라 우리를 압박하고 심지어 우리에게 고통을 안기는 무정형의 예측할 수 없는 힘이다. 인간이 아예 본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뜨거운 걸 만졌을 때 놀라서 손을 떼는 것 같은 본능은 당연히 있다. 생존하기 위한 (그리고 어쩌면 번창하기 위한) 본능은 분명해 보인다. 나는 단지 욕망이 반자동적인 의미에서 본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사회적으로 조건화됐다고 말하는 것이다.
욕망에 관해선 항상 무언가 빗나간다고 말할 수 있다. 너무 많거 - P200

나, 너무 적거나, 또는 틀린 대상에 조준된다. 덧붙여서, 그것은 사회적 규범들로 형성되지만 언제나 그 규범들과 부딪힌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욕망과 문명 사이에 근본적인 갈등이 있다고 생각한 이유이다(동물의 본능과 동물의 사회엔 불가피한 갈등이 없다는 점을 유의하자). 이것이 라캉과 (그의 추종자들과) 같은 포스트 프로이트주의자들이 욕망을 반항적인, 반문화적인 힘으로 여기는 이유다. 욕망은 사회적으로 조건화됐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조건화의 제약을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앞선 포르노 분석에서는 욕망이 얼마나 쉽게 생명관리정치적 통제를 받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모든 욕망이 언제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라캉과 정신분석, 욕망의 특정성이 종종 엄청난 고난을 초래하기는 해도 자기결정권의 단초가 될 수있다고 믿는 이유이다. - P201

아이가 요구하는 사랑은 아무리 좋은 부모라도 줄 수 있는 것이상이기 때문에, 아무리 안락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라도 마음의 상처를 완전히 피할 수 없다. 그러니 냉담하고 과격하고 폭력적인 양육자 아래서 자란 사람은 그런 양육자에게 생존을 의탁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로 극심한 고통에 노출되게 된다. 어린 시절에 당한 학대의 비극은 그들이 그들을 해치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 신체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얽매여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와 같은 아동기의 심리적 트라우마가 크든 작든지 간에, 가상이건 현실이건 간에 관계없이 우리가 평생에 걸쳐 처리하려고 애쓰지만 처리되지 않는 감정적 잔여물을 남긴다는 가설을 세웠다. 반복강박은 이 처리 과정이 일어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완전히 정상적인 정신의 삶 따위는 없다고 모든 사람 - P208

이 크고 작은 신경증을 갖고 있다고 말한 이유이다. 프로이트는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모든 치료 진료를 만들었다. 그를 조롱하는 사람들조차 현대 심리치료의 기원이 그가 발명한 ‘대화 치료‘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무언가 잘 안 되니까 심리치료를 받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욕망은 우리 삶의 방향을 꼬이게 하고, 때론 일그러뜨리며, 친밀한 관계를 ‘바로잡기‘ 어렵게 만든다.

프로이트의 천재성이 인간 욕망과 동물 본능 간의 차이를 알아본 것이었다면, 라캉의 천재성은 인간 주체성의 사회적 특징과 우리가 느끼는 근본적인 결여감 사이의 관련성을 설명한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사회화를 겪으며 본인들의 인지 능력을 초과하는 의미의 상징세계를 접하게 되고, 그 결과 실존적으로 또 존재론적으로 겸허하게) 부족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존재(내)결여와, 프로이트가 반복강박과 연결시킨 대인 관계에서 겪는 구체적인 고행 양상을 실제로 구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두 가지 결핍 형태는 서로를 보강하는, 삶을 특정 짓는 방법들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맥락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의 존재론적 결여가 특별히 인간적인 경험으로서 욕망을 발생시킨다는 라캉의 가설이다. - P209

내가 완전히 살아 있다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생생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욕망을 이 정도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의 욕망은 동물의 생식 본능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끌릴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우리를 움직이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호감을 느끼지만, 그중 우리의 욕망을 완전히 활성화시키는 기운이나 특성을 가진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롤랑 바르트가 주장하듯,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그 사람이 입술을 깨무는 방법, 머리를 기울이는각도, 잔을 드는 손가락 모양처럼 극히 사소한 디테일이다!
욕망을 생성하는 결여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왜 그토록 도취적인지, 무턱대고 갈망하게 되는지 명확하게 한다. 왜 나는 그 사람을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경험하는가? 내 마음이 일단 그 사람을 점찍으면, 그 사람이야말로 이 끈질긴 결여의 느낌과 소외감을 쫓아 줄 힘이 있다고 결정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사람을 포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 사람을 포기하는 것은 내 존재의 온전함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온 존재가 걸린 사람을 순순히 떠나보낼 수 있는가. 욕망과는 쉽사리 타협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유형의 욕망이 얼마나 우리를 취약하게 만들고 쉽게 비탄에 빠뜨릴 수 있을지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실연은 그토록 쉽게 우리를 깊은 우울 속으로 유인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사람을 잃어서 슬퍼할 뿐 아니라, 언젠가 우리의 결여가 메워질 가능성이사라진 것을 애도한다. - P216

욕망의 특정성은 우리를 비탄에 빠뜨릴 수 있다. 가장 순도가 높을 때, 가장 완강할 때 일어나는 욕망은 간단한 연애술로 제어하기엔 너무나 솔직하고 강력하다. 이런 욕망은 우리가 연애적 운명을 제어할 힘을 빼앗아 간다. 그것은 관계를 안전하게 처리하려는 모든시도에 대한 면역 같은 것이다. 심지어 이 대체 불가능한 것이 언젠가는 대체 가능해진다는 사실조차 아는 이 욕망은 상실의 망령 없이는 사랑이란 사건이 일어날 수 없음을 안다. 우리 문화는 올바른조치를 취하면 상실을 방지할 수 있다고 조언하지만, 욕망은 그 특정성으로 인해 절대로 잃어버려선 안 되는 것을 잃어버릴 가능성을인식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해칠 힘을 가진 나쁜 감정들을 인식하면서도 모험에 나서는 것이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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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마리 루티 언니 책을 빌려와 열심히 읽는데 친구가 단톡방에 올렸다. 이 책이 나와버렸네? 라고. 그 책은 바로 [잔인한 낙관]. 마리 루티의 바나나책에 계속 언급된 바로 그 책. 그 책이 나와버렸다. 이 무슨 기이한 우연이란 말인가 하고 지레 놀라는 척 하면서 그래, 이건 운명이야, 마리 루티 언니 읽는데 이 책이 신간에 딱 나와버렸고 그걸 친구가 딱 캐치해서 우리 이거 읽자! 했다. 12월 전까지 책 사지 않을 거야, 라는 말을 아주 당당하게 한 친구는 또 이런 책은 사줘야 하지 않겠어! 라고 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스피박 다 읽고 바로 그거_ 7월에 읽기로 한 책은 그게 아닌데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바나나 책 들고 다니기 좀 창피해서_바나나 그림이 창피한 건 아니고 남근이란 말이 창피한 건가 하지만 이런 책 읽는 현대 여성이라니 좀 많이 멋지잖아, 라고 생각을 정정하고 아니 왜 내가 창피해야 하나 하고 열심히 들고 다니면서 읽다가 잔인한 낙관 들고 다니면 이야 그야말로 장난 아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읽어드리리, 하고 예습 가능할까요? 로런 벌랜트의 글이 실린 정동 이론도 조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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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6-18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구 누구? 바로 나 입니다!!

수이 2024-06-18 20:01   좋아요 1 | URL
땡투는 저에게로 ㅋㅋㅋ
 

오늘의 문장

스피박 다시 한번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제가 알기로는, 가르치는 경험은 충분한 자격을 갖는 윤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책임-의무에 더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윤리적이고자 계획을 세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아요. 《시학》의 첫 페이지에는 미메시스와 포이에시스 사이에서 진행되는 연극이 나옵니다. 아이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정말로 할 수 있는당신의 미메시스 안에서 가능한 한 양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투케tuche를 통해서 포이에시스가 출현할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것은 우리가 이야기 하고 있는 아름다운 모델입니다. 당신은 가르치면서 "나는 윤리적이야"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이 정말로 생각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완수할수 있을까?"겠죠.

샌더스 맞습니다.

스피박 어떻게 완수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움직여야 하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그저 그것에 대해서 완전하게 의지를 가지는 겁니다. 그렇죠? 중요한 것은 그런 노력이 언제나 강압에 매우 근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강압 말입니다. 심지어 설명조차 강압과 매우 가깝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욕망이 움직이도록 만들어야만 합니다. 그것의 비강압적인 부분은 당신의 개입 없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투케를 통해서 오는 포이에시스와 같습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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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6-16 2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벌써 215쪽이라구요? @@

수이 2024-06-16 21:07   좋아요 1 | URL
어렵더라구요. 저는 스피박으로 가겠습니다. 쉬운 개론서는 아님 확실히.

단발머리 2024-06-16 21:20   좋아요 1 | URL
저두 어려워서 지지부진….😳

수이 2024-06-17 08:26   좋아요 0 | URL
대체 누가 골랐냐!!!!!!!!!!!!!! 이 어려운 책을!!!!!!!!!!!!!!!
 

오늘,
여름,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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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6-15 0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거 다 떼고 얼굴로만 하자면 바르트가 제 스타일이네요 ㅋㅋㅋㅋㅋㅋ운현궁 근사하네요!!

수이 2024-06-17 08:27   좋아요 0 | URL
교보에서만 놀았지 운현궁 갈 생각을 못했습니다 ㅋㅋㅋㅋ 근데 여름이니 가을에 언제 한번 ~

책읽는나무 2024-06-15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여름도 덥네요.
비가 오고 나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던데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어요.ㅋㅋㅋ

책장의 피사체도 이런 각도로 보니 어마어마게 견고한 책탑 같네요.
운현궁이란 곳도 단발 님 댓글을 읽고 아..운현궁이구나? 깨달았구요.
롤랑 바르트는 좀 무섭습니다만...어제였나? 서점 잠깐 들렀었는데 김연수 작가님 책 신간이 나왔던데 김연수 작가님 얼굴이 책 표지에 똬악!!!!!
저는 그쪽이 쫌 제 스타일 같기도??ㅋㅋㅋ
암튼 여름 잘 나십시다.^^


수이 2024-06-17 08:28   좋아요 1 | URL
그래서 얼굴이 화끈 달라올랐다는 말은 어쩐지 중의적으로 들립니다 언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갱년기 증상 때문에 자주 얼굴이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김연수 작가님 신간 나온 거 저도 봤어요. 읽어보고 싶은데 올해 안에는 꼭! 나무 언니도 여름 아자아자 하십쇼.
 

아이스티를 내리고난 후 때마침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좋아서 급찍어보았습니다. 모두들 초여름 즐거운 독서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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