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 - 한국고전문학선 12
전영진 엮음 / 홍신문화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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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릴 적에 '하늘아 하늘아'라는 사극을 통해서 '한중록'의 내용을 접한 적이 있다. 인기배우였던 하희라와 정보석이 각각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로 출연했던 드라마였다. 그 작품에 등장하는 사도세자의 행동이 어찌나 난폭했던지... 궁내의 시녀들을 겁탈하고, 신하의 목을 잘라서 들고다니는 걸 보고는, 저런 사이코왕자가 왜 안죽고 있나.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결말에 가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갖쳐 죽음을 맞을 때에는 인과응보라고, 당연한 결과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감상도 TV드라마에 의해서 길들여진 편견일 뿐이었다고 생각하니 좀 씁쓸하기 까지 하다. '한중록'을 읽고 가장 감탄한 부분의 헤경궁 홍씨의 탁월한 글솜씨이다. 전체적인 내용을 뒤덮고 있는 애통한 분위기 하며, 행간행간마다 스며들어있는 저자의 애절한 심정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눈물을 흘리면서 '한중록'을 써내려갔거나, 이 글을 통해서 마음 속 깊숙히 쌓여있던 울분과 안타까움을 토로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른 자료들을 통해서 '한중록'과 당시 궁궐내부의 사정을 알아 본 결과로 짐작할 때, 글을 쓴 의도가 그렇게 감성적인 이유는 아니었던듯 하다. 자신의 남편인 사도세자를 정신병자로 몰고가면서까지 왕을 변호하고, 처가를 보호하려는 에세이였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남편까지 욕해가면서 처가의 가족을 변호해야 하는 혜경궁 홍씨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하고 비참했을까? 제 아무리 왕족이라 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한 인간의 존재는 이토록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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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비
윤정란 지음 / 차림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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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비'는 조선시대를 거쳐간 수십명의 왕비들을 간략하지만 심도깊게 소개한 역사서이다. 대학 리포트 한 편 분량의 각 챕터와 연대기순으로 배열한 무난한 편집과 적당히 수준 있으면서도 너무 어렵거나 학구적이지만은 않은 내용이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 책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극 드라마를 통해서 너무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들과 오해들이 '조선의 왕비'에서 자세하게 해설되어 있는데, 요즘 세대들이 '태조 왕건'이나 '여인천하'같은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을 볼 때 이런 책이 출간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장희빈에 관한 편견들과 혜경궁 홍씨의 책에서 볼 수 있었던 주장들과는 전혀 다른 사실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부인 강씨를 시작으로 구한말 명성왕후 이후의 비극적으로 소외되어갔던 왕비들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의 자료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막상 찾아보려고 하면 꽤나 시간이 걸리고 손품을 팔아야 하는 일이다. '조선의 왕비'같은 이런 종류의 책은 본격적인 역사서로도 함량미달인데다가 역사소설처럼 극적인 재미도 갖추지 못한 책이다. 하지만 시의적절하게 꽤나 유용하기도 하고,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참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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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디자인하는 여자
이주향 / 조선일보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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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씨가 전작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의 성공에 힘을 얻었는지 비슷한 소재와 분위기, 방향으로 출간한 책이다. '운명을 디자인하는 여자'라는 색다르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내용이 문화비평서인지 만화비평서인지, 그 성격이 모호한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글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 패미니즘, 아직도 불평등한 지위에서 지내야만 하는 여성들의 권리에 집착하는 작가의 모습이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이 시대의 대한민국땅에서 그 정도의 논지와 전투력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냉철하고 기계적인 분석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호감어린 시선으로 모든 사건과 사물을 보고 있다는 게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가 만화를 보는데 있어서도 분석하고 쪼개어 평가하기 보다는 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애정이 느껴진다. 그런 분위기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재미있고 인상깊에 읽어내려갔고 말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시각에서 바라는 점이라면, 조금은 더 담담하고 차분하게 만화를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과연 만화가들이 철학자가 판단하는 것만큼 그렇게 심오하게 생각하고 그렸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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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혁명
정철 지음 / 해냄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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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어순에 익숙해지고... 큰 소리로 암송하듯이 외운다는 방법... 막연하게 영어학습자들이 영어교사들이 깨닫고 있던 내용들이 아닐까? 하지만 워낙 당연하고 상식적인 내용들이라 오히려 무시한 채 한 쪽으로 치워놓고 귀찮게만 여기던 사실들이 아니었을까?
정철선생님의 '영어공부혁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정말 영어가 되게 하는 학습법이라는 감탄과 함께, 너무나 상식적인 내용과 수준에 대한 낮설음이었다. '영어공부혁명'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쇼킹하고-예를 들면, 계속 듣기만 연습하라던가.하는 식의 학습법처럼...-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기발한 방법들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상식적인듯한 수준의 학습법을 저자 자신의 논리와 확신으로 멋드러지게 써내려간 것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신감과 확신,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서 못견딜 것만 같은 의욕이 솟아오른다.

다른 수많은 영어학습법에서 약속하는 화려하기만 한 장밋빛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책이다. 하지만 여러 번 숙독하고 따라할 의지만 있다면 충분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허접한 영어관련 학습법들에 지친 독자라도 '영어공부혁명' 한 권만은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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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아이 -상 영원의 아이
텐도 아라타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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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으로 분책되어 출간된데다가 각 권의 두께가 꽤 되는 만만치않은 분량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 책을 전부 읽고나면 그리 긴 분량이 아니었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독서도 아니었다는 느낌이 남는다. 그만큼 강한 흡입력에 빨려들어가는듯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소개글에 소개되어있는 현란한 광고문구들은 대부분 과장된 표현들이기 마련이지만, '영원의 아이'에 바쳐진 '10년을 통틀어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는 결코 소리만 요란한 빈수레의 그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매 챕터에 번갈아가면서 17년 전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 주인공들에 얽힌 비극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불우한 환경이나 결손가정에서 자라난 독자들 뿐만아니라 행복하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난 독자들 모두 가정과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시드니 셀던의 문체만큼 현란하지도 않고, 스즈키 코지의 글만큼 잔인하지도 않지만 어린 시절의, 현재의 주인공들이 내뱉는 대사들은 가슴을 후벼파는 것처럼 격렬하고 섬뜩한 느낌이었다.

스릴러의 형식을 빌어오긴 했지만, 그 어느 휴머니즘 소설보다도 뜨겁고 감동적인 작품이었다.정말 읽기를 잘 했다. 놓쳤더라면 후회할 뻔 했다.는 느낌이 드는 걸작이다. 너무 빨리 읽어버린 게 아쉬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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