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청풍운
맥조휘 외 감독, 고천락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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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10년도 더 지났는데, 홍콩 영화 속의 홍콩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법과 범죄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으며,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명확하지 않다.

물론 영화 자체는 '무간도' 이후의 작품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깔끔한 화면과 매끈한 줄거리를 보여준다.
정보국에서 기업인 팽화를 감청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조니와 진, 맥스는 우연히 홍콩의 주식시장을 조작하려는 정보를 듣게 된다. 그들은 각자의 사정 때문에 그 정보의 유혹에 흔들리게 되고 결국은 들여놓아서는 안 될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된다.

90년대 홍콩영화에서 볼 수 있는 무지막지한 총알 공세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그런 비극으로 끝나거나 아니면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만 같은 예상도 철저히 빗나간다.
백혈병에 걸린 아이를 두고 있는 암에 걸린 형사, 상사의 전 부인을 사랑하는 형사, 부자 집안의 사위가 될 형사...
장문강, 맥조휘 감독은 '무간도'에 이어 '절청풍운'에서도 주인공들을 절벽 끝으로 밀어 넣는다.
돈 앞에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암울함과 지은 죄는 언젠가 돌아온다는 식의 인과응보가 보는 이를 더욱 울적하게 한다.

더 이상 홍콩영화는 쌍권총을 들고 끝도 없이 총질을 해대는 느와르도 아니고, 한 번 맞으면 두 바퀴 반을 돌고나서 쓰러지는 무협 영화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화려한 액션 장면도 없는 '절은풍운'이지만, 절제된 화면과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가 관객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다.
한류에 밀려서 잘 나가던 시절의 영화는 찾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홍콩의 감독들은 세련된 연출력을 자랑하는데다가 홍콩 영화 또한 계속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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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지대
마이클 크라이튼 감독, 리차드 벤자민 외 출연 / 기가코리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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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로봇들을 이용해 서부시대, 로마시대, 중세시대를 재연해놓은 관광지 델로스.
이곳에서는 관광객이 자신의 폭력적, 성적 판타지를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관광지다.
하지만 곧 로봇들이 폭주하기 시작하고 무차별 살인이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터미네이터를 떠올렸을 것이다.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살인하고 적을 쫒는 무뚝뚝한 표정의 율 브리너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적어도 눈빛만큼은 아놀드 슈왈츠네거를 능가한다.


(터미네이터의 먼 조상)

그리고 마이클 크라이튼 자신 또한 인간의 탐욕과 테마파크라는 소재를 '쥬라기 공원'에서 다시 한 번 재활용했다.
'쥬라기 공원'이나 '콩고', '떠오르는 태양' 등으로 유명한 마이클 크라이튼이 자신의 소설 '델로스'를 직접 감독한 작품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소설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영화화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참...)


(당시에는 '트랜스포머'만큼이나 획기적이었을라나..)

시대를 앞서나가는 재능은 놀랍지만 영화 자체는 21세기에 즐기기에 좀 시대착오적이다.
지금은 가상현실이라는 방식이 더 효과적인 놀이이기 때문에 영화처럼 몸으로 때우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한 상상력이 아니라는 점이 좀 아쉽다.
(그래도 마이클 크라이튼의 각본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관심으로 리메이크가 진행 중이었다는데, 크라이튼의 죽음으로 어찌될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니, 무척 아쉽다. 원작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고 호쾌한 액션 걸작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박진감 넘치는 육탄전은커녕 쫒기는 사람이나 쫒는 기계나 어슬렁거리면서 걸어 다닐 뿐 긴박감 넘치는 속도전은 찾아볼 수 없다.
총 몇 방 쏘고 천천히 걸어간다. 마치 좀비들끼리 서로 쫒고 쫒기는 것처럼 말이다.(요즘은 좀비도 엄청 빠르지만...)

지금 보기에는 너무 느릿느릿하고 너무 싱겁게 끝나버린다.

소설이 출간될 당시나 영화가 개봉한 1973년 당시에는 충격적이고 기발한 소재였을지 몰라도 지금 보기에는 너무나 밋밋하다.(물론 '쥬라기 공원'이나 '폭로' 등이 그랬듯이 마이클 크라이튼의 원작 소설은 틀림없이 훨씬 더 의미심장하고 깊이 있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로봇과의 대결이나 로봇과의 붕가붕가 그 어느 쪽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정말로 시종일관 느릿느릿 걸어 다니다가 끝나버린다.

초등학교 시절 흑백 TV로 봤을 때는 '터미네이터'나 '용쟁호투' 못지않은 전율을 느낀 작품인데, 역시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다운 경우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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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투 더 스톰
태디어스 O‘설리번 감독, 브렌단 글리슨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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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O의 대작답게 치밀한 고증과 명배우들의 빼어난 연기, 훌륭한 제작자(리들리 스콧, 토니 스콧 형제)의 조화가 훌륭한 명작이다. 확실히 HBO는 관객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선보이는 대단한 채널이다.

'인 투 더 스톰'은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처칠이 어렵게 수상이 되어 탁월한 리더십으로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물러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일 정도로 말이다.
경쟁자였던 핼리팩스의 양보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거만함, 믿을 수 없는 인물 히틀러와의 협상을 단칼에 거부하는 단호함 등은 처칠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 했다.
여러 작품에서 실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 브랜단 글리슨은 이 작품에서도 훌륭하게 처칠을 연기한다.  

 

(씽크로율 99.9%)

물론 영웅적인 면모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스탈린과 루즈벨트와의 3자 회담에서 소외되었을 때의 벌쭘한 표정이나 미국의 원조를 갈구하며 노심초사하는 모습 등도 인상적이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의 응원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부인과의 대화, 의원들 앞에서, 마이크 앞에서 멋지게 연설하는 장면, 노동당으로부터 거칠게 공격당할 때의 울적한 표정 등 낯간지럽고 식상한 장면들도 속출한다. 특히 마지막에 극장에서 살며시 부인의 손을 잡는 장면은...
물론 덕분에 윈스턴 처칠의 고뇌와 인간적인 면모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처칠은 강단 있는 지도자로 알려졌는데, 사실 1차 대전 이후 독일을 너무 쥐어짜면 2차 대전이 벌어질 수 있다고 걱정하는 젊은 정치인이었고, 2차 대전이 끝난 뒤에는 소련의 공산주의가 나치즘보다 더 위협적임을 경고한 명민한 인물이었다.
물론 이런 사실들은 작품 속에도 잘 나타나 있다.

PS. 처칠 특유의 제스처인 손가락 V는 언제 봐도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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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개 (2disc)
전재홍 감독, 김규리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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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을 넘나들며 이산가족의 소식을 전하는 이름 없는 남자.
그가 맡은 임무는 평양에 가서 망명한 북한 고위층의 여자를 데려오는 것.
일은 불과 3시간 만에 끝나지만 남한과 북한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그 남자의 비극이 시작된다.


(끝없이 달리는 그 남자)

하지만 시종일관 비장한 분위기를 풍기던 영화의 분위기는 마지막에 블랙코미디로 변해버리고, 허공답보의 경지에 지뢰마저 피하는 주인공의 능력은 람보와 제이슨 본을 능가하는 터미네이터 급이다.
액션과 멜로, 스릴을 너무 많이 주워 담다 보니 이도저도 아닌 정신없는 전개는 간혹 헛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어쩌면 '풍산개'는 작품성과 대중성 사이를 어정쩡하게 오가다가 길을 잃은 그런 작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종일관 말이 없는 윤계상의 묵직한 연기와 쓸쓸한 눈빛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김규리의 연기, 그리고 김기덕 감독만이 선사할 수 있는 불편한 분위기...
특히 윤계상이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은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들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인옥의 쓸쓸한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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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혁명]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경제학 혁명 - 신화의 경제학에서 인간의 경제학으로
데이비드 오렐 지음, 김원기 옮김, 우석훈 해제 / 행성B(행성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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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는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 경제는 안정적이다.
* 경제적 위험을 통계로 조절할 수 있다.
* 경제는 공정하다.
* 경제 성장은 좋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이러한 일반적인 생각들을 비판하고 그 오류를 찾는다. 단지 그 비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오류의 태동을 알아보고 대안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어쩌면 경제적 상식에 심각한 오류가 있을 수도)

불과 100년 전보다 훨씬 정교해지고 예리해진 요즘의 경제학도 성장에 대한 맹신이나 소득 불균형 같은 수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냉소적인 표현들은 굉장히 설득력 있고, 너무도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아마도 현재 우리나라의 독자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부분은 월마트와 구멍가게로 대표되는 불공정한 경제를 다루는 7장일 것이다.
현대는 지리적으로 신분(?)적으로 부의 불평등한 배분이 심화되어 있으며 이런 비대칭 때문에 극소수의 사람들이 다수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학은 성장이라는 희망으로 이런 소득 격차를 대체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를 불러 오는데, 한없이 부풀어 오른 경제는 결국 신용 위기를 불러오고 만다.


(거대한 먹구름 속으로 돌진하는 시대)

물론 너무나도 과격한 저자의 몇몇 주장들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편이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세계 경제는 줄곧 외줄 위를 걷는 형국이며, 그 위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런 시기에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오렐이 던지는 화두들은 충분히 곱씹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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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기구가 효용을 최적화하며, 따라서 시장가격으로부터 효용을 추론할 수 있다는 제번스의 주장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특징짓는 순환논리의 전형적인 사례다. 효율적 시장 가설에서처럼 이것은 시장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가격이 항상 옳다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맹점을 경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p.304

우리는 경제에 관한 완벽한 모형을 만들 수도 없고, 또 다른 금융 재난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우리는 거품 속에 살고 있으며, 이 부채를 해결할 실질적인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나는 예측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생각에 다음의 대형 위기는 돈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은행가나 수학자들에 의해서 촉발되는 그런 성질의 위기가 아니다. 그것은 보다 현실적인 어떤 것에서 관한 문제다. 우리는 우리를 제외한 이 행성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 신용 한도를 갖고 있고, 지금 거기엔 경고의 빨간불이 켜졌다. 곧 호출이 있을 것이다.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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