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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집 무지개
지구 / 1997년 7월
평점 :
품절
첫곡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몰라'는 절규하는 가사가 반복되는 곡인데, 말랑말랑한 산울림을 생각하고 듣기 시작했다가 깜짝 놀란 곡이다.
하드하고 시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걸쭉한 목소리의 반복되는 노래는 마치 한대수와 크래쉬의 중간쯤에 있는 것 같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인 것 같은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는 그냥 의미 없이 반복되는 가사가 듣는 이의 흥을 돋운다.
20대에게는 크라잉 넛의 '닥쳐'가 있다면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는 3~40대를 위한 곡 같다.
별 의미 없이 신나게 곡을 따라 달리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기분이다.
앞의 두 곡을 통해서 신나게 달렸다면 세 번째 곡 '나도 너처럼'은 완급을 조절해서 적당히 쉬었다가 달렸다가 하는 느낌의 곡이다.
그래서 세상에 찌들어가는 청춘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관조적인 시선과 자조적인 분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잔인한 아침'은 역시 청춘의 방황을 절규하는 곡이다.
'무지개'는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인 동시에 산울림의 곡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곡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친구를 노래하는 가수는 수없이 많았지만, '무지개'처럼 담백하면서도 신나는 곡은 처음이다.
마치 오랜 친구가 옆에서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 같은 곡이다.
역시 거친 느낌의 곡 '외출', 신나게 내지르는 '오줌싸개', 조잡스럽다 싶을 정도로 독특한 곡 '142434', 동요 같은 '고양이 사냥꾼', 그저 장난 같은 'Fax 잘 받았습니다' 같은 곡들이 이어진다.
'내 마음은 황무지'와 '가지마오'는 보너스 곡으로 라이브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관객들의 함성에 김창환의 목소리가 묻힐 지경이라 어째 좀 그렇다.
'부탁'을 들을 때쯤에는 이번 앨범에 있어서만큼은 가사의 의미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의미 없는 것 같은 구절의 반복과 장난스럽게 내지르는 것 같은 창법..
하지만 그 의미 없음 속에서도 청춘과 방황에 대한 고민과 위안, 혼란 등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앨범에는 유독 반복되는 간결한 곡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청춘을 노래하는 산울림의 음악은 심금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