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운
티파니 D. 잭슨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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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 D. 잭슨(Tiffany D. Jackson)’의 ‘그로운(Grown)’은 그루밍 성범죄를 소재로 한 스릴러 소설이다.


초반만 보면 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려는 건지 좀 의아할 수 있다. 사건을 연상케하는 단상 뒤로, 마치 동화나라 신데렐라 스토리같은 이야기가 곧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게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닌, 단지 시간차만 있는 같은 이야기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과연 이게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건지 궁금하게 한다.

이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차 드러나게 되는데, 그걸 조금씩 쪼개고 ‘비트 주스’와 거기까지 이르게 된 과거의 단편을 쌍으로 묶은 것으로 각 파트를 동일하게 구성하고, ‘지금’을 조금씩 재생하면서 ‘그때’의 일들을 돌아보는 식으로 만든건 꽤 괜찮다.

현실에서 동화, 그리고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는 분위기 전환도 좋다. 현실 후의 동화는 그게 더 아름다운 것처럼 보이게 하며, 마찬가지로 그 이후의 현실을 더더욱 추악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다만 아쉽게도 그 사이를 채운 것은 좀 뻔하고 충분하지도 못하다. 남녀가 엮인 일인데다, 주요 인물들이 다소 맹목적인 모습을 보였기에 어떻게 될지는 일찍부터 냄새가 났다. 그래도 최근 많이 쓰인 소재라 다소 피로한 것일 뿐 그것 자체가 문제인 것까지는 아니라,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만 연결했다면 그래도 괜찮았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적어도 구린 속내를 은근히 풍기다가 드러난다거나 할 줄 알았지, 이렇게 극단적으로 획 바뀔줄은 몰랐다. 그래서 캐릭터 변화가 좀 뜬금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게 주요 캐릭터다 보니 단지 해당 캐릭터 뿐 아니라 상대 캐릭터까지도 이상해 보이게 한다는 거다. 딱히 감내해야만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그렇게까지 받아들이나 싶어서다. 보통은 그런식이면 한순간에 현타가 오면서 확 깨지 않나?

급작스런 변화는 이중성과 역겨움을 부각시키기도 한다만, 그걸 그대로 받아주는 인물에 공감하지 못하게도 하고, 이야기의 사실감과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크게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거기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했던 지점이 아닌가 싶다. 이것 때문에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좀 붕 뜬 무엇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처지도 그렇고, 그녀에게 행해지는 그루밍과 가스라이팅도 썩 그럴듯한 무언가로 보이지가 않았다.

오히려 의심의 여지가 다분한 것까지 무리하게 끼워맞춘듯 억지스러워 보였다. 이것도 그럴만한 심적인 공황상태에 빠져있다는 것을 미리 깔아두었다면 설득력 있었겠다만 그런 빌드없은 거의 없었을 뿐더러 반대로 이상한 정황을 보고 의문을 품는 장면같은 건 여럿 있기에, 그런데도 이렇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썩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는다.

실제 사례가 있는 꽤나 뜨거운 논란 거리를 소재로 한만큼 그 추악한 면을 마주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하려는 의도는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나열하듯 던지면서 보여주는 것에 보다 집중한 느낌이지 거기까지 이르고 또 이어지는 서사는 제대로 쌓은게 아니라서 오히려 반대측의 의견을 떠올릴만한 의아함도 드는만큼, 소설로서의 완성도와 그를 통해 전달하려는 사회적 메시지 모두 결과적으로는 좀 아쉽게 된 것 아닌가 싶다.



* 이 리뷰는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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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가 왔습니다
조피 크라머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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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피 크라머(Sofie Cramer)’의 ‘메시지가 왔습니다(SMS für Dich; Text for You)’는 문자를 통해 시작되는 인연을 그린 로맨스 소설이다.

아마 허투로 보고 지나칠만한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소재나 시놉이 좀 뻔해보이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배송된 편지같은 것으로 인연이 싹을 튼다든가, 그게 목소리나 모습을 볼 수 없는 제한적인 수단이라 서로에 대한 궁금증을 부추기는 장치가 된다는 것도 그렇고, 그러다가 서로에게 조금씩 끌리게 된다는 흐름 역시 솔직히 좀 많이 우려먹힌 소재와 이야기 전개니까. 지금에와서는 고전적인 클리셰라고 해도 될 정도다.

연인과 헤어진 슬픔이라든가, 잘 풀리지 않는 직장이라든가, 사소한 장난, 뜻밖의 우연에 끌리는 것 같은 캐릭터의 기본 설정같은 것도 좀 그렇다.

그래서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표지까지 단순해서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하다보니 더 그렇다.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하면 꽤 볼만한 소설이라는 걸 곧 알 수 있다. 소설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두가지, 캐릭터와 이야기 전개가 충분히 괜찮기 때문이다.

클리셰적인 설정들도 단지 두 사람을 잇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캐릭터와 그들이 가진 드라마를 보여주기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고, 그렇게 시작한 서사도 조금씩 흥미를 잃지않게 유지하면서 꽤 풀어내서 등장인물들의 심정이나 생각같은 것에도 이입하며 볼 수 있게 한다.

특별한 소재나 전개, 반전같은 것은 분명 그 자체로 신선한 맛이 있어 좋기는 하지만,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것들을 통해 캐릭터의 서사와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를 보여줄 수만 있다면 충분히 괜찮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2009년작인 소설은, 인기에 힘입어 동명의 영화(SMS für Dich, 2016)로도 만들어져 나쁘지 않은 평을 받았었는데, 그걸 이번에 새로 리메이크한다고 하니 또 어떤 각색과 연출로 둘의 이야기와 로맨스를 담았을지 궁금하다.



*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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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걷는 여자아이 푸르른 숲 38
델핀 베르톨롱 지음, 권지현 옮김 / 씨드북(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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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핀 베르톨롱(Delphine Bertholon)’의 ‘밤을 걷는 여자아이(Celle qui marche la nuit)’는 한 소년의 기묘한 경험을 그린 소설이다.

이야기는 대도시에 살던 소년이 가족 사정으로 한 시골마을로 이사하면서 시작한다. 친구와도 헤어지고, 심지어 대도시 인프라라고 할만한 것들과도 멀어지게된 소년은 처음엔 불만스러웠던 이모의 선물 일기장을 실로 유용하게 잘 써먹는데,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형태를 띔으로써 일종의 체험기처럼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게 만든다.

일종의 공포소설이기도 한 이 소설이 이런식의 구성을 택한 것은 굉장히 큰 장점이다. 마치 ‘진짜로 있었던 일’인 것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게 이야기가 가진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리고 주인공에게 더 이입해서 보도록 만든다. 몰입감이 중요한 이야기에서 이런 회고록 형식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야기가 1인칭으로 진행된다는 것도 주요한 장점인데, 앞서 말한 것을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쉽게 드러나지 않는 비밀스러운 부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면서 과연 어떤 사실들이 숨어있을지 흥미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뒷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데, 안그러면 뒷심이 빠져 자칫 짜친 느낌을 남길 수도 있어서다.

그런 점에서, 작은 유령소동으로 시작해 과거의 이야기로 이어졌다가 마침내 유령과 과거, 그리고 주인공의 이야기까지가 무난하게 해소되도록 만든 구성이나 그 이야기 전개가 꽤 괜찮은 소설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공포물로서의 정도가 좀 약하기는 하지만, 중간에 유명 공포물을 연상케 할만한 좀 섬뜩한 장면들도 있어서 이쪽 장르로서도 나쁘지 않다.

마지막에 떡밥도 좀 남겼겠다, 시리즈물로 이어가도 괜찮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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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코드
캐럴 스티버스 지음, 공보경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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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 스티버스(Carole Stivers)’의 ‘마더코드(The Mother Code)’는 아포칼립스와 인공지능, 인간성을 소재로 한 SF 소설이다.

소설은 크게 두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류가 대충 멸망한 포스트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신인류라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마더’라는 로봇과 함께 세상을 돌아다니며 생존을 도모하고 자기와 같은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이야기가 그 하나고,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를 구인류 어른들을 통해 보여주는 이야기가 다른 하나다.

둘의 시기 차가 얼마 안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둘은 딱히 철저하게 구분되어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포스트아포칼립스라는 것 자체가 아포칼립스 이후를 말하는 것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래도 이것을 단순히 시간 순으로 이어붙이지 않고 둘을 교차해 보여주는 식으로 흥미를 끌어올리고, 두 이야기가 이어지는 데까지 끌고가는 것도 잘 했다. 덕분에 딱히 신선한 소재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꽤 괜찮다.

2020년 작인 이 소설은, 2019년 이후 많은 소설들이 그래했던 것처럼 다분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서 영감을 받은 느낌을 풍긴다. 다만, 그것을 노골적으로 차용하지않고 나름 고전적인 소재라 할 수 있는 생화학병기와 연결지음으로써 차별점을 두기도 했다.

이게 생각보다 좋았던 것은, 인간짓을 함으로써 멸망을 초래한다는 점이라든가 계속해서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려는 것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절로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포칼립스 상황과 그 이후의 이야기 전개, 그리고 그것들의 연결성을 갖게 하기도 한다. 이게 이야기가 너무 우연에 기댄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해서 나쁘지 않게 짜여졌다고 느끼게 한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이상한 것이나 의문스러운 것도 있고, 쓸데없이 나왔다가 아무 의미없이 사라지는 것이나 저자가 성의없었다고 할만한 부분도 있어 좀 밟히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는 매끄러운 편이라 잘 읽히고, ㅈ간, 바이러스와 백신, 유전자, 인공지능, BCI, 모성애 같은 소재나 구인류와 신인류, 어른과 아이같은 식으로 대비되는 요소 등을 꽤나 적절히 활용했기 때문에 끝까지 괜찮게 볼만하다.

번역은 전체적으로 무난하나 분명히 오역으로 볼만한 것이 남아있어 좋진 않았다. 문맥을 통해 유추할 수 있기는 하다만, 고유명사를 틀리는 건 좀. 교정때라도 걸러냈으면 좋았으련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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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LiPE 2 : 튤립의 여행 팡 그래픽노블
소피 게리브 지음, 정혜경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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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게리브(Sophie Guerrive)’의 ‘TULiPE 2: 튤립의 여행(Les voyages de Tulipe)’은 튤립 시리즈 두번째 책이다.

여행기 같은 것도 아니고 튤립을 중심으로 한 것도 아니라서 좀 의아할 수도 있는 이 책은, 단발적인 여행이 아니라 삶이라는 긴 여정의 일면에 대해 담고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꼭 게으름뱅이같아 보이기까지하는 튤립은, 오늘도 어제 역시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애정하는 나무 밑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 조금 달라지긴 했다. 새해를 맞아 그도 새롭게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도 하지 않기로.”

한때,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는 말이 인기를 끌면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널리 쓰이던 때가 있었다. 이것은 지금도 좀 남아있어(예전만큼의 인기는 아니나), 자신의 늘어지고 싶은 상태나 심정을 표현할 때 종종 쓰이곤 한다.

이 말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빡빡한 현실 때문에 갈수록 더욱 지쳐만 가는데도 많은 것들이 게으름거리로 취급을 받는 세태 때문에 혹시나 비난을 받게될까 꺼리게 되면서 도저히 정신적 여유를 찾을 수 없던 꾹 눌러진 마음을 콕 집어서 시원하게 대변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튤립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러한 생각에서조차 벗어나겠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까지 애써 어떻게 해야한다는 식으로 하려 한다니, 따져보면 여유는 무슨 조금도 정신적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만을 드러내는 씁쓸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마저 떨쳐낸 튤립은 세삼 더 여류롭고 편안해 보인다.

책은 이런 꽤 진지하게 생각해볼만한 거리들을 마치 가벼운 농담따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코믹하게 담아냈다. 그래서 얼핏 시트콤같지만, 심리나 상황에 대해 곱씹을만한 점이 많아서 어느순간 진지한 사고에 빠지게 한다.



*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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