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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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잰 레드펀(Suzanne Redfearn)’의 ‘한순간에(In an Instant)’는 갑작스런 사고로 극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선택과 파국, 그리고 회복을 그린 소설이다.



인간은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다. 때론 과하다 싶은 것마저도 별거 아니라는 듯 이겨내는가 하면, 반대로 고작 그딴 것 정도라고 치부해버릴만한 것으로 폭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믿어왔던 사람이 조금만 상황이 달라져도 마치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일은 흔하다. 그것이 생존이 달린 극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소설은 그런 관계, 상황 속에서 인간들이 벌이는 각양각색의 모습들을 굉장히 잘 그렸다. 우리 일상 속에서도 언제든 일어날법한 일을 그렸으며, 그들이 고립된 이유나 그 상황 속에서 갈등이 붉어지는 요소들도 배치를 잘 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이야기에 어색함이 없으며, 그게 몰입감을 크게 높여준다.

이것은 사고 당시 뿐 아니라 그 후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끔찍했던 사고를 일종의 모험처럼 여기는 사람부터, 어떻게든 이겨내려는 사람은 물론, 거짓으로 현실을 도피하는 사람, 차라리 포기해버리려는 사람까지 등장인물들을 모두 조금씩 다르게 설정했는데 그들 모두를 적절하게 잘 다루었다. 이런 인물 구성은 사고로인해 생길 수 있는 다양한 경우를 보여줌으로써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주기도 한다.

이야기를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한 것도 좋았다. 약간의 트릭을 이용해 장소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서술자를 만들어낸 대신 관찰자라는 선은 결코 넘지 않아서 이야기의 흐름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개 한다. 이 트릭은 단지 서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또는 질문)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결론적으론 탁월해 보이기도 했다.

관찰자를 통한 객관적인 시선은 단점이기도 하다. 개인에게 감정이입을 해보기보다는 냉정하게 판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인물들의 상황이 절로 ‘나라면’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나, ‘그건 아니지’라는 선을 절대 넘어서볼 수 없도록 막아서기도 한다.

저자의 개인 경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인물간의 소위 ‘밸런스’가 무너져있다. 너무 쉽게 한쪽의 편을 들어주기 좋게 판이 짜여있단 얘기다. 관찰자 시점을 위한 트릭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그들 쪽에만 치중되어있어서 더욱 그렇게 만든다. 이게 생존과 사회적 정의 사이의 선택에 대한 갈등을 좀 더 깊게 고찰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도 노골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책 후미는 ‘이야기가 끝나고’라는 토론 주제까지 실으며 본격적으로 얘기를 꺼낸 것에 비하면 토론 프로그램의 사회자처럼 중간자로서 어느쪽으로든 의견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데는 실패하지 않았나 싶다.

대신에 이야기는 훨씬 자연스럽고 완성도가 높다. 한쪽의 입장에 서서 일관된 관점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끝까지 독서 경험도 좋다.

결론적으로, 어설프게 중도에 서려다가 자칫 왔다갔다만 하고 이도저도 아니게 될 바에는 차라리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든게 나았다다는 생각도 든다.

번역은 나쁘지 않아 보이나, 교정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오타라고도 할 수 없는 완전히 잘못 쓴 이상한 문장도 더러 눈에 띄는 것은 티다.



* 이 리뷰는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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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락궁이야, 네 집을 지어라 모해 창작동화 1
안수자 지음, 정인성.천복주 그림 / 모해출판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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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락궁이야, 네 집을 지어라’는 한락궁이와 서천꽃밭 이야기를 새롭게 쓴 창작동화다.

한국 신화는 아는 사람이 드물다. 외국인들만 그런 게 아니라 한국사람들도 그렇다. 기록도 거의 없는데다 문화가 바뀌는 와중에 종교와 함께 전승마저 끊기면서 이제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줄 사람조차 찾기 어렵다. 한국 신화는 오랜 종교 변천 과정에 따라 다른 종교와 융합이 되면서 원래의 모습을 잃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렇게 원래의 모습과 이름을 잃어버렸다보니 한국신화라는 것을 알아채기 어려워 더 쉽게 잊혀져버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나마 제주 설화가 많이 남아있어서, 사실상 현대에 남아있는 한국 신화/설화는 제주 설화인 경우가 많다. 개중엔 꽤 구체적인 묘사가 있는 것도 있어서 한국적인 판타지를 그려보려는 작품에서 사용하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크게 인기를 끈 이후 계속해서 재생산되면서 그나마 한국 신화의 명맥을 잇게 됐다.

이 책도 그런 이야기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한락궁이와 서천꽃밭을 주제로 사람의 생과 사, 그리고 그것들이 오가는 중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그렸는데 원래 내용을 유지하면서도 상당히 다른부분도 만들어서 꽤 흥미롭게 볼 수 있다.

특히 ‘책’을 매개로 이승과 저승를 넘나드는 것이 괜찮았는데, 단순하게 통로처럼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확 바뀌는 게 좋았다. 소재와 주제가 그렇다보니 중간에 암울한 면도 있고, 주 갈등이 해소된 후에도 앞으로 있을 힘겨운 길이 눈에 선하기도 한데, 책을 통해 다른 세계로 이동하면서 극적인 분위기 전환을 가져와 그것들을 마치 색이 바뀌듯 환상적으로 건너뛰는 느낌이 들었다. 판화 느낌의 삽화가 장면 장면을 잘 살려주어서 더 그렇다.

생각보다 다른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은 듯 보이는 요소도 여럿 보이는데, 원래 신화나 전설이라는 것은 서로 닮고 닮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흠 잡을만한 건 아니다. 그것들이 한락궁이는 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아리아’의 이야기와도 잘 어우러졌기 때문에 더 그렇다.

재미있게 보긴 했다만, 이런 감상은 어느정도 원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저자는 원형에 없던 것을 더 묘사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원형의 내용을 온전히 싣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신화 원형과 그 변형 이야기들을 알고 본다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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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 : 오래된 신세계 - 상2 - 얽혀진 혼동의 권세
묘니 지음, 이기용 옮김 / 이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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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니(猫腻)’의 ‘경여년 상2: 얽혀진 혼동의 권세(庆余年 2)’는 2019년 방영했던 동명의 중국 드라마 원작 소설의 둘째권이다.




주인공은 단지 다른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뺴더라도 소설 속 세계에서 꽤 특이한 지점에 있는 인물이다. 출신도 그렇고 권력가들 사이에서의 위치도 그렇다. 그렇다보니 꼭 자기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의도에 휘둘리기도 하고 그게 그를 더욱 권력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이게 되는데 이번 권에서도 그런 점이 꽤 잘 보였던 것 같다.

좋은 것은 그런 과정에서 보이는 사건들이나 인물의 얽힘이 꽤 잘 짜여져있다는 거다. 군과 권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등장인물도 꽤 많은데 각각의 캐릭터나 배경 등도 꽤 신경써서 만들었다. 그래서 자칫 무모해 보일 수 있는 행동들도 왜 그렇게 되게 되었는지도 설명이 되고 그런 점들이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꾸민다.

당연히 주인공의 활약을 보는 맛도 있다. 워낙에 무공에 출중한 실력을 갖고있다보니 어떤 상황에서도 긴박함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만, 개인의 무력과는 상관없이 정치적인 행보도 꽤 많기 때문에 수싸움에서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것도 꽤 재미있게 볼 만하다.

이 소설은 일종의 이세계물이지만 일종의 역사소설로서의 면모를 보인다고도 했는데, 이 점을 상당히 잘 살려서 굳이 이세계물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 싶을 때도 있다. 장르를 붙이자면 판타지 무협이다만 실제로는 일종의 픽션 사극에 더 가까운 느낌이라서 역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 만족스럽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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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와의 자기관리 일주일
김리원 지음 / 들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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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와의 자기관리 일주일’은 자존감이 없는 한 소녀가 한 신부를 만나게 되면서 변화하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의외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부터가 마치 특정 캐릭터만을 따로 떼어내 정형화 시켜놓은 것처럼 특징적이다. 이들에겐 모두 주어진 역할이 있으며 그를 위해서라면 때론 ‘그렇게까지?’ 싶을만한 과한 행동도 손쉽게 생각없이 저지르기 때문에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런 짓도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그런짓만을 저지르는 사람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이런 인물들이 이야기를 끌어가다보니 당연히 전개 역시 미리 정해진 레일 위를 걸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예외성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딱히 소설의 완성도가 낮아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애초에 반쯤은 동화처럼 메세지를 던져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 모습과 이야기를 그렸다고 보는게 더 맞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캐릭터를 어설프게 덜 특징적으로 만들거나, 이야기를 어설프게 꼬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았다. 덕분에 꽤 초반부터 ‘동화같은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어서, 자잘하게 상황이나 심리상태 따위를 설명하지 않아도 이야기의 큰 흐름 위주로 적당히 쫒아갈 수 있다. 동화라면 어느정도 판타지적인 면이야 충분히 넘어가줄만 하기 때문이다.

꽤 우울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코미디를 섞어가며 마냥 어둡게만 그리지 않은 것도 좋았다. 안그랬으면 좀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문장력도 나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잘 읽힌다. 인물과 이야기, 전개를 단순하게 한만큼 내용을 이해하기도 쉽고, 그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도 뚜렷하며, 곡해할 여지도 없다.

이런 점에서는 꽤 의도를 잘 살려 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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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수잔
줄리아 히벌린 지음, 유소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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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히벌린(Julia Heaberlin)’의 ‘블랙 아이드 수잔(Black-Eyed Susans)’은 유일하게 생존한 한 범죄 피해자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연쇄 살인마에게 당하고 땅에 묻히게 되었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소녀가 십수년이 지난 이후에 다시 그때의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꽤나 흥미롭다.

오래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범죄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있는데다, 지켜야만 하는 딸도 있어서 주인공은 때때로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과민하다고 치부할 것은 아니다. 마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재범이 일어나진 않았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범인이 잡혔거나 행방을 아는 것도 아닌데다, 생환하 이후로도 때때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주인공의 심리를 건드리는 행위들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이건 그녀가 당시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사형을 앞두고있는 ‘테렐’의 무죄를 촉구하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은 명확하지 않고 증거 역시 부족해 여의치 않은 상황만이 이어진다.

이야기는 현재의 ‘테사’와 어린 소녀였던 ‘테시’의 이야기를 오가면서 진행된다. 그를 통해 현재 어떤 사실이나 증거를 새롭게 발견해내는가와 더불어 과거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고 그게 무슨 흔적을 남겼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렇다고 딱히 잘 짜여진 퍼즐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의 심리가 다소 몽환적이 면이 있는데다가, 사건의 증거라는 것도 새롭게 발견된 것보다는 과거에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을 시간이 지나 발전한 기술로 재평가 하는 것이 거의 다이기 때문이다.

테사의 불안감이나 범인의 정체와 향방으로 인해 생기는 서스펜스도 나름 괜찮다. 다만 몇몇 상황에서만 극히 짧게 유지되기 때문에 이야기 전체적으로는 그 맛이 좀 연하고, 그래서 긴장감도 그리 높거나 잘 유지되지는 않는 편이다. 대체로 평온한 느낌이랄까.

반전도 조금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꽤나 나쁘지는 않아 반전이라 할만한 감상이 이는 건 건 사실이다만, 일부러 감추어둔 느낌이라서 ‘이게 그거였어?’라는 식의 놀라움은 없다. 반전을 일으키는 요소에 개연성이 부족한 것도 있고 맥거핀도 여럿 사용해서 의외로 대충 얼버무리는 듯한 느낌도 든다. 앞에서 ‘퍼즐같은 느낌은 없다’고 한것도 그래서다. 설사 진상과 결말을 예상해내더라도 그것은 추리라기 보다는 찍어서 맞추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미스터리나 서스펜스 면에서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독서경험은 꽤 좋은 편이다. 이야기도 흥미롭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사건의 전말을 조금씩 흘려내는 것도 잘 해서 이야기도 대체로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런만큼 마무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이 더 아쉽기도 하나, 이정도면 양호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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