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설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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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주요 요소에 대해 얘기하므로, 아직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주의 바란다.

‘리허설(The Rehearsal)’은 선생과 학생의 섹스 스캔들을 소재로 한 엘리너 케턴의 장편 소설이다.

선생과 학생의 관계, 더 나아가 섹스 스캔들은 언제나 관심을 끄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간 많이 써서 식상한 소재인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엔 ‘독창적’이라는 수사가 붙는다. 왜 그럴까.

이 점은 처음 몇 장을 넘기면 슬슬 느끼게 되고, 중반을 넘어가면 놀랍게 느끼게 된다.

작가는 이 소설을 단순한 섹스 스캔들 이야기로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 주요 소재는 곁다리에 불과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이다.

가장 크게 눈에 띄는 것은 현실과 연극이라는 두 축이다. 이 둘은 서로 번갈아 나타나며 서로를 보완해 주기도 하면서, 또한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먼저, 월 구분과 요일 구분으로 나뉜 이 두 축은 각각이 서로 다른 인물과 시선을 가짐으로써 다른 쪽에서 미처 다룰 수 없었던 내용을 다루면서 서사를 채워준다. 게다가 각 구분이 모두 시간의 전후가 있는 단위인 걸 이용해서 순서대로 얘기하지 않고 중간에 다시 이전 시제의 이야기를 한다든가 하는 트릭도 사용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무난한 소설이 되었을 거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작중 사건을 연극으로 재현한다는 요소를 집어넣고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연극과 섞어 버림으로써 작중 현실과 연극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

덕분에 등장인물들은 단일 캐릭터를 갖는 인물들이 아니게 됐고, 소설 속 이야기는 소설 속 현실을 서사하는 것만이 아니게 됐으며,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생각, 행동은 실재와 허구, 즉 연극이 뒤섞여 뭐가 소설 속 실제를 서술한 것인지, 뭐가 소설 속 연극을 표현한 것인지 모호하게 됐다.

여기서 작가를 한 번 더 칭찬하고 싶은 건 이런 전개로 갔을 때 많은 작가들이 빠지는 유혹, 즉 소위 ‘열린 결말’이라고 포장하는 ‘나 몰라라’ 식으로는 끝내지 않았다는 거다. 최소한 무엇이 연극의 일부이고 무엇이 현실의 이야기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또, 두 이야기가 모두 ‘소설 속 현실’을 담고 있는 것임도 분명히 한다. 하지만, 여전히 연극 부분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라고 봐야 하며 그러므로 독자는 끝내 ‘진짜 일어났던 일’이 무엇인지는 알아낼 수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빅토리아가 호기심에 가득 차 하는 대사는 또한 독자의 대사이기도 한 셈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작가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데, 대신 어떤 방향성을 가진 것인지는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지금 이 시기는 나중에 올 모든 것에 대한 리허설”이라거나 “‘진짜’처럼 보이기만 하면 돼”라거나, “상상할 수” 있길 바란다는 식의 문장이 그렇다.

결론적으로, 첫인상과는 달리 소재나 내용 자체만 보면 별 특별할 것은 없었으나, 그걸 흥미롭게 풀어냈으며 소설로서의 기교도 좋았다.

10대의 허세와 정신적 불안정성, 그리고 성적 호기심과 대인관계 등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따위는 접어놔도 흥미와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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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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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The Noise of Time)’은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 정부와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활동했던 러시아의 작곡가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Дми́трий Дми́триевич Шостако́вич)의 삶을 그린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의 장편소설이다.

애초에 이 소설의 배경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나는 중간에 ‘이게 소설이라고?’하는 의문이 들어 표지를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내용이나 전개, 그리고 글이 주는 맛이 어째 소설 같지가 않아서다.

앞에서 얘기했듯 이 책은 실존 인물의 삶 일부를 소설화한 것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소설보다는 평전(評傳)에 더 가깝다. 가능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쓰려고 한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 개별 이야기나 전체 흐름에는 작가가 크게 개입하지 못한듯하다.

대신 쇼스타코비치의 개인적인 성향, 감정, 생각과 같은 점을 신경 써서 묘사했다. 쇼스타코비치는 그가 대외적으로 보인 행동이나 말 때문에 평이 갈리는데, 소설은 ‘어쩔 수 없이 그러한 행위를 택했다’는 의견을 기반으로 했다. 그렇다고 애써 포장하거나 미화를 한 것 같지는 않다. 각 상황에서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가 충분히 이해할만하고, 그것은 또한 웬만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러했을 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작가가 잘 풀어냈다.

소설은 시대의 배경 때문인지, 아니면 현실과 이상의 충돌을 겪는 주인공 때문인지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게 소설을 좀 어렵게 만든다. 몇몇 부분은 이게 소설인지, 철학선지 헷갈릴 정도로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번역도 매끄럽지 않아 더욱 쉽게 읽히지 않게 한다. 한국어에 어울리지 않는 문장 표현들이 많아서다. ‘옮긴이의 말’은 그렇지 않은 걸 보면 외국어를 번역하다 보니 그런 어색한 문장들을 만들어내게 된 것 같은데, 문장 형태는 좀 한국어에 맞게 정리했으면 좋았겠다 싶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보니 솔직히 ‘만들어진 이야기’로서의 재미는 좀 떨어진다. 내용이 러시아의 당시 사회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도 하고, 게다가 클래식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면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쇼스타코비치의 생애에 대해 다루기 때문에 더 그렇다. 순수한 재미를 위한다면 그리 추천할만한 책은 아니다.

반면에 사회 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꽤 추천할만하다. 한국 역시 북한이라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책에서 그리는 사회와 그로 인한 고뇌도 충분히 공감할만하며, 철학적인 내용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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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멈추는 날 - 전 세계 대규모 자산 동결이 시작된다
제임스 리카즈 지음, 서정아 옮김 / 더난출판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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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멈추는 날(The Road to Ruin: The Global Elites’ Secret Plan for the Next Financial Crisis)’은 곧 있을법한 경제 위기를 예측하고, 그 때에 어떤 현상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측한 일종의 예언서다.

예언이라고해서 상상이나 신앙에 의존한 것이라 여길 수도 있는데, 그보다는 좀 더 경험적이고 분석적으로 상황을 보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즉, 예측에 더 가깝다. 이 책은 그러한 예측이 어떻게 해서 나온것인가를 담고있다.

사실, 전 세계적인 대규모 자산 동결은 허무맹랑한 얘기인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걸 ‘앨리트’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비밀리에 장기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전형적인 음모론자의 얘기같다. 그런 시선으로 보면 커트 보니것의 소설 ‘고양이 요람’에 나온 가상의 물질 ‘아이스나인’에 빗대어 자산 동결을 얘기하는것도 자칫 우스워 보인다.

하지만, 비관론자가 내놓는 디스토피아라고만 치부하기엔 작가의 주장은 꽤나 근거가 있다. 이미 각 국은 경제위기때 자본시장을 동결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1914년 런던 증권거래소와 뉴욕 증권거래소 폐쇄, 1929년 미국 은행 영업 중단, 2015년 그리스 ATM 일제 중지 및 그리스 신용카드 사용 거부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태 속에서 피해를 보는것은 결국 예금주와 투자자들일 것이다. 금융 권력이 관심 있는것은 자신들의 이익이고, 대비하는것도 대형 은행과 금융회사의 생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특별인출권(SDR)을 이용한 유동성 공급 따위로 살아나겠지만, 손실은 그들의 고객이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런 사태가 벌어져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자산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작가는 부자들의 부 세습에서 가르침을 받고 그걸 발전시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실물 금과 은: 10퍼센트 (골동품이 아닌 주화와 금괴)
 - 현금: 30퍼센트 (일부는 실물 지폐로)
 - 부동산: 20퍼센트 (임대소득 창출형 혹은 농지)
 - 아트펀드: 5퍼센트 (박물관급 순수 미술품)
 - 엔젤투자 및 초기 단계 벤처캐피탈: 10퍼센트 (핀테크, 천연자원, 수자원)
 - 헤지펀드: 5퍼센트 (글로벌 매크로, 롱-쇼트 주식, 혹은 차익거래)
 - 채권: 10퍼센트 (높은 등급의 국채)
 - 주식: 10퍼센트 (천연자원, 광업, 에너지, 공익기업, 기술 종목)

금융시장 붕괴를 예측한 사람의 결론임에도 현물(금, 현금, 부독산) 뿐 아니라 금융상품등에도 상당수 비율(약 40%)을 할애한게 놀라울 수도 있는데, 이는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즉, 자산을 현물화하고 틀어박히라는게 아니라 금융위기 사태가 오더라도 큰 타격이 없도록 준비하자는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작가의 포트폴리오는 별 의미가 없을거다. 일단 첫번째 항목인 주화와 금괴에서부터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금과 부동산은 충분히 처리할만하고, 투자쪽도 어떤 식으로 상품을 고르면 될지 방향성은 엿볼 수 있다. 기본적인 방향은 나쁘지 않다는 말이다.

전세계 규모의 금융 위기라는건 분명 그다지 현실감도 없고 그래서 크게 와닿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게 예상 가능한 일이라면, 대비해서 나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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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펌 -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는 삶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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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펌(Stand Firm)’은 마치 유행가처럼 쏟아져나오는 자기계발서에 일침을 가하는 책이다.

얼핏 여타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기계발서같은 이 책은 실은 기존의 자기계발서들이 ‘전혀 효과가 없다’고 까면서 대신 ‘스토아주의’에 귀를 귀울이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자기를 발전시켜 다른 사람이 되기위해 변화하는걸 멈추고 어찌보면 보수적이고 정적인 삶을 살라고 말이다. 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것에도 반대하면서 부정적인 면을 생각해야된다고 하며, 자제력을 기르고, 쓸데없는 자기 계발과 자아 탐구를 멈추고 대신 소설을 읽으라고 한다.

책에서 제안하는 (마치 여타의 자기계발서와 같은) 7가지 지침들은 확실히 현재 유행과는 맞지 않는 것들이다. 하지만 분명 일리가 있다.

최근 자기계발서를 꽤 읽기는 했지만, 본디 나는 자기계발서를 썩 좋아하지 않았었다. 거기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의심스러웠던 이유도 있었다. 만약, 자기계발서가 정말로 유용하고 효과적이라면 이렇게 끊임없이 자기계발서가 나오고 또 나올리는 없지 않겠는가. 같은 주제로 새 자기계발서가 나오는것은, 이전 자기계발서가 별 효과가 없었다고 얘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런 나였기에 이 책은 공감도 많이 되고 또한 유쾌하기도 했다.

다만, 이 책 역시 (작가가 일부러 그랬다고는 하지만) 기존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종의 자기계발서 같은것도 사실이다. 지향점이 다를 뿐 이 책 역시 ‘더 나은 삶’에 대한 그림이 있어서 그걸 위해 해야할 것들이 무언지 설명한다. 이런건 좀 역설적이어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 책의 가르침은 쓸모있다. 끝없이 움직이고 변화하길 종용하는 자기계발서들은 결국 스스로를 불태우라고 꼬드기는것과 같다. 그것도 효과가 불분명한 것들에 말이다. 물론, 개중엔 일종의 성취를 이룰 수 있는것도 있겠지만 그게 원하던 성취인지, 또 자신을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것인지는 또 생각해봐야한다.

그러니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만약, 행복한 삶을 이루고 싶은거라면 작은 성취를 위한 자기계발에 매달리는것은 그만두는게 좋다. 특히 믿음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것,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답을 자기 안에서 찾으라고 하는 것들은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쓸데없는 자기 낭비와 자기 소모를 줄이고 보다 평안한 상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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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의 최고의 질문 - 세계 최고 리더들의 인생을 바꾼
피터 드러커 외 지음, 유정식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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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의 최고의 질문(Peter Drucker’s Five Most Important Questions: Enduring Wisdom for Today’s Leaders)’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가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 5가지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각각에 적당한 실제 리더들의 이야기를 곁들인 책이다.

피터 드러커가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 5가지 그 자체는 다음처럼 굉장히 간단하다:

1. 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2. 반드시 만족시켜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3. 그들은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가?
4. 어떤 결과가 필요하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5.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들은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기도 하다:

1. 미션은 무엇인가
2. 고객은 누구인가
3. 고객가치는 무엇인가
4. 결과는 무엇인가
5. 계획은 무엇인가

이 질문 5가지 자체는 일견 단순하고 당연해 보이지만, 실제로 답을 해보면 이게 얼마나 잘 다듬어진 것인지 알 수 있다. 어설프게 덤볐다가는 전혀 대답을 찾지 못하거나, 어쩌면 제대로 된 답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 5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지 뿐 아니라 왜 하려는지 까지도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다.

이 5가지 질문은 하려는 일을 정확하게 규정하고 계획하는 것뿐 아니라 실패한 계획이 뭐가 문제였는지 파악하는 데도 유용하다. 번역을 맡은 유정식 컨설턴트는 책 뒤에서 시들해진 허니버터칩에 대한 5가지 질문의 답을 달아보는데, 이를 보면 뭐가 문제였는지가 명확하게 눈에 들어온다. 제대로 된 답뿐 아니라 올바른 질문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 할수록, 새삼, 이렇게 간단한 질문 5가지로 경영을 정리했다는 게 놀랍다. 질문도 어렵지 않고 군더더기도 없는데, 그래서 오히려 책에 실은 이야기들은 사족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문장이 잘 안 들어 온다는 거다. 한국어라기보다 마치 외국어를 그대로 한글로 옮겨 적은 것 같은데, 원문의 느낌을 살리려고 그렇게 한 건가 싶기도 하다. 충실한 번역도 좋지만, 문장을 좀 다듬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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