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38
허먼 멜빌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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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시리즈 38번째 책인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모비 딕(Moby-Dick)’은 광활한 대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고래와의 처절한 싸움을 그린 작품이다.

지금은 손에 꼽을만큼 유명한 이 작품이 초기에는 왜 그렇게까지 외면 받았는지 모르겠다. 이런게 예술의 신기라는 건가.

저자의 살아 생전에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던 이 작품은, 의외로 당시의 고래잡이 풍경이라던가(작가가 실제로 원양포경선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오랜 기간동안이나 바다 위에서만 생활하며 고래와의 싸움을 이어나가는 고래잡이꾼들의 고뇌 등을 잘 담고있다. 마침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모비 딕과 만나 싸우는 장면에서는 꽤나 그럴듯한 해양 액션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작품은 또한 바다를 떠도는 선원들의 심정도 꽤 잘 다뤘다. 복수에 미쳐 뻔한 결말을 앞두고서도 끝끝내 돌진하는 포경선의 선장 에이해브라던가, 그와 반목하면서도 존경하고 때로는 깊은 정신적 교감을 나누기도 하는 스타벅도 그렇다. 특히 스타벅은 그런 선장 때문에 여러번 고뇌를 하면서 과연 그래도 되는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을 남기기도 한다. 인종이나 종교 문제 등을 담은 것도 그렇다.

다만, 이 책은 축약본(축역본)이라서 그런지 그런 면모들이 세밀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특히 스타벅의 고뇌와 에이해브 선장에 맞서는 모습이 그렇다. 너무 단편적으로만 다루고 넘어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깊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충동적이고 가벼우며 결국엔 선장에게 맞서거나 큰 결정을 내릴 용기가 없는 겁쟁이처럼 보이게도 한다.

나름 열심히 어떤 승무원들이 있는지를 소개한 것 치고는 그들의 이후 모습이나 최후를 제대로 담지도 못했다. 이게 이 책에 (축약으로 인한) 분명한 공백이 있음을 알게 한다.

그래도 작품의 얼개는 잘 담고 있으며, 현대어와는 달라 난해하다는 표현도 큰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게 잘 풀어냈다. 그런데도 일부 원작의 흔적이 남아있는 대사도 있긴 하나, 편하게 작품의 전체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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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1
호메로스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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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시리즈 첫번째 책인 ‘일리아스(Ilias)’는 ‘호메로스(Homeros)’의 유명한 서사시의 축역본이다.

축역본이란 완역본과 달리 내용을 축약해 담은 것을 말한다. 원작의 일부를 빼거나, 고쳐 쓴다는 얘기다. 그래서 보통 축역본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 않다.

나 역시 축약본(축역본)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용이 누락되어있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너무 커서다. 실제로 꽤 많은 축약본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거나 묘사가 부족한 면모도 보이곤 한다. 그러니 기왕 볼 거면 처음부터 완역본을 보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지 않겠는가. 최근 완역본이 인기를 끄는 것도 다 그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시점을 조금 바꾸면, 축약의 질이 안좋은 게 문제다. 원작의 내용을 살려서 제대로 축약하기만 한다면 읽기는 쉬우면서도 원작의 매력도 어느정도 담아낼 수 있다. 특히 세계문학은 더 그렇다. 글의 양에 따라 비용을 지급하는지라 불필요한 내용을 집어넣어서라도 분량을 늘리던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빼고 정제할 수 있다면 축약본도 나름 긍정적일 수 있다.

‘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시리즈에 관심이 간 것도 그래서다. 완역본을 내는 유행에서 벗어난 축역본 시리즈인데, 그렇다고 전에 있었던 것처럼 대략 줄인 것이 아니라 ‘축역본의 정본’을 내세울만큼 ‘제대로’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꽤 괜찮다. 트로이 전쟁이라는 인간의 역사와 그에 깊게 관여하는 그리스 신들, 그리고 그들에게 치이며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모습이 나름 잘 살아있다.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우연적인 일들을 과거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도 엿볼 수 있는데, 갑작스런 기세나 마음의 변화를 신들이 꾄 것으로 그린다던가 전쟁의 기세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신이 주는 축복이나 운명으로 얘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것들은 당시의 세계관이나 사상 같은 것을 짐작케하는 한편, 이 이야기를 더욱 신화의 일종으로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나름 장점도 보이는 반면, 축약본이라서 보이는 한계도 분명헸다. 분량이 줄었기에 등장인물과 그들의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그 하나다. 사건의 진행이 빨라 인물들의 감정이나 결심이 순식간에 이리 저리 흔갈대처럼 흔들리듯 보이기도 한다. 이야기도 중요 내용 위주로만 다뤄져, 세부 묘사가 부족하다는게 여설히 느껴진다.

작품 양식을 서사시에서 소설로 다시 쓴 것도 비록 익숙하여 훨씬 편하게 읽을 수 있게는 하나 원작이 서사시라서 갖고있던 그만의 독특한 양식미는 모두 잃어버려 아쉬움도 남는다.

작품의 매력까지 모두 담아낸 책은 아니다. 그래도 일리아스의 전체 내용을 편하게 훑어보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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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자랑, 발렌베리 사람들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부자 이야기 8
박용희 지음, 강명종 그림, 손영운 기획 / BH(balance harmony)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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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부자 이야기’ 시리즈 8번째 책인 ‘발렌베리 사람들’은 스웨덴의 유명한 부자 가문인 발레베리 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다.

한국 사람들은 대게 부자를 싫어한다. 그렇다고 부자가 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거나, 부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자라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사람들이 부자에 대한 인식이 안좋고 싫어하는 이유는 현재 한국의 부자라 할 수 있는 소위 ‘재벌’들이 대부분 마뜩잖아서다. 정치, 경제 모두에서 권력을 쥐고 흔드는 모습은 물론, 그렇게해서 벌어들인 것들을 모두 세습해 기득권을 유지하며, 심지어 그것을 자신들만의 힘이나 지위로 생각하는 정신적인 면까지. 말하자면 봐줄 것이 없어서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부자 가문 중 하나인 발렌베리는 그와는 다르다. 사업에서 성공하고 부를 쌓고 그것을 대를 거듭하며 발전시켜 거대한 그룹을 이루었으나, 그렇게 얻은 수익을 사회와 나누며 무엇보다도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제대로 실천한 발렌베리 사람들 중엔 그래서 단지 사업가가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많다. 전쟁이란 어둠 속에서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던 라울이 대표적이다.

더 편하게 더 많은 부를 누리며 살 수 있었을텐데도 스스로 절제하고 노력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그것들을 있게 한 사회와 이웃들과도 나눌 줄 안다. 그러니 이들을 지지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그랬기에 무려 5대에 걸쳐 150년 넘게 기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을 가진 스웨덴이 부럽기도 하다.

현대 한국에는 이런 사람들을 찾기 어렵다. 어쩌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 독재 등을 거치면서 그나마 있던 싹마저 뿌리 뽑혀 그런게 아닐까. 누구도 사회적 의무나 도덕성을 얘기하지 않는 한국에서 구호뿐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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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을 해도 나 혼자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
무레 요코 지음, 장인주 옮김 / 경향BP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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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레 요코(群 ようこ)’의 ‘기침을 해도 나 혼자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咳をしても一人と一匹)’는 우연한 계기로 어린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일상 에세이다.

고양이의 수명은 보통 15년 정도라고 한다. 짧으면 10년, 길어도 16년 이상 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서다. 그래서 혹자는 12년 정도를 현대 고양이의 평균 수명으로 보기도 한다. 그 나이를 넘기면 사실상 삶보다는 죽음에 보다 가까운, 말하자면 노묘(老猫)라는 얘기다.

그렇게 보면 20년 가까이 함께 생활해온 저자의 고양이 C는 엄청나게 장수한 셈이다. 사람으로 치면 거의 100세에 가까우니까 말이다.

이 책은 그런 고양이와 작가가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을 소소한 일상과 함께 담아낸 것이다.

작가가 그려낸 고양이와의 삶은 어떻게 보면 상상할만한 것이기도 하다. 소위 ‘집사’로 대변되는 사람의 처지, 마치 철모르는 아이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밀당중인 연인을 대하는 것 같기도 한 고양이의 행동, 둘이 만나 펼쳐지게 되는 모습들은 그래서 딱히 특별하지는 않다.

대신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눈 앞에 있듯 상상이 되고, 고양이와의 삶에서 느끼는 감정들도 쉽게 공감이 간다. 그래서 별 거 아닌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소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그건 고양이와의 삶을 담은 에세이이면서도 고양이와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는 모습이라던가, 고양이가 원하는 것, 말하는 것을 마치 직접 듣는 것처럼 작가가 그려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연, 소설가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20편의 글들은 때론 소설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깊은 빡침을 애정과 사랑스러움으로 그린다던가, 귀여운 짓을 보면서 짜증을 표현하는 것이 그렇다. 서로 상반되는 듯 하면서도 고양이를 너무도 잘 묘사한 이런 표현들은 현실이면서도 소설적인 판타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런 모든 것들이 혼자만의 공상처럼 느껴지지 않게 구체적인 묘사도 잘 했다. 때로는 교육시키려는 듯이, 어떨땐 혼내는 것 처럼, 그리고 또 다른 때는 마치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처럼 그려낸 고양이의 특징과 모습이 마치 눈 앞에서 보는 것 같아 사랑스럽다.

소설가의 작품이라설까, 아니면 기존에 그가 내던 작품들도 소소한 일상을 담은 것이어서일까, 이 책은 일상 에세이면서도 소설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게 끝까지 이들의 이야기를 웃으며 따라가게 만든다.

책을 볼 때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사실적인 고양이를 묘사하기 위해 작가가 표현한 고양이 울음인데, 아쉽게도 한국어 번역판에서는 그게 미묘하게 벗어난 느낌을 준다. ‘삐에에엑’처럼 보통의 한국사람이 갖고있는 ‘고양이 울음’ 상에서 크게 벗어난 소리를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서에서는 대체 어떻게 표현했었는지, 그 실제 울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 울음까지는 모두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 그게 이 책의 티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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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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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는 2013년 출간된 ‘매구 할매’의 연작 소설로, 일종의 외전이다.

이 소설은 매구 할매가 사는 동네 계성제를 중심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에는 총 16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마을의 여러 사람들에게 있는 각자만의 사연을 풀어낸 이야기들은 각각이 하나로 개별적인 단편 같기도 하다.

그러는 한편, 한 동네에서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으므로 이 이야기에서 나왔던 인물이 그 이야기에서 나오고 다시 그 이야기에서 나온 인물이 저 이야기에서 나오는 식으로, 긴밀하지는 않지만 마치 큰 전체의 일부인 것 같은 묘한 연결고리를 느끼게도 한다. 매구 할매로부터 이어진 이야기의 마무리도 그렇다.

이야기 각각은 병이라던지 정신이 나갔다던지 하는 일상적이지 않은 듯한 소재로 시작하지만 그것들이 담고 있는 것은 막상 보면 수수하다. 우리내의 엄마, 할머니들이 겪었던, 겪어내야 했던, 겪어내야 할 인생을 담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 하나 하나가 크게 공감이 간다. 보고 있자면 갑갑한 마음에 절로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저러면 안되는데 싶어 애간장이 타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꼴 좋다던가 싶기도 하다.

삶을 위해 고난히 부대끼고, 그런데도 결국 밀려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기약하는 사람들도, 그런 그들에게 한탄하면서도 보듬어 앉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도, 절로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의 삶을 절로 떠올리게도 아련하면서도 또렷한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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