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뮬란 새로운 여정 ㅣ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엘리자베스 림 지음, 성세희 옮김 / 라곰 / 2020년 4월
평점 :
‘엘리자베스 림(Elizabeth Lim)’의 ‘뮬란: 새로운 여정(Reflection: A Twisted Tale)’은 애니메이션 뮬란을 기반으로 한 대체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Mulan, 1998)’은 위진남북조 시대에 출간된 악부시집(樂府詩集)에 수록된 332자의 서사시 ‘목란사(木蘭辭)’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여성이 남장을 하고 전쟁에 참여한다던가 거기에서 큰 공을 세워 금의환향한다는 핵심 줄거리가 거기서 나온 것이다. 다만, 원전이 워낙에 세부 묘사가 없는 짧은 시이다보니 애니메이션은 원전과 많이 달라져 디즈니의 창작물에 가깝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이상한 점들도 많이 보인다. ‘북위’를 배경으로 했으면서도 ‘중국’이라고 칭한다던가, 결국 제대해야 했을만큼 부상을 당했던 ‘파 주’에게 징집 명령을 내리는 것도 그렇다. 이런 어이없는 정치는 자연히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국가에 대한 충성도 쉽게 공감하지 못하게 만든다.
디즈니의 작품 치고는 주도적인 여주인공이라는 평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전적으로 뮬란 자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느정도 상황에 들떠밀린 경향이 있다는 것도 아쉬웠다.
그래서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를 그린만큼 이 소설에서 그런 아쉬움들을 얼마나 떨쳐냈을지도 솔직히 좀 기대했었다.
그래서 그런 점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전혀 나아진 면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다르게, 새로 쓰는 것이니 부족했던 걸 보완하고 개선해야겠다기 보다는 가능한 기존의 원작을 충실히 이어받으려 했다는 느낌이 더 컸다. 오히려 이야기와 큰 상관없이 중국에 대한 충섬심을 노골적으로 적어내서 원작보다 떨어지는 면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뮬란의 자주성이나 주도성은 소설에서도 묘한 위치에 머물러 있다. 왜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가며 그렇게 해야 했는지를 충분히 설득하고 넘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지 약간의 죄책감만으로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드는 것은 뮬란을 스스로의 의지가 확고하며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상황에 쉽게 떠밀리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게 만든다.
중간이 주인공들 사이에 생기는 갈등도 억지스러웠다. ‘굳이?’ 싶기 때문이다. 꼭 그 때, 그 장소에서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결코 하지 말았어야 행동이었던데다가, 그래야만하는 흐름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전개에 공감할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을 방해하는 인물들이 있었는데, 그를 통해 그런 상황에 몰리도록 만들었다면 더 좋았으련만 아쉬움이 남는다.
문장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좀 눈에 띈다. 특히 긴박한 액션 장면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길게 풀어내자니 늘어질 것 같아 짧게 쓴다는게 정작 상황까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그친 꼴이 된 것 같았달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이런 장면은 어쩔 수 없이 상상으로 채우고 넘어가야만 했는데, 애니메이션이 아니므로 더욱 그림처럼 연상할 수 있게 잘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원어가 그런지, 번역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이상한 표현도 있었다. ‘악령’이 대표적이다. 유령과 구분하기 위해서 사용한 듯하나, 악령이란 ‘나쁜 짓을 하는 못된 영혼’을 의미하는만큼, 꼭 못되지만은 않은 작품 속 존재들을 악령이라고 칭하는 것은 부적절했다. 뮬란과 샹의 대사도 어색해서, 이들이 군인이란 걸 생각하고 번역한 건가 의문을 들게했다.
기대를 많이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아쉬움도 많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볼만한 소설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옥에서의 모험이라는 게 얼핏 뜬금없어 보이나 애초에 원작에서도 수호신이나 유령이 등장했으므로 별로 이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들이 적당한 역할을 함으로써 원작에서보다 더 존재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옥황상제로 대표되는 불교식 저승의 모습을 뮬란의 세계에 맞게 각색해서 보여주는 것도 괜찮았다.
디즈니의 최근 시리즈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원작의 요소를 적절히 가져다 쓴 것도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새로 그린 일러스트가 아니라 원작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캡쳐해서 붙인 것인데도 삽화가 어색하거나 부족해 보이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