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백제 지수신 상.하 세트 - 전2권
류정식 지음 / 물병자리H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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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지수신’은 의자왕 말기 백제의 멸망 과정과 그 이후의 부흥운동을 그린 가상역사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중 하나인 지수신(遲受信)은 별로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오죽하면 흑치상지(黑齒常之)는 알아도 지수신은 모를 정도니까 말이다.

이는 아마도 흑치상지가 삼국사기 백제인 열전에 실렸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백제인이라면 귀실복신(鬼室福信)처럼 더 중요한 인물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흑치상지가 실린것은, 아마 다른 인물들의 사료를 찾기 어려워서 였을 것이다. 반면에 흑치상지는 당나라로 넘어갔기 때문에 구당서, 신당서 등에 기록이 있어 참고하기 좋았을 것이고.

이는 백제가 결국 전쟁에 패해 멸망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와 관련한 기록도 적은데다가, 기껏 있는 기록도 (승전국에 의해) 변조되었다는 것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백제의 최후가 너무나 막장인데다 허무했던 것이 그렇고, 그 과정에서 백제인들이 보여줬던 면면들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이 또한 그렇다.

작가는 그 중에서도 사실상 최후까지 백제부흥운동을 했었던 지수신에 주목해서 그의 이야기를 거의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써냈다. 그의 행적에 당위성을 부과하기 위해서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켰으며, 그는 소설속에서 알려진 것과는 다른 길을 걷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역사라는 큰 흐름을 거스르지는 않게 자중해 역사소설이라는 틀에 머물러 있는다.

문제는 그 덕에 기꺽 백제의 편에 서서 백제를 변호하는 입장으로 꺼낸 이야기인데 막상 별로 변호가 잘 되는 것 같지 않아보인다는 거다.

가장 대표적인게 의자왕(義慈王)이다. 아무리 묘사할 때는 그가 방탕하고 무능하지 않은 것처럼 얘기해봤자, 역사에 따르는 정치/군사적인 흐름대로 가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러면 면모가 풍겨나서 오히려 앞뒤가 안맞는 이상한 분위기를 형성해 버린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추가적인 인물이나 공작이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렇다보니 기존에 알려진 역사의 큰 줄기를 유지한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역사왜곡 논란에선 강점을 가질지언정, 소설로서의 완성도에는 단점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나마 주인공인 지수신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고, 주요 인물인 율과 선은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 인물이라서 이들의 이야기에선 그런 점이 덜하다. 대신 그런만큼 때때로 시대와 어긋나보이는 모습을 비치기도 한다.

이런 점들이 이 소설에서 호불호가 갈릴 요소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인물들의 면면을 새롭게 그려낸 점은 꽤 좋았으며, 그걸 더 밀어붙여 영웅이나 마왕같이 극단적으로 해석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랬다면 어쩌면 앞서 얘기했던 앞뒤가 안맞는 것도 의외로 얼버무릴 수 있었을 것도 같고. 자중하지 말고 더 자유롭게 썼다면 어떻게 됐을지 좀 궁금하다.

잘 모르는 백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역사소설이라고 하면 대부분 자료도 많고 익숙한 조선을 배경으로 하거나 고조선처럼 아예 옛날로 가서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많은데, 앞으로도 이 소설처럼 좀 더 다양한 고대국의 이야기와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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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파도 속으로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황세연 지음 / 들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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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파도 속으로’는 금괴 찾기에 나서는 사람들이 휘말리게 되는 일을 그린 해양 스릴러다.

고립된 공간은 매력적이다. 탈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히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이어지고, 긴장감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작용을 하며, 평소라면 정신나갔다 할 수 있는 극단적인 선택이나 행동도 말이 되게 만드는 마성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스터리에는 고립된 산장, 연락선이 끊긴 섬, 달리는 기차나 망망대해 속 배 위라는 한정된 공간을 즐겨 사용한다.

그런 배경을 설정한 것 만으로도 이 소설은 스릴러로서 점수를 좀 먹고 들어간다.

금괴를 찾아 나서게 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실제 있었던 사실에 허구를 섞어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목표물은 누구든 한번은 떠올려봤을 일확천금의 꿈을 생각나게해 관심을 갖고 보게 만든다.

살인사건으로 시작해놓고 얼렁뚱땅 보물찾기로 넘어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후에 어떤 뜻밖의 이야기로 이어질지도 궁금했고, 보물찾기 과정에서 맞딱뜨리게 되는 고난을 과연 이들이 어떻게해서 해쳐나갈지도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단지 설정 뿐 아니라 이야기도 꽤 흡입력이 있어 빠져들어 볼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게 중반 이후 마치 작가가 바뀐 것처럼 뚝 끊어진다는 거다. 이야기가 크리쳐물로 바뀌게 되는 과정과 결과가 너무 허술하기 때문이다.

현실성을 높이려는 듯 의학적, 생물학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부터가 나빴다. 그런다고 딱히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현실성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무슨 학습서도 마냥 설명을 장황하게 해서 어색하기만 했으며, 미지의 생물을 접하는데서 느끼게 되는 알수 없는 공포감을 완전히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그때까지 나름 잘 끌어왔던 인간관계나 미스터리까지 허망하게 해소해버린 것도 안좋다. 마치 이제 크리쳐물을 시작할 거니까 미스터리는 끝내야겠다는 듯이 후다닥 뱉어내버렸는데, 그게 기껏 잘 보고 있던 독자를 확 김 세게 만든다.

심지어 그래놓고 나온 것이 썩 만족스럽지도 않았으니. 그 전까지는 나름 그럴듯 했던 이야기가 크리쳐물로 넘어와서는 ‘뭐?’하고 의문스러운 부분을 여럿 노출해서 흡입력까지 크게 떨어졌다. 그러다보니 중반 이후로는 반쯤 엔딩을 보기위해 읽어나가는 상태이기도 했다.

기왕 미스터리를 넣을 거였으면 그걸 끝까지 살렸어야지. 아니라면 처음부터 순수하게 크리쳐에 대한 미지만으로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던가.

너무 욕심이 많았던 건 아닐까. 범죄 미스터리에 모험, 범인찾기 류의 서스펜스와 스릴러, 거기에 크리쳐까지 여러가질 넣었지만 그것들을 모두 부분부분 보여주었을 뿐 하나로 섞어내는데는 실패한 것 같다.

극을 시작해서 엔딩까지 이어지는 전체 이야기 구성 자체는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에필로그 역시 그렇다. 다만 그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는 세부 완성도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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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식당 (특별판) 특별한 서재 특별판 시리즈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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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식당’은 어느날 뜻밖의 죽음과 기회를 갖게된 두 사람이 식당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이다.


삶에는 늘 후회가 따라다닐 수 밖에 없다. 누구도 언제 죽을지는 알 수 없으며, 그렇기에 미처 다 하지 못한 것을 남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젊은 나이에 사고 등으로 갑작스레 떠나게 됐다면 오죽하랴.

소설은 그런 두 사람이 마지막 강을 건너기 전 불사조를 꿈꾸는 여우 ‘서호’를 만나 이승에서의 마지막 49일을 보낼 수 있게 되면서 시작한다.

처음 두 사람의 온도차는 꽤 극명하게 갈린다. 아저씨는 어떻게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아이는 딱히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 생전 좋은 기억이 없으니 딱히 죽은 것이 안타깝지도 않고 보고 싶은 사람도 없다나.

그래서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아저씨와 아이가 식당을 꾸려나가면서 아저씨가 만나려는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벌이는 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아이도 생전에 알던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고, 점차 사라져가는 시간 속에서 둘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정하게 된다.

죽음과 후회, 그리고 그 뒷 정리를 다루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다. 이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유사한 흐름과 결말을 갖고 있는데, 이 소설 역시 그런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식상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괜찮은 것은 언제 봐도 공감할만한 주제를 다루는데다, 그것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역시 볼만하기 때문이다. 사자들이 이승으로 돌아와 식당을 한다는 것 부터가 재미있다.

이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다음으로 이어지게 하는 장치이기도 했는데, 식당이라는 것 자체가 여러 사람이 오가는 곳이기도 한데다 식당일을 하는 게 이들의 목적과도 부합해서 자연스럽기도 했다.

둘의 이야기를 비밀스럽게 감춰두고 조금씩 풀어내는 것도 괜찮아서 끝까지 흥미를 갖고 보게 만든다. 시선과 오해에 대해 다루고 그걸 풀어내는 것도 잘했다.

아이의 시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아저씨의 이야기는 조금 급발진하는 면도 있어(즉, 변하는 과정을 충분히 담아내지 않아서) 좀 어색하기도 하나 이야기 자체가 조금은 동화같은 면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걸리는 것은 아니었다.

끝에 보여주는 일종의 반전같은 것도 좋았던 것은 그게 주제를 더 부각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가볍게 이야기하고 넘어가지만,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그 무게가 커서 더 그렇다. 누구든 갖고 싶을만한 기회가 두번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명확히 하는 것 역시 그렇다.

곱씹어 볼수록 짜임새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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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피스트
헬레네 플루드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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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네 플루드(Helene Flood)’의 ‘테라피스트(Terapeuten)’는 잘 만들어진 심리 스릴러다.


이야기는 심리학자이자 집 한켠에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사라’의 남편이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별장에 간다며 나간 후 연락이 되지 않으면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잠시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것일거라 생각하고 태연하게 상담을 이어나가지만 막상 함께 가기로 했던 친구들로부터 남편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서 일이 이상해졌음을 짐작하게 된다.

결국 이 일은 본격적인 사건이 되면서 사라의 일상을 뒤흔들게 되는데, 이 과정이 꽤 흥미롭게 잘 그려졌다.

떡밥을 까는가 하면 독자에게 혼선도 주어서 독자는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을 의심하게 되며 진실은 무엇이고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쉽게 짐작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겪게되는 일들도 그렇다. 생각보다 긴장감이 크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또 왜 그런 일을 겪게 되는지가 미스터리로 남았기 때문에 더욱 이후 전개를 궁금하게 했다.


이 책을 볼 때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당연히 저자가 심리학자라는 거였는데, 그건 생각보다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인공을 심리학자로 설정했기 때문에 해당 분야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게 스릴러에 밀접하게 영향이 있었냐 하면 꼭 그래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특수한 직업적 경험이 있다고 해서 굳이 그걸 이용한 무리한 시도를 하려고 하기 보다는 전통적인 스릴러 작법에 충실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에는 직업적인 지식과 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듯 보인다.

아쉬웠던 것은 주인공 캐릭터가 잘 안잡혀 보였다는 거다. 기억력이 좋고 세심한(꼼꼼한) 것처럼 설정한 것 같은데, 그와 상반된 귀차니스트에 허술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방금 있었던 일을 조금 다르게 기억하는 장면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어판은 ‘앨리슨 맥컬러프(Alison McCullough)’의 영어 번역본을 중역한 것인데, 어쩌면 그 과정에서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생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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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폰트라헤임의 엘프들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13
박창현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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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폰트라헤임의 엘프들(Senpontraheim’s elves)’는 꽤 완성도 높은 북유럽 신화 풍의 판타지 동화다.


작가의 처녀작이자 마지막 작품인 소설은 9년 전 저자가 무려 10살일 때 출간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그것을 일부 개선해서 낸 두번째 판이다.

‘이건 좀…’ 싶은 이야기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상식을 벗어난 행동 등으로 인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엇나감을 보여준다거나 이야기 흐름이 제대로 짜여있지 않을 채 장면만이 나열된 느낌이 드는 것들이 꽤 많다. 그런 것들은 아무리 읽어도 그래서 대체 뭘 말하려는 건지도 모르겠고 재미또한 없어 두번다시 찾지 않게된다.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 꽤 완성가 높은 편이다. 배경에서부터 등장인물의 설정, 그리고 그들을 보여주는 이야기까지 꽤 짜임새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걸 10살짜리가 썼다니. 새삼 감탄을 하게 된다.

당초부터 북유럽 신화를 좋아해 그와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던 것도 꽤 잘 이뤘다. 일부는 북유럽 신화에서 그대로 차용해오기도 했는데, 거기에 자기만의 설정과 이야기도 잘 얹어서 새로운 느낌도 잘 냈다.

오래 전 옛날을 연상케 하는 고전적인 중세 판타지에 현대적인 것들도 꽤 많이 섞여있는데, 고정관념없이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설정이 신선해서 나쁘지 않았다. 몇몇은 아이만의 ‘의식의 흐름’이 들어있는 것 같아 웃음을 자아내게도 했다.


몇 장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면을 꼼꼼하게 채워넣은 삽화도 나름 매력이 있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꽤 눈에 띄긴 했다. 패턴 채우기는 꽤 잘 한 반면 형체가 깔끔하지 않은 그림도 그렇고, 몇몇 설정에 (신화적인 동화라는 걸 고려해도) 의문이 남는 것이 있으며, 이야기 역시 뜬금없어 보이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엔 상당부분 10살 아이가 쓴 것이라는 일종의 버프가 실려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책을 통해 신선한(경계없는) 상상력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꽤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그랬던 작가가 자라면서 그 빛을 잃고 한국의 흔한 면학생이 되버린 것 같아서 꽨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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