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연대기
기에르 굴릭센 지음, 정윤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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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에르 굴릭센(Geir Gulliksen)’의 ‘결혼의 연대기(Historie om et ekteskap)’는 한 부부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를 그려낸 소설이다.

취향을 좀 많이 탈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부부가 그리 평범한 성향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남부터 은근히 냄새가 났던 이 둘은, 부부로써 살아가는 동안에도 자기들만의 독특한 표현방식을 사용함으로써 다분히 변태적이고 막장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저자는 마치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 감춰두었다가 풀어내며 점점 질리게 만든다. 뒤로 갈수록 막장성이 강해지는 만큼 소재에 따른 호불호가 크게 갈릴 만하다.



*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주의 바란다.



일본 성인물의 한 장르인 ‘네토라레’의 성격을 띄고있기에 더 그렇다.

불륜의 한 형태인 네토라레(寝取られ, NTR)—그리고 그 하위 장르인 네토라세(寝取らせ)—는 불륜이 야기하는 파탄적인 면을 부각시켜 더욱 변태적인 형태로 굳힌 장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생리적인 혐오가 일어 잘 보지 않는데, 이 소설은 성인물과 달리 표현의 수위를 어느정도 제한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역하거나 껄끄럽진 않다.

그건 단지 그들의 불륜과 성 취향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심리와 관계의 변화를 잘 그려냈기 때문이다. 부부로서의 시작과 끝 그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과 그들이 주고받은 대화, 그리고 그게 어떤 식으로 점점 그들을 몰아가는 방아쇠같은 역할을 했는지도 잘 담았다.

그래서 굳이 왜 그런 변태성향을 담았는지 의아한 한편으로는 어째서 그런 대사와 장면을 사용했는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남자는 특별함을 꿈꾸며, 자유롭게 살라면서 심지어 다른 남자를 만나도 좋다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평범한 행복을 그리며 자신만을 사랑해주길 원한다. 그의 변태적인 말들은 그렇게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겠노라고 하길 바라며 내뱉는 두려움의 토로인 셈이다.

그 누구보다도 그녀가 그럴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들 부부도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의 특별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녀로하여금 스스로의 욕망을 직시할 수 있게끔 하고, 관계의 깨짐에 대한 두려움이 결국 그녀를 더욱 그렇게 하도록 부추긴 셈이 되었으니, 그의 꼴 하나하나가 다 우습다. 자신에게 그리스식 신탁을 내리고, 스스로 그것을 면밀히 실현했으니 참 대단한 원맨쇼가 아닐 수 없다.

소설은 남자가 여자의 입장에서, 또 자식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쓰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것이 겉과 속이 다른 남자가 뇌절을 거듭한 끝에 비참한 끝을 맞이하는 모습을 더 잘 보여준다.

호불호가 갈릴만한 변태적인 소재와 내용을 사용했기에 일반적으로 몰입하거나 동질감을 느끼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부부로서의 심리나 세부 묘사는 꽤나 현실적이고 보편적이어서 생각보다 공감점이 많다. 그래서 책을 덮고나면 이렇게 써낸 작가의 문장력에 새삼 감탄이 나오기도 한다.



*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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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도노 하루카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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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노 히카루(遠野 遥)’의 ‘파국(破局)’은 한 남자가 파국에 이르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인 ‘요스케’는 좋게말하면 굉장히 밸런스를 잘 잡고있는 인물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열심히 공부하는가 하면 그 못지않게 체력을 단련하고 스포츠에 열정을 쏟기도 하고, 하려던 일을 미루고 친구를 만나러 선뜻 나서기도 하지만 술을 먹지도 않고 사람들 무리에 기꺼이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오롯이 홀로 지내기만을 즐기느냐하면 그렇지도 않아서 멀쩡히 여자친구도 있으며 성욕도 강한 편이다.

이런 그의 상태는 조금 다르게 말하면 몹시 불안정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밸런스가 적당한 중도로서 지켜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묘하게 뒤틀린 가운데 간신히 자리잡고 있는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밸런스를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언밸런스함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조금만 삐긋해도 쉽게 무너질 것처럼 불안해보인다. 이것이 일부 장면이나 캐릭터가 아닌 이야기 전체에 낮게 깔려있어서 언제 파국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소소한 긴장감을 준다. 계속 읽게 만들만큼 문장력도 좋은 편이어서 이게 거의 끝까지 유지되는데, 이런점은 상당하다고 할만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파국이 일어났을 때의 솔직한 감상은 너무 급작스러워 당황스럽다는 거였다. 그때에 일어나는 개개의 사건들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 전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그럴 가능성을 깔아뒀던 것도 맞지만, 배치가 좋지 않았달까. 그런 순서로, 그런식으로 한번에 일어나는 것은 별로 설득력도 없었으며 그렇게 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도 좀 급발진적이었다. 소설을 보고난 감상이 ‘놀랍다’기 보다는 ‘당혹스럽다’는 것에 더 가까운 이유다.

어쩌면 기괴하지만 굉장히 현실적인면이 있으면서도 결코 실존하지는 않을 것 같은 주인공에게 썩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란 조작하고 왜곡해서라도 그럴듯한 이유와 사정을 갖다붙이길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때론 좀비같고 때론 로봇처럼 행동하며 유독 특정한 부분에서만 이성과 감성이 배제되는 이 독특한 캐릭터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것만으로도 어째서 평점이 극적으로 나뉘었다는 것인지 좀 알 것 같다.

재밌는 것은 이 이야기를 제3자의 시선으로 다시 그려보면 굉장히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다는 거다. 보편성과 기묘함은 표리부동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일까. 이제는 전형적인 한 젊은이의 욕망과 실패를 이런 식으로도 그릴 수 있다는게 한편으론 대단하다.



*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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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우러 가볼까? - 슬퍼해도 괜찮아, 슬픈 일이잖아
트레버 로메인 지음, 권성애 옮김 / 에쎄이 출판 (SA Publishing Co.)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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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버 로메인(Trevor Romain)’의 ‘죽음을 배우러 가볼까?(What on Earth Do You Do When Someone Dies?)’는 아이들을 위한 일종의 죽음 안내서다.

인간은 죽음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삶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가볍게는 오래살고 싶은 것도 그렇고, 불로장생이나, 부활, 환생 같은 것에 믿음을 갖는 것도 그래서이다. 이것은 죽음을 관장하는 신들이 다른 신들에 비해 어둡게 그려진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로써 표현되기도 한다.

이러한 성향은 단지 문화나 신화에서 뿐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드러난다. 일상에서 죽음과 연관된 것이 드문 이유가 그래서다. 간혹 있는 것도 한쪽에 특별하게 모셔짐으로써, 삶과는 일정 거리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살아있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이건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게 현대로 오면서 좀 과해졌다는 거다. 마치 오물을 하수구로 보낸 것처럼 죽음도 대부분을 뒷켠으로 치워버렸는데, 이게 죽음을 쓸데없이 낯설게 만든다. 어차피 삶과 함께 있어 피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죽음을 그것들을 접하면서 알아갈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렇게 낯설어진 죽음을 다시 삶 속으로 가져오게 도와준다. 죽음이란 모두가 언젠가는 맞게 된 것인만큼 삶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며 딱히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게한다.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생각해보게 한다. 슬픔이 닥쳐올 때는 누구와 함께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같은 것들도 얘기한다.

책에는 죽음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담았지만, 의외로 다 보고 나서도 죽음이란 게 그렇게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은 아닌데, 죽음을 대하는 방법이라지만 거기에 딱히 특별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전처럼 죽음이 낯설거나 마냥 두렵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 이 리뷰는 북촌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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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손지상 옮김 / 네오픽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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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야마 미치코(青山 美智子)’의 ‘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猫のお告げは樹の下で)’는 고양이가 나오는 신기한 신사를 배경으로 따뜻한 인간 드라마를 그린 소설이다.


소설은 7명의 주인공들이 각기 서로 다른 사연을 풀어내는 옴니버스 형태를 띄고있다. 그 가운데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게 소원이 적힌 다라수 나무가 있는 신사와 그곳에서 갑작스레 등장해 바람처럼 사라지는 고양이 ‘미쿠지’의 존재다.

미쿠지는 근심과 고민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듯이 나타나서는 마치 제비뽑기 점괘를 건네주듯 다라수 잎 하나를 떨어뜨리고는 사라진다. 다라수 잎에는 마치 혼자만 알고 있으라는 듯 비밀스런 한마디가 적혀있는데 궁사는 그것을 “말씀”, “계시”라며, 운이 좋다며, 소중히 하라고 한다.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쫌 불편한 그리스식 예언같은 놈이다. 너무 뭉뚱그려져 있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많아서다. 그래서 처음 들었을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도 쉽다. 하지만 막상 그를 떠오르게하는 상황을 맞딱뜨리게 되면 굳이 안하려고 해도 의식을 하게 되고, 자연히 그게 무슨 의미이며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지를 신중하게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는 계기를 만들어주는가 하면, 생각을 전환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알아채게 도와도 주고, 때론 결심을 굳히도록 등을 떨밀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자는 고작 한마디의 말씀이 어떻게 그런 작용을 하는가를 꽤 잘 보여준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뻑적지근한 내용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변하는 과정도 점진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그럴듯해 어색하지 않다.

고양이 미쿠지의 존재와 그가 전해주는 말씀 다라수 잎이 지극히 판타지적인 것과 달리 그 이후의 이야기는 전혀 신비로운 것 없이 일상적으로 그린 것도 좋았다. 그 덕에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에 있는 이 소설을 조금은 더 현실쪽에 발을 딛고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하며,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그들이 받는 위로에도 함께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번역도 잘 된 편이다. 일본 신사(神社)와 그 신앙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일본만의 정서나 문화도 많이 담겨있고, 미쿠지가 전해주는 말씀 중에는 일본어에서나 통하는 말장난 스러운 것도 있는데 그것을 독음과 번역, 주석을 이용해 꽤 잘 전달한다. 한국어로 재현하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쉬울 수 있으나, 책을 읽거나 거기에 담긴 느낌을 이해하는데는 전혀 저해함이 없다.

미쿠지 고양이는 여러 면에서 점이나 종교의 일부 역할을 판타지적인 형체를 부여해 떼어낸 것 같다. 이것은 족집게같은 답을 요구하는 현대인의 감성과는 조금 다른 심리상당적인 측면을 많이 갖고 있는데, 어쩌면 그래서 더 쉽게 받아들일만한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만약 만난다면, 나에게는 어떤 말씀을 전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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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아이들 이마주 창작동화
황선미 지음, 이명애 옮김 / 이마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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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아이들’은 소외와 우정을 소재로 한 창작동화다.

어렸을 때의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는 생일파티다. 생일 파티를 어떻게 하느냐 뿐 아니라, 생일 파티에 누가 초대되느냐도 초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생일 파티라도 반 전원을 다 초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생일을 맞은 아이가 반에서 인기있고, 누구든 친해지고 싶어하는 그런 아이라면 더 그렇다.

그래도 나름 친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친하다는 생각은 서로 어긋나는 경우도 많다. 상대가 인기가 많은 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에겐 그저 흔한 주변 추종자들 중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은근히 기대했던 파티에 초대를 받지 못한다면, 심지어 그게 날짜까지 꼽아가며 기대하던 이벤트였다면, 그로인한 상심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는 이 미묘한 소외를 정말 잘 그려냈다. 딱히 ‘따돌림’이라고까지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크게 겉돈다는 느낌, 심지어 그들 사이에 있을때조차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정말이지 잘 담았다.

주인공 하나만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여러 인물, 여러 상황에서 겪는 소외를 담은 것도 좋았다. 단지 여러 경우를 나열만 한 것이 아니라 관계도 잘 짜서, 자신이 그러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소외감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편협함도 꼬집고, 진짜 우정, 친하다는 것이란 무엇인지도 잘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그런 소외를 겪는 아이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통한 작은 위로를 주기도 한다.

혹시 나는 그러한 무리에 단지 껴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던 그런 아이는 아니었나. 아니면 주변을 그런식으로만 대하며 얄팍한 관계에 취해있는 아이는 아니었나. 과연 친밀함이란, 우정이란 무엇일까. 진지하게 생각해보게도 한다.

제목과 달리 실제로는 ‘초대받지 못한 아이들’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은, 이미 2001년에 한번 출간했던 동화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만큼 현실에 맞게 상당수를 덜어내고 개정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현재에 놓고 봐도 걸리는 부분이 없으며 공감도 쉽게 된다.

개정 하면서 새롭게 더한 이명애 작가의 그림도 잘 어울린다. 중요한 장면들을 잘 집어낸데다, 각각의 묘사도 잘 했다. 등장인물들의 자세나 표정, 안색 등으로 드러내는 분위기가 실감나게 살아있어서 현실감있는 동화를 잘 꾸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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