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빗
고혜원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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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은 소녀 첩보원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어린 소녀들을 첩보원으로 쓰겠다는 생각은 대단히 합리적이다. 소녀들이 갖고 있는 육체적인 한계, 사회적인 위치, 그로인한 만들어질 수 있는 빈틈 등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효율적인 첩보원은 없겠다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을 자원으로 보고 논리적으로만 생각한 것일 뿐, 그 소녀들도 사람이는 것을,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고, 언니고, 누나이며, 또 동생이기도 하다는 것을 망각한 생각일 뿐이다.

심지어 첩보원, 그러니까 간첩은 적진에 깊게 침투하여 동화됨으로써 그들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빼내는 역할을 한다는 특성상 적군에게 요주의 인물일 뿐 아니라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무리)에게까지 끊임없이 신뢰 문제를 증명해야 하는, 어떻게 보면 양쪽 진영 모두에서 반기지 않는 제3세력에 가까운거다.

소설에 등장하는 소녀들은 다양한 이유로 소녀 첩보원, ‘래빗’에 들어오게 된다. 누구는 일제의 강점을 겪은 후 강화된 애국심을 이유로, 또 누군가는 전쟁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가족의 복수를 위해, 혹은 일의 대가 때문인가 하면, 어쩌면 단지 고아가 되었다는 이유로 쉽게 쓸만하단 상층부 사람들의 판단으로 임의 배정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소설은 그런 소녀들 중 일부를 조명해서 그들의 험난했던 삶과 전쟁을 꽤 잘 그려냈다.

단지 ‘소녀 첩보원’이라는 역사적인 소재에만 기댄게 아니라 조금씩 서로 다른 입장과 선택을 그려낸 것도 좋고, 완전히 창작해낸 이야기에 가까우면서도 실제였더라도 어색하지 않을법한 서사를 들려주는 것도 역시 긍정적이다.



*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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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물리찾기 1 부엌에서 물리찾기 1
청유재 사람들 외 지음 / 북스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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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물리찾기 1’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을 통해 물리를 얘기하는 책이다.

물리는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지만, 막상 찾아보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도 손쉽게 찾을 수가 있다. 사실 세상은 모두 물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별 생각없이 하는 행동들, 경험적으로 아는 지혜같은 것들도 모두 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물리들 중에서 부엌과 관련된 것들을 모은 것으로, 아이들이 각각을 처음 접했을 때 할법한 근본적인 물음에서부터 왜 그런지 제대로 알면 새삼 더욱 신기할만한 것들까지 다양한 질문과 답을 제공한다.

질문은 모두 일상이라는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는 정도에서만 던지는데, 그런 덕분에 책은 전체적으로 흥미롭고, 그 진리를 파헤쳐 들어가는 것도 꽤나 재미있으며, 겉만 슬쩍 핥는 게 아니라 나름 깊은 부분까지 다루기도 하기에 유익하기도 하다.

소위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유행처럼 생겨나면서 여러 정보들을 전달해주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전혀 엉뚱한 얘기를 하고도 수정하려고도 하지 않는 걸 보면 실망스럽기도 한데, 책은 그런 게 없다는 것이 장점이 아닐까 싶다.

가볍게도, 진지하게도 볼만하다.

아쉬운 것은, 일부 삽화들이 너무 저질이라는 거다. 심지어 저자가 원본을 갖고있을 채팅 캡쳐 같은 것까지 도트가 뭉개져 보기 불편하다. 단지 이미지가 아니라 글씨가 있어서 더 그렇다. 좀 신경썼으면 어땠을까 싶다.



*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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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가르면 피가 나올 뿐이야
스미노 요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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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노 요루(住野 よる)’의 ‘배를 가르면 피가 나올 뿐이야(腹を割ったら血が出るだけさ)’는 독특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제목이 참 독특하다. 하긴, 무려 고등학생 때 썼다는 데뷔작부터가 좀 그랬다. 자칫, 그게 일종의 루틴처럼 새겨져 일부러 그런 제목을 짓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단지 제목만 다분히 어그로스러운 게 아니다. 소설의 등장인물들도 계속해서 뭔가를 건드리는 뭔가를 가지고 있다. 이건, 단지 캐릭터의 개성이라는 것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무언가다.

그래도 어떻게든 함축을 해본다면, 소설 속 캐릭터들은 모두 어딘가 뒤틀려있다. 누구는 속이 그렇고, 누구는 겉이 그러하며, 또 어떤 사람은 그 중간에서 이도 저도 아닌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처치곤란인 상태로 뒤틀려있기도 하다.

이런 캐릭터들은 책을 펼치자마자 절로 ‘아! 그 작가의 소설이구나!’하고 느끼게 한다. 작가색이 꽤 뚜렷한 셈이다.

이건 자칫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쉽다. 말이 좋아서 개성적인거지, 도무지 캐릭터와 서사에 이입하거나 공감할 수 없어 난해하기는 커녕 자칫 황당함까지 느끼게 하기 쉽기 때문이다. (일본 특유의 감성까지 더해지면, 때론 극단적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더욱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게 된다. 일반에서 벗어났기에 더욱 독특하고 개성있는 캐릭터를 선보이면서도, 공감 한계는 넘지 않도록 미묘하게 선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반대로 소위 대중적 것과는 좀 다른, 소수라고 무시할 수도 있는, 전혀 잘못된 것이라거나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드러낼 수는 없어 자기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래서 반발을 살 수도 있으며 뭔가 엇나간 것 같지만, 쉽게 밖으로 꺼내지 못했을 뿐 저 안에 담고 있었던 속마음 같은 것을 마치 나도 그런 사람이라는 듯이 꺼내는 이야기가 묘하게 공감이 되며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제목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다른 의미를 지닌 관용어를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꽤나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잘 지은 제목이란 걸 알 수 있는데, 한국어판은 그걸 그냥 단순 직역을 해버려서 단지 어그로성 제목인 것처럼만 느껴지는 게 아쉽다. 어떻게든 의역을 해야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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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 마을에서
사노 히로미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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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히로미(佐野 広実)’의 ‘누군가 이 마을에서(誰かがこの町で)’는 동조 압력을 소재로 한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다.



동조 압력(Peer Pressure)이란 특정 집단에서 암묵적으로 다수 의견에 맞추도록 강제하는 것을 콕 집어서 말하는 것이다.

사실 애초에 동조(Conformity)라는 것 자체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원래의 자신을 잃고 몰개성하게 변하거나, 의지와 상관없이 휩쓸리는 것을 일컫는데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동조실험이라는 것도 대부분 개인이 다수에 굴복하는지, 어떤 식으로 굴복하는지, 굴복하기까지 어느정도의 강도(횟수 등)를 필요로 하는지 따위를 연구하는, 굴복 실험인 경우가 많다.

동조는 복종(Compliance)과 쌍을 이루어 나타나며, 그렇게 형성된 집단은 다른 소수에 동조 압력을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형성된 집단에서는 뜬금없거나 잘못된 것도 쉽게 공통의 규칙으로 자리잡거나 진리로 탈바꿈하게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소외와 불이익 등에 대한 두려움과 도피에 기반한 일종의 세뇌인 셈이다.

이것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것들을 방치하고 심지어 거기에 동참하기도 하는지를 잘 설명한다.

저자는 그것을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면서도, 단지 그런 (어떻게 되면 조금 폐쇄적인 시골같은) 특별한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훨씬 개방되어있고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회 일반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여러 등장인물들 통해 보여줌으로써, 이것이 얼마나 다양하게 심각한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잘 느끼게 한다.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 집단 내 불이익, 희생양과 꼬리 자르기 등 전쟁같은 것 없이도 인간은 얼마든지 꽤 간단히 잔인해진다.

‘악은 평범(Banality of evil)’하다.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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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리움
이아람 지음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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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리움(Terrarium)’은 인류멸망과 그 후를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이다.

가장 좋았던 점은 이야기 전개가 꽤 매끄럽다는 거다. 어린 소년을 주요 화자로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어머니를 찾아 어찌보면 지루하지만 그래도 안전한 벙커를 떠나 모험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나름 흥미를 끌기도 한다.

그 모험 과정에서 만나는 대상이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은 듯한 이야기들이 등장하는 것에서는 SF보다 판타지같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기는 한다만, 그것도 SF의 범주 안에서 적당히 뭉개기를 잘 했기 때문에 몽환적인 느낌을 주면서 아슬아슬하게 SF에 걸쳐있는 듯 느끼게 한다.

이것은 긍정적이면서 또한 부정적이기도 한 요소로 꽤 호불호가 갈릴만하다. 적당히 넘어가는 듯한 부분들이 보이기에 더 그렇다.

그래도 지구 환경과 인구증가, 식량난, 무리한 개발, 변형 단백질, 불치병 등 현재도 직면해있는 여러 문제들을 숙성시켜 꽤 그럴듯한 아포칼립스를 그려냈기 때문에 꽤 흥미롭게 볼만하다.

제목인 ‘테라리움’은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단순하게는 단어 자체의 의미 그대로 소설에도 등장하는 주인공이 소중히 가지고 다니는 그것같은 걸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주인공 소년의 상황과 이야기를 비유하는 것이기도 하며, 크게는 지구, 더 나아가서는 우주에 대한 관점을 함축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일종의 SF적인 진화 이벤트를 그린 것 같아 나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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