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스포일러라면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음>

 

한 권의 책을 읽다가 또 다른 책을 생각하는 일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한두 번은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일이 많은 편인데 오늘 이주은의 『당신도, 그림처럼』을 읽다가 두 권의 책이 생각났다.  그냥 휘리릭 넘길 때는 그 그림을 보고 영화 <어톤먼트>에서의 그 아름다운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것과 비슷한 그림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 나중에 자세히 보니 영화의 한 장면을 캡쳐한 것이다. 즉, 세실리아로 열연했던 키이라 나이틀리의 모습이었다. 영화를 보면서도 그 짙은 초록색의 드레스가 얼마나 강렬했던지 같이 영화를 본 친구랑 한참을 그 드레스에 대해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대체로 그림책을 보면 그림과 관련한 책이나 그림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사적인 생각들이 나게 마련이다. 한데 키이라 나이틀리의 모습을 보면서 그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해피엔딩과 그렇지 않은 두 가지의 결말을 가진 책이 생각났다. 그건 아마도 이주은이 그 사진과『속죄』에 대한 이야길 들려주어 이번에 읽었던 박민규의 책이 생각이 난게 아닌가 싶다. 이 두 권의 책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억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이란 읽는 사람의 마음이니 내가 그 책을 떠올렸다면 뭔가 공통점이 있었기에 그렇지 않을까?(아, 소심) 어쨌든 내 맘이다.ㅎㅎ 

이언 매큐언의 『속죄』. 이 책은 상상력 풍부하고 감수성 예민한 열세 살 어린 소녀의 잘못된 판단과 상상력이 불러일으킨 비극적인 일을 풀어낸 소설이다. 언니인 세실리아가 사랑하는 남자 로비를 강간범으로 몰아 둘을 갈라놓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소녀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죄 값을 치르기 위해 노력을 한다. 마침내 소녀는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도 그 둘을 갈라놓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한편으론 안도, 다른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온다. 해피엔딩이다. 오해는 풀렸고 세실리아와 로비는 그 많은 고난에서도 살아남아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충격적인 결말이 있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들은 대체로 결말이 충격적이다. 별 것도 아닌 일처럼 진행되다가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한번 읽은 사람들은 틀림없이 빠져들고 만다. 그의 문체와 스토리에. 나 역시 그랬다. 가능하면 전작주의를 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음에도 이언 매큐언의 책은 일부러라도 찾아 읽게 만든다. 특히 그의 책 중에서 부모가 갑자기 죽고 무방비 상태가 된 사남매의 이야기를 다룬 『시멘트 가든』은 다시 생각해도 그 충격적인 상황이 이해불능이지만 이언 매큐언 만의 ‘평범한 일상생활의 모습’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나는 ‘일상에서 벗어난 행위’를  보여주는 이언 매큐언 작품들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어떨까? 스무 살 무렵, 모든 사람들이 거부할 정도로 못생긴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 ‘나’,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 둘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던 날 ‘그’가 사고를 당하고 뇌사에 빠지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기적처럼 그가 다시 깨어났을 땐 이미 그녀는 어디론가 떠나고 없다. 소설가가 되어 이름이 알려진 그는 그녀가 독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를 만나러 독일로 떠난다. 그리고 재회. 이번에도 그렇게 헤어질 줄 알았는데 그는 그녀를 불러 세우고 둘은 돌고 돌아 마침내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역시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정말 해피엔딩일까? 모든 소설들은 그렇게 해피엔딩만 있는 걸까? 그래야 하는 걸까? 이 역시 충격적일 것까진 없지만 다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박민규는 이 결말에 대해 독자에게 선택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해피엔딩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독자들 좋을 대로 읽으라는 거다. 박민규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속죄』역시 그렇게 읽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속죄』의 경우는 그 충격적인 결말로 인해 이언 매큐언의 존재가 살아나는 것인데 박민규 식은 좀 곤란할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이렇게 얘길 하고 보니 스포일러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아까도 앞에 앉은 분과 문학의 스포일러에 대해 이야길 나누었는데 장르나 추리 소설도 아닌데 스포일러라는 게 있는 걸까? 뭐 어쨌든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겐 결말이 두 개니 한 개니 말하여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문학은 스포일러보다는 작가의 문체와 문장과 진행되는 스토리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해본다. 그런 점에서 박민규와 이언 매큐언의 문체와 문장은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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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버스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높디높은 하늘이 너무나 아름답더군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늘이 높다!"라는 어쭙잖은 문자라도 보낼 텐데 남자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은 더더군다나 없고 애꿎은 휴대폰만 구박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가 생각났어요. 더불어 아주 오래 전에 저질렀던 막무가내 스토커질도 생각이 나면서 정~ 외로워 안 되겠다 싶으면 나도 에미처럼 이메일이라도 잘못 보내볼까, 생각을 했지요.ㅋ 물론 에미는 진짜로(!) 잘못 보낸 이메일 인연으로 엮인 것이지만, 세상엔 우연을 가장한 인연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는데 혼자 끙끙 앓고 있느니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덤비고 봐야지요. 문제는 그런 사람이 평생에 몇 안 된다는 게 문제이지만도! 그러니 짝사랑에 빠져 있는 분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찜(!) 해 놓은 분 확실히 잡아보는 것은 어떨지. 그럴 생각이면 일단 이 책들을 읽어보세요!^^  

 

이 책의 명성은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소개를 하는 것은 이런 인연이 우리 일상에서도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물론 소설은 소설이겠지만 이 떨림과 설렘과 긴장감을 어찌, 소설로만 느끼겠냐 말이다.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모른 척 시도해 봐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시작은 에미의 잘못된 이메일에서부터이다. 잡지 정기구독을 해지하려던 메일을 엉뚱한 사람에게 보내고 그 메일을 받은 그 엉뚱한 사람은 당연히 엉뚱한 메일이 왔으니 대꾸조차 안 한다. 대꾸없는 메일에 열받는 에미는 또 다시 메일을 보낸다. 나 같으면 그런 메일 두 번 오면 스팸처리 하고 말 텐데 인연이 되려고 했던 건지 레오는 그걸 다 읽어본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잘못된 메일이라는 걸 알려주지 않고 있다가 점점 공격적이 되어 가는 에미의 메일을 받고서야 답 메일을 보낸다. 

“AW: 
이메일을 잘못 보내셨습니다. 저는 그 잡지와는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제 메일 주소는(…) 저에게 구독을 취소하신 게 벌써 세 번쨉니다. 그 잡지가 정말 형편없어진 모양이군요.“

하지만 이런 답메일을 받았다고 인연을 만들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건 무모한 짓일 수 있다. 에미 역시 모르고 시작한 일이었으므로 정중히 사과를 하고 잊어버린다. 하지만 그 메일 주소를 고객 명단에 넣어둔 채 시간이 흐르고 바야흐로 성탄절, 모든 고객에게 보내는 이메일에 성탄 축하의 메일을 보낸 것. 그 메일에 이 잘못된 메일의 주소가 있음은 당연한 거다. 이미 잘못된 메일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레오로선 당근, 흥미당기는 일이나 역시 쿨한 그들이라 서로의 복된 새해를 축하하고 잊어버린다. 하지만 에미, 에미, 에미! 이 정신 없는 아줌마는 또 하나의 메일을 레오에게 보낸다. 38일이 지난 뒤,
 

“제목 : 단 한 푼도!
존경하는 <라이크>지 발행인님.
저는 서면으로 세 번. 전화로 두 번(미스 한이라는 여자가 전화를 받더군요) 그 잡지를 더는 보지 않겠다고 알렸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저에게 잡지를 보내신다면. 그건 발행인님의 자기 만족을 위해서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쯤되면 레오도 의심스러워진다. 이 여자가 지금 일부러 이러나? 궁금해지니 확인할 수밖에 없다.

“AW:
친해하는 에미 로트너씨. 일부러 이러시는 겁니까? 아니면 혹시 아직도 볼행한 날들을 정기 구독하고 계시나요? 레오 라이케.“

자, 이정도면 이제 둘은 엮일 일만 남았다. 알고 시작했다면 이런 메일을 주고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글이란 모름지기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특히나 메일이나 편지와 같은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쓰는 글이란 꼬리 잡고 늘어지기엔 딱 좋은 거다. 물론 그들이 꼬리를 잡을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메일로 따지다보니 꼬리를 잡게 되는 거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메일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우연이 인연이 된 셈이다. 그저 메일 친구나 해야지 하다가 자신의 사적인 이야길 털어 놓게 되고(얼굴을 마주 하지 않고 상대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내 고민이나 화가 나는 일 같은 걸 털어놓기는 안성맞춤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애정이 생겨버렸다. 만약 그들이 동성이었으면 그랬을까? 뭐 이런 어거지는 이 아름다고 행복한 소설에 태클 거는 일밖에 되지 않으니 참으련다. 아무튼 남녀가 만나면 호기심이 생기는 거고 얼굴 한번 마주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상대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만나보고 싶고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 누구나 다 가진다. 그렇다면 만나고 나면 개운해질까? 마음속에 그렸던, 글로만 봤을 땐 내 이상형이었을 것만 같은 그 남자가 현실에서도 그러할까? 소설 같은 이야기다. 아니 100쌍 중 한 쌍은 그럴 수도 있겠다. 

암튼, 이 소설의 끝은 독자들의 마음을 있는 대로 헤집어놓고 끝나버린다. 뭐야? 이게! 에미 만큼이나 열 받는다. 독자들. 이러면 안 돼지! 이건 소설가로서의 예의가 아니다. 운운하며 기다리기를 몇 달(작가는 그대로 끝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소설을 자신의 이야기처럼 읽던 독자들은 해피엔딩을 원했다. 뭔가 명확한 결말을 원했다. 작가는 졌다. 독자들에게!) 마침내 돌아왔다. 레오가!

일곱번째 파도』, 의미심장한 이 제목은 비슷하게 밀려드는 여섯 번의 파도처럼 방심하고 있다가 맞게 되는 일곱 번째의 파도를 의미한다. 예측할 수 없었던 위험한 파도이다. 일순간에 쓸려갈 수도 있는 그런 파도.

에미와 레오는 재회한다. 시간상으론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그 둘의 만남은 다시 시작이다. 비꼬는 듯, 이해하는 듯, 원망하는 듯 시작된 그들의 만남. 이젠 전처럼 그냥 지나가게 할 수는 없는 거다. 다시 만난 그들은 이제 실체가 궁금해진다. 만날까? 말까? 지난번처럼 망설이지도 않는다. 한번의 아픔이 있으면 누구나 용감해질 수 있다. 왜냐, 이젠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 다시 그런 아픔을 겪기는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야기는 통속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혹은 소설에서도 늘 보았듯이 남녀란 그런 것이니. 쿨한 척하지만 밀고 당기고 감추고 내보이고 어김없는 사랑이다. 다만 그 문체만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둘은 그렇게 헤어진 채로 만나지 말았어야 했나? 작가는 속편(!) 따윈 쓰지 말았어야 했을까?

읽는 사람의 마음이다. 감정이다. 둘이 다시 만나 통속적인 사랑을 하든 혹은 두 번 다시 안 볼 사이가 되든. 혹은 해피엔딩이 되어 전편에서 애끓었던 독자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어주던 간에 말이다. 하지만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는 이 시점에 쓸쓸한 가을이, 바람나기 딱 좋은 그런 가을이 눈앞에 와 있는데 해피엔딩이 아닌 사랑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통속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가슴 따뜻! 대리 만족으로 인한 행복 바이러스 만땅! 

단, 이 책은 꼭 연이어 같이 읽어보길 바랄 뿐이다. 또 거꾸로는 절대로!!! 네버!! 읽지 말길!!^^ 

 

덧: 
길어졌어요. 제가 하고자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었답니다. 가을이 오기 전에 사랑 한번 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메일이든 문자든 한번 보내보라고 말하고 싶었다고요. 우연을 가장한 인연을 가을이 가기 전에 만들어 따뜻한 겨울을 보내라고 하고 싶었는데… 항상 삼천포로 빠져버립니다. 어쨌든 내가 버스에서 생각해낸 팁은 이거였어요. 맘에 드는 남자의 전번을 구한다. 뜬금없는 문자를 보낸다. 내 전번은 절대로 찍지 않는다. 심심하면 한번씩 보낸다. 한 달 정도 하다가 뚝! 그만 둔다. 그리고 어느 날 나를 밝힌다.ㅋ 하지만 이런 행동은 에미처럼 인연을 만들기 보다는 자칫하면 [스팸]으로 처리되어 웃기는 상황이 발생될 수 있는 단점이 있다는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예요. 그게 뭐냐구요? 아하하;; 사랑하세요. 가을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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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9-09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마구 메일을 보내고 싶었어요...근데 좀 뻘쭘해서 못하겠더라구요...더구나 아저씨가 그러면...아름답다기 보다는 뭔가 음침해 보일듯해서요.. --;

readersu 2009-09-09 18:51   좋아요 0 | URL
훔..아저씨라면..쫌;;;그렇죠. 음침..ㅎㅎ
 

 어제 문득 친구의 구매리스트를 보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습니다. 제가 한동안 요리에 살짝 올인하여 뭐든 맛있는 것만 먹으면 집에 와서 제 식으로 만들어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땐 제가 요리사가 안 된 걸 후회하기도 했었죠. 간혹 친구들이 왔을 때 국적을 알 수 없는 요리를 만들어 먹였는데 다들 맛있다고 치켜세우는 바람에 그렇게 믿었던 거랍니다. 하긴 오래 전에 동생들에게 떡볶이나 라면을 끓여주면 정말! 맛있다고 분식집 차리라는 소릴 듣긴 했었어요.ㅋ 지금 생각하니 동생들이나 친구들 모두 맛없다고 하면 다시는 안 해 줄 것 같으니까 침 발린 말을 해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뭐 칭찬엔 고래도 춤을 춘다니 혼자 착각하더라도 좋은 말이거니 하고 있습니다.  

암튼, 그렇게 요리를 좋아하던 제가 요즘은 바쁘다는 이유로 집에서 밥 해먹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간혹 요리책을 보거나 맛있는 요릴 먹으면 집에 가서 만들어 볼 궁리를 하죠. 그래서일까요? 요리와 관련된 책을 보면 일단 관심이 갑니다. 더구나 그 책들이 여행을 하면서 먹어본 혹은 만들어본 그 나라의 요리이거나 책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레 요리를 집어넣은 책이거나 하면 무조건 관심1호 대상이 되는 거죠. 어제 친구의 리스트에서 그런 구미 당기는 책을 봤어요. 같이 묶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최근에 나온 제 관심을 받은 두 권의 책을 소개하렵니다. 한 권은 구입을 해서 읽은 책이고, 한 권은 친구의 글로만 만난 책인데 미리보기를 해 보니 스케치가 되어 있어 또 스케치 좋아하는 제가 혹! 하게끔. 그래도 구입을 하기 전엔 항상 실물을 확인해야겠지만요. 아, 책 소개하며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럼, 두 권의 요리(!) 책입니다.  

 

<채널예스>에서 연재를 했던 것 같아요. 인터넷으로 연재를 하는 글들을 잘 읽지 읽는 저로서는 들어가서 읽어본 적이 한번도 없지만^^;; 제목은  본 기억이 나더군요. 저자는 푸드칼럼니스트이자 전문요리사라고 합니다. 그런 저자가 책을 읽으며 책 속에 나온 요리를 키워드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냈어요. 전 이제 하나의 이야기를 읽었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드랜드』, 이 책을 저도 오래 전에 읽은 것 같은데 도통 생각이 안 나더라구요. 하루키야 요리를 즐길 정도로 요리 마니아이고 그의 작품 곳곳에서 요리를 소개하는 작가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지요.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서 한번도 그 요리들을 눈여겨보질 않았네요.  

저자는 하루키를 좋아하는 모임에서 닉네임을 이 책에 나오는 '손녀딸'로 정했다고 합니다. 책 제목에 나오는 '손녀딸'이 저자의 닉네임인 셈이죠.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드랜드』에는 굉장히 수많은 음식 이야기가 나온다고 손녀딸은 말합니다. "미소 된장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소시지를 구워 위 확장증인 도서관 사서와 나눠 먹거나 ‘손녀딸’과 ‘나’가 같이 사먹는 치즈 버거, 그리고 의식이 소멸되기 전에 도서관 그녀와 함께 먹는 무시무시한 양의 이탈리아 요리들, 그리고 맥주.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요리는 뭐니뭐니해도 바로, ‘손녀딸’이 ‘노박사’를 도와 브레인 워시를 하는 ‘나’를 위해 만든 샌드위치다. 손녀딸은 다른 요리도 곧잘 하지만 샌드위치만큼은 누구보다 잘 만드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자르기 위해서는 아주 잘 드는 칼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은 1988년 작 『댄스 댄스 댄스』의 샌드위치를 아주 잘 만드는 외팔이 시인, 딕 노스의 입으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재료의 신선함과 맛을 내기 위한 비율, 게다가 잘 드는 칼을 이용해 말끔하게 썰어내기까지 해야 하는 샌드위치는 결코, 쉬운 요리가 아니다. 쉽게 쓱쓱 만들어낼 순 있지만 제 맛을 내긴 힘들며 내용물이 흐트러지지 않고 빵의 가장자리가 회처럼 깨끗이 잘려야 완벽에 가까운 샌드위치가 완성되는 것이다." 와우! 저도 요리에 관심이 많긴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나니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책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누군가 그 책을 읽고 호감이 가는 문장을 발견하고 꼬리를 물어 다른 책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분명 나쁜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책에 대해 말하는 책들 중에서 말이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제게 또 다른 많은 책을 추천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마다 하나씩 읽을 생각으로 침대 옆에 두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나오는 요리 레시피가 어째, 잠들 밤에 식욕을 돋우어서 고민 중입니다.ㅠㅠ 

 

또 다른 한 권의 책은 바로 이 책입니다. 제가 어제 친구의 구매 리스트에서 본 책이죠. 제목에서 부터 뭔가 호기심을 일으키는데 제목보다 더 궁금증이 난 것은 표지였던 것 같아요. 다른 책과 다르게 세로(?)로 된 제목과 그림, 그리고 뒷표지를 꺼내 앞을 감싸면 바로 주소 적어 누군가에게 선물로 보낼 수 있는 독특한 북커버때문이에요. 미리보기를 통해 속을 보니 와우! 제가 좋아하는 스케치로 레시피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사진작가이자 스페인요리 전문가라는 저자의 아름다운 사진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페이지 수도 적고 가격도 나쁘지 않아 오프에서 확인하지말고 그냥 사 버릴까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친구가 다 읽고 느낌을 받기까지 기다리기가 성격 급한 저로서는 지치기도 하고.ㅎㅎ 

책소개를 보면 스페인에서 만난 스승(?)에게 안달루시아의 요리 비법을 받아와 책으로 엮어냈다고 합니다. 그 사이 사이에 사진작가인 저자가 찍은 아름다운 스페인의 사진과 그곳에서 보고 경험하고 느낀 점들을 적은 에세이들이 들어 있대요. 책소개만으로는 당장 구매하게끔 만든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목차를 살펴보니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들어 있어요. 빠에야와 샹그리아, 홍합과 가스파쵸! 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들일 것만 같은 예감이 마구 드네요. 

저자는 요리의 정의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장 좋은 끈'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여 맛있는 요리(대부분이 처음 시도하는 퓨전요리를 그들로 하여금 시식하게 하는 것이지만) 만들어 줌으로써 우리들 간에 놓여 있는 작은 벽들을 하나씩 허물었던 것 같아요. 그후로 좀 더 친밀해지고 공유할 부분이 생기고 좀 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런 점에서 요리에 대한 정의를 내린 저자의 말에 대공감이 갑니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 저자는 스페인 요리 전문 레스토랑을 개업했다고 하는데 홍대에 있는 '알바이신'을 찾아보니 허걱! 우리 동네네요. 문득 엊그제 친구가 스페인 요리 맛있다고 말한 집이 그 집이 아닌가 싶네요. 다음에 모임이 있으면 꼭 한번 가봐야겠다 싶어요.(책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맛집이 되어 버린^^;;;) 

요리 이야기를 재미있게 버무린 책이 비단 이 두 권의 책밖에 없는 것은 아닌데 신간 중에 제 취향에 맞을 것 같은 책으로 찜해보고 나니 이 두 권의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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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3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readersu 2009-09-03 14:22   좋아요 0 | URL
ㅋㅋ저도 하고 싶습니다. 연락 안 오나?? 연락을 해봐?ㅋㅋ 근데 이거라면 어떤 책??ㅎㅎ
 


영국 작가 로버트 스윈델스의 책을 읽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작가가 누군데? 할지도 모르겠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작가도 아니고 제목만 대면 알 만한 작품을 쓴 작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 작가를 운운하는 것은 그가 쓴 세 권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차례차례 번역이 되었고 그 작품이 나올 때마다 내가 읽었으며 읽고 나서는 조금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10대들을 위해 글을 쓰는 청소년 작가란다. 청소년 작가인데, 그가 쓴 작품들을 읽으면 이게 과연 청소년들을 위한 작품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와 영국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의 작품은 자극적이고 충격적이며 놀랍다. 소재도 그렇지만 스토리 역시 그렇다. 어쩌면 그렇기에 내 눈에 띄었고 신간이 나올 때마다 눈독 들여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작품인 <사라지는 아이들>에서 그는 가정 폭력에 못 이겨 가출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 소년은 가출하여 노숙자가 되었고 연쇄 살인범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1993년 로버트 스윈델스가 이 책을 펴냈을 당시 영국인들은 지금의 우리처럼 “가출 청소년과 홈리스 청소년들을 대하는 시선에는 냉대와 혐오만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진심으로 이해하려기보다는, 싸잡아 문제아라는 낙인을 찍어 비난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영국과 우리나라는 문화가 다를 것이라 지레 짐작을 했었는데 청소년들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나라가 따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소재를 다룬 작가의 소설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 책은 그해에 카네기 상을 수상했으므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에는 딱 좋았을 테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교훈적이거나 읽고 나면 어떤 깨달음을 받을 수 있는 소설들을 좋은 청소년 소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외였다. 가출 한 아이들의 현실이 너무나 비참하고 참혹하여 설마, 아니겠지 생각하며 외면하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노숙자가 된 가출 소년 링크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느끼는 감정들에서 청소년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누더기 앤>은 심각한 왕따를 당하던 마사가 그 왕따의 근본적인 원인이 부모의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강제로 훈육당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친구인 스콧을 만나 그동안 알지 못했던 실상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약간의 스릴러 형식의 소설로 로버트 스윈델스의 책 중에서 가장 긴장감을 준다. 이 책은 종교에 빠진 부모의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보통의 아이들처럼 자라지 못하는 마사를 통해 어린 아이일지라도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역시 청소년 소설로서 많은 부모들이 꼭 민감한 아이들에게 꼭 그런 부모를 보여줄 수 있느냐고 따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부모들이 책을 고름에 있어서도 아이가 악하거나 아이가 나쁜 짓을 저지르는 내용의 책들은 다들 기피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역시 착한 청소년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집안의 엄격한 규율과 혐오라는 비밀에 짓눌려 살아가던 딸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마사의 용기는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어린다는 이유로 당하고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작품인 <땅속에 묻힌 형제>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핵전쟁이 터지고 ‘운 좋게’ 살아남은 형제의 이야기다. 누구나 한번쯤은 핵폭발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길 들어봤을 것이다. 아니 영화로도 우린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살아남았다고 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상황. 그래서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말이다. 그럼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 나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이기심이 불러일으킨 엄청난 재난을 목격했다. 살아남은 자들 속에서 권력이 재등장하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나누어지며, 뺏고 뺏기며, 사람의 죽음을 개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세상. 단 하나의 희망조차도 품을 수 없게 만드는 상황들. 정녕 미래는 없는 것일까? 좌절하게 만들고 마는 그런 세상.
로버트 스윈델스는 핵전쟁으로 망가진 지구의 삶을 보여주면서 미래에 이 지구를 짊어질 아이들에게 핵전쟁이야말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핵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며, 또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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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atndud1400 2011-08-2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아갑니다 ㅎㅎ
 

 

몇 년 전에 출판편집자코스를 다닌 적이 있다. 책을 좋아하긴 했어도 다른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책하고 관련된 공부를 배우리라곤 상상조차 한 일이 없던 때였다. 스스로도 어리둥절하면서 다녔다. 한번도 출판 관련 일을 해보지 않았으니 아니, 구경조차도 하지 않았으니 배우는 과정 내내 열심히 헤맨 기억 또한  난다. 겨우 참고로 읽을 만한 책은 <편집자 분투기>가 다였고 나머지 추천해주는 책도 일본 책들이었다. 아무리 일본과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상황이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도움이 될 수는 없었다. 나처럼 뜬금없이 편집자 공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다들 나름대로 이해를 하면서 배웠겠지만 혼자 독학을 해야 하는 나에겐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럴 때 이런 책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이 책이 나온 것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부터 했다. 휴머니스트의 김학원 대표가 낸 이 책은 부제처럼 책 만드는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책이다. 편집과정을 이수했으나 편집하고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 터라 사실 구입할 생각이 없었는데 목차를 보니 살짝 호기심이 도졌다. 그래, 언젠가는 필요하게 될지도 몰라. 뭐 그런 생각도 좀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을 받고 일단 훑어보니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편집이 되어 있다. 이게 과연 실전에서 일을 하고 있는 편집자들에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특히 베테랑 편집자들은 콧방귀를 뀔 수도 있고. 하지만 나처럼 왕초보들은 우와! 이 책 한 권만 마스터하면 책 한 권 낼 수 있겠다!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참으로 대책없이 긍정적 반응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책이 오늘 내 손으로 들어왔다. 관심이 가는 책이었기에 빨리 읽어보고 싶은 마음 간절! 

 

보통의 책이 드디어 도착했다. 읽은 책은 별로 없으면서 책이 나오면 무조건적으로 사고보는 작가 중에 한 사람인 알랭 드 보통, 그가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말을 한단다. 책을 펼쳐보니 막, 읽어보고 싶어 읽어보고 싶어,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헤엄치고 다닌다. 표지도 맘에 들고 본문 속의 사진들도 마음에 든다. 이젠 문체와 글이 내 맘에 들면 성공작이다. 아직은 그의 소설밖에 읽은 책이 없어 에세이 형식의 이 글이 어떤 식으로 내게 와서 반응을 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부디 마음에 들기를 바라고 있다. 문득 든 생각은 이런 거다.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들은 감성적인(!) 면이 없다. 물론 그의 소설도 읽어보면 좀 그런 편이다. 근데도 그의 문체는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밑줄을 그어야 할 문장들이 많고 공감가는 글들이 많다. 또 그의 책제목을 보면 굉장히 인문학적이다. 옮긴이가 말을 했듯이 '기쁨과 슬픔'이란 단어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 제일 적절한 것이다. 근데 '일'이란 지극히 인문사회적(?) 단어를 사용하여 제목을 지은 것. 물론 옮긴이의 생각이 들어간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의 작품 <여행의 기술>도 그렇다. '여행'과 '기술'이라는 단어가 안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묘한 느낌을 준다. 해서 김연수 작가의 <여행할 권리>를 처음 봤을 때는 뭔가 안 어울릴 듯하면서 잘 어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도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란 제목이 떠오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거나말거나, 완전 기대를 하는 작품 중에 하나되겠다.

 

지난 번에 <순례자의 책>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소설 중 한 이야기가 바로 '사람 책'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때는 그 이야길 읽으면서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사람을 빌리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서 어떻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뒷부분에 설명이 나오고 그런 이야길 쓰게 된 동기도 나오지만 자세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던 거다. 그런던 차에 이 책에 관한 이야길 어렴풋이 들었다. <순례자의 책>에 나오던 '살아 있는 도서관'이 떠오른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지난 주 책이 도착했다. 책을 훑어보니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완전하게 이해가 되었다. 이 책은 진짜 '사람 책'이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편견을 없애 줄 책(사람)인 셈이다. 내가 만나볼 수 없었던 편견 저 너머의 사람들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매력적이다. 책이나 신문 사설에서나 접하든 사람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가졌던 편견들을 그들을 대출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면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우리가 몰랐던 지식을 얻듯이 그렇게.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 책들은 우리가 평소에 많은 편견을 가지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동성애자, 싱글맘, 우울증 환자, 아주 심한 채식주의자 등등. 그들이 그렇게 살게 된 이야기를 읽다보면 공감이 가면서 이해하게 된다. 살아 있는 도서관, 사람 책을 빌리는 도서관, 꽤 흥미롭다!! 또 문득 떠오른 생각!! 남의 이야기 잘 들어준다고 소문난 나는, 그곳에 가면 빌려야 할 책이 무진장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편견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한 사람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몇 권의 책을 읽는 것만큼의 황홀함이다."이란 편집자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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