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중학교 영어로 다시 읽는 세계명작 31
해리엣 비처 스토 지음 / 넥서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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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톰 아저씨의 오두막 집'(원제 : Uncle Tom's Cabin)은 어린 시절 읽어야 하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예쁘장하게 포장되어 팔리거나 어린이들을 위한 책 들 사이에서 찾기가 쉬운 책이다. 그러나 실상  어른들이 읽어야 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실제 이 책만큼 미국을 뒤흔든 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다시 집어든 것은 미국사책(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에서 설명된 것 처럼 이 책에 대한 파장때문이었다. 남북전쟁이 이 책 때문에 벌여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노예제를 반대하는 북부인들에게 도덕적 분노를 갖게 한 책이기 때문이다. 노예의 일상적인 삶에 대해 무지하던 북부인들에게 노예의 처참한 삶을 보여주었고 그들도 인간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부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링컨 또한 이 책의 저자 스토 부인을 만나서는 "이렇게 자그마한 여인이 그토록 큰 전쟁이 일어나게 한 책을 썼다는 거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21세기 미국의 노예제를 모르는 대한민국에서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이해하는 것은 힘들다. 단순히 착한 노예 톰과 착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들릴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미국의 노예제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책의 초반 배경이 되는 캔터키 주는 노예제를 실시하는 주였지만 북부주와 경계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예들의 삶이 비참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도 그래서 북부 사람들은 노예의 실상을 몰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뉴 올리언스로 대표되는 남부주는 노예들에게 죽음의 땅이었다. 혹독한 기후조건과 폭력속에서 가축보다도 못한 그들의 삶은 남부인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책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당시 노에제와 관련된 많은 사실들을 엿볼 수 있다. 노예시장에서 치아 등을 통해 그들의 건강상태를 파악했으며, 여자노예와 그 자식들은 함께 팔리고는 했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또한 노예들 간의 결혼이 일상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혼을 인정받지 못했다. 또한 '도망노예법'에 의해 도망노예를 숨겨주거나 도와준 자도 법의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이런 당시의 시대상황을 이 책을 통해 엿 볼 수 있다. (그런 이해를 위해서는 사전 지식이 필요한데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의 남북전쟁 전 상황과 살림지식총서 003 '자유의 여신상 : 마이너리티의 역사', 살림지식총서 004 '두 얼굴의 하나님 : 성서로 본 노예제'를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틀은 하나의 인간인 흑인노예와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얼핏 읽었을 때는 신앙서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신앙들 속에서도 흑인은 절대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노예소유주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얼핏 읽으면 이 책은 착한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 밖에 안 될 것이다. 소설적 매력또한 사실 떨어진다. 그렇지만 조금만 자세히 읽어보면 미국의 노예제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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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체성 : 10가지 코드로 미국을 말한다 살림지식총서 2
김형인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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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있어서 미국은 무엇일까? 시애틀에 들렀던 하루 한 초밥집에서 혼자 온 미국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되었다. 그는 부시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이었는데 한국은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다. 나의 대답은 절반은 미국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동경하고, 절반은 미국을 싫어한다고 대답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접근은 바로 이런 접근이 대세라고 생각한다. 물론 미국을 소재로 한 책들을 보면 미국에 대한 비판과 미국에 대한 맹종,찬양의 두가지로 귀결된다.

 사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미국을 좋게 평가하고 있는 책이다. 현재 미국이라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낸 요소들을 짚어낸 책이다. 물론 작은 책이라는 한계 때문에 심사숙고한 고찰은 부족하겠지만, 미국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의 미국이 존재하게 된 것은 이런 이런 긍정적인 요소들 때문이라고 읽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미국이라는 나라를 바라볼 때 고려해야 하는 것들을 조목 조목 잘 짚어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기 위한 문화코드로

 1.  개인주의 - 다수의 횡포에 대한 견제

 2.  자유의 예찬 - 미국인의 원초적 생존 방식

 3.  평등주의 - 보통 사람의 나라

 4.  법치주의

 5.  다문화주의

 6.  청교도정신 - 충성 서약과 악의 축

 7.  서부 개척정신

 8.  실용주의

 9.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

 10. 미래지향성과 직설적 표현

의 10가지를 들고 있다. 실제로 미국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요소인데 어떤 면에서 이는 서로 연관이 되어 있다. 애초 미국은 여러 이유들로 몰려온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이다. 박해와 가난을 떠나 찾아온 이들은 생존을 위해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자유를 찬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뜨내기들끼리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하기에 다문화주의가 녹아나게 되었다. 이에 서로간의 권리르 ㄹ보호하기 위해 법치주의가 자리잡고 명분보다는 실용주의와 직설적 표현의 문화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또한 지독한 편견의 모습을 보이는 청교도 정신이 아직도 살아있는 나라이다. 

 물론 부정적인 요소도 많다. 다문화성은 아직도 진행중인 경우이다. 불과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불경하게 여겨졌던 토마토 소스가 미국의 하나의 음식문화가 되었던 것 처럼 불과 2-30여년 전 냄새나는 불결한 음식 김치가 이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그러나 먼저 온 이민자들이 뒤 이은 이민자들에게 가한 공격들을 보면 다문화성이라는 것이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청교도 정신으로 건전한 미국식 삶을 유도하였지만 이면에는 국가 파시즘적인 국가에 대한 충성맹세를 강요하고 있고, 1920년대에는 금주법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겉으로는 미국에 대해 긍정적인 것들만 나열한 것 처럼 보이는 이 책은 사실 가볍게 많은 부정적인 면들도 짚어가고 있다. 이민자 이야기 이외에도 서부 개척정신 시절의 카우보이들에 대한 환상과 인디언들의 불행을 짚어내고 있고, 각 나라 이민사의 아픈 기억을 들춰내고 있기에 미국을 이해하는 단초로 삼기에 좋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미국을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지만, 미국에 대해 다양하게 이해하고 싶고 미국에 대한 관심을 넓히기 위한 독자들에게는 이 책을 바탕으로 좀 더 깊은 독서의 배경을 깔아줄 좋은 책으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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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
이서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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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취약과목은 영어이다. 대학입시에서도 다른 과목에 비해 영어점수가 형편이 없었고, 취업을 할 때도 거의 바닥이나 다름없는 토익점수에도 꿋꿋하게 지냈었다. 그런 배경에는 나름대로의 영어 학습에 대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신념대로 영어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읽게 되었는데 언어에 대한 접근법이 백프로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언어는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 나라 혹은 언어권에 대한 역사, 문화적 배경과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언어에 대한 역사, 문화적 배경이 병행되어야 그 언어에 대해 풍부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 언어권을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풍성한 감정을 갖기는 어려우니까 말이다. 그래서 역사 문화에 관심을 두려고 하고는 있지만 매일 한걸음을 체 못 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 이서규는 행복한 사람이다. 물론 그의 삶이 평탄하지 않았고, 삶에 대한 도전속에 부딪혀가며 얻은 외국어이다. 

 지은이는 먼저 언어는 삶의 흔적(역사, 문화)을 담아내고 있는 유기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실제 언어생활이 우리가 배우는 공식들처럼 딱 부러지는 교과서에서 나오는 언어가 아니라는 점을 짚어낸다. 즉 단어 하나하나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고, 감정이 있는 것이다. 또한 지은이는 소리 즉 듣기 공부에서 나타나는 오류들을 이야기하면서 언어는 monologue가 아닌 쌍방의 dialogue임을 주지시킨다. 그래서 사실 지은이가 제시하는 공부법은 점수따기 영어공부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반면 입체적인 외국어 공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어를 통한 풍성한 생활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휴식시간을 갖고자 미국에 잠시 체류하는 동안 어학교에 다녔었다. 워낙에 영어감각이 없는지라 나의 영어실력은 형편이 없었다. 그러나 종종 선생들은 나의 영어를 훌륭하다고 말하곤 했다. 물론 나의 회화실력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형편없지만 다양한 어휘를 구사하려고 노력하고 종종 딱 들어맞는 단어들을 쓴다는 것이었다. 이는 아마도 지은이가 말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외국어를 접근했기 때문인 것 같다.

 다른 영어를 소재로 한 책들이 대체로 영어 학습법이 잘못되어 있다고 비판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학습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실상 영어를 공부하는 동일한 틀 속에 놓였다는 점에서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실제 영어학습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단지 영어도 외국어라는 점에서 공부해야 하는 방법과 실제 외국어를 익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토익점수만을 올리기를 원하고 사회에서 원하는 점수 위주의 영어만을 원하는 사람에게 지은이의 방법은 무용지물일 것이다. 그러나 언어에 대한 관심속에서 보다 풍성한 외국어를 구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제시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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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살림지식총서 4
김형인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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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국교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에는 국교는 없다. 다만 불교를 제1종교로 보는 통계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기독교를 제1종교로 보는 통계치들이 훨씬 더 많다. 통계치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그러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회도덕, 윤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지나칠 만큼 무신경하다는 점이다.

  김형인의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 성서로 본 노예제'는 특별한 책이다. 보기 드물게 기독교가 노예제에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이 책은 기독교 내부에서 노예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독교내부에는 이 문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세계 여러나라에서는 종교가 사회적 문제나 윤리적 문제에 간여를 한다. 낙태의 문제 혹은 빈민의 문제 등. 과연 미국의 기독교는 노예제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미국의 노예제에 있어서 정치·사회적 맥락과 더불어 기독교 또한 사상적 배경이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성경을 두고 심각한 대립을 이루기까지 했다. 

  퀘이커교도들이나 메노파에서는 노예제를 강하게 부정하였다. 노예매매방지를 위해 힘썼으며 정치적인 입장 표현 또한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교파는 기독교계에서 바깥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력이 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개신교(침례교, 감리교, 장로교)의 입장은 분명하게 갈리었고, 장로교에 경우 남장로교의 경우 성경의 해석을 들어 노예제를 두둔하고 나섰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애초 성경은 노예제를 긍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흑인들은 저주받은 함의 자손들로 셈과 야벳족의 노예가 되었음을 예를 들었고, 아브라함의 이주시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점 등  많은 구약의 구절들에서 노예제의 근거를 찾아내었다. 또한  신약에서도 종들의 복종의 의무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을 (사도 바울 또한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께 복종할 것을 말하는 장면 등) 성경이 노예제를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노예제를 반대하는 개신교에서는 성경의 구체적 사례보다는 성경 전체에서 일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의견과 신약의 황금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누가복음 6:31)을 들어 노예제는 비성경적임을 주장하였다.

  이런 논쟁들 속에 노예들의 생활속에서 기독교는 나름의 역할을 하였다. 일요일이면 교회를 통해 예배의식에 동참할 수 있었고(물론 예배속에서도 분리되었지만) 나름의 휴일을 얻을 수 있었다. 때로 선한 목회자들에 의지를 할 수 있었던 측면과 몇 몇 흑인 운동가들은 교회를 통해 성장하거나 기독교적 배경을 노예해방운동에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가하면 기독교의 이중적인 태도를 볼 수 있는데 결혼식 주례때 목회자들이 항상 사용하는 '이에 두사람은 하나님의 뜻으로 결합되었으니 결코 인간의 힘으로 분리할 수 없다'라는 말을 생략하였다. 

  요즘 들어서는 미국의 노예제를 정치·사회적인 측면보다는 경제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수정주의 관점이 대두되고는 있지만, 당시 노예제의 거센 논쟁을 기독교 또한 빗겨나갈 수 없었고, 각자 노예제를 반대하는 혹은 찬성하는 입장을 뒷받침해주는 두 얼굴을 가졌다. 같은 성경과 같은 하나님앞에서 그들은 각자의 입장에 맞게 하나님의 뜻임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의 이런 논쟁은 단순히 노예제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라고 생각된다. 여성차별과 관련하여 한국의 기독교는 여전히 여성차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성 목회자에 대해 어떤 남성 목회자는 '어떻게 기저귀를 찾고 하나님의 제단에 오를수 있느냐?'며 심각한 여성 차별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성 차별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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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역사 : 혹은 자유의 여신상 살림지식총서 3
손영호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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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국가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혈연과 지연이 아니라 이념에 의해 창설된 최초의 국가가라는 것이다. 독립선언서에 담고 있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 추구의 권리가 바로 미국의 건국 이념인 것이다. 미국은 또한 '이민의 나라'로서 세계 각처에서 다른 피부색과 국적, 여러 이질적인 종교와 문화를 가진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책 5쪽)

 

 저자 손호영은 미국의 대표적인 상징의 하나인 '자유의 여신상'을 소재로 미국 비주류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훑어보고 있다. 저자가 책 앞부분에서 잘 지적하 것 처럼 미국은 자유라는 이념이 기반이 된 나라이다. 그런 이념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자유의 여신상이다. 그런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지기까지 순탄하지 않은 과정과 여러 다른 의미 (미국의 부정적인 반응, 프랑스 정치상황의 반영, 애초 흑인으로 스케치된 여성상이 백인으로 바뀌는 등)를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미국을 상징하게 되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근간이 되는 이민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목숨을 건 희망없는 이민자들이 자유의 여신상을 볼 때 그것은 미국 땅에 도착했다는 것, 희망이 보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이민자들의 희망을 의미했다. 자유의 여신상을 지척에 둔 엘리아스 섬에서 이민수속을 밟고 그들에게는 미국 땅을 밟는 영광이 허락된 것이다.

 

 그런 영광을 얻는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개척할 땅이 많았던 미국은 계속된 이민자들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는 임금노동자로 살아가는 초기 이민자들에게는 위협이 되는 상황이었다. 초기 이민자들이 이후 이민자들을 박해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이런 현상이 이민사 전체를 통해 일어나는 현상이었는데 단순히 임금노동자들의 생존권문제로만 대두된 것이 아니라 여러 인종, 정치적인 상황들이 복잡하게 엮이면서 사회적, 법률적 박해로까지 이루어졌다.

 

 현재 미국의 중심세력을 일컫는 WASP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 처럼 기근을 피해 이민온 아일랜드인에 대해서는 카톨릭이기에 심한 박해를 하였다. 많은 상점들이 '개와 아일랜드인 출입금지' 등의 간판을 내밀었다. 이후 이민사를 장식한 남부유럽인들(이탈리아, 그리스 등)에 대해서는 앵글로 색슨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하였고 영어시험을 통해 이민을 허가하면서 서부 유럽인들외의 유럽인들에 대한 제제를 시작하였다. 유태인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시아인들 역시 얼굴색이 다른 이유로 박해의 희생자가 되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자유의 여신상은 분명 비주류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19세기 노예해방으로 흑인의 문제가 해결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 내재하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철폐된 것은 1964년 민권법안이 통과되면서 부터이다. 분리하되 평등이라는 기치를 내걸로 생활속에서의 차별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지속되었다. 여성의 권리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부끄럽게도 미국의 여성의 권리는 1963년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임금과 보장받는 '동등 지불법'이 통과되면서 부터 본격화되었고 금녀의 상징이던 대학은 1969년 프린스턴, 예일 대학을 선두로 대부분의 대학이 여성의 입학을 허용하였다. 20세기 중반이 넘도록 미국의 대학은 여성에게는 굳게 닫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계급사회였던 서구 유럽과는 달리 일찌감치 자유와 평등을 구현하던 나라로 평가받는 미국이었다는 점에서 등돌린 자유의 여신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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