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공화국 세단어로 나라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지금 다시, 헌법>에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1919년 대한제국이라는 국호에서 나왔음을 밝힌다. 당연히 여기고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말은 여러가지가 있다. 조선, 고려, 한. 고조선, 조선은 모두 조선을 의미하고, 조선일보 역시 조선을 신문의 이름으로 사용한다. 고구려, 고려의 고려는 대한민국의 영문명으로 사용된다. 한은 예전 마한, 진한, 변한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니 세가지 모두 혼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민주공화국은 생각할 거리가 많다. 

<지금 다시, 헌법>에는 민주주의와 공화국이 현실적으로 동일하게 쓰인다고 가볍게 넘어가지만, <헌법의 발견>에서는 공화국이 갖는 특별한 의미를 설명한다. 왜냐면 고대 로마는 공화정이었지만, 민주주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화국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먼지 ‘공 '을 이해해야 한 다. 이 개념은 공적 영역과사적 영역의 구분을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하자면 공화국은  사적요소가 공적 영역으로서의 정치를 좌우하지 않는 체제다. 따라서 가족이나 개인의 생계를 위한 활동과 국가 활동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16쪽)


국가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인간은 두 가지 질서에 속한다. 자신의 것과 공동의 것이다. 우리는 이 둘 사이를구분하고, 두 개의 질서는 자주 뒤섞인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자연적 결사체에 대한 이해와 정치적 결사체에 대한 이해 사이의 간섭이다. 권력 형성을 둘러싼 간섭은 일차적으로 사적인 부와 지위를 그대로 공적 질서로 연장하려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이어서 공적 질서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확대한다. 


공화정은 두가지 간섭 모두를 제거하거나 최소화하려는 문제의식과 관련을 맺는다  (20쪽, 헌법의 발견)


이 부분을 읽으면서 '순실공화국'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박ㄹ혜정부는 목적이 박ㄹ혜가 되었던지, 최순실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철저히 최순실이라는 사적 이익에 충실했다. 공화국이라는 말이 맞지 않지만서도..


프랑스대혁명을 분기점으로 탄생한 근대 공화국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라는 고대 이후의 공화 정신을 계승하였다. 이때 무엇보다도 중세 1,000년 동안 공적 영역을 잠식해버린 거대한 사적 영역, 그리고 근 대에 접어들어 새롭게 부상한 강력한 사적 영역을 떼어내는 일이 중요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종교, 신분제, 재산 등이었다. (23쪽)


그렇다면 현대 국가에 와서는 공화국의 핵심 원리인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는 문제 해결됐는가? 이제 우리는 적인 특권에 의해서도 침해받지 않는 공화국의 품 안에 살고 있는살고 있는기? 과연 국가 구성과 운영에서 사적인 특권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 는가? 
우리는 역사의 변화에 따라 종류가 바뀌었을 뿐 공화국이군 헌법규 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특권이 공적 영역을 좌우한다고느낀다.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재산을 근거로 한 특권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대부분의 특권은 돈으로부터 나온다 
..
현대사회에서 재산 다음으로 공적 영역을 위협하는 것은 기술 관료다 현대 국가 대한 체제를 구축하는 동안 각 분야에는 거미줄처럼 촘촘 한 관료제가 자리 잡았다. 기술 관료 자체는 개인의 직업이자 경제활동이 라는 점에서 사적 영역이다. 하지만 국가의 일이 세분화되고 각 분야와 절 차마다 칸막이가 생기자 기술 관료의 힘이 막강해졌다. 사회 구성원에 의 해 선출된 극소수의 사람이 최종 책임자로서 정책적, 행정적 결정을 하지만 실제로는 기술 관료에 의존하고 이들이 고안한 계획에 도장을 찍는 역 할인 경우가 많다. (31-32쪽, 헌법의 발견)


최근 박ㄹ혜 게이트, 최순실 사태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지 의심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공화국의 근간을 의심케 하는 자본과 기술관료. 사법부와 행정부가 보여주는 기술관료의 모습은 공화제라기 보다는 관료독재에 가깝다. 게다가 자본과 결탁한 기술관료의 행태는 우리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과 같다. 


그리고 생각해봐야 할 것은 우리나라는 너무 국가를 앞에 둔다는 것이다. 뒤에 국민이라는 단어에서도 지적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헌법의 시작을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국가 이름과 성격으로 시작하면 왠지 국민보다 국가를 중시하는 느낌을 줄수있기 때문이다. 헌법의 주인이 국가가 아니고 국민이라면 국민 또는 인간에 관한 규정을 제1조로 삼을 수도 있다. 독일의 헌법은 보통 기본법이라고 번역하는데, 제1조는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할 수 없다. 그것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라고 하고 있다. 네덜란 드 헌법도 이렇게 시작한다. “네덜란드의 모든 국민은 평등한 환경에 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31-32쪽, 지금다시 헌법)


이런 상황, 그리고 국민이라는 단어가 사람들 위에 국가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체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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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김민철의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을 들었다가, 작가가 박웅현의 TBWA 광고회사 소속이라는 것을 알고 TBWA로 연결된 주제읽기를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폭탄이다>를 읽다가 강창래의 <재능의 창의성이라는 유령을 찾아서>까지 연결하였고.


 


연말에는 큐슈에 잠깐 다녀오며 몇 권의 책을 읽었다. 여행서에 대한 간략평 - 어떤 점에서 유용하고, 불편한지- 남기려고 하는데,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와 <나의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 규슈>는 단권으로도 훌륭한 책들이고. 


 지금은 법이라는 주제로 책을 읽고 있다. <헌법의 발견>과 <지금다시, 헌법>을 같이 읽고 있는데, 다음 책은 아직 유동적이다. (심용환의 <헌법의 상상력>이라는 책이 2월 중순 출간예정이다.) 


<헌법의 발견>은 헌법의 의미있는 조문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적 성찰을 하고 있고, <지금 다시, 헌법>은 헌법 조문 하나하나에 대한 법 전문가의 설명이 담겨 있다. 


법이라는 것이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었는지를 보여주는<법의 지도>를 읽고, 한홍구가 연재했던 사법부의 역사를 다룬 <사법부>를 읽는 정도를 생각중이다. 


 밀려있는 책들은 또 언제 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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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의나 할까? - 아이디어가 진화하는 회의의 기술
김민철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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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다른 책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기록 : 여행>을 읽는 김에 같이 읽게 된 책인데, 책을 고르면서 상당히 흥미로웠다. 일단 출판사가 과학책을 전문으로 펴내는 사이언스북스다. 게다가 추천사는 진화학자 장대익 교수가 썼다.

 

장대익 교수는 광고라는 밈Meme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험하기 위해 회의에 참관한다. 그가 말하는 TWBA의 회의는 박웅현 팀장이 화두는 던지지만, 그가 회의를 주도한다는 느낌은 없었다고 한다. 회의가 어떻고, 회의시간을 꼭 지켜야 하고, 회의는 1시간 이내로 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평등함이 아닐까. 일반 기업에서의 회의는 무턱대고 회의만 소집하는 사람, 혼자만 잉기하는 리더 아니면 다른 의견이 나오면 얼굴 붉히는 리더만 있지 않은가.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가 회의에 대해서 명확하게 아는 것은 있다. 회의만큼 기적적인 순간은 없다는 것. 회의실에 들어올 때는 빈손일지라도 나갈 때는 빈손일 수 없다는 것. 집중해서 하는 회의 한 시간은 혼자 아이디어를 내는 스물네 시간보다 가치 있다 는 것. 그만큼 회의 시간에 일어나는 사람들 간의 화학 작용은 중요 하다는 것. 회의만 효율적으로 잘 해도 일은 반 이상으로 줄어든다 는 것. 회의의 위대함에 대해 말을 하자면 끝이 없다. 


물론 모든 회의가 다 성공적일 수는 없다 회의에도 흐름이 있고, 물살이 있다 잘못된 조류에 휩쓸려 낯선 곳을 한참이나 헤매기도 하고, 좌절하고 술이나 마시게 되는 밤이 생기기도 하고, 그러는 와중에 누군가는 오솔길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길로 모두를 인솔하 기도 하고, 그렇게 겨우 도착한 곳이 원래 서 있던 곳임을 발견하기도 하고, 다 포기하려는 순간에 갑자기 눈앞에 탄탄대로가 보이기도 하고, 그 길로 따라가다 엄청난 대어를 낚기도 하고, 결국 실패하고 각자의 머리를 쥐어박기도 한다. 인생이 원래 다 그런거니까. (18쪽)

 

<우리 회의나 할까?>는 TBWA의 주요한 네개의 광고가 나오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 바탕에는 저자의 꼼꼼한 회의록이 있다. 회의중 막히는 경우가 있다면 특정한 날 회의록을 토대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물론 회의과정을 보면 박웅현 팀장의 역할이 상당해 보이지만, 저자와 장대익 교수의 추선사를 보면 방향을 다시 잡아주는 역할에 충실했던 것 같다. 다만, 인상적인 것은 막내라 할지라도 방향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 의견을 개진하게 해준다는 것, 한명이라도 동의하지 않는다면 회의를 통해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은 배울 점이다. 

 

(성공한 사례만 다뤄서 그러지 않을까라는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추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회의록 작성이 어려운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볼만하고(일반 회사에서 이렇게 썼다가는 혼날수도 있다. 일반회사 회의록은 또 하나의 보고서이고, 때로는 상관이 자기는 그런말 한적 없다고 하기도 한다.), 광고회사의 회의는 어떻게 되나 알고 싶으면 읽을 만 하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거론되는 사례들이 조금 시간이 지난 광고라 마음에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것은 TBWA가 독립적인 광고회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모두 광고회사를 계열사로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적인 광고회사가 광고수주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과는 다른 위계질서가 덜 할 수도 있다. 특히 회의에서는. 그러나 독립적이기 때문에 수익에 대한 압박이 더 심할 것이다.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야 주기적으로 계열사 광고가 들어올 테지만 TBWA는 광고 수주를 못하면 바로 수입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또 다시) 그럼에도 이 회의가 의미있는 것은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회의 궁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참고로 광고회사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쯤에서 광고 만들기에 대해 설명하자면, 광고 만들기는 오케 스트라 연주와 같은 것이다 맨 처음 광고주가 광고 회사AE를 불러 오리엔테이션을 한다. 회사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 로 나아갔으면 좋겠는지, 어떤 목적의 광고가 필요한지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 한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AE들은 회사로 돌아와 프로젝트에 필요한 팀을 꾸린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광고주에 관한 자료를 찾고 분석하여 방향을 잡은 뒤 AE 들은 PT에 참여할 여러 팀을 만나 오리엔테이션을 해준다. 그중 한 팀이 제작팀이다. 제작팀에는 카피라이터와 아트디렉터 그리고 팀장인 CD가 있다. 그들은 AE들의 오리엔테이션 내용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AE들과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에선 카피를 쓰고 이미지를 만든다. 인터렉티브팀은 프로모션 아이디어부터 인터넷 광고까지 외부 환경에서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효과적인 접점에 관한 아이디어를 낸다. 매체팀은 타겟에 맞는 매체를 중심으로 어떤 채널에 언제 광 고를 내보낼지, 얼마의 돈을 분배할 것인지 전략을 짠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AE들이 진두지휘를 하며 하나의 선율로 만들어 낸다. 마침내 광고의 완성이다. (21쪽)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다른 주제인데, 연휴에 임시저장 해 둔 후기들을 꺼내 서둘러 완성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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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여행 - 낯선 공간을 탐닉하는 카피라이터의 기록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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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인줄 알았던 카피라이터 김민철의 책 중에 두번째로 읽은 책이다. 전작 <모든 요일의 기록> 보다 여행에 집중한다.

무턱대로 움직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곳을 기록하기도 한다. 뭐 좀 시니컬하게 말하면 누구나 다 자신만의 여행기가 있고, 이 책은 그 카피라이터의 하나의 여행기일 뿐이다. 공감하거나, 공감하지 않거나.

 

 

남의 여행은 남의 떡이다. 언제나 더 커 보이고, 언제나 윤기가 흐른다 흠집은 좀처럼 찾아지지 않고, 부러운 행운만 넘쳐 흐른다. 어쩜 그 여행의 풀밭은 그토록 푸르른지 남의 여행을 직접 이야기로 듣는 시대를 지나, 이제 블로그에서 각종 SNS에서 남의 여행을 보게 되면서 이 증상은 좀 더 심각해진다. 앞뒤 맥락 따위 존 재할 수 없는 그 찰나의 사진 한 장을 보며 우리는 여행에 필연적으 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주름살을 제거해버린다. 저 여행은 모든 것 이 풍족해, 저 여행은 커피 잔에 떨어지는 빛 하나까지 어쩜 저렇게 완벽할까 저 사람은 내내 행복하기만 할 거야, 같이 간 사람이랑 싸 우는 일도 없겠지. 돈이 왜 부족하겠어. 돈이 부족하다면 저런 걸 사 지도 못하지. 여행은 왜 또 저렇게 자주 가 시간도 넘쳐나나 봐 명백히 세상은 엄친아들의 여행으로 넘쳐난다.

 알고 있다 나의 여행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일 것이란 사실을 내가 나의 SNS를 보고 있어도 이토록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여행이 없어 보인다. SNS에서는 내가 방금 버스를 놓쳤다는 사실도 어마어마하게 바보짓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도 엄청 비린 생선을 엄청 비싼 돈에 먹었다는 사실도 편집된다. (241-242쪽)

 

감각은 여행을 왜곡하는데, SNS는 그 감각을 편집한다. SNS에서 편집된 세상. (시뮬라시옹까지는 아니고)

 

저자가 잡고 싶은 여행 그리고 기억을 가볍게 읽어나가다

문득 멈춰선 문단

그리고 바로 허핑턴포스트에서도 포스팅 되었던 부분이다.

 

이 세계에서 우리는 유용해야 한다. 지나치게 유용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만큼 자야하고 유용한 활동을 할 수 있을 만큼 먹어야 하고 유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쉬는 데에도 유용함은 빠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휴가의 목적을 리프레쉬라고 말하겠는가, 리프레쉬 단어가 프레쉬해 보인다고 속으면 안 된다. 실은 일하기 좋은 상태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평가의 기준은 언제나 우리의 유용함이다.  그러니 일상 속에서 꿈꾸는 사치는 이런 것이다. 햇빛 아래 맛있는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책을 읽거나 멍하니 먼 곳만 보거나 지나가는 사람들만 구경하거나 그러니까 있는 대로 여유를 부리는 텅 빈 시간, 한껏 무용한 시간.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한껏 무용해지자 마음을 먹는다 .아무것도 안 할 거야라며 짐짓 호탕하게 말해본다. 하지만 여행지에 도착하는 순간, 마음에는 다시 유용함이란 기준이 자리 잡는다. "언제 또 올 수 있겠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도 못 보면 아깝잖아.. 등등 유용함은 각종 핑계를 달고 여행 한가운데에 뻔뻔하게 자리잡 아버린다. 그리하여 '무용하자라는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여행자의 스케줄은 봐야 할 것" 가야 할 곳, 먹어야 할 것, 사야 할 것 등등 유 용한 것들로만 빼곡히 들어차게 된다. 무용하고 싶지만 무용한 시간을 견딜 힘이 우리에겐 없는 것이다. (162쪽)

 

어찌 보면 여행이라는 것이 그 무용한 시간을 견딜힘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움직이기 전의 마음과는 달리 조급해지는 마음밀물. 그리고 돌아올 때 쯤이면 실은 나만의 온전한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인데라는 아쉬움의 썰물이 항상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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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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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인줄 알았다. 여자이름이다.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 제목이 참 흥미로웠다.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봤다. 왠걸 과학책 전문출판사인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된 <우리 회의나 할까?>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책을 들었는데, 카피라이터다. 그것도 박웅현과 함께 일한다.

 

카피를 못하는 카피라이터란다. 기억력은 최악이란다. 그래서 기록을 한다고.

어떻게 보면 상투적이고, 어떻게 보면 솔직한 내면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기대하지 않고 읽었지만, 바로 부러움이 앞선다.

 

물리적인 환경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적 환경에서도 나는 천혜의 환경을 누리고 있다. 남편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몸도 일으키지 않고, 안경도 끼지 않은 채로 침대 옆에 있는 책부터 펴는 사람이다. 책을 읽다 좋은 부분이 나오면 꼭 내게 읽어준다. 책을 다 읽고 난후에도 그 책을 정리한글을 써서 내가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

이 환경은 회사에서도 계속되는데, 10년 넘게 한 팀에서 일하고 있는 박웅현 팀장님은 좋았던책이 있으면 꼭 권해주시고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신다. 그분의 독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남편에 비해 팀장님과는 관심 분야도 꽤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게 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 다 그리고 그때마다 팀장님과 나는 서로 읽고 좋았던 부분을 정리해서 교환한다. 신기하게도 같은 책을 읽고도 좋아하는 부분은 꽤나 달라서 팀장님이 내게 보내주시는 요약본을 보면 새롭게 그 책을 읽는 느낌까지 든다 그뿐만이 아니라 좋은 책이 있으면 내게 무심하게 선물해주는 선배도 있고, 책 이야기로 술자리를 꽉 채울 수 있는 친구도 있고, 어쨌거나 인간관계적으 로도 나는 천혜의 환경을 누리고 있다. (16-17쪽)

 

가정에서, 직장에서, 술자리에서....

 

책은 깔끔하다. 아무런 장식 없이 무표정한 하얀색 표지에 왼쪽 상단에

'모든 요일의 여행:'

그리고 오른쪽 상단엔 부제인 '10년차 키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그러니까 그날 밤 내가 이해했다고 믿는 문장은 어쩌면 나의 철저한 오독에서 비롯된 일일 수도 있다. 선생님의 설명은 안듣고 내가 내 멋대로 해석하면서 내 세계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독서는 기본적으로 오독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오독의 순간도 나에겐 소중할 수밖에없다. 그순간 그 책은 나와 교감했다는 이야기니까. 그 순간 그 책은 나만의 책이 되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때 나를 성장시켰든 나를 위로했든,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든 그 책의 임무는 그때 끝난 거다. (40)

 

책을 오독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조금은 갸우뚱하다.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 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그 왜곡을 찾아 더 새로운 곳으로, 누구도 못가본 곳으로, 나만 알고 싶은 곳으로 끊임없이 떠난다 그렇게 떠난 그곳에선 골목마다 프리마돈나가 노래를 한다. 이름 모를 클럽마다 라디오헤드가 연주를 한다. 나뭇잎 까지도 사각사각 잊지 못할 소리를 들려준다. 햇빛은 또 어떻고 들어본 적 없는 음악들로 세상이 넘쳐난다. 

 

그 왜곡의 음악을 듣기 위해 오늘도 여행 계획을 세운다. 그 미세한 음악까지 놓치지 않을 정도로 귀가 열린, 마음이 열린 나를 만나기 위해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여행을 꿈꾼다. (130-131쪽)

 

그 왜곡 때문에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고, 무의미한것에 의미를 부여하는지도 모른다.

 

벽중독자에 가까운 내게 가장 완벽한 한 도시를 꼽으라면 포르투갈 리스본을 꼽을 것이다. 리스본에서도 알파마 지구를 꼽을 것이다. 1755년, 27만 명의 리스본 시민 중 무려 9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리스본 대지진에서 유일하게 남은 언덕 위의 동네, 알파마 지구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들 앞에서 지도는 무기력해지고,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가던 관광객들은 길을 잃는다. 한골목이 수갈 래의 길로 불친절하게 나눠지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어떤 법칙도 없이 교차된다. 차 한대 겨우 지나갈 것 같은 길로 노란색 전차가 달리고, 그 옆으로 색색의 빨래가 널려 있고, 전깃줄이 지나간다. 낡고, 좁고, 바랬다 그리고 그 낡고 좁고 바랜 것들이 모두 화려하게 빛난다. 눈앞에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알파마의 실핏줄들이 기어이 살아 남은 것이다. 지금까지도 고맙게도 (168-170쪽)

 

내 기준에서 예쁜 벽을 찾고, 그 벽을 따라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일상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뛰어나오는 건 언제나 아이들이다. 거리낌 없이 얼굴을 카메라로 들이민다. 그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그들의 부모들이다. 무뚝뚝해 보여도 가장 친절하게 낯선 이의 질문에 응대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벽들을 따라가다 예기치 않은 공연을 보기도 하고 낯선 이에게 술을 얻어먹기도 한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가득 찬 바에 도착하기도 한다. 그들이 매일 들락거 리는 식당 귀퉁이에 우리의 자리가 마련되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 가이드북보다도 낡은 벽이 나에 겐가장 훌륭한 가이드가 된다. (174쪽)

 

아마도 비슷한 느낌이다. 일본 소도시에 대한 로망. 아직 현대라는 시간을 못 쫓아온 근대의 골목들에 대한 로망. 항상 일본 소도시 여행을 꿈꾸는 내가 갖는 로망과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읽고, 보고, 들은 것을 붙잡으려 쓰고, 그것이 하나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누군가는 흘려보내 듯 가볍게, 누군가는 공감하며 읽을 정도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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