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시스>라는 이름의 이 책은 호메시스 이론을 설명한다. 


 저자는 건강검진에서 비만과 GGT수치와 당뇨병발병률과의 통계자료에 흥미를 느껴 연구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말도 안되는 이론이라며 수 차례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기존의 상식과 어긋난 결과들을 토대로 연구하다가 저자는 호메시스 이론과 일치하는 것을 밝견한다. 

  

 호메시스는 기존에도 소개된 바 있는데, 적절한 자극이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호메시스 이론은 아직까지는 정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방사능과 관련해서는 호메시스 이론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호메시스 가설은 일본의 저선량 피폭자들이 장수하거나, 자연방사선이 높은 중국 서부와 콜로라도 주민의 암 발생이 평균보다 약간 낮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나왔다.
 
1980년대 중반엔 노벨상을 받은 세포유전학자 셸던 월프가 ‘적응 반응’ 설을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한 세포는 저선량과 고선량의 방사선을 차례로 쏘이고 다른 세포는 고선량만을 쏘였을 때, 앞의 세포가 훨씬 디엔에이 손상을 덜 입는다는 것이다. 이는 저선량 방사선이 세포의 디엔에이 복구 효소를 강화시켰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방사선 호메시스 연구는 1990년대 말 전성기를 맞는다. 하 교수는 미국 에너지부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1억 달러를 호메시스 연구비로 내놓은 것이 관련 연구 증가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에너지부는 원자력발전을 추진하는 부서이다.
 
그런데 호메시스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콜롬비아 대 홀 등은 1999년 세포에 알파선을 쏘이는 실험을 하다가 조사된 세포뿐 아니라 그 이웃에 있던 세포까지 손상을 입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싸움 구경하다 돌 맞는 데 비유해 ‘구경꾼 효과’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방사선에 쏘인 세포에서 해로운 분자가 스며 나와 이웃 세포에도 해를 끼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선량 방사선의 알려지지 않은 위험이 드러난 것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089608


게다가 극미량의 방사능이라도 인체에는 유해하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여전히 많다. 


<호메시스>라는 책을 읽었지만, 일단 판단 보류다. 그리고 추천도 하지 않는다. 아직은 검증할 것이 많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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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키(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 모임) 등과 같이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아키에서는 수두를 일부러 걸리게 해 자연스럽게 면역을 갖게 하는 일명 '수두파티'도 있다고 하는데, 이는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비슷하게 하는 듯 하다. <면역에 관하여>를 읽다보면 미국에서도 '수두파티'가 있다. 


백신을 거부하는 이들을 보면 이들은 자연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요즘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백신 없이 <자연적으로> 감염성 질병에 대한 면역을 발달시키도록 만든다는 발상에 매력을 느낀다. 그 매력은 백신이 본질적으로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믿음에 의지한 바가 크다. (66쪽)

나는 그들(수두 파티 하는 사람들)이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나 또한 유혹적으로 느끼는, 산업 사회 이전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탐닉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175쪽, 면역에 관하여)


작금의 자연 의학 운운하는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이니 전통이니 하는 좋은 말들이 하나의 도그마가 된 듯한 느낌이다.(스켑틱7 호 중)


아마도 현대 산업사회와 자본주의 문제 때문인 듯 하다. 자연은 옳고, 인공은 나쁜가? 그런데 이 질문은 잘못됐다. 인간은 오랜기간 동안 자연속에서 생존을 위해 많은 것들을 만들어냈다.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은 어떤가? 인류가 지금의 수명을 갖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인류는 오랜기간 동안 평균수명 20세를 지내왔다. 위생과 백신의 개발로 영유아사망률을 획기적으로 개선이 평균수명 연장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안아키나 이런 사람들은 이런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한다. 


백신은 완벽하지 않다. 실제 항체가 생기는 확률이 높지 않은 백신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백신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집단면역을 통해 특정 전염병을 사회에서 격리시켜왔는데, 백신 거부자들이 많아질수록 집단면역체제가 무너진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잘못이해하거나, 지금은 해결된 과거의 사례를 지적한다고 한다. 이들이 백신개선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백신을 거부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라는 생각을 했지만, 자신이 판단할 수 없는 영유아의 백신을 부모라는 이름으로 거부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게다가 안아키 내부에서는 어린이집, 유치원 등 보육시설에 애들을 보내면서 예방접종 현황에 대해 개인정보라는 이름으로 거부하라는 비윤리적인 조언들까지 있다. 


백신을 거부하는 것은 자유라고 할지라도, 안아키 모임의 자녀들이 어린이집, 유치원 등 보육시설에 예방접종 사실을 숨기고 등원하는 것은 반대한다. 


          

  

공교롭게도 <안 안쓰고 아이 키우기>와 <예방 접종이 오히려 병을 부른다>의 출판사가 같다. 문제가 있는 출판사다. 게다가 <예방접종이 오히려 병을 부른다>의 저자는 50여세의 나이로 2-3년전에 사망했다. 현대 의료체계 자체를 부정하는 이였는데,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고인지, 질병인지. 그런데 최근에 이런 책을 냈다. 편집자들의 문제가 심각해보인다.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등 병원에 대해 비판적인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허현회씨는 작년에 사망했다. 심각하지 않은 당뇨합병증이었다고 한다. 

이런 류의 책들을 피해야 할 이유다. 


          


(가뜩이나 한의사들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의 저자도 한의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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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과 도서관에서 여행으로 분류된 도쿄에 대한 책들을 찾다가 놀랐다. 도쿄의 이곳 저곳, 테마별로 나눈 책들이 너무 많다. 


 일단 몇권의 책을 구매하고, 몇 권의 책은 도서관의 도움을 받았다. (사진속책외에도 도서관에서 도움을 받은 책만 20권이 조금 안된다.)


 일단 도쿄 관광책을 준비한다면 <Just go 도쿄>나 <100배 즐기기 도쿄> 중 한권과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내일은 도쿄>와 <3데이즈 in 도쿄> 중에 한권이면 되겠다. 

 <just go>와 <100배 즐기기>는 풍부한 내용과 지도가 잘 되어있기 때문에 유용하다. <내일은>과 <3데이즈>는 내용은 간소하지만 도쿄의 어디를 방문할지 결정하지 않았을때 참고해보기에 좋다. 


 <DK Eyewitness Travel> 시리즈는 간략 간략한 일러스트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구매했는데, 생각보다 효용성은 떨어진다. 


 도쿄 관광 컨셉에 따라 간략한 일러스트로 표현된 <지하철 타고 한바퀴>나 <도쿄버스여행>도 유용하지만 취향마다 틀릴 수 있다. 


 5월 연휴에 도쿄에 다녀올 때는 <Just go 도쿄>와 <지하철 타고 도쿄 한바퀴> 두 권에 <도쿄버스여행>까지 총 4권의 책을 들고 다녀왔다. 



      


네 권 모두 여행시리즈이다. <Just go>나 <100배 즐기기>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참고용으로 좋다. 그렇지만 간략하게 다루고, 역사나 배경의 경우는 간혹 확인되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위치를 참고하는 것에만 사용하면 된다. 

<내일은>은 처음에는 별 효용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방문할 곳을 결정하는데는 의외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3데이즈>는 작고 얇은 판형이라 한 손에 딱 들어온다. <내일은>과 <3데이즈>는 아무래도 작다보니 교통 등의 부분을 설명하는게 좀 약한 편이다. 도쿄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게 쉽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쉽다. 


하지만 이제 여행책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일본도 예전같지 않아서 와이파이를 접속할 수 있는 곳들이 많아졌고, 휴대용 와이파이를 미리 준비한다면 상시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까. 


      


<DK Eyewitness travel> 시리즈는 론리플래닛 등과는 다르게 DK 스럽게 일러스트로 표시되고, 핵심만 다루고 있지만, 효용은 떨어진다. 

도쿄는 전철이 너무 복잡하다. 한두번 가서는 전철 노선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그럴때 아래 알라딘 책소개에서 가져온 일러스트를 참고하는게 좋다. 특히 야마노테선은 서울 지하철 2호선처럼 순환선이기 때문에 유용하다. 

<도쿄 버스 여행>은 도쿄 시내를 버스로 구경해보려고 구매했는데, 정작 버스를 한번도 타지 못했다. 전철과는 다른 버스 묘미가 있으므로 다음번 도쿄 방문때는 버스를 한번 타보는 것으로.   


<지하철 타고 도쿄 한바퀴 야마노테선 명물여행> 책소개 중에서 




<지하철 타고 도쿄 한바퀴, 지하철 명물여행 > 책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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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자 마자 구입한 <헌법의 상상력>이다. 

 

 (겨울동안 급격하게 환경이 변화면서 심리적으로 쪼이고, 생활패턴이 바뀌면서 환경에 맞는 독서습관을 만드는데 시간이 좀 걸릴 듯 해) 읽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심용환의 이름을 듣기 시작한 것은 동영상에 나오듯이 잘못된 역사 왜곡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분의 이야기에서이다. 그리고 그가 <역사전쟁>을 펴냈고, 몇 권의 책과 더불어 <헌법의 상상력>을 냈다. 

 

 대통령이 헌법에 의해 파면되고, 정치권에서는 개헌 논의가 나오는 요즘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비로소 헌법적인 논의들이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습니 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비 정규직 철폐, 노동조건 개선 등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가 사회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제를 어떻게 뜯어고칠 것인가는 참으로 의미 없는 논쟁일지 모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누려야 할 기본권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느냐입니다. 정치인들의 정략적 개헌 논의가 아닌 우리 안에 우리 스스로의 헌법 이야기가 만들어져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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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억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국민, 근로자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국민, 근로자는 잘못된 단어라고 생각하지만, 괜한 의심을 받기 싫어 시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하지만 엄밀하게 접근하자면 주권의 주체를 국민으로 표현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국민은 말 그대로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이기에 국 민은 국가를 전제로 한다. 이미 만들어진 국가의 규범 아래 있는 국민을 국가 이전의 사회계약에 관련된 주권과 연관시키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다른 나라에서 흔히 사용하는 인민이 보다 적합할 텐데, 이 단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기존 국가 규범 안의 구성원이라는 틀 안에 주 권의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의도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유독 국민이라는 용어를 고집해 왔다. (45쪽, 헌법의 발견)


국민이라는 단어는 국가가 먼저 존재한다. 지나친 국가주의를 경계하는 입장에서는 사용하기 싫다. - 국가주의의 극단은 식민주의로 나타났고, 현재도 국가의주의 폐단은 미국, 영국에서 볼 수 있다. 러시아, 중국도 마찬가지로 국가주의 폐해를 보여주고 -


인민이라는 단어에서 국민으로 변경된 과정이다. 씁쓸하다. 


헌법 제1조2항의 전제에도 잠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 조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명제로 쉽게 쪼개어볼 수 있다. 두 문장은 비슷하게 읽히지만, 단순한 동어반복은 아니다. 주권의 소재와 통치권력의 담당자가 언제나 같을 수 없음을 전제한 결합인 것이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러한 국민주권주의는 국가권력의 민주적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국민 전체가 직접 국가기관으로서 통치권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므로 주권의 소재와 통치권의 담당자가 언제나 같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예외적으로 국민이 주권을 직접 행사하는 경우 이외에는 국민의 의사에 따라 통치권의 담당자가 정해짐으로써 국가권력의 행사도 궁극적으로 국민의 의사에 의하여 정당화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제1조 2항은 물론 헌법 전체를 통하여 국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원래 유진오 초안에는 모두 인민이라고 되어 있었다. 초안작성자가 국민 대신 인민이란 어휘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가 강하여 국가 우월적 느낌을 준다. 반면에 인민은 국가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표현한다. 그러니 국가를 구성하는 자유인으로서의 개인을 표시하는 데 인민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초안의 인민은 국회 헌법기초분과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국민으로 바뀌고 말았다. 국회가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변경된 것과 함께 일어난 일이다. 그 주된 이유는 북한 때문이었다. 당시 국회의원 윤치영은 “인민이라는 말은 공산당의 용어인데 그러한 말을 쓰려고 하느냐. 그런 말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의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흥분했다. 하지만 인민이란 용어는 구 대한제국의 절대군주 시절에도 사용하던 용어였다. 


1948년 7월 1일부터 시작한 국회 본회의 헌법 초안 제2회독 때 국회의원 진헌식이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몇 개 조문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규정하는 조문에서는 모두 인민으로 하자는 수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역시 윤치영 의원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인민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좋은 말을 공산주의에 빼앗긴 셈치고 포기했다. (34-35쪽, 지금다시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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