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너의 이름은> 더빙판이 개봉하면서, 신카이 마코토의 소설 세편을 연달아 읽었다. (7월에)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소설로의 의미를 찾기는 힘들지만, 묘사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데 감탄하며 그 묘사를 읽기 위해 소설을 집어 들었다. 


애니 <너의 이름은>은 많은 이들이 소개하고, 추천하였기 때문에 굳이 애니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달 필요는 없다. 

커뮤니티 등을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와 비교하면 신카이 마코토를 비하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우주, 세계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가 분명 큰 세계를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신카이 마코토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이 잘 나가던 시절을 보냈고, 70년대생인 신카이 마코토는 끝물을 잠깐 맛봤을 뿐, 잃어버린 20년을 실감한 세대이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시대에 세상에 나온 청년세대와는 분명 다를 수 밖에 없다. 신카이 마코토는 그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너의 이름은>을 보는 순간 동일본 대지진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지진 전 센다이를 다녀온 나는 지진 뉴스를 가슴아프게 봤고,기억속에 남아있다. <너의 이름은>을 보면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잃은 이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사건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했다.) 예술가로 최선의 방법으로 그들을 위로한 신카이 마코토를 다시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신카이 마코토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애니가 최선이다. 


소설과 영화는 스토리상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화자는 조금 다르다. 소설은 타키와 미츠하의 1인칭, 즉 두 사람의 시점만으로 그려 진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말할 수 없다. 한편 영화는 애초에 3인칭, 즉 카메라가 비추는 세계다. 그러므로 타키와 미츠하 이외의 인물도 포함해, 말 그대로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장면도 많다. 소설과 영화, 각각의 매력을 충분히 즐겨주기를 바라지만 이처럼 미디어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상호보완적이 되었다. 

소설은 혼자서 쓰지만 영화는 수많은 사람의 손길을 거 쳐 완성되는 건축물이다. ... 이 이야기는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형태가가 장 잘 어울린다'고 썼는데, 그것은 영화가 앞서 말한 수많은 분들의 재능이 모여 맺어진 화려한 결정체이기 때문이 다. 영화는 개인의 능력을 훨씬 넘어선 곳에 있다. 

그래도 나는 결국 이 소설을 썼다. 

어느 순간부터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어딘가에 타키나 미츠하와 같은 소년소녀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이 이야기는 물론 판타지지 만 그래도 어딘가에 그들과 비슷한 경험과 추억을 간직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다. 소중한 사람이나 장소를 잃고 말았지만 발버둥 치자고 결심한 사람 아직 만나지 못한 무엇 인기에, 언젠가 반드시 만날 것이라 믿으며 계속 손을 뻗는 사람 그리고 그런 마음은 영화의 화려함과는 다른 절실함으로 그려져야 한다고 느꼈기에 나는 이 책을 썼다. (287-289쪽 ,작자후기)


* 신카이 마코토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나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을 보면 그의 작품세계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아직 더 보여줄 것이 많은 감독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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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도쿄에 다녀왔다. 마지막날 숙소는 운좋게 도쿄도청 근처였다. 마지막날 아침 일찍 혼자 숙소를 나와 가까운 곳에 있는 <초속5cm>와 <너의 이름은>의 장소를 산책겸 돌아다녔다. 성인이 된 타카키가 밤에 찾아든 편의점에서 캔 커피를 하나 사들고 나왔다. 아쉽게도 ampm이던 편의점은 패밀리마트로 바뀌어 있었다. 



  



<언어의 정원>이 비와 초록빛 나무, 호수를 아름답게 그려냈고, <너의 이름은>이 단풍을 아름답게 그려냈다면, <초속5센티미터>는 단연 눈내리는 도시의 밤과 벚꽃내리는 광경이 압권이다. 

그리고 밤 눈길을 달리는 열차의 장면도. 



<언어의 정원>에서도 그랬지만, <초속5센티미터>역시 다시 보면서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이 무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신카이 마코토가 젊은 사토리 세대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초속5센티미터>는 일종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십대 초반에서 십대 중반,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 청년


수평선 약간 위쪽에 걸려 있는 아침 태양 때문에 주위의 수면이 눈부시게 빛났다 .하늘은 흠잡을 곳 없이 푸르렀고 살갗을 적시는 물은 따뜻했으며 몸은 몹시 가벼웠다. 나는 지금 빛나는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다. 이런 때는 내가 꼭 굉장히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져서 언제나 살짝 행복한 기분에 빠지고 만다. 사실은 지금 많은 문 제를 끌어안고 있음에도. 

애초에 이런 식으로 천하태평에 금세 행복하단 생각을 해버리는 것이 모든 문제의 원인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나는 신나게 다음 파도를 향해 팔을 젓기 시작했다. 아침 바다는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까 서서히 높아지는 파도의 매끄러운 움직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색채 나는 그것들에 정신을 빼앗기면서 내 몸을 실은 보드를 파도의 페이스에 밀어 넣으려 했다. 몸이 들려 올라가는 부력을 느끼고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어느새 나는 균형을 잃고 파도 밑 으로 가라앉아버리고 말았다. 또 실패다 코에 바닷물 이 들어가눈안쪽이 찡했다. 


첫번째 문제, 지난 반년 동안 단 한 번도 파도 위에 서지 못했다. (73쪽)


하늘도 바다도 같은 색이라 나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바다 쪽으로 더 나가기 위해 패들링과 돌핀 스루를 반복하는 사이에 점점 마음과 몸의 경계, 몸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해져 간다. 바다를 향해 패들링을 하면서 다가오는 파도의 모양과 거리 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계산해보고 안 될 것 같다는 생 각이 들면 보드를 잡고 몸을 \으로 밀어 넣어 파도를통과했다. 될 것 같은 파도가 오면 턴해서 파도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보드가 파도에 들려 올라가는 부력이 느껴진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상상하면서 나는 짜릿함을 느낀다. 파도의 페이스를 보드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나는 상반신을 일으키고 두 발로 보드를 디딘 후 중심을 올린다 일어서려 한다. 눈높이가 확 올라가 면서 세상이 그 비밀스러운 광채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딱 한순간뿐이다. 다음 순간, 나는 어김없이 파도에 빠진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세상이 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님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멀리 떨어져서 본다면, 가령 언니의 시선으로 본다면 나는 이 빛나는 바다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바다를 항해 패들링해나간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러는 사이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날 아침, 마침내 나는 파도 위에 섰다. 거짓 말처럼 갑작스럽게,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120-121쪽, 코스모너트)


-눈이다 

'적어도 한마디라도……'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 한마디만을 절실하게 원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 한마디뿐이건만 어째서 아무도 그 말을 해주지 않는 걸까. 염치없는 바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바라지 않을 수가 없다. 오랜만에 본 눈이 가슴속 아주 깊은 곳에 있던 문을 열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한 번 그것을 깨닫고 나자 자신이 지금껏 줄곧 그 말을 바라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오래전 어느 날, 그 애가 해줬던 말 

'타카키, 너는 분명 괜찮을 거야” 라는 그 말을. (200쪽, 초속5센티미터) 


한번도 서보지 못했던 그리고 마침내 서냈던 십대중반. 언제부터인가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신카이 마코토는 꿈이 있던, 없던, 건강했던 십대를 상기시키고, "괜찮아"라고 속삭인다. 신카이 마코토에 대해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있잖아, 꼭 눈 같지 않아?” 

아카리는 나보다 두 걸음 앞에서 걷고 있었다. “그런가? 글쎄…….” 

"흥. 됐어.” 아카리는 새침하게 말하면서 나를 향해 빙글 돌아섰 다. 밤색 머리카락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아 카리는 또다시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있잖아, 초속 5센티미터 래." 

“뭐가?"

 "무엇일 것 같아?" 

“모 르겠어.” 

"스스로 생각 좀 해봐, 타카키.” 

그래도 알 수 없었기에 나는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대 답했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 래." 

(10-11쪽, 벚꽃이야기)



4월, 도쿄 거리는 벚꽃으로 물들어 있었다. 동틀 때까지 일을 한 탓에 그때부터 잠을 자기 시작해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커튼을 열자 창밖은 햇살로 가득했다. 봄 안개에 가려져 흐릿한 고층 빌 딩의 창문들 하나하나가 태양 빛에 기분 좋게 빛나고 있다. 주상복합 빌딩 사이로 군데군데 만개한 벚꽃이 보인다. 도쿄에는 정말로 벚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한다. 
...
회사를 나온 이후 그는 거리에 시간대별로 각각 다른 냄새가 있다는 사실을 몇 년 만에 기억해냈다. 이른 아침에는 그날 하루를 예감케 하는 이른 아침만의 냄새가 있고, 저녁에는 하루의 마지막을 상냥하게 감싸주는 저녁만의 냄새가 있다. 별밤에는 별밤만의 냄새가 있고 흐린 날에는 흐린 날만의 냄새가 있다. 그것은 인간과 도시와 자연의 작업이 하나로 뒤섞인 냄새였다 상당히 많은 것을 잊고 있었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주택가 좁은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목이 마르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공원에서 마셨고, 교문 밖으로 뛰어나와 그를 추월해 달려가는 초등학생들의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했으며, 육교 위에서 쉬지 않고 이어지는 차량의 행렬을 구경하기도 했다. 주택과 주상 복합 빌딩 너머로 신주쿠의 고층 빌딩들이 보였다 사라 지곤 했다. 그 뒤로는 마치 파란색 물감을 듬뿍 풀어놓 은물처럼 푸른 하늘이 펼쳐졌고 흰 구름 몇 개가 바람 결에 흘러가고 있다. 
그는 철도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다 철도 건널목 옆 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서 있었고, 그 근방 아스팔트는 떨어진 벚꽃 잎으로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천천히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문득,

초속5센티미터다 

(224쪽, 초속5센티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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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 아이디나 별명에 '비'를 종종 사용한다. 그래서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중 비가 중요한 소재인 <언어의 정원>을 좋아한다. 하지만 단지 그래서만은 아니다. 


처음 <언어의 정원>을 봤을 때 비 내리는 모습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한 영화, 애니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푹 빠져들었다. 그리고 한번, 두번 보면서 주인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유키노는 그런 말을 한다. 열다섯살 이후로 한걸음도 못 나아갔다고,,,, OST에서도 나오는 장면인데, 유키노는 발을 그려보고 싶다는 타카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었어, 언제부터인가"


"일어서볼래요?" 

발 건너편에서 소년이 조용히 말했다. 

"마지막으로 체중을 실은 상태의 발 모양을 뜨고 싶어요."

 좋아,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떨려서 숨을 내쉬는 것으로 대답 을 대신했다. 왼쪽 신발도 벗고 정자의 들보를 잡으며 벤치 위에 올라섰다. 소년은 유키노의 오른발 밑에 노트를 깔고서 종이에 대고 유키노의 발등을 지그시 누르며 신중하게 연필로 발의 윤곽을 따라 그렸다. 유키노는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 다보았다. 저 먼 곳에서 이파리가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비가 은행나무 잎과 유키노의 머리카락을 한꺼번에 흔들었다. 아주 작은 빗방울이 뜨거운 뺨에 톡톡 닿았다. 네 안에는 틀림없이 나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빛이 있을 거야. 유키노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 말이야.”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소년이 유키노를 올려다보았다.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었어. 언제부터인가" 

유키노의 얼굴을 보는 소년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

 “……그거 일 얘기예요?" 

"음......, 이것저것.” 

소년은 말이 없었다. 할미새가 우는 만큼의 틈을 두고 아주 잠깐이지만 그가 빙그레 웃었다. 유키노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그는 묵묵히 시선을 다시 떨어뜨렸다. 연필이 내는 소리가 다시 빗소리를 파고들었다. 

여기는 마치 빛의 정원 같아, 반짝이는 비를 보며 유키노는 생각했다. (166쪽)


소설 <언어의 정원>은 주인공 타카오와 유키노의 주변 인물의 이야기가 추가 되었다. 타카오의 형이 등장하고, 엄마가 나온다. 그리고 유키노의 전 남친 등. 

신카이 마코토가 이야기했듯이 두시간 가량의 영화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유키노가 왜 정원에 있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된다. 그럼에도 굳이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타카오와 유키노가 나중에 재회하는 장면은 소설을 그냥 라이트 노벨처럼 느끼게 하고, 전반적으로는 영화의 생략된 스토리에 지나치게 설명을 자세히 한 것 같다. 


애니 <언어의 정원>은 그 나름대로 생략된 플롯 속에서 조금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소설에서는 느끼기 힘든... 언제부터인가 걷는 법을 잃어버린,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된 청년 세대에 대한 위로가 보인다. 



           

* 제목에 대해 <맥스무비>에 설명이 되어 있다. 

 <만엽집>이라는 일본 고전 시집이 있습니다. 이 책은 <언어의 정원>에도 등장해서 이야기의 중요한 열쇠가 되는 역할을 합니다. <만엽집>에 의하면 '언어이 잎새'라는 말이 지금의 언어로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말씀 언 (言)'과 ‘잎 엽(葉)'자를 합하면 일본어로 언어라는 뜻이 됩니다. 언어의 정원, 역시 옛날식 언어를 이용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싶은 생각으로 지은 제목입니다. 또 비 내리는 정원에서 다카오와 유키노가 말과 기분을 나누는 것이 중심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제 목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맥스무비#38, 145쪽)



* <언어의 정원>은 무엇보다도 묘사가 좋다. 개인적인 기록차원에서 묘사장면을 옮겨본다. 


신주쿠-신주쿠- 

알림 방송과 동시에 플랫폼으로 쏟아져 나온 타카오는 심호흡을 해서 비 내리는 5월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계단을 향해 무심하게 흘러가는 인파에 떠밀려 나아가던 그는 고개를 들 었다. 여기다. 플랫폼 지붕이 가늘고 길게 잘라낸 하늘 저편-요요기에 우뚝 서 있는 도코모 요 요기 빌딩의 전파 탑이 흡사 미지의 산봉우리처럼 비 내리는 풍경 속에 아스라하게 솟아 있었다. 

걷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자 타카오의 등에 사람들이 차례로 부딪쳤다. 한 직장인이 혀를 차는 소리를 무시하며 타카오는 2초쯤 그 자리에서 비와 탑을 응시했다. 

아득하게 먼 저곳의 공기를 비가 가져다주고 있었다. (10쪽)


주위의 나무들은 비에 흠뻑 젖어 이 계절 특유의 생명력이 넘치는 푸릇푸릇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주오선의 광포한 굉음도, 수도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트럭의 굉음도 여기에서는 먼 저곳에서 전해지는 속삭임처럼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무엇인가로부터 보호받는 듯한 느낌에 유키노는 안도했다.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니 좀전의 피로감이 느릿느릿 빠져나 가는 기분이 들었다. 펌프스가 진흙에 더러워지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촉촉해 진 땅을 밟는 감촉에 기분이 좋아졌다. 잔디밭에서 벗어난 그녀는 대만식 건물 옆에 나 있는 산길처럼 좁다란 오솔길을 지나 일본정원에 들어섰다. 오늘도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편안해진 마음으로 축 처진 은행나무 잎 아래를 지나 작은 돌다리를 건넌 후 정자 안으로 들어가 우산을 접었다. 벤치에 앉자 온몸이 산소 결핍증에 빠진 것처럼 무겁게 마비되는 감각이 그녀를 옭아맸다. 칼로리가 필요했다. 매점에서 산 캔 맥주를 따서 단번에 꿀꺽꿀꺽 마시고는 푸아-하고 길게 숨을 쏟아 냈다. 몸에서 슬금슬금 힘이 빠져나가면서 정신까지 무너질 것 만 같았다. 이유 없이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오늘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알지 못했고 바라지도 않았던 하루를...... 

유키노는 조그맣게 읊조렸다. (56-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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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이 개봉했을 때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다섯편을 연달아 봤다. <구름의 저편~ >, <초속5센티미터>, <별을 쫓는 아이>, <언어의 정원>. 그리고 <너의 이름은>만을 다룬 맥스무비도 하나 준비해두고. 


그리고 7월에 <너의 이름은> 더빙판이 개봉하면서 그의 작품을 다시 좀 보기도 하고, 소설이 있길래 읽기도 했다. 

(더빙판은 굳이 봐야겠다는 생각은 안들었지만)


소설로만 보자면 45분 정도의 영화였던 <언어의 정원>이 한편의 소설로의 가치가 있다면, <너의 이름은>이나 <초속5센티미터>는 그냥 애니메이션만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팬심이라면 모를까, 굳이 읽을 필요 까지는.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를 봤을 때 그의 작화에 놀랐다.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그의 작화는 뭐랄까 좀 무모하다 싶었다. 실사판 영화를 따라갈 수 없다는 점에서 애니는 생략과 강조라는 장점을 가졌음에도 신카이 마코토는 그 애니의 특성을 무시하고 오히려 실사를 구현하는 애니를 만들었다. 



게다가 그의 애니는 개연성도 떨어지고, 스토리를 끌고가는 힘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시간내내 시선을 잡아두는 힘이 있다. 


<언어의 정원>과 <초속5센티미터>를 다시 보며 그의 생각이 어렴풋이 보였다.むすび


“실을 잇는 것도 '무스비'むすび, 사람을 잇는 것도 '무스비',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


<너의 이름은>이 누군가를 잃은 슬픔에 대한 위로라면, <언어의 정원>과 <초속5센티미터>는 꿈많고, 사랑을 앓던 10대에서 벗어나 저성장사회라는 큰 벽을 마주한 사토리세대에 대한 위로를 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림만 잘 그리는, 소녀의 감정을 잘 그려내는 애니 감독으로만 생각했다. 특히 미소년, 미소녀의 주인공은 정말 마음에 안든다. 그냥 첫사랑과 소녀 감성? 그런데 그의 애니를 다시 보면서 단순히 그를 폄하하는게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들중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비교하며, 자연과 평화를 다루는 그의 세계에 비해 신카이 마코토는 단순히 첫사랑, 인연 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한다. 전쟁을 기억하고, 성장만 하던 일본을 경험한 미야자키 하야오와 저성장 시대만 경험한 신카이 마코토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를 수 밖에 없다. 


신카이 마코토는 판타지라는 형식을 빌어 동일본 대지진의 슬픔을 위로하려고 했다. <너의 이름은> 개봉 당시 세월호가 생각나 눈물을 흘렸다는 글을 종종 봤다. 사전 정보 없이 애니를 보던 나도 자연스럽게 동일본 대지진을 생각했고*, 재해로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초속~>과 <언어의 정원>은 이전 세대와는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청년세대에 대한 위로다. 우리나라의 젊은이에 대한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눈이다 

'적어도 한마디라도……'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 한마디만을 절실하게 원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 한마디 뿐이건만 어째서 아무도 그 말을 해주지 않는 걸까. 염치없는 바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바라지 않을 수가 없다. 오랜만에 본 눈이 가슴 속 아주 깊은 곳에 있던 문을 열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한 번 그것을 깨닫고 나자 자신이 지금껏 줄곧 그 말을 바라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오래전 어느 날, 그 애가 해줬던 말 

'타카키, 너는 분명 괜찮을 거야” 라는 그 말을 (초속5센티미터, 200쪽)


“......나 말이야.”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소년이 유키노를 올려다보았다.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었어. 언제부터인가" (언어의 정원, 166쪽)




* 내가 동일본대지진을 떠올린 건 개인적인 경험이다. 지진 얼마전 센다이에 다녀왔고,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곳이어서 지진 발생했을때 안타깝게 뉴스를 챙겨봤다. 쓰나미로 문제가 된 후쿠시마 핵발전소만 알고 있는데, 사실 지진 피해만을 놓고 보면 센다이를 중심으로 한 미야기현이 제일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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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책을 1,100권이 넘게 샀다고 한다. 전자책을 16권 구매했다고 나오는데, 크레마+열린책들 180권은 카운트가 안되었다. 열린책들 180권을 합치면 1,300여권 구매했다는 것인데, 알라딘을 주로 사용한게 2004~5년 부터이니 통계상으로는 알라딘에서만 책을 연 100권 쯤 산 셈이다. 물론 통계상이지만...


책을 참 다양하게 산다는 것이 통계에 보이는데, 1위로 되어 있는 미술책이 고작 5.58%이다. 


18년차 (2017년제공) 16년차 (2015년제공)
 1. 미술
2. 한국소설
3. 놀이책
4. 교양과학
5. 음악
 1. 미술
2. 한국소설
3. 시
4. 놀이책
5. 문화이론


2년전 통계와 비교해보니 2년사이에 교양과학 책이 새로 순위에 들어왔다.


책 구매 패턴을 보면 항상 절반정도는 특정 분야의 책에 집중했다. 90년대에는 시, 소설, 2000년대에는 인문, 예술, 2010년대에는 주로 과학분야의 책을 사고 있다. 과학분야의 순위가 좀 올라갈 것 같긴 한데, 미술분야도 순위에 꽤 오래 올라와 있을 것 같다. 특정 전시회를 하면 관련 책을 항상 구매하곤 하니까. 

알라딘을 넘어서 생각해본다면 전체적으로 구매한 건 아마도 시,소설이 압도적이지 않을까 싶다. 


작년에는 사진책을 좀 모았는데, 올해는 건축, 인체-뇌과학, 그림책이론, 교양만화 책을 좀 모으고 있다. 언제 읽게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 책들보다 더 많을텐데 어디엔가 숨어있을 만한 책도 좀 찾아야 한다.


건축분야의 책은 읽을 책의 순서를 좀 정해야 한다. (정기용의 책은 어디에 숨어 있나. 임석재의 책도 조금 더 있을텐데)

교양만화는 궁리에서 나온 어메이징~ 시리즈 한 두권 더 장만해야 하고.

뇌과학 기초 책들은 진작에 읽었으니, 이제 좀 본격적인 독서를 하면 된다. 

인체는 매력적인 피부여행, 발의 비밀에 하리하라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이은희의 다른 책들을 좀 더 찾아봐야 하고.

뉴턴하이라이트도 몇권 찾아 구색을 맞춰야 한다. 

(생각해보니 집에 있는 오파비니아 시리즈에도 인체와 관련된 책이 있다. 찾아봐야 겠다.)

그림책이론은 잘 모르니 그냥 읽어볼 밖에. 


그런데 문제는 이 책들 외에도 쌓여있는 책들이 많다는게, 최근 에세이들이 열권쯤 되고, 오늘의 젊은작가 시리즈도 쌓여있고, 일본관련 책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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