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탄생 (반양장) - 대학 2.0 시대, 내 젊음 업그레이드 프로젝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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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의 나이를 훌쩍 넘겨버린 이어령의 생각은 젊디 젊다. 일단 대학2.0이라는 부제를 달고 시작한 책 부터가 그렇다. 이어령의 젊음의 탄생은 읽는 자체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대를 거슬렀다가는 앞지르는 지식의 범주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그의 메세지는 비단 대학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에게들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의 지호락을 설명하듯 지식의 향연을 향해 즐겁게 날아오르길 바라는 젊음 마음을 간직한 모든 이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이 책의 매력중의 하나는 놀라운 이어령의 지식의 섭렵과 이에 멈추지 않고 엮어서 풀어내는 방법이다. 21세기 들어 디지털 컨버전스니 하며 융합이 미래사회를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는 이 시기에 이어령은 지식의 컨버전스를 놀랍게 선보이고 있다. 그의 지식은 DIKW data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 지식화한 후 지혜로 발돋움하기 위해 제시되고 있다. 또한 단순히 지식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좋아하고 즐기는 모습 그 자체를 보여준다.
 
 21세기 젊은이들 (혹은 젊음을 품고 있는)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독창성이다. 그리고 이는 하늘에서 자유로운 비행을 보여준 단순히 떠 있기만 한 서양이나, 일본의 연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우리의 과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에는 獨□ 으로 펼쳐져있다. 이것을 獨善(독선) 혹은 獨裁(독재)로 변할지 獨創으로 발전할 지는 바로 젊은이의 몫이다. 그러기에 열린마음과 함께 그레이트 아마추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많은 아쉬움 또한 남았다. 은근슬쩍 보여지는 지은이의 정치에 대한 생각이다. 독선에 빠져 이념논쟁에만 빠져버린 잃어버린 10년으로 보고 새물결의 청계천을 만들어낸 새로운 이명박 정권에 대한 희망이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지난 10년간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젊은 인터넷이 발전해왔고, 이전 보다는 창의적인 교육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데 비해, 이명박 정권이 보여준 모습은 창의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일제고사의 부활 등이고 모든 것을 경제논리로만 바라보고, 자유보다는 통제를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새물결의 청계천은 서울 600년속의 청계천이 아니다. 보기좋게 만들어낸 새로운 청계천일 뿐이다. 물론 그 청계천으로의 가치는 있지만 과정속에 버려진 유적들은 이명박이 점차 독재로 나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어 가슴이 아프다.
 
 그렇더라도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이어령의 오류 또한 쉽게 발견해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어령은 젊은이들에게 대학 2.0세대를 위한 길잡이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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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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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사회성있는 발언으로 특히나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준 박노자는 지금 노르웨이에 있다. 하지만 신문칼럼과 출판도서를 통해 그의 글을 끊임없이 만날 수 있기에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부드럽지만 거침없는 그의 글이지만 그도 조금은 가리는 모양이다. '과연 지금 적절한가'라는 내부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고백한다. 

박노자에 대해 한국인 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 이라는 생각에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노자가 책에서 언급했던 부분을 그대로 내가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노자는 한국인임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자연스럽게 한국인과 귀화인을 나누는 버릇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노자의 글은 언제나 자기성찰에 대해 지적한다.
 
이번 책은 박노자와 다른 책들과 같은 흐름위에 놓여있다. 일단 먼저 마주할 부분이 그의 비폭력주의이다. 그가 왜 불교에 심취하는지 그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다른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본인이 책 앞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민감한 부분에 대한 그의 의견이다. 물론 이는 그의 사상 비폭력주의, 비권위주의 등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지만 NL계의 종북주의를 경계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남북문제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통일에 대한 의지는 존중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의 문제에 대해 눈감는 그들의 행태마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박노자의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분당사태는 바로 그의 예리한 지적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자본주의 사회에 물들어 있는지 들여다 볼 수 있다. 노동시간의 댓가로 임금을 받는 서비스업의 종사자들은 자본주의라는 틀안에서 미소까지 팔아야 한다는 그의 논리에서 깜짝 놀랐다. 서비스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지만 그 서비스가 갖는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이는 비행기 스튜어디어스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해외를 나갈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유독 우리나라 비행기의 승무원들은 젊고, 이쁘고, 서비스가 뛰어나다.
 
박노자의 책들 중에 사실 노르웨이의 삶을 다뤘던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에서 적잖이 실망했던 것이 사실이다. 언뜻 보기에 노르웨이는 완벽한 나라인 것 처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오히려 그 책을 보완해주고 있다. 노르웨이에서 그의 삶은 이방인으로의 삶이고, 노르웨이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주의를 끝내 부정하는 서구인의 시선 하지만 여전히 노르웨이는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사회가 개인을 보장해주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박노자의 책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실천하는 자기성찰이다. 역사와 사회를 통해 우리 자신의 왜곡된 모습을 보여주며 그 안에 감춰진 내면적인 분리주의, 폭력성을 발견하게 만든다. 머리로 이해하기에 앞서 실천과 함께 가장 기본적인 비폭력,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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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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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인류가 멸망할까? 모든 인류가 아니라 몇몇은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 꿈 꾸었듯이 달이나 바다속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 얼마후 그런일이 펼쳐진다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작가 코맥 매카시는 이런 질문을 집어들었다. 책 뒤편에 설명되어 있듯이 어느날 아들과 함께 묵은 모텔에서 그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면이라는 생각을 갖고 이 소설을 써 내려갔다고 한다.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러나 누군가와 마주하는 것은 공포스럽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사람들은 모두 호의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어쩌다 마주한 빈 집에 상하지 않은 통조림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 날은 행운이다. 그렇다고 그 집에 머무를 수는 없다. 언젠가는 그 식량이 바닥을 보이는 순간 절망으로 떨어질 것이다.
 
 로드를 읽는 동안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핵폭탄이 터진 것인지? 그렇다면 사람들이 모두 방사능에 노출되지 않았을까? 여행중에 마주친 한무리는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아니면 화산폭발 곳곳에 싸인 재는 이런 상상을 설명한다. 또한 녹아내린 아스팔트위에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충분히 이런 상상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또 이런 재앙이 전세계적인 것일까? 아니면 미국만의 것일까? 왜 구조대는 오지 않는 것일까? 아버지는 왜 남쪽으로 혹은 해안으로 가려하는가? 그곳의 상황은 어떻고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그러나 작가는 이런 궁금점에 대해 설명을 전혀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외적인 질문은 그런 상황하에서 사치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절박한 상황,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희망을 가져야만 하는 절박함속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일보다는 오늘 하루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 죽지 못해 살고 있는 노인처럼..

 로드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불필요한 설명과 미사여구를 배제한다.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는 상황만 보여 줄 뿐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앞에서 품었던 질문들에서 벗어나 절박한 상황을 상상하게 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글쓰기 때문이다. 과연 내 앞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면 나의 행동은 어떨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 것은 바로 지은이의 치열함 때문이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는 것일까? 희망은 있어야만 할 것인가? 사실 아버지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단지 아들의 가슴에 있는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들의 희망이 또한 하버지의 희망이 되었던 것이다. 소년은 희망을 품고 있다. 그 희망은 단순히 생존이 아니다. 인간으로써 갖춰야 할 최소한의 인간성을 갖춘 생존이었다. 생존하더라도 인간성을 버린다면 그것은 희망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성을 품고 모진 세월을 버텨내는 생존 그것이야말로 값진 희망이고, 로드위의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희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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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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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은 600여년이나 된 역사를 자랑하지만 서울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 역사를 실감하기가 쉽지 않다. 시청, 광화문 주변에서야 경복궁, 덕수궁 등을 만날 뿐, 이 마저도 없다면 청계천, 강남 등으로 대변되는 서울은 고작 20년 정도의 젊은 도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 주의 깊게 돌아다녀본다면야 종로, 시청, 숭례문 등지에서는 무슨무슨터라는 표석을 많이 만나게 되지만, 표석이 있다고 해서 눈앞에 역사가 보이는 것은 아니니 서울의 역사를 알기는 너무 어렵다. 

 이런 현실속에서 만난 서울은 깊다는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서울에 대해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하나하나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서울의 전부가 아니라 서울은 역사와 의미를 지닌 공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요즘은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서울은 사실 우리의 생활과 많은 관계가 있다. 한 때 많이 사용하던 서울깍쟁이, 시골뜨기라는 말이 있다. 경제위기이후 노숙자들이 거리에 많아졌지만 90년대 전반까지는 노숙자들 보다는 거지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거지들이 깍쟁이로 불리웠는데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거지들은 누가 부자인지 누가 후한 사람인지를 금방 알아차려야 했다. 그말이 지금에 이르러 '지나치게 잇속을 챙기는사람들'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촌뜨기,시골뜨기는 또 어떤 의미일까? 지은이는 시골뜨기와 서울내기를 들어 조선후기의 시대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 급제해 서울로 올라오고, 관직을 마치고 낙향하던 조선초기와는 달리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은 점차 자리잡기가 어려워지면서 서울사람들은 시골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문을 걸어잠근채 서울만의 유행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서울과 시골사이에 시간이라는 벽이 생겼다. 시골출신들은 시대에 뒤떨어져 버렸고, 이는 촌스러움이 되었다. 내기는 출생지를, 뜨기는 출신지를 의미하는데 이제 서울에는 서울출생의 서울내기와 시골에서 올라온 시골뜨기로 나뉘어 불리며 시골출신은 서울에 들어오더라도 온전한 서울사람이 되지 못했다.  

 조선중기에 들어서면서 부터 청계천의 잦은 범람으로 주민들이 많은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영조시대에는 준천(하천정비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청계천의 잦은 범람은 높아진 하천수위가 문제였다. 지은이는 청계천의 하천수위가 높아진 원인을 바로 급격한 인구증가에서 찾는다. 양란이후 서울은 무서운 인구증가를 경험한다. 이는 많은 공간이 주거공간으로 사용되고 급격한 오물증가를 뜻한다. 난방재나 오물등은 시골에서는 귀한 거름으로 만들어지지만 서울에서는 처리할 수 없었고 청계천으로 흘러보낸 오물들은 수십년 사이에 청계천 수위를 수미터나 올리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등따습고 배부르게살고자 한 도시민들의 욕망과 그를 실현할 수 있게 해준 늘어난 부가 바로 그 원인이었던 것이다.   
 
 똥돼지, 똥개 등 에서  다리밑에서 주어 왔다는 말 부터 덕수궁 돌담길에 얽힌 이야기까지 지은이는 사람들이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소재들 속에 숨어있는 서울의 역사성을 캐내고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조선에만 거치는 것이 아니라 전차가 놓여질 조선말, 일제강점기를 지나 지하철1호선이 생기는 시기까지 다루어낸다. 

  이렇게 우리 삶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서울은 여타 도시와는 다는 출발을 보였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도시들의 시작과 달리 서울은 종교와 분리된채 유교적 바탕위에 공적인 공간 기능이 강화된 채 세워진다. 서울의 또 다른 특징중의 하나는 우리나라 도시 중 유일하게 한글로 된 도시이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생산해내지 못한다. 끊임없이 농촌으로 부터 물자를 빨아들이고, 소비하는 곳이다. 조선의서울 역시 이런 역할을 해냈다. 특히나 조선에서의 서울은 서울과 서울이 아닌 곳으로 구분하는 기능을 하기도 하였다. 이는 지금의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 경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서울은 모든 재화와 자원을 끌어들일 뿐이다.  
 
전우용의 서울은 깊다를 읽어나가면 시간적으로 서울을 역사를 바라보게 된다. 유교적 이상이 깃든 서울의 탄생에서 부터 시작해서 전차가 다니고, 서양식 건물이 들어선 구한말까지 서울이 담고있는 내용을 알게된다. 공간적으로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갖는 기능과 그 사회성을 보게 된다. 서울의 역사라는 뼈대위에 도시기능의 서울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서울이라는 공간과 시간을 씨줄과 날줄로 엮고 또 서울이라는 특수한 도시와 도시의 특성을 씨줄로 날줄로 엮어내어 복합적인 시각과 지식을 선사한다. 

전우용의 서울은깊다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현대의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역사성과 사회성을 더했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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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영어담론 - 그 위선의 고리들
한학성 지음 / 태학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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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MB와 인수위의 영어에 대한 정책방향으로 인해 요즘 영어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영어는 항상 논란이 되었던 주제였다. 또한 90년대 후반 부터 영어공용어화 논쟁으로 한바탕 논란을 일으켰던 적도 있다. 

 경희대교수 한학성의 '우리시대 영어담론'을 작고 영어의 사회적 부분에서는 논의가 깊지는 않지만, 영어의 사회적 인식, 영어교육의 문제 전반을 담아내고 있고,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은이는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실제 영어보다는 영어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 즉, 경쟁의 도구로 영어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며, 영어논란에서 정작 영어전문가들은 배제되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또한 영어교육과 관련하여 서울사대 영어교육과 독점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권력의 문제와 영어교사 양성 등 교육과 관련된 문제를 말한다.

 지은이가 지적 중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우리사회에서의 영어경쟁력에 대한 부분이다. 세계화 시대를 이야기하며 영어 경쟁력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위한 자신만의 경쟁력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세계화의 허울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좋은 대학에 가려고, 또 서로 먼저 승진하려고, 즉 저마다 우리끼리의 경쟁에서 승리하려고 영어에 골몰하는 것이다."(46쪽) 사회에서 말하는 영어경쟁력은 우리나라 전체의 국가경쟁력이 아닌 단순히 내부 경쟁을 위한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어쩌면 이런 내부 경쟁으로 영어가 사용되는 한 영어 사교육의 문제는 해결하기 힘들 것이고, 빈부에 따른 영어실력 차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일반적인 인사나 햄버거 하나 주문하는 것을 들어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율배반이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목표로 하지만 결국 지향하는 바는 일상적 수준의 대화일 뿐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영어 목표에 대한 사회적 지향이 없음을 의미한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 능력과 일상적 대화가 가능한 수준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영어권 국가에서 자라고 교육받지 않는 한, 조기 영어 교육이나 해외 영어 연수를 한다고 해도 원어민 수준의 영어 능력을 갖추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교육만 제대로 받는다면, 조기 영어 교육이나 해외 영어 연수를 통하지 않고서도 일상적 대화 수준의 영어 능력은 얼마든지 터득할 수 있다."(35쪽) 지은이는 영어의 지향점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영어교육의 목표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율배반적인 목표 원어민 수준과 일상적 대화의 수준의 차이는 결국 일상적 대화마저 못 하는 그런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영어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복합적인 구조를 갖는 것 처럼 영어교육 역시 문제로 가득차있다. 서울사대 영어교육과 출신이 독점하고 있는 영어교육의 방향 및 방법은 실제 영어교육에 관심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없다. 게다가 영어교사의 자질 및 영어 수업 역량은 열악하기만 하다. 일반계와 실업계에 대한 영어교육의 차이도 없고, 단순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외고의 영어교육도 그 차별성이 없다. 

 지은이는 이런 영어의 문제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우리나라 전체가 영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영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유창한 영어 구사자로 양성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전 인구의 10%를 보고 준비한 다면 30여년 후면 우리나라 인구의 10%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인에게는 일상적 대화 수준의 영어교육을 시행한다. 아울러 영어 교사들의 자질을 높이고 영어교육의 개혁을 통해 바람직안 방향 설정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영어수업시간에는 영어위주의 수업을 해야 하는데 그를 위한 토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은이의 이런 제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에서의 영어는 내부경쟁력의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나 자신이 영어를 통해 남보다 우월해지려는 도구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는 오히려 부추키고 있는 셈이다. 과연 영어를 영어답게 대하는 날이 올 지 의심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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