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는 작년 가을 쯤 만들었다. 

작년엔 러시아 월드컵이 있었고, 언젠가는 러시아 예술(문학, 음악 등) 및 역사를 한번 훑어보고 싶었다. 


러시아 월드컵이 끝나고 일단 로쟈의 러시아 문학강의를 텍스트로 푸쉬킨에서 레르몬토프까지 진행했다. 

1년째 종종 차이코프스키를 듣고 있다. 

(첫딸이 '또 차이코픈지 뭐야?'라고 타박을 할 정도였는데, 

 며칠 전 차콥 바협을 흥얼거릴 정도가 되어 버렸다. ^^ )

* 올해 교향악축제에는 스트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를 연주한 부천필 공연에 다녀왔으니 느슨하게 러시아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겨울엔 K-mooc 강의를 찾아 들으면서 러시아 역사를 어렴풋이 잡았다. 

(올해 알라딘 서재가 뜸한게 일도 일이지만, 가족들이 놋북을 장기 점거한 영향도 있지만, K-mooc 강의 듣는 것도 큰 영향)


중간에 계속 다른 주제들(특히 독립/항일운도)이 끼여들면서

'무모한 도전 - 러시아문화'라는 독서주제는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는데, 

지금 산울림소극장에서 러시아문학을 주제로 연극을 하고 있다. 

http://www.sanwoollim.kr/xe/1160


강제로 '무모한 도전 - 러시아문화' 독서가 재개되었다. 

푸쉬킨 - 고리키 - 체호프 - 고골 - 도스트예프스키 - 투르게네프

로 이어질 독서다. 

그런데 여기에 지금 블루스퀘어홀에서는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가 공연중이다.

톨스토이까지 붙여보면 여름은 러시아 문학 여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안똔 체홉 극장에서도 계속 체호프의 연극이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독서주제가 여럿이라는게 함정이다. (k-mooc의 독립운동사 강의 주제에 맞춰 시대별 독서도 해야 하고)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퇴직하면(수년내로) 후쿠오카에서 홋카이도까지 훑은 후 블라디보스톡으로 넘어가 러시아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가는 것인데, 러시아 읽기를 한다고 회사를 관두서는 안되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자 분 책이야 이미 집에 두권인가 있고, 와잎이 읽을만한 경제 책 찾을 때 추천했을 정도이나,

  최근 이슈의 시발점이 이 책이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고,

  어떤 분은 절판 하셨으니,

  이 분은 어떻게 하실지 궁금함


  물론 이 분 잘못은 하나도 없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이 분 책 볼 때는 찜찜할 듯


  뭐 내가 40인의 넷드링커나 카스테라도 아니고 

  짜집기한 책은 잘 안 보기 때문에 별 관심은 없는데(이 책이 짜집기했다는 것 아님)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 쓸데 없는 책은 좀 안 나왔으면 하는 입장이라(이책을 지칭하는 것 아님)

  

  * 절필이 아닌 절판을 이야기하는 것임, 적당한 때 다른 데서 개정판 나오면 그 때 읽는 것으로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6-24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과 관련해서 무슨 이슈가 있었는지 궁금한데 간단하게라도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언젠가 읽을 계획으로 구매해 둔 책이라 관심이 생겨서요.

雨香 2019-06-24 13:19   좋아요 1 | URL
출판사 눌러보시면 이 출판사는 특정인의 책만 내던 곳인데 이번에 제대로 된 홍박사님의 책을 내면서 그 특정인이 서평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과 부딪혔습니다. 그때 특정인의 책이 짜집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분을 허위경력으로 비판하면서 k교수님이 본인의 책을 절판하는 일이 벌어졌고요. 현재 이 출판사에서 나온 특정인의 책이 모두 문제가 있다라는 논쟁이 크게 진행중입니다. 홍박사님은 하필 왜 이런 출찬사에 엮이셨는지
(모바일이라 저녁때 참고하실만한 링크 걸어드릴께요)

2019-06-24 13:37   좋아요 1 | URL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된 출판사인데 좋지 않은 첫인상으로 남겠네요. 번거로우셨을 텐데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雨香 2019-06-24 21:01   좋아요 1 | URL
팟빵에 관련 설명이 있습니다. (관련설명이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3120?e=23074377
 

4월말 가나자와에 있는 윤봉길의사 암장지에 다녀왔다. 

(가나자와 다녀온 글) ☞ https://blog.aladin.co.kr/rainaroma/10851563

윤봉길의사의 유해가 모셔진 효창공원 삼의사묘에 6월초 다녀왔다. 


삼의사묘에 대한 설명은 <윤봉길>에 잘 설명이 되어 있다. 


유해발굴과 봉환은 해방된 다음 해인 1946년 3월에 유해봉환단에 의해 추진되었다. ..  유해봉환단은 동경에 있던 박열을 비롯하여 신조선건설동맹과 재일본한인건국청년동맹의 중심인물인 이강훈과 서성한 등에 의해 조직되었다. 179-180쪽


이들 유골봉환단은 윤봉길 · 이봉창 · 백정기 3의사의 유해를 봉환하기로 하고 묘지 위치를 확인하였다 . 이봉창 의사는 1932 년 10 월 10 일 동경의 이치 가야 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하고 사이타마현 우라와 시에 있는 우라와 형무소에 매장 되었다 . 봉환단은 우라와 형무소에서 교회사로 일했던 일본인을 찾아 이봉창의사가 우라와 형무소의 부속 묘지에 묻혀 있다는 것을 확인하여 유골을 수습할 수 있었다 . 백정기 의사의 유골은 이강훈이 같은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 마지막으로 윤봉길의사의 유골을 찾아야 하는데 , 장소를 확인할 수 없었다 . 

서상한과 이강훈을 비롯한 네 명의 임시 정부 발굴단이 가나자와에 도착한 것은 3 월 2 일 오전 10 시경 이었다 . 3 월 3 일 부터 위치를 고증 받기 시작 하여 육군 묘지구내에 묻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

....

9 시반 부터 시작한 유골 수습이 4 시간 반 이나 걸렸다 한다 . 유골은 모두 201개 수습 되었는데 , 7 개가 모자랐다면서 이는 손뼈 등이 고문으로 상하여 13 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소나무 뿌리 속에서 없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 유골을 수습한 후 ‘순국의사 윤봉길 지구‘ 라고 쓰여진 새관에 옮겼다 . 유해는 가나자와 재일본 조선인 연맹 본부 사무실에 옮겨 졌다가 3월 8일 아침 가나자와역을 떠나 다음 날 아침 도쿄의 우애노역에 도착하였다 . .... 윤의사의 유해가 우에노역에 도착하자 이미 사무실에 안치되어있던 이봉창 ,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앞세우고 나가 윤의사 의 유해를 맞이 했다 . 181-18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월말 일본 가나자와에 다녀왔다. 쿠로베 알펜루트를 다녀온 후 다음날 가나자와 여정은 윤봉길 의사의 암장지로 시작했다. 윤봉길의사가 의거를 거행했던 당시 상해 주력부대가 가나자와이다 보니 가나자와까지 압송했다. (사형집행이 연기되며 가나자와까지 온 점도 있다.)

윤봉길 의사는 사형집행 후 묘역 없이 매장됐다. 매장된 곳은 공동묘지와 이시가와현 군 전사자 묘역 사이 길이었다. 일본인들이 유해를 밟고 다니게 했다고 해석된다. 

일단 윤봉길의사를 다룬 두 권의 책에서 관련된 부분을 발췌한다. 

 발굴 4 일째 되던 3 월 6 일 박성조가 매장할 때 독경을 했다는 각존원의 야마모토 료도라는 여승을 데리고 왔다 . 여승은 헌병이 가리키던 곳 보다 더 육군 묘지 가까운 통로를 가리키면서 그곳에 북침으로 매장했다고 알려 주었다 . 그곳은 며칠 동안 발굴단이 휴식처로 사용했던 장소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 한복판였다 . 박동조가 소금을 가지고 와서 일대를 깨끗이 하고 술을 따르는 의식을 마치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 25센티미터 정도 파니 지층이 달랐다 . 다시 60 센티를 파자 십자가 형태의 나무 틀이 나오고 , 구두가 나오고 관 뚜껑이 보였다 . 뚜껑 을 열었다 . 8 푼 두께의 관이었다 . 함성이 울렸고 전원이 모여 손으로 흙을 파내니 '홈스팡'의 상의에는 피의 흔적이 역력 했다 . 조각 조각 된 옷을 제쳐 놓으니 나무뿌리가 꽉 들어차 있으나 유골이 나타났다 . 모두 일손을 멈추고 묵념을 올렸다 . 당시 가나자와 외과 대학 학생 였던 주정균은 이건우와 함께 들어가 맨손으로 정중히 뼈 하나 하나를 모았다 . 머리 부분에 탄흔이 있는 것을 보고 흐느끼는 대원도 있었다. 주정균의 육성 증언에 의하면 , 이마에 총상이 있었고 후두부에 구멍이 있었으며 , 옷에 피가 위에서 아래까지 묻어 있었다고 하였다 . 그는 수습된 뼈 를 정성 을 다하여 알콜로 소독 하였다 . 9 시반 부터 시작한 유골 수습이 4시간 반이나 걸렸다 한다 . 유골 은 모두 201 개 수습 되었는데 , 7 개가 모자랐다면서 이는 손뼈 등이 고문으로 상하여 13 년의 세월 을 견디지 못하고 소나무 뿌리 속에서 없어 진 것이라고 하였다 . 유골을 수습한 후 '순국의사윤봉길지구‘ 라고 쓰여진 새관에 옮겼다 . 


유해는 가나자와 재일본조선인 연맹 본부 사무실에 옮겨 졌다가 3 월 8 일 아침 가나자와역 을 떠나 다음 날 아침 도쿄의 우에노 역에 도착하였다 . 먼저 발굴한 이봉창 , 백정기 의사의 유해는 동경 의 간다에 있는 오키쿠배규에 있는 전 일본 육군 대학 건물내의 신조선 건설 동맹 사무실에 모셔져 있었다 (자유 신문 , 1946 년 4월 3일). 윤의사의 유해가 우에노 역에 도착하자 이미 사무실에 안치되어 있던 이봉창 ,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앞세우고 나가 윤의사의 유해를 맞이 했다 . (182-183쪽)



 성지로 조성 될 수 있었던 것은 가나자와 일대에 살고 있던 재일 동포들과 양심적인 일본인 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 입은 바 크다 . 박동조 , 박성조 , 박인조 선생 과 김진수님,장태화 님의 암장지 발굴과 조성 사업 , 그리고 가나자와 지역의 박현택 회장 , 암장지를 영구 임대 할 수 있도 록 행정적으로 지원해 준 야마데 전 가나자와 시장 , 다무라 교수 , 한자와 교수 , 고 히라타 시의원 , 모리모토 도의원 , 모리 시의원 , 아마 모토 시의원 , 전 후루카와 학산시 의 원 , 야마구치 학산시의원 등 많은 분들의 열성적인 참여와 양심적 일본인의 마음 이 합쳐져 서로 손을 굳세게 잡은 결과다 . 윤봉길 의사를 통해 한 · 일 양국의 국민들은 서로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54






* 윤봉길 의사 암장지 가는 길이다.구글맵에서 윤봉길의사 암장지가 검색된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른편에 묘지석들이 끝나고 공원이 보일때 좌측으로 보이는 샛길로 들어가면 된다.


샛길로 들어서면 다음과 같은 공원묘지 표지석이 나온다.


샛길로 들어서면 바로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안내판이 나온다.

윤의사 순국비는 오른쪽으로 올라가고, 암장지는 정면 방향이다.


조금 가다보면 왼쪽으로 공동묘지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이시가와현 군 전사자 묘역이 있다.

정면에 있는 좁은 길로 직진하면 된다.


조금만 가면 오른편에 윤봉길의사 암장지가 보인다.



윤봉길 의사 암장지.


자료고를 열었다. 빨간색 수첩이 방명록이다. 



며칠전에 관련기사가 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9-05-12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윤봉길의사의 업적이 항일 독립 투쟁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우리가 너무 잊고 지내왔음을 느끼게 됩니다... 양재역 매헌윤봉길 기념관을 찾는 이도 많지 않은 요즈음 우향님께서 의미있는 방문을 하셨습니다^^:)

雨香 2019-05-12 22:43   좋아요 2 | URL
가나자와에 윤봉길의사의 암장지가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윤봉길 전기 두 권을 읽고 다른 자료들을 찾으며 윤봉길 의사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게됐습니다.
올해가 1919년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이라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역사저널 그날도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다루고 있는데, 이 기회에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많은 연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몇 해 전 일본에서 이런 사진을 봤다. 급하게 지나가느라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 우연하게 이곳이 시라카와고白川郷 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지난 연말 이곳에 다녀왔다. 

3년 전 겨울, 남자친구는 이 세상에 없는 듯한 마을 사진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뽀족한 지붕을 한 나무집 서른 채 정도가 산 속에 모여 있었다. 지붕 위에는 30센티미터도 훨씬 넘어 보이는 두께의 눈이 쌓여 있었다. 남자친구는 여기에 함께 가자고 했다. “이거 그림이야 사진이야? 이런 데가 있단 말이에요?” 나는 이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135쪽, 오후를 찾아요)

  

원래 아래와 같은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인데, 돌아다니기 힘들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다. 


실체를 알게 된 순간 이기도 했다 . 단순히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된 예쁜 마을이라 생각했는데 사진을 통해 본 마을은 그 이상이었다 . 벚꽃속에 파묻힌 시라카와고의 봄과 모내기가 한창인 초여름 , 마을 사람 모두가 나서서 벼를 수확하는 가을 , 눈 덮인 겨울 , 그리고 축제인 도부로쿠 마쓰리와 전통 혼례를 올리는 예쁜 신부의 모습 등 시라카와고의 사계절과 이 지역의 각종 행사를 담은 사진들을 모두 보자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 았다 . 그중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 잡은 사진은 시라카와고의 겨울 풍경이었다 . 뾰족한 장식 지붕에 두껍게 쌓인 하얀 눈과 노란 불빛이 박힌 창문 이곳의 겨울 풍경은 현실 세계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동화 속의 한 장면이었다 . (29쪽)

드디어 2008 년 1 월 1 일 새해 아침이 밝았다 . .... 여전히 눈이 내리는 새해 첫날 , 여관 방 창밖을 보니 연못 주변의 소나무 가지는 금세라도 부러 질 것 같았고 , 두껍게 쌓인 눈은 지붕에서 흘러 떨어지며 육중한 소리를 내 깜짝 깜짝 놀라게 했다 . 아 , 오늘도 눈이구나 . 오랄 때는 안 오고 그만 왔으면 할 땐 멈추지 않는 것이 눈이고 만남이고 인생이었다 . (39쪽, 아시아시골여행)

시라카와고의 가옥은 갓쇼즈쿠리合掌造라 불린다. 합장한 손과 비슷한 모양이라는 뜻인데, 눈이 많이 오는 기후 때문이다. 고립된 지역적 특징 때문에 오랫동안 이런 전통 가옥이 남아있다.

시라카와의 갓쇼즈쿠리는 에도시대 후기부터 메이지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의 옛 정취와 문화를 접해 볼 서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 정부나 관에서도 일본의 훌륭한 문화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와 함께, 현재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이 불편하지 않게 지원울 아끼지 않고 있다. 갓쇼즈쿠리라는 독특한 지붕 양식은 '유이(結)‘ 에 의해 공동으로 지붕을 올리고, 30-40년 마다 한 번씩 이엉을 교체하기 때문에 개인이나 가족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유지할 수가 없다 .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과 기술을 합해 옛 방식 그대로 독특한 민가를 세월로부터 지키고 있다 . 
....

또한 갓쇼즈쿠리는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의 가옥 형태로 겨우내 내린 눈이 지붕의 볏집 위에서 얼어 붙고 그 위에 계속 눈이 쌓이기 때문에 눈을 치우지 않으면 하중을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 시라카와코 갓쇼의 진수를 보려면 오기마치 진자마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와다가에도 들러 보자 . 이곳은 시라카와 최대 규모의 갓쇼즈 쿠리 가옥으로 , 300년 전부터 촌장이나 관청의 관리를 지낸 명문가다 현재는 국가 중요 문화재 로 지정돼 당시의 정취가 그대로 보존 되어 있다 (238,239쪽 일본소도시여행)

4월말 이곳을 다시 찾았다. 봄의 시라카와고가 보고 싶어서. 그러나 4월말 5월초는 일본의 연휴, 골든위크다. 시라카와고IC에서 나오자마자 차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길 4km.

다음엔 아무것도 없는 평일에 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핸들을 돌렸다. 


시라카와고에 대한 동영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래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시라카와고 주변에 있는 또 하나의 갓쇼즈쿠리다. 집들의 규모에서는 시라카와고는 많은 차이가 나지만 가옥 구조는 동영상과 유사하다. 


아쉽게도 시라카와고를 별도로 다룬 책을 찾기는 힘들다. 단순한 에피소드를 다루거나 여러 관광지 중 하나의 꼭지로 넘어갈 뿐이다. 물론 시라카와고만을 다루기는 힘들겠지만, 주변지역을 엮어서(가나자와+시라카와고, 시라카와고+도야마) 책을 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단순히 여기에서 뭐 했다. 어느 지점에서 사진 찍으면 좋다 이런 블로그성 내용 말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