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산책 - 소설보다 재미있는 진화의 역사
션 B. 캐럴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Biz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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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려운 분야다. 실험실에서 연구를 한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발품을 팔아 지각 속에서 증거인 화석을 찾아야 한다. 온전한 화석을 찾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화석을 연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리고 연구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다윈은 종의기원의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도 20년이나 묵혀두어야 했다. 당시 종교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리고 실제 연구결과에 대해서도 지질학, 생물학 등 내부에서의 깐깐한 비판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진화론이다. 이 책은 이런 진화론의 여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진화론 역사의 선조는 훔볼트이다. 그가 진화론을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남미 대륙 연구가 많은 이들에게 아이디어를 주었다.

 

그리고 두번째로 다윈과 월레스와 베이츠에게 진화론의 공을 돌려야 한다. 사실 월레스와 베이츠가 없었다면 다윈은 그의 <종의 기원>을 펴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자연 선택이라는 개념과 그것을 증명하는 증거 수집의 한가운데에 세 번의 항해와 세 명의 영국인 자연과학자가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다름 아닌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다. 다윈이 자연사와 진화 이론 연구에 기여한 바는 매우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어떻게 그 배에 올랐는지, 그의 견해와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세계관을 갖게 됐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못 이해되기도 했다.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비글호에 올랐던 신학생 한 명이 미래에 혁명적 이론을 제시할 사람이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항해를 시작할 때만 해도 다윈에게 그 어떤 위대한 이론을 지지하거나 반박할 증거를 찾으려는 의도 따위는 없었다. 그의 진화 이론이 구체적 형태를 띤 것은 항해가 끝나고 자신이 그곳에서 본 것이 무엇인지 혼자 생각하기 시작하면서였다. 반면 알프레드 러셀 월레스와 헨리 월터 베이츠는 항해 시작부터 진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나의 종이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1840년대 중반 이미 지식인 사이에서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친구인 베이츠에게 함께 아마존으로 가 ‘종의 기원이라는 문제를 풀’ 자료를 모으자고 제안한 것은 바로 월레스였다.

(중략)

이들의 여정은 힘들고 괴로운 순간과 환희에 찬 기쁨의 순간으로 채워진, 진정한 서사시였다. 벌레, 새, 움직이는 것이면 무엇이든 수집하던 세 남자는 종의 다양성과 하나의 종안의 변종들, 그리고 이러한 종과 변종들의 지역적 분포에 대해 점점 올바르게 인식하게 됐다. 그들이 각자 나름대로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본디 이러한 인식 때문이었다. 이 덕분에 다윈은 '자연선택'이라는 개념과 공통 조상에게서 퍼져 나온 후손의 발달을 연구했고(2장), 월레스는 개체 사이의 '생존투쟁'이라는 자신의 독립적인 개념과 아시와와 오세아니아 동물을 분류하는 이른바 '월레스 선'에 전념했으며(3장), 마지막으로 베이츠는 야생에서 자연선택에 대한 최고의 증거를 제공했던 동물의 의태 현상 이론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4장)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진화 이론은 모두 영원히 다윈의 것 처럼 보이게 됐지만 그러한 이론이 발전하고 초기 과학계로부터 널리 인정을 받는 데는 각각 월레스와 베이츠의 공이 컸다고 말할 수 있다. (32~34쪽)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이 나왔다고 진화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진화에는 너무 많은 간극이 있었다. 그리고 왜 공룡들은 갑작스레 사라졌는지 규명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것을 찾기 위해 그랜드캐니언을 뒤지고, 몽골을 뒤지며 학자들은 진화의 연대기를 하나씩 채워나갔다. 공룡이 갑자기 멸종한(? 멸종은 아니니) 원인도 찾아냈다. 그리고 진화의 연결고리들 바다에서 육지로 나온 생물을 찾아내며 진화를 차근차근 채워나갔다. 땀과 열정으로....

 

"인간의 기원이라는 문제는 다윈의 혁명적인 책이 등장하던 바로 그 순간부터 모든이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이후 고생물학에서 가장 대담한 탐험과 위대한 발견들이 어류와 양서류, 파충류와 조류, 그리고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둘 사이를 연겷는 고리 역할을 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고생물학 역사상 가장 그 목표가 뚜렷하고 집요했던 탐험 중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고대의 인류를 찾기 위한 외젠 뒤부아eugen dubois의 탐험이었다. 그는 이 탐험을 위해 네덜란드에서 의사로서의 삶을 버리고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열대의 인도네시아로 향했다.(5장). 다윈의 새로운 이론에서 영감을 얻은 뒤부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발견한 '자바원인'은 최초의 연결고리로서 그 이후 발견된 모든 원시인류 화석과 ...각종 주장을 둘러싼 열띤 논쟁의 전조와도 같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캄브리아기 화석에 등장해 다윈을 걱정시킨 동물의 흔적에 관한 사연이다. 더 오래된 화석과 동물 시대의 여명을 향한 연구 덕분에 찰스 월코트 charles walcott가 다음 두 가지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다.(6장) 첫째, 그랜드 캐니언 깊은 곳에서 그는 캄브리아기 이전에 생명이 존재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발견했고 이 증거는 생명이 그 보다 훨씬 전에, 더 단순한 형태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리고 두 번째로 캐나다 로키 산맥 정상, 버지스 혈암 Burgess Shale에서 그는 그 어는 것보다 역사가 길고 가장 특이한 생물의 가장 큰 흔적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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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화석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동물은 물론 공룡이었다. 가장 위대한 자연사 탐험이라 불리는 로이 채프먼 앤드류스의 몽골·고비 사막 탐험(7장)은 공룡이 아니라 고대 인류를 찾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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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기 말 공룡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초기 고생물학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십년 후, 물리학자 아버지와 지질학자 아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이탈리아 외곽의 작은 마을, 얄팍한 진흙층 속에서 최초의 단서를 발견하기까지 그 원인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8장에서는 이 거대한 멸종현상, 곧 20세기 지질학, 고생물학, 생물학을 통틀어 가장 중요하고 혁명적인 발견 중 하나인 이 현상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과학자들이 전 세계를 탐험한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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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공룡 화석이 발견되고 19세기에 발견된 주요 화석을 다시 검사한 끝에 사실 조류가 일종의 공룡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공룡과 진화 연구에 르네상스를 맞은 것이다.(9장)

동물의 진화에서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찾기 위한 연구는 아직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지구 미지의 지역을 탐험하면서 중요한 진화 현상을 보여주는 놀라운 생물들을 더 찾아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놀라운 과도기적 진화를 보여주는 화석이 최근 북극에서 발견돼 2006년 학계에 보고됐다. 어류와 네 발 달린 척추동물의 특성을 모두 보여주는 '피셔포드fishapod'라는 이름의 이 생물은 육지 동물의 변천 현상을 보여주며 동물 역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하나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10장)"
(115~117쪽)

 

하지만 여전히 인간에 대한 연구는 더디기만 했다. 하지만 단초는 인간 화석이 아니라 유뮬로 부터 풀렸고, 과학의 발전으로 DNA 를 분석하게 됨으로 진화론의 부족한 부분들이 하나씩 메워져 나간다.

"원시 인류의 화석을 찾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완전히 다른 문제다. 우리의 조상은 떼를 지어 드넓은 대륙을 떠돌아다니지도 않았고, 해저 깊숙한 곳에 살지도 않았다. 또한 다른 동물들처럼 그 수가 많지도 않았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차원에서 훨씬 더 제한된 분포를 보였다. 몸통뼈는 두개골로부터 쉽게 분리되고, 두개골은 조그만 충격에도 산산이 부서진다. 뒤부아의 발견 이후 앤드류스의 탐험을 포함해 인간과 유인원사이의 관계에 중요한 단서를 줄만한 증거는 거의 40년 동안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유럽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은 몸집과 두개골 크기가 현대 인간과 훨씬 더 비슷했지만, 오히려 완전히 다른 종이 아니냐는 의견까지 제기됐다. 인간과 유인원 사이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증거라고 보기엔 확실히 거리가 있었다. 유인원에서 인간으로의 진화과정을 연결할 다른 고리는 알려지지도 발견되지도 않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는 1920년대 초기 뒤부아 이후 크게 나아진 것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고대 인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까?
(뒤부아 연구 이후 아시아에 집중함) (273쪽)"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는 다시 아프리카로 넘어갔다. 그러한 관심의 이동을 촉발한 것은 화석이 아니라 도구였다. 1920년대 후반, 다량의 도구가 아프리카 동부에서 발굴됐고 이것이 다른 곳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하거나 더 오래된 것으로 보아 고대에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도구와 그것을 만든 사람의 흔적을 찾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바로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새로운 인간과科 동물화석이 아프리카 동부에서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1959년, <종의기원>이 출판된지 정확히 100년 후 였다. 유인원과 우리를 연결하는 원시인류의 모습이 그 때 부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간 기원 연구의 초점은 아프리카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새롭게 드러나는 인간 자연사의 그림이 화석이나 도구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과 고대 인간의 DNA를 검사해서 인류의 역사를 해석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은 인간 기원 연구에 혁명을 일으키며 인간 기원의 역사를 새롭게 쓰게 했다."(274~275쪽)

 

우리는 이 발견을 이뤄낸 과학자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사자와 마딱드리기도 하고, 북극곰의 공포와 싸워야 했으며 실제로 풍토병으로 고생하거나 사망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발굴에 필요한 자금문제로 항상 힘들어했다. 그리고 이 연구는 아직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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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다노가 들려주는 확률 2 이야기 수학자가 들려주는 수학 이야기 46
김하얀 지음 / 자음과모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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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에서 나온 <수학자가 들려주는 수학이야기> 중 '카르디노가 들려주는 확률2 이야기'이다. 1권에서 경우의 수 등 확률의 기본을 이야기한다면 2권은 조금 복잡한 순열, 조건부 확률 등을 설명한다. 조건부 확률에서는 유명한 맨티홀의 딜레마와 관련된 설명이 있다.

 

맨티홀의 딜레마는 미국의 유명한 TV 프로그램에서 나온 문제이다. 책에서는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사례로 들고 있지만. TV에서는 세개의 문이 존재한다. 자동차 1대와 염소 2마리가 있는데 첫번째 선택 후 진행자(사진의 카르타노)는 염소가 있는 문을 열어주고 도전자(토토)에게 선택을 바꿀 기회를 준다. 조건부 확률에 따르면 선택을 바꾸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인데, 당시에는 이와 관련해 논란이 될 정도로 확률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기도 하다. 몬티홀 문제에 대해서 네이버캐스트에 설명이 되어 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2&contents_id=2426

 

기존의 수학이 자연의 법칙을 설명하려고 했다면, 확률은 우연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절대적인 법칙이 아닌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학문으로 기존 수학의 지평을 넓혔다고 이해하면 될까.

"확률은 앞날을 예측하는 도구이지. 확실히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가 아니라 일어날 가능성의 정도를 알려 준단다. 우연이라고 했니? 그래. 확률은 우연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도 해. ... 고대에는 그런 우연을 신의 뜻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우연을 연구했단다. 그것이 확률 연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지"(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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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다노가 들려주는 확률 1 이야기 수학자가 들려주는 수학 이야기 25
김하얀 지음 / 자음과모음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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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일반인으로 가끔 찾아보는 책이 자음과모음에서 나온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이야기'와 '수학자가 들려주는 수학이야기'가 있다. 관심가는 분야에 대해 입문정도로 개념만 잡고자 읽는다.

 

확률 읽기를 하면서 먼저 집어든 책이다. 주사위부터 시작해 확률의 기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확률에 대한 개념을 처음 가져온 카르디노를 등장시켜서.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은 주사위와는 다르단다. 예측 불가능일 뿐 더러 각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같데 만든다는 것도 힘든 일이고... 그렇지만 확률을 통해서 앞날을 예측하는 것은 수학만이 할 수 있고, 수학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지."(173쪽)


확률자체가 도박에서 시작해서 수학은 확률에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카르디노 덕에 수학은 확률을 통해 수학을 예측의 범주안으로 들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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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게너가 들려주는 대륙 이동 이야기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34
좌용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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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지형이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아주 오래전 지구의 대륙은 하나였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들었는데 그 이야기는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중의 하나였다. 별 관심도 없던 대륙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상기한 것은 지진읽기를 시도하면서 이다. 지진에 대한 가장 핵심이론 중의 하나가 판구조론인데, 이 판구조론은 대륙이동설에 기원한다. 즉, 지진 및 화산활동을 이해하려면 대륙이동설을 이해해야 한다.

대륙이동에 대한 설은 지도의 제작이후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로만 취급되었다. 그러다 기후학자이자 지구물리학자였던 베게너는 그 재미있는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연구를 갖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대륙이동설이 시작된다. 

최초의 지구는 판게아라 불리는 하나의 대륙에서 갈라져서 점차 이동했다는 것이 대륙이동설이다. 대륙이동설의 증거로는 첫째, 고생물의 증거가 있다.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동일 생물화석이 발견된다. (아래 사진. 동일하게 나타나는 고생물 화석으로 고생물이 살았던 지역을 보여준다. 출처 : 위키피디아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20XXXX6056) 둘째, 지질의 증거로 북아메리카와 유럽 특히 접경지대에서 발견되는 같은 지층, 암석이다. 셋째는 기후의 증거로 인도남부와 호주 등에서 빙하의 흔적이 보인다.


게다가 1920년대 홈즈에 의해 맨틀대류설이 제기되면서 대륙이동설의 설명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대륙이동설에 더 많은 증거를 요구하면서 대륙이동성을 과학계에서 무시되고 사라졌다.

그러다 제2차대전시기 갑작스레 해양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잠수함 등의 등장으로 잠수함을 찾기 위한 시스템 등이 갖추어지면서 비로소 바다 밑에 연구가 시작되고 지구의 자기장을 연구하던 중 지구의 극이 서로 역전되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륙이동설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해양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면서 바다 내 해령(산맥)과 해구(골짜기)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해저확장설이 등장하는데 이는 맨틀대류설을 뒷받침한다. 맨틀이 대류하면서 해저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구의 극이 역전된 층이 중앙해령을 중심으로 평행대칭적으로 나타나면서 대륙이동설이 인정받게 된다.

 

대륙이동설이 인정을 받는 과정은 지동설의 등장을 연상시킨다. 지동설이 분명히 과학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지동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처럼 대륙이동설이 고생물 화석 및 동일한 지질구조를 갖는 서로 다른 대륙을 설명하고 있음에도 대륙이동설에 더 많은 증거를 요구하였다. 과학이 갖는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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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A 테라 : 광포한 지구, 인간의 도전 - 인류의 역사를 바꾼 4대 재난의 기록
리처드 험블린 지음, 윤성호 옮김 / 미래의창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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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 광포한 지구, 인간의 도전>이라는 이름의 책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4대 재난>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이 책은 말 그대로 광포한 지구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소재는 다음과 같다.


 - 1755년 리스본 대지진

 - 1783년 유럽기상이변

 - 1883년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

 - 1946년 하와이 힐로 쓰나미

 

지은이가 이 네가지 주제를 선택한 것은 '지구와 대기사이의 상호연관과 과정에 대한 많은 실마리를 제공했고, 각 사건이 과학적 이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선별되었다.' 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은 지진을 이야기할 때 많이 거론되는 사건이다. 본격적으로 지진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지진학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리스본은 가장 종교적인 도시였기 때문에 자연재해를 신의 심판으로 보던 신중심의 세계관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또한 리스본 대지진 피해를 돕기 위해 유럽 각국의 원조가 있었다. 물론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당시 협력관계였던 영국의 원조가 컸고, 반대로 프랑스의 경우는 원조를 하지 않았지만 국제 원조의 시초가 된 사건이다. 이 뿐만 아니라 카르발류(폼발 후작)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지진피해 파악과 재건은 재난관리의 기틀을 닦았다. 르네상스 이후 인본주의가 대두되긴 하였지만 종교재판(개신교도 이에서 자유롭지 못한)등 종교의 힘이 여전히 사회를 장악하고 있던 때에 리스본 대지진은 본격적으로 신중심 사회가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다.

 

1783년 유럽은 이상했다. 몇달씩 운무(짙은 안개)가 유럽전역을 뒤덮었고, 잦은 폭풍우와 낙뢰에 의한 피해가 지속되었다. 이 사건은 아이슬란드 화산 분화가 지속되면서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은 대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철학자 및 과학자들이 이런 현상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신학적인 설명이 아닌 과학적인 설명을 시도하게 된다. 아직 언론이 제 모습을 갖추기 전이었지만 언론들은 대기 불안정 현상에 대해 특집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언론의 역할이 점차 커지게 된다.

이 때 유럽에 거주했던 벤자민 플랭클린은 피뢰침을 발명하게 된다. 파리의 한 집에서 피뢰침을 설치하려고 하자 종교적인 이유로 이웃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후에 공포정치로 유명한 로베르피에르가 이 사건의 변호를 맞게 된다. 기상이변을 더 이상 신의 섭리로 보지 않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인도네시아 순다해협에 있는 크라카타우 화산폭발은 역사상 최고의 폭발 화산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동인도회사 등 주변에 많은 상선들이 정박되어 있어 많은 이들이 이 화산폭발을 경험했다. 자바와 수마트라 섬에는 수십미터의 쓰나미가 닥쳤다.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은 최초로 세계적으로 연구된 화산폭발이다. 당시 발명된 전신기술의 발달로 화산에 대한 소식이 즉각 전세계로 타전되었고,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화산폭발의 심각성과 화산폭발로 인한 기상효과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946년 하와이 힐로 쓰나미는 태평양에 쓰나미 경보시스템이 만들어지게 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힐로 섬에 쓰나미가 닥쳐 섬을 쑥대밭으로 만들 당시 미국의 비키니섬 원폭실험이 계획되어 있어 많은 과학자들이 하와이에 머물러 있었다. 해양학자들은 즉각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를 토대로 쓰나미 경보시스템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인간은 자연재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워왔다.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과학적인 대응책을 낸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재해의 힘은 과학을 무력화 시키곤 하고, 인간이 항상 재해관리에 진보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지질학자들이 일본 동해에서 지진이 날 것을 예측했다. 그리고 그것은 올해 일본 동북부지역 지진해일로 증명되었다. 하지만 예측했다고 해서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게다가 '앞으로 30년 이내에 지진이 날 확률~'이라는 식의 예측은 실제적인 경고가 되지 못한다. 문제는 이런 예측 후에 예측지점이 아닌 간사이 지역 고베에서 1990년대 초반 지진이 발생해 버려 과학자들의 예측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하와이 경보시스템의 경우는 1946년 쓰나미 이후 효과적인 경보체계로 자리잡았지만 경보가 내려졌다고 항상 쓰나미가 닥친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의 경보에도 쓰나미가 오지 않자 사람들은 경보체계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칠레 지진에 의해 힐로 지역은 다시 쓰나미로 인한 심각한 피해를 경험하게 된다.

 

재난관리가 오히려 퇴보되는 모습도 보인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의해 미국 남서부지역이 초토화되었지만 재해복구에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완전 복구가 되지 않았다. 재난관리를 시작하는데도 일주일 이상이 걸렸다. 1900년대 초반 샌프란시스코 지진 때는 지진 발생 하루만에 연방정부에 의한 복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카트리나 피해에 있어서는 100년 전 보다 못한 대비책을 보였다.

동남아시아 쓰나미의 경우 몇 몇 학자들에 의해 쓰나미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전달할만한 네트워크가 동남아시아에 없었다. 한쪽에서는 쓰나미가 발생해서 진행되는 것을 보고 있었지만 해당지역은 정보가 전혀 없었다. 여기에는 이런 경보체계에 대한 비용도 관련이 되어 있다.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런 경보체계에 대한 예산을 아까워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경제상황도 역할을 했을 테지만,

 

때로는 과학보다 경험이 앞서기도 한다. 쓰나미에 대해 원주민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일본의 격언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고 한다.) 바다가 갑자기 사라지면(멀어지면) 최대한 바다에서 멀리 도망가라는 옛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할로 쓰나미 당시 공사중이던 인부(원주민)들은 바다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경고했지만 문명인들(? 백인들)은 재미있는 광경이라며 오히려 바다를 보려고 했다.

개발관련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할 내용이 있다. 동남아시아 쓰나미에 있어서도 방글라데시는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가 적었다. 개발이 덜 되었기 때문에 맹그로브 숲과 산호숲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는데 이는 쓰나미의 완충작용을 했다. 개발의 한가운데 있던 휴양지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던 것과는 대조되는 장면이다.

 

인간은 자연재해를 통해 발전 해 왔지만 그것이 항상 발전만은 아니다. 과학이라는 이름의 개발은 인간을 더 위험한 환경에 내놓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점점 더 지질학적으로 위험한 곳에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다. 광포한 지구와 인간의 도전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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