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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핵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조셉 콘라드는 탈식민주의 문학론을 적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탈식민주의 문학론은, 제3세계의 근대문학이 서구에 의해서 이식되었다는 논리에 대한 반론으로, 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문학적 전통을 되살리고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에 조셉 콘라드를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무엇보다 조셉 콘라드가 활동했던 시기는 그러한 주장이 제기되기 이전이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 물론, 문학적인 발굴, 혹은 재발견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작품 속에 구현된 작가의 창작의도를 학대해석하는 오류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작품 속에서 그가 백인들이 만들어놓은 문명사회와 그들이 진행하고 있는 식민주의를 공격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식민지 정책 속에 포함되어 있는 비인간적인 요소, 문명과 야만의 구분 속에 담겨져 있는 이기심과 오만이라고 판단된다. 즉, 그의 눈에 들어왔던 것은, 식민지 지배를 받아야 하는 이들의 고통이 아니라, 그들의 지배하고 있는 자들이 내비치는 광기였다.
어쨌거나 그 역시 문명 속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을 침략하고 약탈했던 또 다른 가해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는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반성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탈식민주의 논리를 강요하는 것은, 집에서 기르는 토끼에게 왜 울타리를 뛰어넘지 못하느냐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흔히, 독자들은 작가에게 그가 속한 환경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어찌 그런 것이 가능하겠는가? 독자는 선지자도 구도자도 도덕군자도 아니다. 그는 다만 남들보다 더욱 예민한 눈으로, 스스로를 반성하는 자일 뿐이다. 이러한 주장이 작가들에게 면죄부가 되어서는 않되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무리한 짐을 짊어지기를 강요하는 것도 역시 억지이다. <암흑의 핵심>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비록 나의 개인적인 판단이겠지만, 작가가 이 작품에서 이야기한 것은, 탐욕으로 미쳐가는 인간의 광기이다. 그 탐욕은 식민주의의 이기적인 속성에 의해서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나고는 있지만, 그것만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보다 보편적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이러한 보편성이 이 작품에 대한 재해석의 여지를 만든다고 하겠다. 이 작품이 영화 '죽음의 묵시록'의 원작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베트남 전쟁 역시 변종 식민주의 정책이 만든 비극이지만 말이다.(그렇다고 '죽음의 묵시록'을 떠올리면서, 이 작품을 읽지는 마시길. 주제와 몇몇 극적인 장치를 제외하면 둘은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