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가장 읽기 힘들었던 구간은 4부 '범죄에 관하여'였다. 계속되는 살인사건은 특별히 잔혹한 묘사와 설명 없이 사건 그 자체만으로도 힘들었다. 과연 살인자만을 '악'이라 할 수 있을까?
부패한 공권력은 진실을 밝히는데 크게 관심이 없다. 부정부패, 비리, 폭력과의 결탁에 얼룩진 권력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만들어 낸다. 강요된 자백이 자백의 번복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에서는 화성 8차 사건의 누명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를 떠오르게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니라고 해서, 주요 타깃의 범위에 나와 내 가족이 속하지 않는다 해서 지켜보는 강 건너 불구경, 시민들의 무관심 또한 악이 아닐까?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얘기하고자 했던 악의 평범함에는 어쩌면 이런 모습도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