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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피하기 위해) 먼저 몇 가지 사실을 밝혀 두겠습니다.  

1. 7살, '여름 성경 학교'에 가서 나시티와 반바지를 입고 '캔디바'를 먹음. 23살, 뒤늦게 간 군대 훈련소에 자리한 교회에서 활동복을 입고 '핫브레이크'를 먹음.

2. 산타를 믿은 건 9세, 12월 15일 경까지. (결과적으로 그 해,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음)

3.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감명깊게 읽음.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매력적이지 않다고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일이다. 그들이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었을지 생각해보라' 하는 부분)

4. 시간이 난다면 읽어 볼 '책'들 중 가장 앞부분에 <성경>이 자리하고 있음.

5.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등을 즐겁게 보았음. 그 외 일당들의 저작 역시 재미있게 즐기는 편. (가끔씩 일반화의 오류 혹은 흑백논리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음)

대략 이 정도로.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오늘 소개시켜 드릴 책은, 샘 해리스의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나, 기독교 에세이집(?) 같은 표지를 하고 있지만 실은 어마어마하게 논쟁적인 책이지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작가의 전작은 <종교의 종말>. 그 무시무시한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샘 해리스는 "리처드 도킨스, 다니엘 데닛,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함께 종교적 도그마와 지적 설계론을 비판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논자"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작년 여름 <만들어진 신>의 뜨거운 논쟁부터  올 초 출간된 <신은 위대하지 않다>와 <자비를 팔다>를 거쳐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까지 오게 된 것. 어떤 내용인지, 무엇이 뜨거운지는 굳이 여기서 다시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다른 책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1. 편지 형식을 빌고 있습니다. "이 형식은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을 다니면서 기독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라고 옮긴이는 밝히고 있습니다. 악마 삼촌이 조카에게 보내는 '인간 유혹법',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굉장히 쉽게 읽힙니다.

2. 제목에서 보이는 것처럼 '기독교 국가', 그 중에서도 53%가 창조론을 믿고 있는 '미국'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C.S. 루이스의 말을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도대체 미국이 기독교 국가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그야말로 덜덜덜 하지 말입니다)

3. 얇습니다. (마찬가지로 들고 다니기 즐거운 사이즈의 <자비를 팔다> 보다도 15페이지가 적습니다) 따라서 한 문장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펀치를 날리는 날렵한 복서처럼.

공통점은 딱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청나게 논쟁적이라는 것! 어때요, 뜨거운 논쟁의 한 가운데로 함께 가보실래요? (Shall we?)

* 이런 분께! : 기독교신자(무신론자/불교신자/이슬람교신자/제수이트교신자 등등)라면, 현대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한 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종교 관련 논쟁의 뜨거운(Hot!) 맛을 보고 싶으시다면
* 이 책도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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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는 순간, 제 머리속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갔습니다.

"조선에 상업이 있었어?"
"무슨 소리야, 상도 못봤어 상도?"
"베니스의 개성상인도 있잖아?"
"그 사람은 고려 사람 아냐?"

...(참 한심하죠)

그렇지만 조선의 상업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하얀 눈썹 휘날리시던 고등학교 국사 선생님이라면 아실까, 그리 많진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잠깐, 그런 걸 알아서 무엇하겠느냐고요? 글쎄요. 그렇게 따지면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나 지금 우리와 크게 다를 것 같지도 않은 "조선의 서민들", "미쳐서 미친" 사람들, "책만 보던 바보들"을 알아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생각하면 또 복잡하고 담배 한 대 물고 싶고, 술 한잔 하며 토론을 나누고도 싶은데 그럼 또 괜히 이야기 길어질 것 같지만 사실 아주 간단한 이유가 아닐까요. (고매한 이유들은 제쳐두고) 바로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제 앞에 있는 이 책이 그렇습니다.

색색의 제목 밑에 작은 글씨로 적혀있듯 "조용하고 아름다운 조선의 도읍 한성에서 근대 상업도시로 급변하는 경성의 모던 풍경을 한데 담"은 책은, "전차와 백화점을 앞세운 근대의 달콤한 유혹, 그 속에 숨겨진 경성 상계의 흥망성쇠" 바로 그 "근대의 급속한 전개와 함께 울고 웃었던 우리의 생생하고도 치열한" 삶을 그려냅니다.

생각해 보면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 동안 별 다른 변화 없이 고요하던 경성, 하지만 근대화의 바람은 몰아치고 제물포 개항으로 쏟아진 화려한 신문물,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가 아니었을까요? 자, 이제 도시가 들썩입니다. 그 도시 안에서 여전히 사람들은 살아갑니다(백화점에 간 이상 씨, 전차를 타던 구보 씨, 전당포에 결혼반지를 맡기던 염상섭씨 등등). 그렇게 근대 상업도시 경성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물론 그 엄청난 변화는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지요. 어때요, 흥미롭지 않으세요?

* 이런 분께! : 역사를 좋아하신다면, 역사에 흥미를 느껴본 적이 없으시다면, <상도>말고 또? 라고 하신다면, 비정상적이고 비인간적인 한국 자본주의가 강제적인 개항과 이권의 이전투구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발전되어 왔는지 궁금하시다면…(!)
* 이 책도 함께! :



 

 



그리고 여기, 또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이미 올 초에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한국사傳>의 두 번째 이야기! (KBS TV에서도 여전히 절찬리에 방영중이지요)

기왕의 한국사와 다른 점은,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바로 통사가 아니라 인물 중심의 열전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열전 형식의 책이 처음은 아닙니다만, 이 책의 특징은 "리얼 휴먼스토리로 가득한 전(傳)에 주목"했다는 것.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다들 아시겠지만 역시나 가장 재미있는 것은 사람 이야기죠.

그렇다면 2권에서는 어떤 인물들을 다루고 있을까요? 올 초 '옥토끼가 달을 바라보고 노래하는' 제 운수를 점지해주신 토정 이지함, 연산군이 광기어린 목소리로 "처선아~"라고 부르던 내시 김처선, 매주 월요일 10시면 만나는 이산 정조 등 우리 역사 속 '유명짜'한 인물들부터, 그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더없이 소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뒷표지에 이런 말이 적혀 있네요. "한국사의 씨줄과 날줄이 된 숨은 인물 찾기!")

사실 저는 '열전'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맹꽁이 서당>이 먼저 떠올라요. 토정 이지함 선생 역시 윤승운 화백 특유의 익살스러운 그림으로 제 기억 속에 남아있을 정도로. (사실 윤승운 화백의 인물은 다들 비슷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구분되는 디테일이 있었던 거죠) 어린 시절 독서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 요즘입니다… (참 한심하죠)

* 이런 분께! : 1권을 보셨다면, 1권을 아직 안보셨다면, 동명의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셨다면, 역사 속 인물들이 궁금하다면
* 이 책도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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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아 있는 지구

 북극의 곰을 좋아하세요? 언젠가 근엄하기로 소문난 독일 국민들이 아기곰 '크누트'가 커버리자 (더이상 귀엽지 않다는 이유로) 비통에 잠겼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새하얀 아기 북극곰은 분명 사랑스운 존재이긴 해요.

하지만 그것은, (동물을 대상화하는) 다분히 인간중심적인 관점이 아닐까요?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엄마 곰 아기 곰> 같은 촉감 그림책을 만나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하얀 털을 쓰다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지만… 

저 역시 마냥 귀엽게만 보던 북극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다큐멘터리 [살아 있는 지구]의 '혹독하고 고독한 극지방' 에피소드 때문이었습니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먹이를 찾아 떠나는 북극곰 일가를 보게 된 것이지요.

과연 북극의 삶이란 혹독하고도 고독해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북극곰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자연 그대로의 북극곰의 모습. 바다표범을 공격하고, 하얀 털에 빨간 피를 뒤집어쓰고, 다시금 먹이를 찾아 찬바다를 헤엄치는 북극곰의 모습은 그저 놀라울 따름.

오직 살아남기 위해 빙산에서 빙산으로 헤엄치던 북극곰은 때때로 다음 목적지에 채 닫기도 전에 힘이 빠지곤 합니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빙산들이 점점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결국 북극곰의 죽음에 우리 모두 일말의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우리가 책임이 있는 것이 비단 그 뿐만은 아니겠지만요). 이렇듯 [살아있는 지구]는 제게,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같은 집을 공유하며 살고 있음을 새삼 새기게 했어요.

하여 이 다큐멘터리를 설명하는데 "BBC 제작-제작비 300억-제작기간 4년-에미상 4개 부분 수상" 등의 수식이 얼마나 필요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꿈틀대는 지구에서 살아왔고- 살아가는, 우리의 빈약한 상상을 뛰어 넘는 동물들의 치열한 삶에 그런 수식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하여 이 동명의 책에도 별다른 수식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영상매체에서 인쇄매체로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그 감동을 오롯이 담아냈다는 것, 오히려 책이라는 매체의 장점을 십분 살려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는 것, 그 정도로만. 시원한 판형에 아름다운 사진만으로 보는 이를 뿌듯하게 하는 그런 책입니다.

* 이런 분께! - 다큐멘터리의 감동을 잊지 못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위대한 아름다움이 궁금하다면
* 이 책도 함께! - <자연의 빈자리>, <인간 없는 세상>


2. 지젝이 만난 레닌

물론 인간 역시 지구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동물이고, 비록 혹독하고 고독한 극지방은 아니더라도, 그 삶이 평탄할리만은 없죠. 실은 고민 투성이에요. 자, 그러면 문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많은 대답이 있어왔고, 또 있겠지만 여기 한 번쯤 생각해 볼 대답이 있습니다.

"레닌을 재현실화한다는 생각에 대한 공중의 첫 번째 반응은 물론 빈정거리는 폭소다. 마르크스는 좋다. - 오늘날에는, 심지어 월 스트리트에도, 여전히 마르크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주의의 힘을 완벽하게 묘사한 상품의 시인 마르크스, 우리 일상 생활의 소외와 물화를 보여준 '문화 연구'의 마르크스. 그러나 레닌은 - 안 되지, 농담이겠지!" 라고 스스로 책을 시작하는 지젝.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레닌일까요?

지젝이 주목하는 부분은 "오늘날의 좌파가 진보 운동의 시대 전체의 종말이라는 충격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1914년 레닌의 시대에 "진보에 대한 목가적이고 부르주아적인 믿음만이 아니라, 그것과 동행했던 사회주의 운동도 사라졌"던 "세계 전체가 사라진 재앙"과의 역사적 유사성입니다.

그리하여 지젝은 이렇게 말합니다.

"'레닌'은 낡은 교조적 확실성을 가리키는, 노스탤지어에 젖은 이름이 아니다. 정반대다. 우리가 건져내야 할 레닌은 낡은 좌표가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 상황, 재앙에 가까운 그런 새로운 상황에 내던져지는 근본적인 경험을 했던 레닌이며, 그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마르크스 주의를 다시 만들어내야 했던 레닌이다. (중략)

핵심은 레닌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키르케고르적인 의미에서 레닌을 반복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상황에서 똑같은 충동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레닌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노스탤지어에 젖어 '좋았던 옛 혁명기'를 재상연하자는 것도 아니고, 낡은 강령을 '새로운 조건'에 맞게 기회주의적-실용주의적으로 조정하자는 것도 아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라는 조건에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914년의 재앙으로 오랜 진보주의 시대가 정치·이데올로기적으로 붕괴한 뒤에 혁명적 기획을 다시 만들어낸 레닌의 행동을 현재의 세계적인 조건에서 반복하자는 것이다."

어때요? 우리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스타) 철학자 지젝의 제안이. 1부는 1917년 2월혁명이 일어난 직후부터 10월혁명이 성공하기까지 쓴 레닌의 핵심 텍스트 중 지젝이 직접 편집한 텍스트가, 2부는 이러한 레닌의 사상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바로 여기의 문제로 되살려내는 지젝 자신의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이렇듯 현실과 맞닿은 주제와, 정영목 씨의 유려한 번역으로 지금까지 번역된 지젝의 어느 책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미덕입니다.

* 이런 분께! - 지젝이 좋다(싫다/궁금하다)면, 21세기에 유토피아는 가능한가-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궁금하다면
* 이 책도 함께! -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혁명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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