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 - 물이 평등하다는 착각
맷 데이먼.개리 화이트 지음, 김광수 옮김 / 애플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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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물 부족 국가로서의 우리나라를 부각하는 광고가 한창 나오던 적이 있었다. 그게 아무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아, 한국은 수자원이 부족한 나라인데, 혹은 물을 아껴써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가끔씩 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적이 또한 있었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후 여러 통계와 자료를 근거로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라는 말은 사기극이라는 것이 인터넷 상에서 제법 논란이 된 적도 있었다.

최근의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현재 물 부족 국가는 아니다. 그래도 과거에 일정 기간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된 것은 사실이었다고 한다. 정리하면 우리나라는 현재 물 부족 국가는 아니지만 전 세계적인 환경 문제와 그에 따른 물 자원 네트워크의 위기로 인해 얼마든지 물 부족 국가가 될 수 있는 나라, 다시 말해 물 부족 국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나라는 아니다.




물은 생명이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 조건이자, 동시에 생명체가 생명체 본연의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인간의 경우는 어떤가? 단 며칠만 물을 마실 수 없어도 생명이 위험해진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필수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할 물조차도 지역이나 환경에 따라 빈부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자 나선 인물들이 있었으니,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배우 맷 데이먼과 물과 위생 시설 전문가 개리 화이트라는 인물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환경오염, 가난, 질병, 범죄 등 열악한 국가나 지역, 공동체의 고질적인 문제의 근원에 안정적인 수자원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공통적으로 자리 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마실 물, 씻을 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그것을 해결하느라 삶을 다 써버리는 가운데 삶의 점진적 개선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물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현재의 상황에서 보다 나은 상황, 즉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이라는 것은 그만큼 사람의 기본적 생존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보람과 자아성취 등 인격적이고 철학적인 영역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원임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물과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그라민 은행으로 유명한 유누스 총재가 주도했던 ‘소액금융대출’ 방식을 벤치마킹하기로 한 과정은 물 문제가 단순하게 선한 의도로 해결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임을 보여준다. 반대로 이 위대한 아이디어에도 치명적 약점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더 나은 방식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에서 얻을 수 잇는 소득이다.

무엇보다 물과 위생 문제는 막대한 자금, 즉 재정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의 기반은 결국 자본주의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과 위생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결국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라는 사실을 설득하며 본래 꿈꾸었던, 누구나 물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용하고 위생적으로 건강한 삶을 누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맷 데이먼과 개리 화이트의 여정에 , 감탄과 존경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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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양심이 없다 - 인간의 죽음, 존재, 신뢰를 흔드는 인공지능 바로 보기
김명주 지음 / 헤이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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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무생물을 의인화하여 마치 살아 있는 인격체처럼 대하는 능력이다. 이걸 능력이라 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몰라도, 이 능력으로 인해 인간의 기술은 엄청난 발전과 함께 문제를 경험했다. 인공지능에도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이미 간접적인 경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인류는 인류 기술의 정점이자 최후의 기술이라 일컬어지는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인공지능의 윤리 문제에 직면했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을 흔드는 AI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죽은 자의 디지털 부활, 살아 있는 자의 디지털 영생이 가능하게 된 시대, 라는 이슈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독특하고 위험한 가지치기다. 신화적인 상상상을 넘어 과학과 철학, 종교의 영역을 모조리 흡수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가공할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삶의 기록이 디지털 데이화되어 육신이 죽으면 다른 육신, 즉 하드웨어에 이식하여 계속 나의 정체성을 이어간다는, 영생이나 부활 본연의 의미를 빗겨간 듯도 한 이런 개념의 부상은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에 상당한 혼란을 일으킬 듯하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 수평적이어야 하는가 수직적이어야 하는가? 라는 물음도 주목할 만하다. 인공지능은 사람에게 유익과 편리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지만 우리의 삶이 오히려 기술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음을 생활 속에서도 조금씩 체험하고 있다.




‘존재’를 흔드는 AI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 형식인 아바타 그리고 그 아바타가 존재하는 공간인 가상세계가 이 장의 주요 이슈다. 요즘 메타버스라고 불리는 초현실 가상세계가 가장 많이 거론된다. 앞서 죽음을 흔드는 인공지능 기술에서도 다루었듯이 우리의 죽음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이중적 정의를 ‘정식’으로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이미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도 있지만, 이제는 보편적인 현상이 될 길이 열린 것이다.

가상 아나운서, 인플루언서, 가수 등의 출현으로 기존 현실 세계의 인간을 보조하는 입장에서 경쟁하는 관계로, 나아가 현실 인간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가상 인간이 가져올 수 있는 다양한 미래 가능성을 살펴본다. 공무원이나 의사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 장에서는 전통 아날로그 윤리에 대비되는 디지털 윤리에 대해 논하다가 결국 전통 윤리의 외연의 확장을 통해 점점 혼합현실로 가고 있는 흐름을 품어내는 새로운 윤리 개념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신뢰’를 흔드는 AI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까? 라는 질문은 인공지능 이전에 이미 사회의 변혁을 일으키는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나왔던 물음이다. 일반적으로 신기술에 의해 기존의 직업들이 사라지면 또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새로운 직군이 생겨나 사람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으로 결론이 나곤 했다. 하지만 좁은 인공지능에서 범용 인공지능, 초지능 사회가 되면 이 법칙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생겼다.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우리의 삶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큰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다룬 내용이 탈인간 중심의 법체계는 가능할까? 라는 질문이 나온 배경이다. 인공지능은 이론상 주체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떤 사고가 벌어졌을 때 그 책임 소재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인격’ 개념의 확장을 통해 법인이 예외적으로 법인격으로 인정된 사례를 생각해보면 인공지능 역시 법의 통제를 받는 법인격, 인격체로서의 자격을 부여받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실적으로 좁은 수준의 인공지능에서도 많은 문제가 발견되었고, 예측 가능한 문제가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기술 발전으로 초래될 급격한 변화와 파괴적 혁신에 대한 궁극의 대안,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은 윤리적 대안, 즉 ‘인공지능 윤리’의 지속적 확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에 따라 공공성, 책무성, 통제성, 투명성을 제시한다.




흔들림 너머 AI 바로 보기

믿고 함께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가능한가? 지금 인류에게는 과거보다 더 현명한 판단과 결단이 요구되고 있다. 기술이 사회를 지배한 후 발생한 문제를 뒤늦게 대응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너무 위험해 보인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지금까지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기제 중 하나가 윤리다. 이제는 인공지능의 가공할 가능성을 인정하고 인류의 가장 큰 무기인 집단지성에 의한 윤리 체계를 선제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에 적용하여, 다가올 위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인공지능 기술이 줄 혜택과 유익, 긍정성을 마음껏 나누고 후대에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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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콘서트 - 와인글라스에 담긴 인문학 이야기
김관웅 지음 / 더좋은책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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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포도로 만든 술, 즉 포도주다. 포도는 인류와 함께한 오랜 역사가 있는 의미 있는 과일이다. 마치 개나 소처럼 인류의 삶에 있어서 거의 필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해왔다. 와인이 인문학을 풀어내는 요긴한 재료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삶과 생각, 모든 느낌을 다루는데, 이때 오직 인간만이 주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과 함께한 여러 외부 요소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무래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가장 먼저 인간의 삶에 결부되었을 것이고, 그 최전선에 동물과 식물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십자군 전쟁은 200년 간 피와 살육으로 이루어진 인류의 비극적인 역사를 만들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인간의 상업활동을 촉진하여 장원경제에서 개방경제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전반적으로 인류의 부가 증진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수도사들이 포도농사를 짓기 시작하는데, 포도주가 성찬의식에 필수적인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성찬의식뿐만 아니라 이것을 일반인들에게 팔아 수도원 운영자금을 마련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때맞춰 발전한 개방경제가 수도원의 경제적 형편을 좋게 해주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생산성의 향상은 부의 축적을 낳았고, 더 많은 생산을 위해 포도 농사는 확장되었다. 이때 햇볕이나 토질 등 조건에 따라 다양한 맛의 포도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는 곧 우리에게 오늘날까지 잘 알려진 ‘부르고뉴 와인’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빚어낸 또 하나의 와인 탄생기도 흥미롭다. 전쟁에서 패한 잉글랜드인들은 이미 전쟁과 관계 없이 프랑스 와인에 길들여진 상태였는데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되자 대체할 것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높은 온도에 노출된 포도주의 변질 문제를 해결하려고 궁리하다가 도수가 높은 독한 와인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단맛이 특징인 ‘포트 와인’의 시작이 된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꼬냑도 인간의 발상의 전환의 힘을 느끼게 한다. 판로를 못 찾고 쌓여가는 와인의 보관 방법을 찾다가 증류라는 방법을 떠올리게 되었고, 실제로 증류해보니 맛과 향은 유지하면서도 부드러운 꼬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증류주로서의 와인 제조 방식이 확산되면서 인류의 문화 및 기호품의 확장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식재료의 발견, 변형과 그에 따른 식문화의 발전 과정이 대체로 우연과 자연의 선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인류에게 엄청난 행운이자 선물이란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곧바로 인간의 지혜가 이것을 상업적 요인과 연결시키며 더욱 풍성한 주류 문화로 성장시킨 대표적 사례가 바로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커피 열풍처럼 다소 외적 요소만 부각된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와인 한 잔에 담긴 역사와 문화의 깊이는 결코 가볍게 볼 것이 아니며, 눈여겨볼 만한 삶의 지혜와 교훈이 깃들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 시간이었다.

* 네이버 「북유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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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 제철 채소 제철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을 것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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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사람의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새들과 나무들을 비롯한 자연의 생명체들이 풍성함으로 더욱 빛나던, 섬진강의 들녘에서 저자는 글뿐만 아니라 직접 땅을 일구고 수확을 하는 텃밭에서 또 다른 차원을 더한 문학가로 거듭났다.

섬진강과 문학이 나란히 눈 앞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선생이 떠오를텐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김탁환이라는 이름도 한 자리 차지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도시에서 섬진강으로 떠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저자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이유로 택했던 목적지가 섬진강 들녘이었던 것이다.

고요함과 습지를 오가는 백로와 왜가리, 강의 흐름과 까치의 울음소리가 어우러지는 저자의 문장을 보다 보니 흡사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나, 최근 소로를 테마로 한 정여울 작가의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가 떠오른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소설가의 문장은 소설가 특유의 문체에 자연이라는 색감이 물들어 독특한 빛깔과 울림을 만들어낸다.

흐르는 물의 모양이 변화하여 다양한 결을 만들어내고, 각각의 결들은 따로이 자유롭게 노니다가 다시 한 줄기의 커다란, 웅크린 뱀처럼 소용돌이를 일으켜 전혀 새로운 기운을 솟구쳐 내는 것처럼, 이야기가 꼭 그런 모양으로, 내면에서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다가 각각의 길고 짧은 이야기의 실타래들이 기어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고야마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 아닌가 생각해보게도 한다.

어느 동네에나 사람으로는 철수가 있고 영희가 꼭 있듯이, 개들 중에는 꼭 몽실이가 있나 보다. 이번에는 작가의 시골 생활에 등장한다. 그럴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고라니의 장난끼 어린 눈망울은 몽실이에게 그저 약올리는 수단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가 보다.

소설가에 대해 이러저러한 정의들이 많이 내려져 있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소설가란 어떤 존재인가를 담은 문장은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만물의 그늘을 보는 사람, 빛과 꽃과 위로 뻗어대는 줄기와 가지를 뒤로 하고 반대편의 침묵, 웅덩이 같은 침묵을 찾아 만지는 사람, 동 트기 전, 꽃 피기 전, 생명이 다음 단계의 진화를 폭발시키기 직전의 두려움을 담을 줄 아는 사람. 이 익숙하지 않은 시선의 즐거움과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이야기꾼의 숙명이라면, 나도 이야기꾼으로서 조금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망상을 해보게 된다.

중간중간 삽입된 색연필 감성의 일러스트는 현실보다 꿈꾸는 현실로서의 농촌에서 일구는 글밭과 덧밭을 더욱 실감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따뜻한 느낌의 정서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공유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또 하나의 섬진강 문학인이 아로새겨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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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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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뿐 인 가족 중 두 사람을 잃었다. 그것도 사고나 질병 같은 것이 아니라 살해행위에 의해. 이 처참한 상황, 그리고 당사자의 심정을 어찌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어린 딸이 비참하게 살해되고 그 충격으로 결국 이혼을 한 부인마저 훗날 의문의 살인사건 피해자가 된다는 비극이 자신의 삶을 물들일 것이라고 어떻게 예상할 수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을 돌이켜 보면 언제나 하나의 굵직한 사건이 나오고 그것이 중심 이야기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하나의(혹은 둘 이상의) 비중 있는 이야기가 평행선을 그리는 듯하다가 어느새 간격을 좁혀 두 강의 지류가 하나로 합하는 것처럼 조화를 이루면서 메시지를 완성해가는 솜씨가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 특유의 스토리텔링은 이번에 읽은 『공허한 십자가』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책 제목의 무게감이 그 어느 소설의 제목보다도 묵직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속죄 교리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신의 아들이 인류의 죄를 대신 책임지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당시 로마의 사형 도구였던 십자가를 통해 구현한 역사적인 사건에서 유래한다. 이후로 십자가는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중압감이나 무거운 짐 등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인간의 죄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어떤 흉악한 범죄자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우리는 보통 그 범죄자가 저지른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온갖 사연과 이유들이 붙어 형량이 줄어드는 경우를 수없이 보며 탄식하고 분노하곤 한다. 저 놈은 반드시 사형 당해야 해, 저런 놈이 사형을 받지 않는다면 세상에 신 따위는 없는 거야! 라는 말이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이 반복되어 왔던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류가 지금까지 완전히 풀어내지 못한 난제 두 가지, 곧 죄를 지은 인간이 뉘우치고 온전히 속죄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이 다른 인간의 죄를 사형이라는 형식을 통해 처벌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세 가지 형태의 살인 사건이라는 틀 안에서 묻고 있다. 불친절하게도 답을 내지 않는다.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소설의 초반부가 연둣빗과 회색빛이 묘하게 어우러진 청춘물처럼 시작되기에 제목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는 그 다음 순간, 비극적인 유아 살인 사건의 슬픔이 폭풍처럼 밀려들고, 시간을 훌쩍 건너 뛰어 이제 그 어머니였던 사람이 황망한 죽음을 맞게 되는 이 맥락에서, 저자는 홀로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남은 자의 발걸음을 통해, 죄는 죄를 부를 수밖에 없고, 인간은 그 죄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짓뭉개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치는 미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격정과 담담함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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