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소설가의 고백 -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읽고 쓰는 즐거움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혜원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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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자유롭게 살다 갔거나 살고 있는 사람을 매우 동경한다. 특히 모험을 비롯한 미지의 세계에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감동과 아쉬움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육체의 영역에 좀 더 비중을 둔 모험가이자 탐험가들이라면, 이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어쩌면 더 깊고 넓은 영역을 여행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치밀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이들이다. 자신이 만든 세계 밖에서 전지전능한 신처럼 군림하는가하면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 만든 자신조차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황홀함, 스릴, 격정을 느낄 수도 있다. 그들의 정신과 영혼은 물리적 제약을 받지 않고 우주 저 끝에서 끝까지 가로지르는가 하면, 또 경계를 넘을 수도 있다. 끊임없이 우주를 확장해나가는 것은 그들만의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움베르토 에코는 바로 그런 환상적인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학자이자 작가인 사람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과거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면, 오늘날은 단연 움베르토 에코를 꼽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작가의 육신의 나이는 일흔일곱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지만, 스스로 농담처럼 그러나 진중하게 자신의 작가 나이는 서른 살도 채 되지 않은 전도유망한, 훨씬 더 많은 책을 써내려갈 사람이라고 말한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젊고 유머 넘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즐거움과 열정, 희망은 결코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움베르토 에코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닌가 하는 못난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 

   이 책은 작가로서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창작이란 무엇이며, 자신의 창작 과정, 작품 속 캐릭터의 의미와 역할, 텍스트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목록에 관해 실용적 목록과 미학적 목록으로 나누어 문학의 영역에서 목록이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다룬 부분은 특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매니아적인 독서 취향을 가진 독자가 아닌 입장에서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충분히 맛보기엔 역부족이었다. 다만 이름만 익숙했던 그의 문학 세계에 아쉬우나마 한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된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이제 또 하나의 오르고 싶은 멋진 산이 생겨 기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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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정의사회의 조건 - 정의·도덕·생명윤리·자유주의·민주주의, 그의 모든 철학을 한 권으로 만나다
고바야시 마사야 지음, 홍성민.양혜윤 옮김, 김봉진 감수 / 황금물고기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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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불 무렵 나는 서점에서 이 책을 몇 번 뒤적이다 그냥 덮고 말았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쩐지 복잡하고 어려운 문장들에 읽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없이 많이 팔려나갔다고 하는데 과연 그 내용을 제대로 깊이 고심하며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의문이었다. 그처럼 정의에 대한 욕구가 컸었다면 1년이 지난 지금 뭔가 변화의 조그만 기미라도 보여야 하는데 또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EBS에서 방송해준 하버드 대학 ‘정의’ 강의는 재미있게 본 것 같다. 

   이 책은 일본인 학자 고바야시 마사야라는 사람이 평소 학문적 교류를 나누고 있던 마이클 샌델 교수의 학문적 지평, 철학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소개해주는 책이다. 그의 ‘정의’ 강의에서부터 출간된 책들,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으로는 ‘정의란 무엇인가’,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왜 도덕인가?’ 등의 내용을 종합하여 한 권에 담아냈다. 이미 일본에서도 상당한 열풍이 불었던 모양이다. 이 책을 보면 마이클 샌델 교수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는데 그것은 공동체주의, 미덕형 정의론, 공동선, 공공적인 것, 공공철학 등의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최근 경제학계에서도 주류 경제학과 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이 초래한 위기의 대안으로 많이 내세우는 개념들이다. ‘선(good, virtue)이 있는 정의’ 같은 개념은 어찌 보면 굉장히 이상주의적인 주장일 수 있다. 또한 지금의 전 인류가 마을 단위에서부터 전 지구적인 단계에까지 진정한 의미의 연대, 즉 공동체의 실현이 순차적으로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각자의 문화적, 환경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누구나 초심은 바를 수 있지만 그 열정이 열매를 맺고 배가 부르면 안에서부터 부패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기심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강력한 본성이다. 분명 이런 열기도 누군가에 의해 변질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씁쓸하지만 문제 많은 자본주의, 자유주의가 그나마 가장 온전한 시스템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슈가 나왔을 때 대중은 이것을 우러러보며 감탄이나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비슷한 가치관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완전한 이론 같은 것은 없기에 이런 끊임없는 변증법적 발전의 역사만이 유일한 길일지도 모르겠다.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는 이런 문제들조차 엔터테인먼트의 결과물처럼 다뤄져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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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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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문장이 삶의 모든 것이었고 운명이었던 조선시대의 별난 사람을 하나 만났다. 그의 이름은 이덕무.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인이었던 그는 읽을 수 있는 책만 있으면 무한한 행복을 누릴 줄 알았던 소탈한 사람이었다. 관직에도 재물에도 큰 욕심이 없었던 그는 어찌 보면 굉장히 무책임해 보이는 사람 같기도 했다. 가족들의 고생이 꽤나 심했을 것 같다. 원래 나고 자란 가정도 그리 풍족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가정을 가지고 나서도 선비 특유의 삶의 자세로 일관했던 것 같다. ‘책에 미친 바보’ 로서는 아주 매력적이고 본받고 싶은 인물이긴 하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별로...

   좋은 문장은 효도에서 비롯된다며 가진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효도를 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는 그의 말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무엇인지 짐작케 한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은 존경하고 사모하며, 자신과 같은 사람은 서로 아껴주고 격려해주며, 자신만 못한 사람은 불쌍히 여겨 가르쳐준다면 이 세상은 자연히 태평해질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는 세속적인 것에 물들거나 다투고 싶지 않은 이상주의적인 저자의 마음가짐을 볼 수 있다. 단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그의 입맛을 알아 친구들이 단 것이 생기면 챙겨주는 데 비해 그의 친구 박제가는 주기는커녕 빼앗아 먹는다고 원망을 하는 모습에서는 의외의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허구성과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는 점에서 소설을 싫어하는 밝히는 부분은 흥미로웠다. 어린 시절부터 사이좋게 지내던 누이가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하였을 때 그 추억과 그리움을 표현한 글에서 절로 마음이 가라앉고 애틋해지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한 평생 어떤 하나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다른 어떤 욕심도 없이 자연이 주는 그대로의 혜택에 감사할 줄 알고 자기가 가진 재주를 가볍게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면서도 자신만의 분명한 생각을 자유로이 드러내는 이덕무의 글을 보면서 오늘날에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문장의 향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고풍스러운 문장을 온전히 맛보기에 너무 둔한 내 자신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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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밖으로 달리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6
마거릿 피터슨 해딕스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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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트루먼 쇼’를 떠올렸는데 혹시나 했더니 역시 번역한 분이 후기에서 언급을 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트루먼 쇼’보다 좀 더 지독한 설정으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단지 도시와 문명에 지쳐 과거의 생활 방식을 원하는 사람들을 모아 19세기 중반의 마을을 조성하여 살게 하며 바깥사람들이 관찰할 수 있는 ‘역사보호구역’이라는 기묘한 형태의 관광 사업에 불과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더 건강하고 우월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과학 실험의 일환으로 사람들을 이용한 것이다. 마을 아이들이 하나둘씩 시름시름 앓고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처하자 주인공 제시의 어머니가 제시로 하여금 외부세계에 이 사실을 알리도록 부탁한다. 가까스로 과거로부터 현재로의 탈출에 성공, 1840년을 살고 있는 제시로서는 눈앞에 펼쳐진 20세기의 문명과 문화들이 낯설기 짝이 없지만 친구들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결국 임무(?)를 완수하게 된다. 작품 속에 나온 어른들의 행태가 너무나 불만스러웠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신들만의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며 살아나가면 될 것을 어찌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세계 속에 들어가 관찰되는 삶을 허용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현실에 바탕을 둔 흥미로운 이야기로 절묘하게 만들어낸 작가의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이런 소설을 읽다보면 개미가 인간의 존재를 쉬이 상상하지 못하듯이 큰 존재가 우리를 연출된 거대한 세계에 넣어두고 관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엉뚱하면서도 무서운 상상을 해보게 된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소름끼치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는 이제 굳이 소설이나 영화를 통하지 않더라도 실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려서 사실 이 소설 속 설정, 그러니까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실험을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충격적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 반면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서 주인공 소녀가 보여준 두려움과 놀라움, 용기 등을 보면서 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인생의 무수한 낯선 것들을 통해 많이 배우고 느끼려면 무섭다고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부딪히며 살아야 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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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배신 -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라즈 파텔 지음, 제현주 옮김, 우석훈 해제 / 북돋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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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주류 경제학은 이중적인 태도를 취해온 것 같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두면 알아서 경제, 그러니까 우리를 둘러싼 경제적 삶의 문제가 제대로 굴러가리라는 믿음을 대중들에게 주면서 또 한편으로는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세력들이 저지르는 온갖 편법과 악행을 변호하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일반 대중들은 경제 문제와 정치 문제가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은연중에 인식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정치와 경제, 사회 문제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중심으로 한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이상하게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우리 삶의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에 대해서 우리가 직접 대안을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음에도 그 권리조차 내팽개쳐온 것이다. 

   ‘경제학의 배신’을 읽으면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경제적인 문제들,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억압이 실은 우리 스스로부터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같은 문제들에 대해 우리 스스로 참여하고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의지가 필요함을,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함을 느낄 수 있었다. 효율적인 시장이론이 전혀 효율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음이 명백히 밝혀진 이때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미 실패한 방식에 대해 무감각하게 또 손을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지고 시행되는 과정에서 우리 일반 사람들의 적극적인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일상 속에서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가면서 생활 속 정치를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의사 결정과 경제 문제는 결코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직업 정치인들과 막강한 힘을 가진 기업들에게 일임할 수는 없는 것이다. 투표하는 것 이상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우리의 살림을 포함한 일상적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자유시장경제의 혜택 속에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사기행각을 벌여 온 것이나 다름없는 주류 경제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오늘날 지구온난화 문제와 금융위기 등의 복합적인 문제로 위기를 맞고 있는 인류의 삶에 거의 마지막 변혁의 기회가 왔음을, 그리고 그러한 변혁을 위한 시도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예들을 소개하면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길 권하고 있다. 가격이 아닌 방식으로 가치를 매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원의 낭비와 환경파괴를 일삼고 인간의 존엄성마저 무너뜨리는 이윤지향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움직이고 공정하게 자원이 분배되는, 진정으로 효율적인 경제시스템이 건강한 민주주의의 활성화와 함께 세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도 그 발걸음에 실질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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