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혀들의 키스
노바 스코시아 주의 피츠 바우언 대학에서 수사학과 일상회화의 사상을 가르치는 J. 맥도날드 - 피츠- 강좌를 맡고 있는 레이먼드 피터슨 펑크 교수는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우중충한 날 오후에 소포 꾸러미 하나를 우편으로 받았다. 단단하고 얼음덩이처럼 무거운 그 책 모양의 소포는 책 포장용 판지 상자에 들어 있었다. 펑크 교수는 마노 제의 둥그렇게 휘어진 개봉 나이프와 가위로 상당히 공을 들여 그 소포를 개봉할 수 있었으며, 그 내용물과 관련한 그의 처음 추측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정말로 책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덧붙여 말해 두지만, 이 사건은 더욱 진화된 인간 역사의 한 시기, 즉 작가들이 더 이상 책을 쓰지 않는 그런 시기에 일어났다. 그렇다. 책을 쓴다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 그런 때였다. 책은 그저 순식간에 떠올랐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주적인 의식의 바다로부터 마치 마술처럼 나타났다. 게다가 언어학 이론에 따라서 인간 문화의 진정한 영웅이자 창시자로 대접받는 교양 있는 교수들만 책에 접근할 수 있었는데, 바로 레이먼드 피터슨 펑크 교수도 그러한 진정한 영웅이자 문화 창조주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물건, 그 책, 그 가공품을 이모저모로 검사했다. 손에 올리고 책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고, 그 제목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으며, 책장도 넘겨보았다. 그는 그 책이 지금까지 자신이 소유했던 여타의 수많은 책들과 전혀 다른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즉 그 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담하게 그 저자의 이름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얼마나 주제넘단 말인가! 그 얼마나 뻔뻔하단 말인가! <누구의>라는 문구가 거기에 씌어져 있었다. 이럴 수가! 정말로 <누구의>라고 씌어져 있었다. 그는 지체없이 그 책의 전모를 추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는 어린 소년 시절 여름철 캠핑에 참가한 이래로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았다. 다만 수백, 아니 수천의 책들을 암호 풀듯이 해독해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해독은 무미건조한 작업이었고, 더군다나 이처럼 침침하고 우울한 날에 그런 일을 제대로 해낼 수는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그 책을 서가에 올려놓고는 책상에 앉았다. 한두 통의 편지를 해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순간 너무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책이 움직였고 스스로의 힘으로 책장들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의 한가운데에서 촉촉하게 습기에 젖은 장밋빛의 혀가, 말을 하는 생명체의 혀가 서서히 나타났다. 교수는 말문이 막혔다. 자기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가득 경외심을 가지고서 그는 그 기관이 몸체를 충분한 길이로 쭉 뻗었다가 어이없게도 마치 자기에게 신호라도 보내듯이 다시 안쪽으로 말아넣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 오렴, 가까이 오렴 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교수는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이 공간을 가로질러 가까이로 걸어가서, 서가 위에 있는 이 살아 있는 물체와 얼굴과 얼굴(혹은 혀와 얼굴)을 맞대었다. 무슨 행동을 하겠다는 것일까? 그는 자기 혀를 내밀었다. 쥐색의 윤기없는 물건, 누렇고 얼룩덜룩 반점이 있는, 혀 모양의 가운데가 갈라진 비엔나 소시지를 내밀어 그 뾰족한 끝으로 책의 혀와 애정에 넘치는 키스를 나누었다.
그 이후로 그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책그림책> P. 61 -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