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들은 기원전 8세기경부터 신상(神像)을 제작하고 숭배해 온 것으로 짐작됩니다. 아래 기원전 7세기초에 제작된 <만티클로스 아폴로>상은(도1) 작지만 신을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낸 초기 청동조각의 예를 보여줍니다. 인체의 비례를 머리와 상반신, 하반신으로 삼등분하고 상체를 역삼각형으로 나타내는 방법은 초기 도자기 그림에서 보았던 기하학적인 양식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1 <만티클로스의 아폴로> 앞과 뒤
기원전 7세기 경 , 청동
 
 
도2 <뉴욕 쿠로스 > 앞과 뒤, 높이 184cm
기원전 600년경,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7세기에서 5세기에 이르는 사이 인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놀라운 발전을 보여주었습니다. 만티클로스의 아폴로와 뉴욕에 있는 쿠로스상의 표현양식의 차이는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도2,3). 그러나 뉴욕 쿠로스 인체표현을 유심히 본 사람은 직립의 부동자세나 머리처리 등에서 금방 이집트 조각을 떠올릴 것입니다. 아래의 격자도표에서도 보듯이, 실제로 전체 키를 23 1/4 단위로 나눈 이 상의 비례는 우리가 이미 이집트 미술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집트 조각의 비례와 일치합니다. 당시의 기록을 보아도 그리스 기술자들이 이집트에서 조각술을 익혔음을 알 수 있습니다(도3,4).

도 3 뉴욕 쿠로스(도.2와 동일)
 
 
 
도 4 이집트 조각과 그리스
<뉴욕쿠로스>의 비례비교
 
 
도5 이집트 조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조각과 그리스 조각은 큰 차이를 지니고 있습니다(도3,5). 그리스 장인들은 우선 팔과 상체 사이, 다리와 다리 사이의 돌을 걷어 냄으로써 자연스러운 인간의 형상에 더 다가가려 하였습니다. 또한 인체의 느낌을 보면 이집트 조각이 지배자의 힘과 권위를 강조하고 있다면 그리스상은 건장하고 절제 있는 남성상을 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 조각이 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작은 조상에서 등신대 크기의 대리석상으로 발달한 것은 7세기 중엽부터입니다. 기원전 7세기 즈음에 만들어진 뉴욕 쿠로스 (Kouros:소년 또는 젊은이라는 의미)상은 다소 경직되어 있기는 하지만, 건장한 남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슴과 허벅지, 그리고 무릎의 묘사에서 그리스 장인들의 해부학적인 관심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 즉 인체의 자연스러움을 닮게 하면서 동시에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이상화된 인간의 모습을 구현하려는 조각가들의 시도가 기원전 6세기 전반의 아나비소스의 조각에서는 훨씬 더 성공적으로 구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도8).

 
 
 

주로 아르카익 시대에 만들어진 쿠로스상들은 신전 안에 모셔진 신들에게 봉헌하는 상이거나 무덤의 표시였습니다. 사모스 섬에서 몸통만이 출토된 아래 쿠로스상의 허벅지에는 "레우키오스가 나를 아폴론에게 바쳤다"라고 새겨져 있어 이 상이 신에게 봉헌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도6). 아나비소스의 쿠로스(도8) 좌대에는 "여기 죽은 크로이소스의 무덤에 서서 그를 가엽게 여기라. 그가 전장에서 싸운 것 같이 아레스를 전멸시켜 그를 분노케 하였노라"라고 쓰여있습니다. 이 조각상은 무덤에 세워져 있어서, 지나는 이로 하여금 멈춰 서서, 이 상을 보고, 명문을 읽어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게 하는 매개체였습니다. 전쟁으로 죽은 주인공은 비록 땅 속에 묻혔으나 조각을 통하여 이러한 젊은이로 존재케 하려는 그리스인들의 바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6 사모스섬 출토 쿠로스
기원 전 575-550년경, 높이 100 cm
바티, 사모스, 고고학 박물관
 
도7 테네아 쿠로스
기원 전 6세기 중엽
바비에라의 모나코, 글립토테카
 
도8 <아나비소스의 쿠로스>
기원 전 530년 경, 높이 194 cm
아테네, 국립 고고학박물관
 

뉴욕 쿠로스보다 약 반세기 후에 제작된 아나비소스 쿠로스는 인체묘사에서 큰 발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도8). 우선 머리를 작게 함으로써 전체의 인체비례는 8등신에 가깝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 묘사에 의존하던 뉴욕 쿠로스와는 달리 정확한 살붙임으로 뺨과 턱뼈가 해부학적으로 정교해졌을 뿐 아니라, 도식적이던 가슴묘사도 탄력 있는 근육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우리는 위의 네 상을 보면서 아르카익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묘사하고자 하는 인물이 아폴로 신이거나, 봉헌자거나, 심지어는 전장에서 죽은 병사이거나 상관없이 모두 젊고 이상적인 신체의 누드상으로 묘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제작된 수많은 남자 누드상을 보면서 우리는 이 시대 그리스인들이 지향하던 도덕적인 이상을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들은 사회적 권위의 옷보다는 누드의 남성성 자체를 숭상하였으며, 또한 그들이 숭상하는 이상적인 인간은 젊고 생명력이 넘치나 또한 절제된 남성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근대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누드는 여성묘사의 전용처럼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와는 달리 그리스 조각에서는 남성상은 누드로 제작된 반면 여성상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니칸드레 (Nikandre) 코레는 보존상태는 좋지 않지만 명문이 남아 있어 미술사적 의미가 있는중요한 상입니다(도9). 갈래머리를 한 머리는 이집트 조각을 연상시키며, 납작한 돌에 전체적으로 평평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도 초기의 목조방식을 대리석에 적용했기 때문인 듯 합니다. 이 여자 봉헌상의 치마 왼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습니다. "니칸드레가 나를 활 잘 쏘는 궁수, 즉 아르테미스에게 바쳤습니다. 그녀(니칸드레)는 낙소스인인 네이노디케스의 딸이자 데이노메네스의 누이이며, 지금은 프락소스의 아내이다." 즉 이 상은 친정과 남편의 가문에 긍지를 지닌 한 여성이 아르테미스 신전에 봉헌하기 위해 나무보다는 더 비싼 재료인 대리석으로 주문한 것입니다.

도9 <니칸드레의 코레>
기원 전 650년경, 높이 175cm
아테네 국립고고학 박물관
 
 
 
도10 <페플로스를 입은 코레>
기원 전 530년경 . 채색 대리석, 높이 120cm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도11 <페플로스를 입은 코레>의 복원 모형
케임브리지, 고전고고학박물관
 
 
 
 
 

위의 코레보다 1세기 뒤에 제작된 일명 페플로스을 입은 코레(도10, 11, 12)는 같은 유형의 여자 봉헌자상이지만 니칸드레의 코레보다 훨씬 사실적입니다. 밝게 미소지으며 왼손의 물건을 봉헌하는 매력적인 코레는 채색된 흔적을 지니고 있어서 원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합니다(도12).

 

도12 <페플로스를 입은 코레>
기원 전 530년경, 채색 대리석, 높이 120 cm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도13 키오스의 코레
기원 전 520년경, 높이 55.3cm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박물관
 
 

채색이 남아 있는 코레에서 우리는 화려한 장신구와 잔주름이 많은 아름다운 의상을 복원해 볼 수 있습니다. 키오스에서 출토된 코레(도13)에서도 보듯이, 머리장식과 귀걸이, 목걸이로 아름답게 꾸미고 한 손엔 언제나 봉헌물을 지닌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여성상은 젊은 신체로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냈던 남성상과 여러모로 비교됩니다. 이러한 차이에서 우리는 그리스 사회에서 남자는 젊은 청년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반면, 여자는 니칸드레 코레의 명문에서 보았듯이 자신의 이름보다는 아버지의 딸로, 오빠의 누이동생으로 그리고 남편의 아내로 존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체묘사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아테네 부근 피레우스에서 발굴된 아폴로상은 청동조각의 발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도14,15). 오른손엔 넓적한 기물을 들고 왼손엔 활을 들고 신전 안에 모셔져 있던 상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도16). 맨 처음에 보았던 작은 청동 아폴로상(도1)와 비교해 본다면 해부학적으로 정확하면서도 탄력있는 인체묘사의 방법 뿐 만 아니라 청동조각의 기법에서도 크게 발전하였음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높이 192cm의 이 상을 제작하기 위하여는 머리, 손, 발등을 따로 주물로 떠서 이었을 것이나 이음새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도14 <피레우스 아폴로>
기원 전 510년경, 높이192cm
피레우스 고고학박물관
 
 
도15 도14의 가슴 윗부분
 
 
 
 
도16 <신전 속의 아폴로>, 세부,
기원전 4세기, 적화식 아풀리안 크라테르 세부
 
 
 

 

 

청동조각은 속이 비어있어 가볍고 운반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대리석으로는 불가능한 자유롭고 열린 포즈의 상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팔을 쭉 뻗어 번개를 던지는 제우스 상의 모습은 청동이 아니면 나타내기 힘든 포즈였을 것입니다(도17). 피디아스 작품으로 추정되는 오른쪽 청동조각은 입술에는 구리와 이빨에는 은과 같이 다른 금속을 더해졌을 뿐 아니라, 채색까지 되어 있어서 후대에 로마시대 복사품으로 많이 알려진 흰 대리석의 조각상들이 그리스 당시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도18).

도 17 <아르테미시온의 조각상>
기원전 450년경, 높이 209cm
아테네, 국립고고학 박물관
 
도 18 피디아스 작으로 추정, 리아체의 <청동상A>
, 기원전 450년경, 높이 198 cm
레조 칼라브리아 국립박물관
 
 
 

이처럼 그리스에서 크게 애용되던 청동조각은 그러나 후대의 전쟁을 이겨내기는 어려웠습니다. 청동은 약탈하여 녹이면 무기를 만드는 귀한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그리스의 청동조각은 대부분 없어지고 로마시대의 복제된 상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현재 나폴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참주 살해자들>(도19)은 기원전 477년경 아테네의 크리티오스(Critios)와 네시오테스(Nesiotes)라는 두 조각가가 만든 청동상을 로마시대에 대리석으로 복제한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조각상 또한 기원전 510년경 안테노르(Antenor)가 만든 조각상을 480년에 있었던 페르시아 전쟁 중에 빼앗기고 다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청동상을 대리석으로 옮길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게지탱과 균형의 문제였습니다. 로마인들이 하는 수 없이 나무기둥 모양으로라도 버텨 놓아야 했으므로 조형상의 장애는 감수해야 했습니다. 버팀목을 생략하고 <참주 살해자들>의 원래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도20). 두 상은 좀더 가까이서 등을 맞대고 서로를 방어해 주면서 참주에게 공격하는 상이었을 것입니다.

도19 <참주 살해자들> 그리스 청동 원작의 로마 복제본,
기원전 477년경, 대리석, 높이 195cm, 나폴리 국립고고학 박물관
 
 
 
 
도 20<참주살해자들>
 
 
 
 
 
 

여기서 잠시 조각상의 정치적 역할을 언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군상은 아테네 민주제의 기초가 성립된 기원전 510년경 시민생활의 중심지에 세워지고 이 상 주변엔 다른 상을 세우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참주 살해자들> 상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숭배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뉴욕의 <자유여신상>이 미국의 자유를 상징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역사서들은 이 군상의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이 동성애 관계에 있었으며 이들의 히파르코스 참주를 살해한 동기는 개인적인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참주제에서 민주주의로 바뀌는 정치의 전환점에서 개인의 사건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미화된 것입니다. 역사는 언제나 영웅을 필요로 했고, 공공장소에 세워진 영웅의 상들은 언제나 민심을 규합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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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도시국가는 위기 때 함께 대처하고, 같은 수호신을 모시는 공동체였습니다. 따라서 고대 신전은 신을 모시는 공간이었을 뿐 아니라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 즉 애국심을 결성하는 공공의 장소였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의 도시와 신전, 그리고 정치는 서로 복합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신전은 산 속이나, 바닷가, 혹은 시장이나 극장이 이뤄진 도시의 한 가운데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어디에 세워지건, 신전은 언제나 시민의식의 지향점이였으며, 그리스인들은 신전의 건축과 조각을 통해 국가의식을 공유하고 과시하였습니다.

최근의 미술사 연구는 미술을 독립적으로 다루기보다 정치,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그 참 모습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수업에서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통해 신전과 정치의 관계를 추정하겠는데, 그러기에 앞서 새로운 형태를 위한 건축가들의 창안과 경쟁적인 노력을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그리스 건축이라 하면 당연히 신전의 기둥 장식에 따라 도리아식(도1, 4), 이오니아식(도2, 5), 코린트식(도3, 6)과 같은 세 가지 양식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고대 건축에 있어서 柱式 (order)이 단순히 주두장식의 차이만을 일컫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이러한 양식의 차이에 따라 각 부분의 비례와 조각의 배치 방법들까지 달리하였습니다.

도1 도리아식 주두
기원 전 447-438년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도2 이오니아식 주두
프리에네의 미네르바 폴리스
 
 
 
도3 코린트식 주두
로마 파르테논 신전
 
 
 
도4 도리아식 주두
기원 전 450년 경,
실라로의 보물창고, 파에스툼
 
 
도5 이오니아식 주두
기원 전 500년 경
아테네, 페스토 박물관
 
 
도6 코린트식 주두
기원 전 4세기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아래 두 신전의 외양을 비교해 봅시다. 그리스 북방 도리아민족이 가져온 도리아식은 육중하고 단순한 반면(도7), 해양민족이었던 이오니아에서 유래한 이오니아식은 가늘고 경쾌합니다(도8). 두 양식은 그리스 본토에서 융화되어 기원전 5세기경엔 같은 신전에 함께 쓰이기도 하며, 더 화려한 코린트 양식이 창안되기에 이릅니다.

 

도7 도리아 신전, 헤라신전( 포세이돈 신전으로 알려져옴 )
기원전 460년 경, 이탈리아 파에스툼(고대 그리스 식민지)
 
 
도8 이오니아식 신전, < 에렉트레티움 >
기원전 421-405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민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두 양식과는 달리 코린트 양식은 코린트 지방의 한 건축가가, 이오니아 주두가 땅에 떨어져 무성한 아칸투스 잎으로 둘러싸인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창안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도3, 6). 이 외에도 긴 드레스를 입은 여성상이 무거운 건물을 떠받들고 있는 모양의 기둥인 카리아티드양식도 있습니다(도9). 이 양식의 기원에 대해서 카리아티드 도시를 무찌른 후 여자들을 노예로 삼았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 전해져 오기도 하지만, 글쎄요, 크게 설득력이 있는 근원은 아니라고 봅니다.

 

도9 에렉테이온, 기원전 421-405년 경,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같은 방식의 신전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양식이 변한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기원전 6세기와 5세기의 도리아식 신전을 비교하면 6세기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박공과 엔타블라처가 전체 높이의 거의 반을 차지하는데(도10) 이에 비해 기원전 5세기에 지어진 파르테논 신전에선 그 부분의 비중이 적어지고 기둥이 높아졌고, 기둥사이의 간격도 넓어졌기 때문에 훨씬 조화롭게 느껴집니다.(도11).

 

도10 아르테미스 신전 정면도면, 기원 전 6세기 초
 
 
 
도11 파르테논 신전 정면도면, 기원 전 447-438년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자리 잡은 흰 대리석의 파르테논 신전은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답습니다(도12, 13). 많은 학자들이 이 건축물에서 황금분할 비례를 찾아내어 이를 규범화했으며 그리스 고전기의 가장 훌륭한 신전이라고 칭송하여 왔습니다.

 

도12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전경
 
 
 
도13 파르테논 신전, 기원 전 447-438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이 우리 눈에 균형 있게 보이는 데는 건축가의 섬세한 계산이 있었던 결과입니다(도14). 건축가는 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가늘게 보이는 착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기둥에 배불림(엔타시스)을 주고 기둥 윗부분을 조금 안쪽으로 기울여 안정감 있게 보이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도14 파르테논 신전 정면, 기원전 447-438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지금은 관광유적일 뿐이지만, 기원전 5세기의 당시를 상상한다면 아테네의 모든 시민이 줄지어 신전에 봉헌하며, 범 아테네 축제를 벌이는 모습이 실로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 곳은 종교적인 역할을 넘어 도시국가(police)로서의 공동체를 인식하는 정치적인 공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은 그리스 연맹이 페르시아에 승리한 후, 연맹을 주도하던 아테네가 정치력을 확고히 하려는 의도에서 추진하였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이같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연맹의 군자금까지 전용했다고 하는데, 아테네가 신전의 건축과 조각에 이렇듯 큰돈을 들인 것은 미술이 민심을 결집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위치와 신전 안팎의 조각들을 살펴보면 신전의 정치적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전은 아크로폴리스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도시의 어디에서나 보이며 사방의 길이 이 곳을 향하게 되어 있어서 파르테논 신전은 당시 아테네 사회의 중심이었습니다.

 

도15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전경
 
 
 
 
 
 

신전 안에 모셔 놓았던 아테네 파르테노스(순결한 아테네)상은 비록 실물이 남아있지 않아 작은 모형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으나 원래의 높이는 12m에 달하는 실로 거대한 상이었으며, 아테네상의 옷을 장식하는 데만 1144Kg의 금을 사용하였다고 하니 화려했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도16). 순결을 상징하는 파르테노스상 임에도 불구하고 아테네 여신은 여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투구 양쪽엔 날개 달린 말이 달려있고, 아이기스 갑옷엔 무서운 고르곤이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창과 방패는 물론 이려니와 오른손엔 승리의 신 니케를 들고 있습니다. 아테네는 이 도시의 초월적인 보호자인 것입니다.

 

도16 피디아스, < 아테네 파르테노스 > 복원모형
원작품 기원전 438년 경, 토론토, 온타리오 왕립박물관 제작
 
 
 
 
 

건축안쪽의 이오니아식 프리즈에는 범아테네 (판 아테네)지역 축제에 참가하는 봉헌자들의 긴 행렬이 새겨 있습니다(도17). 이들 중엔 기마병과(도18), 물동이를 이고 가는 봉헌자(도19), 제물로 바칠 양과 소를 데려가는 봉헌자도 보입니다(도20).

 

도17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서쪽 파사드, 내부의 프리즈
 
 
 
 
도18 파르테논 신전 내부 프리즈 , 행렬중 < 말탄 사람>
 
 
 
도19 파르테논 신전 프리즈 <물동이를 들고 가는 봉헌자들 >
 
 
 
도20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프리즈 <양을 바치는 사람들 >
 
 
 
 
 

그들의 의도는 건물의 외부의 장식에 더욱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오르며 제일 먼저 만나는 서쪽 박공에는 이 도시를 놓고 아테네와 포세이돈이 겨루는 장면이 새겨져 있으며(도21), 그 반대편에는 아테네 여신의 탄생장면을 나타내는 조각들이 채워졌습니다(도22). 이러한 주제의 이야기들은 도시의 기원과 성격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도21 파르테논 신전 서쪽 팀파늄, <아테네와 포세이돈의 경쟁>
복원모형
 
 
도22 파르테논 신전 동쪽 팀파늄, <아테네의 탄생 >, 복원모형
 
 
 
 
 

건물의 양 박공 이외에도 메토프와 프리즈에는 많은 장식조각들이 새겨져 있는데, 주로 거인족들과 싸우는 신들의 무용담, 아마존과 싸워 이긴테세우스, 켄타우로스와 싸우는 아테네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도23, 24).

 

도23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남쪽 메토프
<켄타우로스와 싸우는 라피타이족>
 
 
도24 파르테논 신전 남쪽 메토프
기원 전 447-438년경, <켄타우로스와 싸우는 라피타이족>
 
 
 
 

이 같은 주제에서 우리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즉 아테네를 지킨 神과 영웅을 善에 놓고 그와 싸운 트로이나 아마존, 거인족, 반인반수의 켄타우로스를 惡에 놓은 기본 구조가 그것입니다. 아래, 아폴로 신전의 프리즈 부분인 <아마존을 내리치는 그리스 병사> 역시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도25).

 

도25 아폴로 신전, 프리즈 <아마존을 내리치는 그리스 병사>
기원 전 420-410,년, 높이 64cm, 런던 대영박물관
 
 
 
 
 

그리스를 위협하였던 적들은 되도록 혐오스럽고, 동물 같은 존재, 혹은 여성으로 그려내고 있는 반면 이들과 싸운, 즉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는 건강하고 보기 좋은 젊은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범 아테네 도시 연방 외부의 적들은 아테네의 문명화된 질서와 신성을 위협하는 파괴적인 존재라는 무언의 이미지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미술 생산품들을 미적인 범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리스신전 건축과 조각은 도시국가의 정치와 분리하여서는 생각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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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철학이 서구 사상사의 근간을 이루고, 신화가 서구 문화에 끊임없는 상상력을 제공하듯이, 그리스 미술 또한 이후 2500여 년에 이르는 서양미술의 역사에 중요한 전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수많은 예를 서양의 건축이나 조각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으로 대표되는 그리스 신전은 열주 위에 가로의 보와 삼각형의 박공을 얹는 형태였습니다(도1). 이러한 신전 건축양식은 시대에 따라 건축의 기능이 끊임없이 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식 고층빌딩이 세워지기 이전까지 무수한 변화를 겪으며 지속되었습니다. 팔라디오가 지은 비센차의 16세기의 별장(도2)이나 18세기 유럽의 왕궁, 그리고 워싱턴의 백악관(도3)과 같은 19세기 미국의 공공건물에 이르기까지 열주와 삼각형의 팀파늄은 서양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였읍니다. 이러한 신전건축 양식은 근대기에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덕수궁의 석조전과 같은 건물들이 세워집니다(도4).

 

도1 익티누스 설계 <파르테논 신전 >
기원전 448-432년, 동쪽, 대리석, 아테네
 
 
 
도2 팔라디오 <빌라 카프라 로톤다 >
1567년 시작, 비센차, 이탈리아
 
 
도3 백악관, 1800년 건축 후 소실
1814년 재건축, 미국 워싱턴 D.C
 
 
도4 덕수궁 석조전, 서울
 
 
 
 
 

인체 조각방식 또한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재 탐구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는 2000여 년 전의 그리스 작품 <창들고 가는 사람>에서 인체의 비례와 구조를 빌려옴으로써 르네상스 인체조각의 완벽함을 구현하고, 19세기의 카노바는 이를 다시 반복함으로써 신고전주의 조각을 이루었습니다(도5, 6, 7).

도5 폴리클레이토스
<창들고 가는 사람>
기원전 450년 경, 로마시대 모작
나폴리 국립 박물관
 
도6 미켈란제로 <다윗>
1504년, 대리석, 높이 434cm
피렌체 아카데미 미술관
 
 
도7 카노바, <나폴레옹 상>
1809년, 청동, 325*125cm
 
 
 
 
 
 

그리스인이 이룩한 이상적인 사실주의는 인류가 역사를 통해 만들어낸 가장 완성된 아름다움이라 칭송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나 취향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각 시대와 지역의 여건에서 형성된다는 점에서 본다면 고전적 아름다움 또한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사회와의 관련 속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대상물을 박물관이나 관광지에서 미술품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 당시 대상들은 미술품이기 이전에 사회에서 구체적인 기능을 지닌 건물이며 조각이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원래 모습을 상상하여 그려놓은 아래 드로잉은 공공건물로서의 신전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도8). 그리스 시대에 신전은 시민들이 모여 전쟁에서의 승리와 사회적 평안을 염원하던 장소였습니다. 또한 신전이나 광장에 장엄하게 세워졌던 조각상들은 그리스 사회의 갈등과 혼란을 해결하고자 신에게 올리는 봉헌물이었으며, 또한 통치자들의 정치이념을 전달하던 공공조각이었던 것입니다.

 

도8 파르테논 신전 상상도
 
 
 
 
 
 

대영 박물관에 있는 <헤라클레스>(도9)는 감상이 편리하도록 관람자의 눈 높이에 전시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오른쪽 그림에서 보다시피 이 조각은 원래 신전의 높은 팀파늄에 놓인 건축 장식의 한 부분이었습니다(도10). 헤라클레스 상이 박물관에 놓여 있을 때 관람자들은 이 조각상의 인체의 표현, 비례, 양감과 같은 조형적인 요소를 보게됩니다. 그러나 원래의 위치에 놓여지면 미술품으로서의 가치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능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9 박물관에 놓인 헤라클레스
 
 
 
도10 파르테논신전 동쪽 페디먼트
기원전 438-432년경, 대리석
 
 

이러한 위치변화는 고대유물에 대해 관심이 높았던 18-19세기, 유럽인들의 유물수집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19세기의 그림을 보면 파르테논 신전의 신상들 중 하나였던 헤라클레스 상이 원래의 자리에서 분리되어 귀족들에게 완상품처럼 감상되고 있는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도11). 그러므로 과거의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술품 한 점을 독립시키기보다 되도록 원래의 장소, 기능과 연관짓는 노력을 해야할 것입니다.

 
 

 

도11 아커발드 아처, <엘진 룸 >
1819년, 런던 영국 미술관
 
 
 

고대의 신전과 신상을 제작한 미술가들은 오늘날의 작가와는 달리 '장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파르테논을 설계한 건축가 익티누스나 조각 총감독이었던 피디아스와 같은 뛰어난 기술자들은 당시 최고의 정치 지도자 페리클레스와 대면하는 등 사회적 대우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 미술의 활발한 전개는 바로 이들의 경쟁적인 노력의 결실이었습니다. 기하학적인 그림의 도자기가 유통될 때 아테네 도공들은 신화의 한 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함으로써 사실적인 이야기 그림의 길을 열었고, 조각가는 경직된 자세의 정면 포즈에서 벗어나 움직이는 듯한 자연스러움에 해부학적인 사실성을 구사하였습니다. 이러한 활발한 기법의 발달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하여서 격동적인 시대인 그리스 말기엔 더욱 격렬한 미감을 표현한 조각들을 생산하게 됩니다. 미술사에서는 이러한 조형형식상의 변화를 양식의 흐름이라 부릅니다.

그리스 미술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시대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기하학적인 시기 Geometric period 기원전 900-700
아르카익 시기 Archaic period 기원전 620-480
고전기 Classical period 기원전 480-323
헬레니즘 시기 Hellenistic period 기원전 323-146
후기 헬레니즘 시기 Late-Hellenistic period 기원전 146-30

 

자료 출처는 서양미술사 1 페이퍼에 나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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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sky 2004-09-2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서양미술사 6번 페이퍼, 똑같은 게 3개나 올라왔어요. ^^
아래 2개는 지워주셔요~

panda78 2004-09-25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어? 오류났나보네요. 네이- 지우러 갑니다요- ^^
 
비오레 셀프 히팅 마스크 - 6매
X비오레(Biore)
평점 :
단종


피부타입 : 복합성

물과 만나면 열이 나는 마스크라, 신기하지 않나요? 젖은 얼굴에 펴 바르면 처음엔 정말 좀 뜨겁다 싶을 정도의 열이 납니다. 따끈 따끈. 그런데 그 열이 너무나 빨리 사라지는 게 흠이죠. 얼굴 전체에 다 펴바를 때 쯤 되면 이미 보통 마스크와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니 바르는 그 순간만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포인트에서 카피 제품을 낸 바 있죠.  포인트와 이 제품의 차이라면 글쎄 이건 색이 변한다는 거?

[알라딘 제품 설명글에 "블루색으로 변한다"는 구절이 있던데, 블루색으로 변한다..? 좀 거슬리지 않습니까? 파란색으로 변한다고 하면 안되는 이유라도? @ㅁ@ ]

스팀타월과 같이, 그 열이 모공을 열어주고 모공 속의 노폐물을 깨끗이 없애준다고 하는데, 열의 지속시간이 너무 짧아서 과연 모공이 다 열리기나 하는지 의심스럽네요.[충분히 다 열린다고 하면 할 말 없지만요]  가격도 해외에서의 비오레 가격을 생각하면 너무 비싸구요. 

신기하고 재미있는 상품이긴 하지만 이만한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사서 쓸 만한 제품이냐 물으신다면, 아니라고 답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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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9-26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 궁금하시면 포인트 것을 써보심이... ^^;;; (아직 나오고 있나 몰라요? <-- 무책임하다)

마태우스 2004-09-26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사서 쓸만한 제품은 아니란 말씀이지요? 참고하겠습니다.

stella.K 2004-09-26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도 마스크 하시나 보죠. 몰랐어요. ㅋㅋ.
 

 

 

 

정보는 다음에 따로 올릴게요. ^^;;

 

 

 

샌프란시스코 발레단 수석 무용수 유안유안텐

 

 

 

 



Melanie Henderson of Lines Contemporary Ballet

 

 

 


Polina Semionova - 떠오르는 별이라는데...

 

 

 



국립발레단,  김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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