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갔다. 민은 기운이 넘치는지 팔팔 뛰어다녔고, 옥찌는 조금 걷자 힘들다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용돈을 모으는 조건으로 플레이 랜드에 가기로 약속을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펄펄 날아다니는 옥찌. 옥찌가 머리를 쓴건지 내가 말린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우린 무척 씩씩하게 산에 갔다.
 우린 눈이 덜 녹은 산을 뛰어다녔다. 뛰니까 춥지 않았다. 뛰니까 아직은 내가 이 녀석들보다 달리기를 잘한다는게 왠지 뿌듯하고 그랬다. 히~ 어, 그런데 저건 뭐지. 나무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청솔모가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는데 보였다. 청솔모는 솔방울을 갉아먹고 있었다. 바로 위에서 이로 솔방울을 갉아먹는 소리가 나고, 솔방울 부스러기가 떨어지자 옥찌들은 신나서 어쩔줄 몰라 목이 넘어가라 나무만 쳐다봤다. 물론 나도 옥찌들보다 더 신났다. 갉아먹은 솔방울을 주워 이걸 먹은거라고 호들갑을 떨었고, 청솔모는 정말 부드럽고 예쁜 애라며 마치 잘 알고 지내온 것처럼 얘기를 했다.

 
 그런데 청솔모는 어떤 애일까. 산에 갔다와 친구에게 청솔모를 봤노라고 말했더니 걔네들은 황소 개구리처럼 수입됐는데 번식력이 뛰어나 토종 다람쥐들이 점점 없어진다는거다. 네이버 어린이들처럼 청솔모가 다람쥐를 잡아먹으니까 못됐다고 하는 것보다야 낫다지만 (나를 포함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청솔모는 청서, 한국 다람쥐라고 불리운다. 잣나무, 가래나무, 가문비나무, 상수리나무의 종자를 비롯하여 밤·땅콩·도토리 등의 나무 열매와 나뭇잎·나무껍질 등을 잘 먹으며, 야생조류의 알이나 어미새도 잡아먹는다. 늦가을에는 월동하기 위하여 도토리·밤·잣과 같은 굳은 열매를 바위 구멍이나 땅속에 저장하여 두는 습성이 있다. 큰 나무줄기나 나뭇가지 사이에 보금자리를 만든다. (네이버 백과사전) 청솔모가 조류를 잡아먹어 조류 피해가 있긴 하지만 다람쥐는 잡아먹지 않고, 수입된 것도 아니란다. 옥찌들한테 알려줘야지.
  새 둥지를 손으로 가리키며 얘네들은 입으로도 정말 근사한 집을 지었다고 했더니 민은 나무로 톱으로 잘라서 새집을 봐야겠단다. 지희는 눈을 보더니 이번엔 꼭 눈 결정체를 봐야겠다고 입맛을(왜?) 다셨다. 민은 청솔모가 움직이며 떨어진 눈을 잡아왔다며 주먹을 꼭 쥐고 내게 다가와 보여줄까 말까 하면서 날 살살 약올리다가 짜잔하고 손을 폈더니 눈이 흔적도 없이 녹아버리자 많이 아쉬워했다. 민은 청솔모를 먹고 싶다며 입맛을 다시고, 내게 다람쥐는 도토리묵을 먹는다고 알려줬다.

 산에 다녀와선 한상 차려 근사하게 먹었다. 옥찌가 말하길, 솔방울 된장국은 특별히 끓인거니까 호호 불어서 잘 먹어야한단다.

 민은 나랑 동생을 그렸다. 나는 왜 이렇게 목이 긴거냐고 물으니 아무말도 하지 않는 민. 오른쪽에 있는 색깔 예쁜 엄마 그림이 더 부럽다니까 민은 덤으로 토끼 이모를 그려줬다. 내가 이렇게 대우받는 이모다.
       내일 서울에 있는 막내를 만난다고 기분이 좋아진 옥찌가 그림을 그렸다. 내 생일 카드 저리가라고 할만한 솜씨를 보여줘 샘이나긴 했지만, 글씨도 잘 쓰고 색칠 잘 했다고 칭찬 받아서 괜찮았다.


 
막내 이모 여태까지 건강하게 살지.
보고 싶었어. 사랑하고 내인 온다고 엄마한태 들었지. 알라뷰.
올때 몸 건강히 왔으면 좋했어. (그 다음에 뭐 쓸지 물어보더니)
배 아픈건 괜찮아?
오늘은 큰이모랑 지민이랑 나랑 산 갔지.
그러고 나무에서 솔방울 갈갈 먹고 있는 청솔모 봤지.
우리 솔방울도 지민이랑 나랑 주었죠.
2010년 1월 24일 지희가 막내 이모 한대.

 아빠는 막내한테 보낸다고 김을 굽고 있고(무려 몇백장을) 옥찌들은 낮잠을 자서인지 아직까지 쌩쌩하다. 엄마는 아주아주 두서없는 내용을 아주아주 중요하단 표정으로 풀어내고, 동생은 미치도록 매운 국수를 만들고 있다.
 그럼 난 이만, 까무러칠 정도로 매운 국수를 먹으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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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4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10-01-25 15:59   좋아요 0 | URL
두개 다 맞는 말이래요.

무스탕 2010-01-25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무러칠 정도로 매운 국수는 뭘 어떻게 넣고 만드는거에요?
민이 간식거리 청솔모는 언제 잡을거에요? ㅎㅎㅎ

Arch 2010-01-25 16:05   좋아요 0 | URL
동생이 제조하는걸로 재료는 고추장과 열무 김치, 참기름이 다예요. 고추장이 매우면 국수도 매운걸로 알고 있어요. 고추장이 안 매우면 고추를 썰어넣음 되는데요. 고추까지 넣는다면 국수를 야식으로 먹고 밤새 잠못 이룰 정도로 속쓰릴 수 있어요. 히~
민이 먹을까요? 얘는 먹을 것도 많은데 왜 이럴까요. ㅋㅋ 무스탕님이 잡아줘요~
 

 진즉 했어야할 재고 소진 중간 점검.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독서 모임 선정 도서) 부담을 잔뜩 안고 책 내용 그대로 요약을 했다. 에리히 프롬의 생각에 반하는 내용과 다른 생각들을 정리해서 다시 올려야지. (1.7)

일의 기쁨과 슬픔 - 보통이다. 프루스트와 사소한 일상을 제대로 보는 방법을 알려줬던 보통. 사랑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마시멜로란 말을 귀엽고 들려준 보통. 신작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다시 집어들며 갈증을 풀었는데. 드디어 빌려서 읽었다.
 물류에서는 우리가 이 물건들이 어디서 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면을, 화물선 관찰하기에서 인공적인 조형물의 아름다움과 이해받을 수 없는 미의식을, 비스킷 공장에서 거대한 시장의 물건만큼 부품으로 소용되는 인간에 대해 보통의 시각으로 보는건 분명 신선했다. 직업 상담에서 아무리 구호를 외치고, 자기 계발서를 읽더라도 실패하고 실패한걸 인정해야하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얄팍한 위로가 되었다. 회계에서 CEO들의 변모된 포지션과 인적자원부 직원의 일터에 대한 역학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로켓 과학을 보고, 절대적인 문명과 자연의 대비, 인간의 왜소함은 누구나 얘기할 수 있지만, 취재하던 기자가 무심하게 마치 로켓이 발사된 것보다 자신이 모기 물린게 더 중요하다는식으로 얘기한걸 잡아낸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란걸 느끼자, 난 여전히 보통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는걸 느꼈다.
 하지만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란 신작은 아마 당분간 읽지 않을 것 같다. 보통은 이젠 좀 다른 얘기를 해야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항공 회사'는 따분한데다 썰렁했고, '그림'은 읽기 전이었는데도 무슨 말을 할지 좀 뻔했다. 모든 책이 완벽할 수 없고, 늘 빛나는 페이퍼를 쓰는 미잘도 가끔 썰렁한 얘기를 하니까(물론 그보단 자주 업데이트가 안 되는게 더 큰 문제지만)그쯤은 별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다만 난 그를 좀 더 오래보고 싶으니까 금세 좋아했다 다시 식어버리는 촐싹맞은 짓은 좀 자제해보련다. 그래서 사랑 연작과 불안, 여행의 기술을 야금야금 재독해볼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보통씨! 정말 책 많이 썼는데요. (1.10)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 압축된 한 꼭지를 읽고나자 좀 피곤한 느낌이 들었음. 다음에 다시 도전!

언니들, 집을 나가다 - 전작과 별로 다를바 없는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여전히 어느 지점에서 맘이 열리는 부분이 있다. (1.5)

당신과 눈 뜨는 아침 - 라일리와 브린의 이야기. 너무나도 완벽한 두 사람의 살떨리게 충만한 섹스는 읽는 독자를 동요시키지 않는 부작용이 있다. 자꾸 나의 섹스와 비교를 하게 되며, 급기야는 새로운걸 시도하려... 아, 그만해야지 ^^ D님, 난 이 책을 보고선 섹스를 하고 싶지 않을 때 두통을 핑계로 대는 팁을 얻었어요. (1.6)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 엮음 (누군가의 추천, 누가 좋다고 하더라에서 책을 사거나 빌리는건 자제해야겠다. 안 읽을 것 같음.)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저자 임혜지씨의 건축 이야기. 저자의 감상과 적절히 조합된 일정 수준 이상을 담보하는 글솜씨가 읽는 즐거움을 크게 한다. (1.17)

나는 한옥에서 풍경놀이를 즐긴다 - 처음에 머릿말만 읽고선 건축 실용서가 아닌 남다른 견해를 보여줄거란 예상을 했다. 계속 풍경놀이만 한다. 사진은 너무 예쁜데...

사라진 내일 -  많이 버려라, 노후의 내재화된 상품을 통해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라, 간편하고 깔끔한 일회용 쓰레기의 일반화, 쓰레기 시설을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보이게 하라, 쓰레기가 더 많이 나오더라도 비용이 적게 나오는걸 선택하라,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를 직접 처리해야한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물건을 사면서 느끼는 기쁨도 크겠지만, 이 책을 보다보면 그 기쁨이란게 그리 클까란 생각까지. (1.18)

셰익스피어 배케이션 -
김경이 돌아왔다. 이번엔 여행서다. 이번 책에서도 역시 그녀다운 얘기를 풀어놓는다. 앤 패디먼이 말한바 있는 여행지에서 책 읽기가 간접적으로 가미되고, 놀고, 떠들고, 사람들이 보이는 여행.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여행의 시간을 일상과 접속시킨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녀가 뿌려준 지도에 올라타 몰타의 매(방금 전까지 누가 말했다고 책을 보는 짓은 자제한대놓고), 다시 플라멩코, 바로셀로나, 리스본 야간열차, 존 버거를 찾아나서본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관광이 아니라 여행을, 관광지보다는 사람과 일상적인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좋아한다는게 떠올랐다. 롤모델이 이 정도로 멋져도 되는걸까. (1.11)

line up list

여성의 삶을 바꾼 50권의 책 - 아직도 지지부진 중. 왜 이렇게 안 읽히는걸까. 재미있고, 유익하기까지 한데.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20가지 플롯
액팅원 - 작품 들어가면서 보류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다시 책을 빌리고, 또 다른 책을 탐낸다.

세계를 매혹시킨 반항아 말론 브란도 -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도 정말 좋았는데 이렇게 멋진 책을 만나다니!
세계문화사전(강준만) - 마돈나 편을 보고 홀딱 반함.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NGO 실무 핸드북 - A 사무실에 가서 놀다가 빌려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표지가 멋지다. 우다왕과 류롄. 모처럼만의 소설이다.
그녀에게 말하다 - 김혜리 인터뷰집.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각개약진 공화국 - 지방은 식민지다와 같이 읽어볼 예정.
레인보우 동경 - 김경주의 에세이다. 약간 말랑말랑하고, 귀엽다. 기담과 다르게 낯선 느낌.

그러고보니 책을 또 빌렸다. 집에 있는건 어쩌려고. 새책 탐내는 버릇은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식객을 무려 다섯권이나 읽었고(이건 너무 야매로 재고소진 하려는 기미가 보이니까 뺄게요 ^^) 아름다운 가게에 이상문학상 수상 소설집과 에세이 등 총 21권을 기증했다.

메아쿨파님, 중간점검 해주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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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1-2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난 1월 재고 소진 아직 한권밖에 못했어요. 바람의 그림자. ㅜㅡ

만들어진 신 올려놓고 전전긍긍중 ㅜㅡ

잘자요, Arch님.

Arch 2010-01-21 14:53   좋아요 0 | URL
ㅜㅡ가 무려 두개! 어허... 누가 다락방님을 이리 근심케 했는고. 꽃추노의 양반 말투 흉내내봤는데 어때요. 히~ 다락방님 저는 시간도 많고 할일도 없는 백수잖아요. 이 정도론 어디 가서 백수 명함도 못내밀어요.
일 잘 하고 있어요? 다락방님, 기지개 좀 쭉쭉 펴고!

2010-01-21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1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1-21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책은 사람의 관심에 따라 호오가 나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저는 알랭 드 보통의 공항 이야기를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어요. 너무 재미있어서요. 제가 워낙에 비행기와 공항을 좋아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은 했었더랬지요. 비행기를, 공항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꼭 권하고픈 에세이였어요. 주제가 명확하고, 비행기를 에세이스트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처음이었으니까요!(그렇지 않으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항공사고 수사대를!) 그러나, 그 분야에 관심이 없는 이에게는 그저 그런 에세이일지도.(그래도 우리의 보통 선생인데 흐흑)

Arch 2010-01-21 15:05   좋아요 0 | URL
아니아니, 난 그 책 읽어보지도 못했는걸요. 그냥 뭐랄까, 한 템포 쉬는거죠. 게다가 그의 전작 리스트가 화려하니까 재독해도 괜찮을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그렇게 재미있나요? 휴... 갈등되잖아요 ^^ 그래도 언젠가 읽게 되는 날이 오겠죠. 제 손으로 사진 않겠지만 저희 동네 도서관은 보통씨 책을 잘 사는 편이라 몇달 뒤면 지금 어쩌고 했던거 다 까먹고 아마 눈에 띄자마자 집어들거에요.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화물차 관찰하는거랑 비행기랑 이번 에세이랑 비슷할 것 같아요.
 

*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서로 모자인지 모르는 여자와 어린 남자. 아들이 국간을 볼줄 모르자, 여자가 하는 말.
- 국간도 볼줄 모르는게 아직 어린가보네.
하자, 우리 엄마
- 난 어른인데도 간 볼 줄 모르는데.

* 아빠와 엄마의 전화 통화
- 친구 만나서 반가워 죽을 뻔 했다니까.
- 죽으면 안 되지. 누가 술 샀어. 난 그게 중요하거든.

* 호박 무침을 아빠가 잘 드시자 엄마가 더 갖다드리며
- 쉬니까 빨리 먹어.

* 엄마의 말실수
(택시에 케이크 실으란 소릴) 야, 택시에다 케이크 썰어 넣어.
(옷걸이에다 빨래 널으란 소릴) 누구야, 옷걸이에다 빨래 집어넣어.

* 엄마가 내 방귀 냄새를 맡고선,
- 창자가 어떻게 생겼냐.

* 엄마가 친구 중 한분이 밥 먹고 이에서 찌꺼기를 빼낸다고, 더러워 죽겠다고 계속 흉보길래,
- 그럼 왜 말을 안 했어.
- 자기가 알아서 통제하길 바랐지
- 몇년 기다렸는데 안 되면 말해야지.

* 한동안 말이 없던 둘, 서로의 배를 쳐다보다 이윽고 엄마,
- 고생했다더니 아니구만.

* 내가 밤에 운동을 하러 나가면서
- 엄마, 동네 한바퀴 돌고 올게
하자
- 동네 한바퀴 돌고 온다더니 못돌아온 애가 있더라고.
하신다. 이상한 소문만 듣고 다니셔.

* 지희가 자기는 할머니라고 부르는데 왜 이모는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냐고 묻자, 엄마가 하시는 말.
- 아직 이해가 부족해. 어려서.

* 선녀와 나무꾼을 읽다 나무꾼이 사슴을 쓰다듬는 그림을 본 옥찌.
- 아버지가 사슴을 더듬었습니다.

* 참새 그리던 옥찌,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민에게 묻는다.
- 지민아, 참새 앞머리 있게 할까 없게 할까.
참새가 앞머리가 있었나.

* 민, 이외수씨가 표지로 나와있는 잡지를 보더니
- 이모, 왜 남잔데 머리가 길어?

* 늘 피터팬의 네버랜드를 네덜란드로 읽는 우리 엄마

* 샤워하고선 수건이 없어 그냥 나온 나를 본 동생
- 더러워 얼른 옷 입어
라고 하길래 내가 지희한테
- 지희야, 이모 몸이 더럽냐?
했더니 옥찌,
- 아니, 예뻐. 아! 나 막내 이모 편이지? 안 예뻐.

* 민, 참깨 볶은걸 먹는데 톡톡 터지니까.
- 이모, 참깨에 씨가 들어 있어.

* 옥찌들이랑 엄마 아빠 놀이를 했다. 아기인 내가 민에게
- 아빠, 밥 줘. 배고파, 으아앙~
이랬더니 민,
- (쑥쓰러운 듯 몸을 배배 꼬며 뒷짐 지고선) 아가, 엄마한테 해달라 그래.

* 옥찌 자기 엄마 얼굴을 바짝 대서 들여다보며 아주 예쁜 목소리로
- 엄마, 내 눈알은 하얀한데 엄마 눈알은 빨개.

* 민이 아주 크게 방귀를 뀌어서 내가,
- 민 몇살이지?
- 다섯살
- 민 방귀 소리가...
- 아홉살 같아?
 민, 아홉살 방귀를 아는거야?

* - 엄마 돌아가시면 누가 청소하지?
- 아빠
- 아빠 돌아가시면
- 개구렁 돼지
- 그게 뭔데?
- 개집

* 누가 더러운 짓 해서 내가 째려봤더니 민,
- 왜 쫓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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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0-01-18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하나 없었음 밤에만 노출해 놓은 다음에 지우려고 했어요. 할말을 잃게 만드는 유머인가 싶어, 전전긍긍.
추천의 의미 ---> 할말을 잃어서 라면 할말 없지만, 씁!

조선인 2010-01-18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민이가 좋아요. ^^

Arch 2010-01-18 15:48   좋아요 0 | URL
^^ 히~

습관 2010-01-18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런 생활속의 소소한 웃기는 이야기들이 좋아요. ^^

Arch 2010-01-18 15:49   좋아요 0 | URL
소소하다고 생각 안 했는데 ^^ 더럽거나 극악스럽단 느낌이었는데 말이죠. 습관님 고맙습니다.

무스탕 2010-01-1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홉살의 방귀를 아는 민. 너무 빨리 크지 마라 ^^

Arch 2010-01-18 15:49   좋아요 0 | URL
난 무스탕님도 알거라 생각해요. ^^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 사람들은 묻는다. 엄마는 뭐하고 이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냐고. 엄마가 아프냐, 엄마가 없냐. 사적인 질문에는 D가 말한대로 알바 아니다, 아이들이 나를 좋아한다 정도로 말하면 된다. 퉁명스러움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더 부채질하지만 역시 내 알바 아니다. 가끔은 애들 엄마가 게으르다거나, 바쁘단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그들이 알아듣기 쉬운 이야기를 해준다.

  토요일 일요일은 공식적으로 내가 옥찌들을 보는 날이다. 동생의 일은 주말에 더 바쁘다. 난 꽤 오랫동안 아이들이랑 지내왔고, 이제 어디 가면 경력으로 쳐도 몇 호봉은 되겠다 싶을 정도로 아이들 보는데 익숙하다. 그런데도 난 여전히 아이들이랑 지내는게 어렵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목소리를 높이고, 떼를 쓰고, 욕심을 내고, 싸운다. 내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나는 소리를 지르고, 다시 또 소리를 지르고, 매를 들고,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나는 괜찮은 어른도 아닐뿐더러 쓸모 있는 양육자도 아니다. 쓸모없는 양육자는 가끔씩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생각으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밥을 먹을 때면 할아버지와 아이들의 신경전이 시작된다. 나와 엄마는 아빠와 아이들이랑 같이 밥을 먹을 때면 늘 체한다. 어떨 때는 뱃속에 화가 가득차서 어쩔 줄 몰라 할 때도 있다. 가끔씩은 부러 아이들을 혼내기도 한다. 하지만 매번 효과적이진 않다. 오늘은 특히나 더 그랬다. 무식한 할아버지와 그보다 더 형편없는 이모와 아무 힘이 없는 할머니를 둔 아이들.
 누군가 그랬다. 자신이 어떤 것들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무척 암담해졌다고. 어디에 살든, 누구와 살든 내가 선택하는건줄 알았다. 하지만 양육과 가사는 가족 구성원에 따라 n분의 1로 쪼개지는게 아니었다. 늘 좀 더 못 참는 쪽이 모든 일을 떠맡기 마련이었다. 언제까지 엄마에게만 못 참는 역을 하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좀 울적해졌고, 하루 종일 배가 아팠다. 결국 핑계란 것도, 결국 나하기 나름이란 것도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다.

 동생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원래 술을 좋아했고, 좀 더 좋아하게 됐으며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아마 내가 동생이라면 벌써 도망쳤을거다. 불 꺼진 방에서 앞으로 아이들과 살아갈 날들을 꿈꾸기보다 셈해야하는 처지라면 아마 난 몇 백번이고 도망쳤을거다. 내가 동생이었다면 어느 날에는 서러워 집에 발조차 들이밀고 싶지 않았을거다. 내가 동생이라면, 내가 동생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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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1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2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2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1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2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1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2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털짱 2010-01-11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처음으로 아치님 서재에 인사 남깁니다.
조용히 제 서재에 다녀가신 분들 중에 아치님이 계셨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좀 부끄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많이 게으르고 저 또한 수줍음이 많지만
종종 인사드리겠습니다.^^

Arch 2010-01-12 13:19   좋아요 0 | URL
털짱님 반갑습니다. 전, 김치치즈스마일의 이혜영(정확히 기억하는거라면) 얘기를 털짱님께 들으며 힘을 냈던 기억이 나요.
가끔씩은 저도 제 서재에 짬을 내주시는 분들이 누군지 궁금해요.

2010-01-12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2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0-01-1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ch님.

취업해야만 전처럼 자주 알라딘에 들어올 수 있는거에요?
그렇다면 얼른 취업해요. ㅜㅡ

Arch 2010-01-12 23:58   좋아요 0 | URL
핏^^ 페이퍼보다 제 댓글을 좋아하는군요!

비로그인 2010-01-12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저 여행 안갔어요, 여기 있어요.헤헷 오늘 거의 서재에서 살고 있음.

다락방 2010-01-12 16:41   좋아요 0 | URL
아이참..Jude님 여기도 있네. ㅎㅎ

비로그인 2010-01-12 17:20   좋아요 0 | URL
아이참, 다락방 님, 여기 또 계셨군요. ㅋㅋ

Arch 2010-01-13 00:04   좋아요 0 | URL
그런데 왜 전 쥬드님이 여행갔다고 생각했을까요.
두분, 재미있었겠구만~ 예전엔 나 혼자 텅 빈 서재에서 물질하는 기분이었는데.ㅋㅋ

비로그인 2010-01-13 10:24   좋아요 0 | URL
진짜 여행을 간 거였으면, 하는 저의 바램이 아치님께 텔레파시로 전달되어 은연중에 믿어버리신 거 아닐까요. 결론은----저 여행가고 싶어 근질거려요, 그런데 가지 못해서 일단 서재에서 놀고 있지요.헤헷
 

 급하게 나가시는 아빠 옷춤을 잡으며 어디 가시냐고 물었다. 아재랑 근방에 있는 장에 가신단다. 왜 나는 빼놓냐니까 너는 너무 많이 먹고, 굼뜨고, 잔소리가 심하단 소리는 쏙 빼고 안 갈줄 알고 말 안 하셨단다. 나도 갈테니 데려가달라고 했다. 환갑 지난 노인과 이제 막 나이 좀 먹었네 싶은 딸년이 집을 나섰다.

 차 타고 가는 길에 꾸벅꾸벅 졸았다. 눈을 뜨니 장터여서 좀 더 자겠다고 했더니 노인은 그럼 그냥 자라고 했다. 그냥 잘 수야 없지. 눈이 왔는데도 사람들이 많다. 집 근처 시장보다 규모도 적고 사람들도 별로 없었지만 장이라니까 뭔가 달라보였다. 모퉁이만 돌면 왠지 각설이 타령이라도 하는 사람이 나타나 흥을 돋굴것만 같았다. 그러고보니 장사하시는 분들의 낯도 시장에서 보던 분들과는 많이 다르다. 농사꾼, 어부, 영락없는 장사꾼의 얼굴. 얼굴 곳곳에 드러나는 주름,들. 그분들 얼굴을 바라보니 다시금 얼굴에 살아온 이력을 드리우고 살 자신이 있는지 내게 묻게 되었다. 그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재랑 아주머니랑 노인과 노인의 딸년은 휘적휘적 장터를 돌아다녔다. 읍내에 마실 나오신 분들이 왁자지껄 한담을 나누고 장사하시는 분들은 늦은 점심을 후다닥 해치우고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나서 둘러봤더니 분식집! 검은콩 도너츠가 맛있겠다며 딸년은 노인에게 다가가 천원만 주라고 했다. 노인은 딸년이 용돈은 못줄망정 돈을 갈취한다는 소리를 입밖으로 내뱉으려고 했다. 아재가 둘이 뭐하나 어깨너머로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노인은 호기롭게 천원짜리 두장에 동전 한푼을 줬다. 딸년은 헤죽하게 웃으며 잰걸음으로 분식집으로 뛰어갔다. (점점 풍류, 우리 가락 분위기가 되고 있다.) 딸년은 오뎅국을 먹다 일행이 멀어지는걸 보고 오뎅을 입 속에 우겨넣으며 뛰었고 그 바람에 며칠 동안 입안이 헐어 고생했다.

 매생이와 굴, 달래를 샀고, 패션 피플의 핫 아이템인 목도리, 헤어밴드, 모자를 겸용할 수 있는 놀라운 천 쪼가리 하나를 챙겼다. 딸년은 그래도 뭐가 모자랐는지 대구탕을 먹고 싶다는 둥, 장에 와서 왜 먹을걸 더 안 사냐는 둥 뻐대기 시작했지만 노인은 으례 그렇듯 가볍게 무시했다. 노인과 아재의 맘 속엔 오직 궁극의 막걸리집만이 머릿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으니 딸년의 말이 들어올리 없었을지도.

 다 부서지게 생긴 가게였다. 문을 열자 훈김을 얼굴에 끼얹듯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테이블은 꽉 차 있었고, 아저씨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아주 아주 큰 소리고 털어놓고 있었다. 자리가 없어 돌아서 나갈줄 알았는데 노인과 아재는 술잔 놓을 자리만 있으면 어디서라도 드실 기세였다. 셋은 주인의 양해를 받아 음식 준비하는 테이블에 찬과 술을 놓고 급하게 들이켰다. 근방에 있는 대학교에서 만든 막걸리다. 시금털털하고, 시원하다. 해파리 초무침은 산뜻했고, 우거지 선지국은 무척 맛있었다. 작은 동그라미가 여러개 박혀 있는 노랑 연두색 막걸리 잔과 공평하게 채워지는 막걸리. 막걸리 한병을 따르면 세잔을 마실 수 있다. 두분이선 두병, 세명이니까 세병. 똑 떨어지는 계산이다.
 
 노인과 아재는 아무리 집에서 막걸리 사다가 더 좋은 안주로 먹어도 이 맛이 안 난다는 얘기를 한다. 딸년은 불콰한 얼굴로 그 말이 정말 맞다며 고개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격하게 동의했다. 동네 모임이라도 하는지 한 다리 건너 서로를 아는 아저씨들 틈에서 맛있는 냄새를 맡은 딸년. 그녀는 냉큼 이거 혹시 오뎅 속에 김말이가 들어있는거냐고 물었다. 아저씨가 그렇다고 하자, 그녀는 다시 쪼르르 노인에게 다가가 천원만 달라고 했다. 노인은 딸년에게 전 재산이라며 천원을 건넨다. 천원만, 백원만, 졸라대며 그 돈 받아 홀랑 야무진 불량식품 사먹었던 어렸을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시금털털 막걸리 탓이다.

 나무 젓가락에 길다란 오뎅을 꽂아서 돌아와 다시 막걸리를 먹고, 옛날 막걸리 맛은 어땠는지, 여기 우거지국엔 뭘 넣어서 이렇게 기똥차게 맛있는지, 아니 아니, 이렇게 푸짐하고 맛나게 먹었는데 술가격은 왜 이렇게 싼지 등등에 대해 말했다. 노인이 갈길을 재촉했지만 딸년은 아직 사지 못한게 있다. 노인이 방심한 틈을 타서 딸년은 학원 간 조카들까지 들먹이며 옛날 과자의 맛과 푸짐함에 대해 떠들었고, 노인은 담배 살 돈까지 가져가냐며 타박하면서 딸년에게 다시 몇천원을 줬다.

 세상의 온갖 과자와 온갖 카피 과자가 판을 치는 옛날 과자집. 주인 아저씨는 딸년이 뭘 집을 때마다 맛을 안다는 둥, 제대로 본다는 둥 흰소리를 했지만 어떤게 더 맛있을지 점치느라 그녀는 그의 말의 반은 귓등으로 흘렸다. 과자점엔 바삭한 강정에 쵸코를 입힌 과자, 보들거리는 약과, 딱딱하지만 고소한 고구마 과자, 설탕 시럽을 입힌 식빵 과자, 쫀드기, 와플, 강정, 고추장 맛 과자, 라면 맛, 딱딱하고, 바삭하고 식감을 자극하는 맛들이 펼쳐져 있었다. 정신없이 고르다보니 킬로로 몇백원 하던게 3000원이 넘어섰다. 딸년은 과자를 가까스로 오천원에 맞추고, 아직 고르지 못한 과자와 맛보지 못한 과자를 애석하게 바라봤다. 아저씨는 흔쾌히 몇번이고 덤을 줬고, 딸년 입은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딸은 말했다.

 '아빠, 아저씨가 나 예쁘다고 자꾸 덤을 주잖아. 민망해서 혼났다니까.'
' 훔쳐온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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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1-08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내 생애 최고의 '아치 페이퍼'로 임명합니다.

Arch 2010-01-08 12:39   좋아요 0 | URL
상장 주는거야? 아, 오랫동안 만진 보람이 있군요! 뽀님 와락~

다락방 2010-01-0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이쁘기도 하지!!

활자유랑자 2010-01-08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최고세요

무스탕 2010-01-08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군요.

뷰리풀말미잘 2010-01-08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가 독하게 마음먹고 페이퍼를 쓰나봐요.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Arch 2010-01-08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다 뽀님 때문입니다. 추천도 댓글도 다 감사해요.

미잘만 하려고!

순오기 2010-01-10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다 큰 딸년이 천원만 천원만 하면서 담배 살 돈까지 앗아 갔으면 열배로 갚으면 되겠군요.
사랑스런 아치님, 어쩌면 아버지도 그런 딸년이 밉지 않아 담배값까지 털어 주셨겠죠.^^
아, 추억이 스멀거리지만 기꺼이 주머니 돈을 갈취당해 줄 아버지가 내게는 안 계신 걸... ㅠㅜ

Arch 2010-01-10 22:09   좋아요 0 | URL
열배, 까짓 문제없습니다. ^^
아빠랑은 다툴 때가 더 많아요. 가끔 둘 다 술이 취해야 서로에게 너그러워지죠.
어떨땐 같이 살아서 좋은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