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봤다. 그룹 면접이었는데 한사람 건너 자리에 앉은 남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면접관 : ooo씨, 적은 나이는 아닌데 경력이 전무하네요. 그동안 어떤 일을 하셨어요?
 남자 : 이 업무와 관련있지 않아서 기재를 안 했는데 용산에서 매장영업관리총괄 책임자를 했었고 잠깐 레스토랑 주임을 했습니다.

 난 피식 웃고 말았다. 저거 어디서 들어본말인데. 매장관리총괄은 뭐. 사장 아래로 직원 하나일때 그들이 쓸 수 있는 말 아닌가.

 과도하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주입시켜 다단계가 아니면 뭔가 음모가 있을거란 확증을 심어준 회사에 다닐 때가 있었다. 처음엔 다른데와 달리 매일 점심시간마다 밥도 사줬다. 그래주니까 잘해주는거라 생각한거겠지. 밥 사주면 만사형통이야 아주. 쩝.


 그 날도 여느 때처럼 회관 비슷한데서 밥을 먹고 있었다. 밖은 왁자한 무리들 소리로 들끓고 정신없이 바쁜 아주머닌 오로지 서빙 본연의 임무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즉 음식 전달과 치우기. 빠르게 자리 확보를 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몸놀리는건 기본이고. 거기엔 손님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선의가 어느 한구석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더라도 차마 그 북새통에선 드러낼 수 없었으니까.

 아주머니가 바쁘게 서빙을 하느라 그릇을 탁자에 탁탁 놓은 순간, 입방정 떨기 좋아하던 지점장이 한마디 한다.
 

 -저 아주머닌 평생 식당 종업원만 할거야. 서비스 매니저로서 자질 부족이야.


 난 안 보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서비스 마인드는 개뿔.

 서비스 업종에 다년간 종사해온 나로선 다수의 서비스 업종 종사 경력은 쓸만한게 아니란 남자와 서비스 마인드를 엉뚱한데서 찾는 지점장이 좀 고까웠다.


 인간 성분과 무관하게 오로지 한국어가 통하고 몸을 부지런히 놀릴 수 있다는 이유로 서비스 업종은 직업에 귀천없단 소리 속에서도 굳건히 천대 받아왔다.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누구도 독보적인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서비스업의 특성에다 이건 거쳐가는 곳이지 머물 수 없단 강단있는 종사자들의 자의식이 합쳐져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실험을 할 수도 없고, 100% 적확하게 들어맞는 고객 상대법도 없다. 치밀하게 분석을 해서 적용을 한다고 하더라도 변수는 늘 존재하는거고, 더군다나 사람에 관련된 일이다보니까 그 편차는 확률적으로도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깊은 관심은 아니더라도 서비스를 받을 때 경미한 존중과 이해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서비스가 만족스럽길 원한다면 그만한 장소에서 요구하고, 마인드 운운할게 아니라 의도적이거나 상당히 불쾌한게 아니면 기분좋게 넘어갈 수 있는 아량도 갖어보기. 그렇다고 이게 극악스러운 집념을 불태우며 술값이 비싸단 이유로 그곳의 종업원들에게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해야 한다는걸로 생각하진 않길. 그렇지 않아도 언니들은 피곤하니까.

 나이든 양반이랑 만나고 있을 때 찜질방에 간적이 있다. 출출해서 옆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는데 아주머니 인상이 험악했다.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손님이 와도 본체만체다. 평소에도 까칠한 성격 유감없이 발휘하던 이 양반, 툴툴대는 아주머니에게 뭐라고 한다.


 -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그렇지 손님이 왔는데......


 혼잣말이기엔 크고 아주머니가 대꾸하자니 애매하게 작은 목소리로.
 어줌마, 그릇을 탕탕 놓는다. 분위기가 안 좋아 난 맥없이 TV만 보고 있었다. 왜 그랬냐고 물었다가 이 냥반 특유의 비아냥 앞에서 만신창이가 될게 뻔했으니.

 식사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가 식혜를 산다. 밥 먹기 전에 웬 식혜냔 눈짓을 했다. 물론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식혜를 아주머니에게 갖다준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성질내느라 목 칼칼할테니 식혜드시란 말과 함께. 손님이 식혜 사주는건 처음이라며 금세 얼굴색이 환해지는 아주머니.


 두말할 것 없이 그 날 먹은 미역국은 최고로 맛있었다.
그를 보면서 평소에도 달리 나일 먹는건 아니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때만큼 고개를 끄덕인적은 없었던 것 같다.

 고객감동은 너무 뻔하니까 종업원 감동은 어떨까. 구태여 쩔쩔매거나 억지로 안 내키는 수작을 거는게 아니라 자연스럽고 흥이 나게.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관계 안에서 작은 이야기들이 샘솟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뭐, 지금의 관계만으로도 충분하단 사람들에겐 역시 오지랖 수준이겠지만. 그래도 재미있지 않을까. 구태여 욕쟁이 할머니 찾아가는거 말고, 피곤한 표정의 알바생에게 사탕을 준다거나 농담을 건네는 것. 그 순간만큼은 환한 미소란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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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8-06-23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발상의 전환 또는 고정관념의 파괴 라는 수식을 붙이지 않더라도 서비스의 척도에는 법칙이란 것이 없어 보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기만 하면 될 테니까요. 물론 모두에게 긍정적인 부분에서 이겠지만......

Mephistopheles 2008-06-2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서비스 마인드는 어쩌면 매너있고 수준있는 손님들에게서 나오기도 한다죠.^^

Arch 2008-06-2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그 수단이란게 애매해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 지침이 있다면 좀 편하겠죠?^^/메피님. 매너있고 수준있는 손님이실 것 같은데. 나 자꾸 상상만해.ㅋ

BRINY 2008-06-23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아무리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자기가 건넨 인사가 무시당하는데 서비스할 맘 생길까요.

Arch 2008-06-23 22:50   좋아요 0 | URL
BRINY님 반가워요. 그러니까요. 그 사람은 천번의 인사일 수 있지만 우린 딱 한번이잖아요. 딱 한번 웃어주고 인사 받아주는게 그리 힘들까 싶기도 하고 말이죠. BRINY님은 인사 잘 받아주실 것 같은데^^

2008-06-23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23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23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23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8-06-23 16:15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8-06-2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샘나신거에요? ^^

웽스북스 2008-06-24 00:41   좋아요 0 | URL
메피님 질투쟁이 ㅋㅋ 저 비밀댓글 나지롱요~ ㅎㅎ

Arch 2008-06-24 09:40   좋아요 0 | URL
GT쟁이?^^

Mephistopheles 2008-06-24 12:39   좋아요 0 | URL
역시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8-06-24 12:51   좋아요 0 | URL
우왕. 재미없어요. 메피님 기를 팍팍 드리고 싶은데, 주소 좀.
 

  촛불집회에 나가고, 후원할데가 있으면 코묻은 돈 탈탈 털어서 모금함에 넣고, 내가 할 수 있는건 이것 밖에 없다는게 부끄러울 정도로 전 사회 운동 초보입니다.

 누군가 선전 구호를 외치고, 운동에 동참하라고 할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고, 나 하나 빠진다고 뭐 달라지겠냔 맘이 있었으니까요. 나는 내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우리 가족의 굳건한 기대를 등에 짊어져야한다는 부담감. 운동은 어떤 성향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의적인 판단. 나는 나대로 부지런히 행복하게 살면 어차피 깃발 아래 모이지 않아도 전체적인 행복지수는 높아질거란 낙관.

  아직은 쑥쓰러워 촛불 들고 구호 외치고, 어딘가에 내 의견을 말하는게 참 어색합니다. 쟁쟁한 논리력에 막혀 정말 제가 바라는바를 소신있게 밝히기도 어렵습니다. 이 물결에 휩쓸려 주관없이 휘둘리는건 아닌가란 자성도 해봅니다. 아침 신문에 시민의 힘으로 조중동의 언론같지 않은 행태를 몰아내자고 할때 탄압이라며 권력의 힘으로 언론을 보호해줘야한다는 홍준표 의원의 발언을 접할때는 절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을 들기 시작하면서 제 삶이 조금씩 재편성 되는걸 느끼고 있습니다.

 전에는 한번도 관심을 갖지 않던 이웃의 곤궁한 삶이 눈에 들어오고(이건 절대로 제가 그들보다 낫다는 우위에 선 시선이 아닙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감상형 인간의 자세로 세상을 관조만 해오던 시선을 인문서나 사회과학서로 단련시키기도 합니다.  놀이터에 있는 쓰레기를 보면 옥찌들과 같이 주우려고 하고, 오지랖 넓게 나를 필요로하는 곳에 있으려고 노렵합니다. 내가 필요해서 누군가를 찾고, 혹여 누군가의 부탁에 마지못해 응해주는 것보다 오지랖형 인간으로 사는건(지나친 간섭은 조심해야겠죠!) 훨씬 즐겁습니다.

  아파트라는 벽을 마주보고 10년을 살았어도 변변한 이웃 한명 있지 않았는데 이번 달 들어서만 옥찌들을 매개로 벌써 두분의 할머니와 친하게 되었습니다. 옥찌들처럼 지나가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싶고, 비오는 날이면 부침개를 푸지게 부쳐 맛있게 나눠먹고 싶습니다. 조선인님의 페이퍼에서 본 정류장 도서관을 구상하면서 혼자 빙긋 웃기도 하고, 비오는 수요일이면 장미 한다발을 사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도 싶습니다. 이런 에너지들과 상상이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요즘은 정말 행복한 일 투성입니다.

 촛불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촛불을 들면서 그 작은 쑥쓰러움과 내게만 향했던 연민과 방어기제들이 한꺼번에 해체되고 물컹해져버렸습니다. 하기 싫은 모든 일들에 '세상이 원래 그래'로 체념하기 전에 원래 그런 세상의 판을 바꾸고싶은 마음. 그 마음 하나 하나가 모여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살기좋게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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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20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히 깨진 유리조각을 주웠던 페스탈로치가 존경스러웠던 건, 날마다 오르내리는 학교 계단의 휴지 조각을 외면하고서야 느꼈답니다. 날마다 새로이 마음을 다지는 건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허리를 굽혀 줍는답니다. 저도 이런 말하기 좀 쑥쓰러워요. ^^

Arch 2008-06-20 11:4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쑥쓰러우면서도 좀 자랑도 하고싶고, 그런거 있죠! 허리 운동도 되고 좀 좋아요.
 

 며칠 전, 가족 모임에 갔다가 아빠께서 내 얘기를 하시는걸 우연찮게 듣게 됐다. 워낙에 과묵하시고 필요할 때 아니면 말씀을 잘 안 하시는 분이라 약주 한잔씩 드셔야 속엣말을 하셨는데 그 날이 아마 그랬던 모양이다.

 사실 내 얘긴 할게 없다. 기껏 대학까지 가르쳐놨더니 몇년째 뭔 준비만 한대고 성격도 이상하고 이쁜 구석도 없으니 뭐 굳이 눈 씻고 찾아보면 아주 티끝만한 장점이 있긴하나 대체로 유해해서 찾아볼 엄두도 안 나실거다. 대체 아빤 무슨 말씀을 하실까.

"우리 큰 딸이 머리는 좋아-모든 부모님들이 갖고 계신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판단- 얘가 조금만 노력해도 뭔가 할텐데. 그래도 지가 하고 싶은거 한대는데 어떡하겠어.-여기서 잠시 한숨. 난 심호흡- .. 그래도 우리 딸이 아빠라면 끔찍히 생각해요."

 그 다음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생각은 이미 '끔찍히'에 사로잡혀 버렸다.

 아빠를 좋아하고 염려하는 맘은 있지만 아빠가 강조한 '끔찍히'란 굉장히 살갑고 찡한 꾸미는 말만큼이나 끔찍하게 아빠를 생각한 적은 없다. 내가 아빠를 보는 시선은 부모로서보단 인간적인 면으로 바라보는게 다였고 배울 점도 많지만 그만큼 부정적인 부분도 허다하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아빠랑 있는 시간은 즐겁지만 꼬박꼬박 안부 챙길만큼 성실한 딸도 아니고 '아빠'란 정서만으로 맘이 애틋해지는 유아기적 몰입을 투영할만한 나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아빤 왜, 내가 당신을 끔찍히 생각한다고 여기신걸까.

 그 궁금증은 며칠 가다가 오늘 알라딘 서재에서 글을 읽다 모든 부모들은 약간씩 자식들을 과장해서 표현한단 문구를 대면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풀어졌다.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자식을 투영시켜 자신을 대변하는게 아니라 부모란 존재가 원래 그렇다는 것. (아마 마태우스님 서재였던 것 같다.) 그게 사랑이든 집착이든 과시든 남에게 자기 자식이 손가락질 받는걸 싫어하는게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 그래서 자식에게 허물이 있을수록 반대 급부로 자랑에 열을 올린다고 한다.

 자랑할게 너무 없어 아빤 '끔찍하게'란 표현을 쓰셨고 매번 가족 모임에서 결혼 아니면 직장으로 공격받던 난 그래도 부모한텐 잘하는 말하자면 무능하지만 '애는 착한'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아빠는 술 드실때면 수순처럼 자식 자랑을 하셨고 옆에서 듣고 있던 난 과문한 탓에 아빠가 참 주책이라고 생각했던게 참 오래 전 일 같다. 그때 아빠의 가장 큰 보물은 세딸들이었고 그 중에서도 아주 조금 공부 잘했던 날 아빤 특별히 조금 더 이뻐하셨다. 물론 드러내놓고 표현하진 않으셨지만 열 손가락 중에 난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이었고 애정을 많이 주는만큼 기대하는 것도, 그로인해 내가 받은 부담감도 컸다. 어렸을땐 그게 참 싫어서 아빠가 기대를 하실수록 나는 엇나간다는걸 보여주려는 시도도 많이 했다. 그래봤자 야자 튀고 가끔 심부름 시키실 때 귀먹은체 한게 다였지만. -무능의 정점이로군-

 꿈을 갖고 자식 자랑하시던 아빤 꿈처럼 빛나는 미래가 아니라 현실에 적응하는 자식들을 보시며 술자리에서도 별 말씀을 안 하셨다.- 어쩌면 못하신거겠지. - 날 추스려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겹던 20대엔 관계의 형태가 늘 일관될순 없다고 생각했고 어깨 위에 얹힌 아빠의 무게가 가벼워져 좀 숨쉴만 해졌다며 난 안도했다.

 그리고 오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난 자식을 옹호하신 아빠 맘이 느껴져 맘 한편이 싸해진다. 그동안 자식들을 속박하지 말라고 아빠에게 볼멘 소릴 내뱉곤 했던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졌다. 자기 안에서 찾는 행복과 충족감도 중요하지만 사회에서 받을 시선으로 행여 딸들 맘 다칠까 다 주셔놓고도 당신의 부족으로 자식들이 웃자랄까 염려하는 마음. 깨달음이나 고마움은 한걸음 늦게 찾아온다.

 방 안에 모인 사람들의 훈기로 따듯한 분위기가 감도는 날, 얼큰한 취기로 말씀을 꺼내실 아빠가 굳이 최고치의 부사인 '끔찍하게'란 말을 안 쓰시고도 흐뭇하게 딸들 얘기를 하실 모습을 상상해본다.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이 당신을 사랑하는 딸들의 면면이 생생하고 예쁘게 취억되는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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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19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부모의 맘이 다 그렇다는 걸 알고, 겪은 나이가 되었어도.....부모님의 그 마음엔 아직 못 미친답니다.ㅜㅜ

웽스북스 2008-06-1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어떻게 자랑할 거리를 찾아내시는 것도 참 대단해요
저도 같은 마음, 여러번 느꼈었어요

Arch 2008-06-20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매번 그런가봐요. 웬디양님/그쵸. 저희 아빠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요새 별다른 일 없으면 '내 이름은 김삼순'을 재방송으로 보고 있다. 삼순인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꿋꿋하게 주제 파악 잘하며 자기 일도, 사랑도 열심이다. 오늘 방송에선 삼순이가 삼식이를 처음으로 좋아하는 장면이 나왔다.
 삼식이로 분한 현빈이 뽀뽀를 하려는 모양새로 몸을 삼순이에게 기대자 그녀는 눈을 감는다. 삼식인 흥미 잃은 표정으로 떡줄 사람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퉁을 놓는다. 삼순이, 어이상실로 화르르 화를 내지만 이미 맘은 이성으로 통제가 안 되는 상황.
 밤새 잠을 설치고 많이 굶어서 이러는거라며 머릴 쥐어박고 자기 할말만 하고 가는 현빈에게 '쟤는 왜 지 말만 하고가'라고 태연하게 중얼거리다 그럼 무슨 말을 더해 하며 한번 더 자신의 주책맞은 머리를 쥐어박는다.
 삼순인 서서히 자신의 사랑을 알아가고 용기있게 그에게 고백하고 여차여차해서 둘은 잘 지낸다더란 해피엔딩은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면 아련하게 기억할테고.

사랑에 빠지는 순간.

 평탄하다면 좋으련만 평탄하지 않은 인생은 사랑도 지랄맞게 찾아온다. 당연하게도 우선은 자신을 설득시켜서 이건 유사 사랑이지 사랑이 아니라고. 외로워서 발악을 하는거라고 많이 굶은거라고 추스렸다가 포기했다가 우왕좌왕했다가 주저앉았다 화병으로 쓰러질 즈음 용기내서 고백이란걸 하겠지. 물론 예상대로 전혀 뜻밖이란 상대방의 반응이 있을테고.

 그럼 그냥 친구로 남을걸 왠 주책이냐 에이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근데 이게 정말 좋아하는거 사랑하는거 맞아란 고백하기 전보다 훨씬 찐득거리는 질문이 따라오고.

 어려서 짝사랑을 할땐 정말 행복했다. 피부 재생력이 뛰어난 나이답게 상처도 금방 나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누군가가 경계한 말대로 난 사랑중독자였는지도.

 지금은 나이 많이 먹었으니까 섣불리 누굴 좋아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왔다. 누군가의 호의가 오래 묵어서 정이 되긴 했어도 한눈에 뻑간다거나 은근하게 좋아진 적은 없었다. 그래서 유사 사랑에 그토록 시달렸으면서도 정말 신중하게 내 맘에 대해서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요즈음 내 맘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너를 향해 내 맘이 흔들리는 순간
사랑이 시작되길...

 이외수의 이 몇마디 말에 맘이 울려 움찍대고 있다. 생각난다. 보고싶다. 자신이 없다. 생각난다. 보고싶다. 자신이 없다. 왜 이러는거야. 왜 이러는지 좀 견디다 보면 좀 숨을 고르다보면 답이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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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잘 모르겠던 그분께 고백했다가 민망 바가지만 받아왔어요. 이거 쉽게 바뀌는게 아닌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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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친구녀석이 만나고 있던 여자 얘기를 해준적이 있다.
 성격도 괜찮고 얼굴도 이쁘장한 편이었지만 객관적인 미점 말곤 매력을 발견할 수 없었단 얘기와 함께.
 헌데 요 여자 아인 친구가 맘에 들었는지 결혼 운운하며 진지한 모드로 나가길 바라고 있었고 친구는 에둘러 그 애에게 설명이란걸 해줬다.
"오빠는 말이지.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야. 보헤미안이라고나 할까."
 쌍팔년도식의 느끼함은 제쳐두고, 그 뒤로부터 그 녀석의 별명은 미친 보헤미안이 돼버렸다.

 또 다른 녀석의 경우.
 녀석이 두달 정도 사귄 귀여운 여자 친구와 -요즘 애들치고 예쁘고 귀엽지 않은 애 없다지만.- dvd방에 갔더랬다. 사귄지 얼마 안 됐으니 얼마나 들끓어올랐겠어. 장소가 무슨 대수랴. 영화는 이미 사운드와 조명의 구실 밖에 못하고 둘은 일을 치르기 직전까지 다다르고 있었는데 여자 아이,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란다. 뭔가 했더니 베네통 콘돔이었고 녀석은 나어린 애인의 남다른 준비성에 감탄을 했단다.
 베네통에서 콘돔도 나오냐며 해야할 일도 망각한채 콘돔 구경에 빠진 녀석은 분명 10개라고 또렷히 적혀있는데 콘돔이 몇개 밖에 없다는걸 알아챘다. 보통 예민한 녀석이 아니었다. 그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서 그런걸 확인하다니.
"누구야, 콘돔에도 불량품 있나봐. 몇개가 없어."
사심없는 그의 질문에 사슴같은 눈을 말똥히 굴리며 그녀가 한다는 말은
" 오빤 다른 사람이랑 하고 싶은적 없어?"
와와와와~~~
 꼭 그일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녀석은 그 여자 아이와 헤어졌다고 한다. 무쓸모 개념을 지닌 녀석이었지만 도저히 그 뉘앙스까진 따라잡기 힘들었단 고충을 토로하며.

 20대 초반 두 아이의 정서가 사뭇 다른 것처럼 결국 사람의 스타일은 나이와는 별개의 문제같다. 속 다 보이는 20대의 열정이나 의뭉스런 30대의 사심이나 태반은 그릇만 다를 뿐 본질적인건 이미 그 사람 안에 다 있는거니까.
 20대 초반에 어리버리했던 내가 어느 날 지나가는 도사의 가르침을 받자와 개벽되지 않았던 이상 지금도 역시 면면히 그 코드를 되새김질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문득 내가 미친 보헤미안이라도 좋으니 겁없이 사랑하고 용기있게 고백하고 내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감식안을 갖으려고 노력하고 몇개 비는 콘돔곽을 슬쩍 남자에게 건냈던 과거가 있었다면 지금의 나보다 삶을 살아가는데 더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본다. 글쎄 역사에 가정이 없는 것처럼 개벽이란 허상만큼이나 때 지난 푸념일뿐이겠지만.

 물질하는 처녀가 깊은 물 속까지 가라앉았다가 제 숨을 도저히 참지 못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흔하디 흔한 공기의 질감조차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숨이 다할때까지 꾹 참는게 아니라 쉴새없이 물 안과 밖을 들락거리는 정체성을 가진 난, 전복도 물 밖의 세상도 온전히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나이만 들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건 늙는단 것보다 더 아득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끔씩 다가오는 씁쓸한 생각.

 20대 초반의 풋풋함으로 무모할순 없을지라도 지금 딛고 있는 곳에서 시작해도 늦진 않다. 모순에 치여 살지만 내 가장 큰 강점은 바로 터무니없을 정도로 말끔한 희망을 꿈꾼다는거니까.
 우선은 기다림과 인내가 시작이고 그 다음은 아주 아주 나중에 생각해보련다.

 <보그>의 편집장이었던 아나 원터는 천박한 스타일이 스타일이 아예 없는 것보다 낫다는 말을 했다. 그러저러한 일상을 지탱하는 나를 새롭게 리메뉴얼할 수 있는 계기가 올거라고 믿고 그런 예감에 설레는건, 벌어진 앞니를 드러내놓고 음반 화보를 찍은 제인 버킨에 준하는 자아 정체감을 찾아가는 일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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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타일
    from 기우뚱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2012-05-27 10:51 
    어디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화장을 안 하기 시작했고 색조는 물론 기초 화장까지 안 해도 보기에 푸석한 것 말고는(화장을 하는데는 이런 이유가 크겠지) 그다지 피부가 당기지 않고 별 탈이 없었다. 그래서 아예 화장품을 바르지 않기 시작했다. 물론 내게도 블링블링한 ‘온스타일의 get it beauty’ 시절이 있었다. 차홍이 나와서 깜찍한 얼굴로 오목조목 말해주면 나도 무슨무슨 웨이브쯤 단번에 할 것 같았고 실제로 해내기도 해서 한동안
 
 
라주미힌 2008-06-18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스타일 쥑이시는데요?

Arch 2008-06-18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다른 누구보다 님한테 그 소리 들으니까 그야말로 기분이 째~져요^^ ** 마노아님/ 아, 감사해요^^ 그야말로 쥐어짜기 문장법이라고 어느 책에 나와있더랬죠.

전호인 2008-06-1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을 뵙지 않았다면 글만으로 짐작을 했으련만 뵙고난 후 글을 통해 스타일을 유추하기가 이렇게 힘들줄은 몰랐습니다.ㅋㅋ

Arch 2008-06-19 09:53   좋아요 0 | URL
전호인님 그런가요? 굳이 스타일 유추하진 마세요. 무형의 스타일형 인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