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디너분들에게 시원한 풍경을 선사하고 싶어(누가 받는대?) 이리저리 서재 배경을 바꾸다 자전거 있는 풍경도 올리고, 바다도 올리다가 마침 들르셨던 hnine님께 딱 걸리고 말았다.

-저기 어디에요. 이쁜데요.

 서재 이미지는 바다로 바꾸었지만, 그 말에 또 잘 시간을 넘겨가면서까지 페이퍼를 쓰게 되는 요 팔랑귀는 누구한테 물려받은건지. 그러니까 이 페이퍼는 미루다 미루면 자판칠 힘이 조금 남아있을 어느 노년의 날쯤 올리게 되었을지 모를 페이퍼인 것이다.

 이주 전에 선유도를 다녀왔다. 차근차근 서재에 올릴 생각에 야무지게 사진도 찍고, 어떤 말을 남길지도 다 생각해놨지만 이놈의 게으름병이 도져 서재를 피하고, 아냐, 아무도 선유도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거라는 별로 납득 안 되는 이유까지 붙이며 브리핑 올리오는 것만 쓱쓱 다 보고선 서재를 모른척 해뒀다. 그러다 오늘 딱 걸리고 만 것이다. 이러다 또 페이퍼 못쓰고 사설만 늘 것 같아 바로 시작한다.

 친구랑 같이 갔는데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그냥 좀 쉬고, 또 쉬고, 맛있는거 먹자. 이게 다. 그래서 동선은 최소한으로. 한곳에서 모든걸 다 해결하기로 했다.

 선유도 선착장에 도착하자, 몇몇 아저씨들이 예약한 손님을 태우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인상 좋아보이는 아저씨가 자연산 광어를 오늘 갓 잡았다며 미끼를 던지셨다. 친구와 상의하고 말것도 없이 우린 차에 올라탔다. 문득 새우잡이 배가 생각나서 친구에게 말했더니 콧방귀도 안 뀌었다. 도착한 민박집겸 식당은 선유3리로 선착장에선 좀 멀었지만, 사람이 별로 없고, 조용해서 좋았다. 물론 주말이지만 비수기라 어느 곳이든 사람이 없었지만.

 짐을 정리하고, 근처를 돌아보다 애초에 우릴 데려다주신 아저씨네 집과 가격 차이는 조금 나는데 방도 방이지만 창 밖으로 조그만한 바다가 보이는 다른 민박집을 발견했다.



 친구는 단번에 이 집으로 옮겨야한다며 옮겨야하는 이유를 대며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나에게 말을 했다. 나는 아무데서나 자도 상관없다주의였지만 일부러 여기까지 차를 태워다준 아저씨에게 죄송했고, 어차피 귀찮아서 퍼져 있었다면 몰랐을텐데 단박에 맘이 바뀔게 뭐있냐 싶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친구의 논리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무엇보다 눈을 흘기며 혼자 착한체 한다고 몰아대서 착하지 않은 내가 그런 소릴 들을 수 없다며 발끈한게 컸지만.

 

 민박집 앞에 있는 작은 바닷가에서 낙조를 보고,



 산 위로 안개가 피어나는 것도 지켜봤다.

 시간은 천천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흘러갔다. 파도 소리가  일정하게 솨솨, 파도가 자갈들을 반질반질. 바람이 귓가를 말끔하게 닦아줬다.



 그, 회를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섰는데 검은개가 몸이 찌뿌등하니 좀 밟아주란 포즈로 저러고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저게 꼭 식당에 들어와야 잠이 든다며 아무리 쫓아내도 다시 여시같이 들어온다고 지청구를 줬다. 아주머니가 하는 소리는 귓등으로 흘리고 태연하게 기지개까지 피는 검은개. 맛있겠다, 웬지 이런 말이 생각이 났지만, 다행히 난 보신탕을 못먹는다. 그게 뭐 다행까지겠으나.

 저녁상은 상다리 부러질만한건 아니었고, 음식을 막 찍고 이러는거 좀 쑥쓰러워 따로 사진은 없다. 다만 친구랑 피곤한 몸에 괜히 술을 들이부어 티격태격 싸우다 급기야는 노래방 기계를 쓴다는 아저씨들에게 자리를 양보 하냐마냐의 문제에서 시작해 왜 자신의 권리를 버리는지, 자존감이 있느냐 어디다 엿 바꿔먹었느냐는 문제로 첨예하게 날이 서선. 회가 어디로 들어갔는지, 자연산인지 따져봐야한다는 처음의 맹세는 파도에 실려 바다 멀리 보내버렸다. 다행히 뒤탈이 많은 둘의 성격상 내내 궁시렁대다 술이 깨고, 파도 소리가 계속 들리고, 방안에 계속 들이닥치는 다리 많은 곤충 덕에 은근슬쩍 화해는 했다.


넌 누구니? 네, 전 검은개 친구에요.
 

 아침에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러 바닷바람을 듬뿍 섭취한 몸을 하나씩 주섬주섬 챙겨 기어나고 있는데 요 녀석이 보였다.

 
쟨 누구야? 응, 내 친구. 그런데 왜 혀를 내밀고 있어? 너도 이 날씨에 털옷 입어봐.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얘... 쌍꺼풀 있다. 친구가 어제의 과음으로 정신 못차리고 화장실 들락날락 하는 동안 난 얘네들하고 놀았다.


뭐하려고? 응, 먹을만한지 보려고. 너 혹시 개풀뜯어먹는? 여시네.

 배도 든든하고, 어제 아무데도 가보지 않은게 귀차니스트들에게도 꽤 아쉬웠는지 우린 큰 결단을 내렸다. 바로 선착장까지 걸어가기로. 아마 우리가 그곳이 어디이고, 날씨가 어떤 상태인지 알았다면 쉽게 결정을 내렸을까? 단순해서 그랬을지도.


책 보기 딱 좋을듯. 수다는 양념









 갯벌에서 갯벌 냄새를 맡고,

그 속에 터를 잡고 사는 생명들을 지켜보고,

그 곳에서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숨결을 느꼈다.


그리고 이 녀석. 이 섬엔 쌍커플 개만 있는거냐? 이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하는 짓을 저지르는건 무슨 속셈이냐.

다시 갯벌이 있고


우리가 지나온 길이 있다. 다정한 저 부부는 오르막길에선 같이 걸으셨다. 아주머니께서 무슨 얘긴가를 하자, 아저씨가 껄껄 웃으시는데 참 좋아보였다. 문득 이외수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부는 전우애로 뭉쳤다란 얘기도 생각이 나고.







 점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뭔가를 잡는다고 했는데.

점처럼 점처럼. 내가 그곳에 선다면 나도 점처럼.


나무 아래 자전거. 선유도엔 원래 차가 잘 안 다녀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니는데 이번엔 차들이 좀 많았다. 이인용으로 선선한 저녁에 같이 타고 다니면 좋겠지?

 뭔가 마구마구 털어놓을 것처럼 떠들어대더니 잘 시간을 훌쩍 넘긴데다 여행의 말미에선 우리 둘 다 좀 조용해진 탓에 페이퍼에도 쓸 말이 생각이 안 난다.

 길은 가도가도 계속됐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손바닥만한 그늘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산에 올랐을 때도 이만큼 힘들었다. 게다가 오르막길이니 부실 체력으로 오죽했을까. 약수터만 나오면 정상이고 뭐고 내려가겠다는 심정으로 오가는 사람들에게 약수터가 어디냐고 물었었다.  아저씨들은 나를 아래위로 쑥 훑더니  나라면 20분인데 아가씨 폼으론 어림도 없겠다며 고개를 저으셨다. 불치병이란 진단을 내리듯이 말이다. 그땐 약수터는 나와는 안 통하나보다 생각하고 포기했었다. 다행히 선유도에서는 선착장 전 마을에서 길을 묻자, 아저씨 한분이 태워다주셨다.

 선유도. 관광지이고 그게 또 이 동네분들의 일년 벌이이다보니 바가지도 많다하고, 인심도 예전같지 않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 섬에는 사람들이, 옆을 돌아보면 부러 환하게 웃진 않더라도 이것저것 재미있는걸 알려줄, 내 아빠같고 삼촌같은 분들이 많다는걸 여전히 난 기억한다. 예전에 왔을 때도 경찰 오토바이로 친절하게 섬을 알려주신 아저씨를 만났을 정도였으니.


 사람을 피해 쉬러 간 곳에서 사람을 만났다. 선유도에서 난 인상깊은 개들을 봤고, 풍경처럼 흐릿하게 있다 나 여기 있어요하며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선뜻 웃음을 건네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을 다 호출하지 못한건 조촐한 글탓 때문이다. 가끔은 졸필을 핑계로 가슴에 꾹꾹 눌러 담아, 눈을 감으면 파도처럼 밀려오는 얼굴들을 그려보며 심호흡으로 가슴을 한껏 부풀릴지도.

 충만하다, 충만하다. 거기 있을 당신들 덕에 충만하다. 



다시 바다. 그리고



안녕, 선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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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24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그 약한 펌프질에 딱 걸린 1인. 가보고 싶다 선유도에......

hnine 2008-07-24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마지막 사진이 뽑혔군요.
잘 쓰시네요 글...

Arch 2008-07-2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이 추천을 누르셨다고 맘대로 상상하고, 순오기님. 성수기때는 너무 복잡하니까 휴가철 좀 지나면 설렁설렁 들리셔요. 이틀 정도 시간 잡아 섬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1cm정도 행복해질거에요. hnine님 내 뽐뿌질의 장본인^^
 

1. 당신은 어떤 종류의 책을 가장 좋아하세요?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면 적어주세요. 
 

사람들 얘기가 깊게 담겨있는 책을 좋아한다. 세례라자드가 천일동안 해주는 이야기보다 왕과 그녀는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나갈까, 이야기 속 사람들은 어땠을가가 더 궁금했으니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한권만으로도 벅차지만 읽을수록 프루스트란 사람이 얼마나 사람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특징의 요소요소를 얼마나 잘 잡아냈는지 보인다. 보통의 소설도 그런 면에선 탁월하다.

 

 

2. 올여름 피서지에서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방콕으로 갈 경우, 따뜻한 정종과 함께 침대와 책, 여행의 기술을.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방송작가와 칼럼니스트의 입담으로 여행이 한결 재미있어질 듯.

 

 

3.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혹은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알라디너들이 사랑하는 김연수씨와 카뮈. 마루야마 겐지. 아베 코보. 폴 오스터. 이스마일 카다레. 밤새도록 말할 수 있다. '가장'이란 수사가 걸리긴 하지만. 역시 최근이라고 하자니 몇몇 분들이 걸리고, 그렇다고 먼 곳에 있는 분들을 '최근'으로 얽어매기도 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중혁씨가 보인다. 이분, 허투로 뱉는듯 쏟아내는 유머가 보통이 아니다.
 

 

4.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개선문에서의 조앙. 삶에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방식과 부유하는 이미지가 좋다. 라빅의 시선을 거치긴 했지만 그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을 표현한 문장도 정말 근사하다.

 

5.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자신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인물 /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이상형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었다면 적어주세요.

1984 조지오웰-178p

-이봐요. 당신과 관계한 남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당신을 더욱 사랑할거예요. 내 말 이해하겠어요?

-네. 이해해요.

-나는 순결도 증오하고, 선도 증오해요. 어떤 곳에도 도덕이니 덕성이니 하는 것들이 존재하길 바라지 않아요. 나는 모든 사람들이 뼛속까지 썩기를 원해요.

                       -그럼 저 같은 여자가 당신에게는 꼭 맞겠군요. 저는 뼛속까지 썩었어요.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에서 달. 마루야마 겐지의 분신이면서 사납고 거친 캐릭터. 위악의 껍데기가 벗겨지면 앙상한 달의 뒷표면이 보일지라도 달은 계속 뒤를 쫓는다.

 

 

 

 어떻게 당신을 잊을 수 있겠어.

 

 

 

 

6.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은?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번. 읽는내내 그리고 읽고나서도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구절이 많았다. 선물을 받는 사람도 아마 책장을 넘기다 한번씩 크게 숨을 쉴때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7. 특정 유명인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누구에게 어떤 책을 읽히고 싶은가요?


 

 무난하게 대통령에게 주고 싶지만 아마 잠은 없어도 책도 안 읽을 듯 싶으니.

 김훈씨에게 이 책을 주고 싶다. 그가 어떤 문체를 가졌고, 어떤 사회 활동을 했느냐 여부를 떠나 그 자신의 알을 깨고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수봉 노래 가사 같은 처량미가 좋다는건 정말 아니지 않은가. 

 

8. 작품성과 무관하게 재미면에서 만점을 주고 싶었던 책은?

 로알드 달의 맛

호어스트의 느낌으로 아는 것들

여자, 전화. 숨김없이 웃긴다.

 


9. 최근 읽은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토스카나, 달콤한 내 인생-286 해변을 가득 채운 건강한 태양 숭배자들과 달리 우리는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정형외과 병동에서 도망쳐 나온 환자들처럼 보였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1-25p- 하루키의 주인공은 문화적 기호를 포식하는 것으로 도시적 삶의 불안과 청춘의 허기를 달래지만 할부<기호>가 조작되는 고도자본주의 사회가 그들의 냉소와 허무를 가중한다. 하루키의 '안티모드 반유형'은 고도 자본주의의 조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안쓰러운 몸부림이자, 이미 그것에 침윤된바 있는 자의 추억이다.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씹으면 첫사랑의 쓰라림을 느낄 수 있다는 라일락 꽃이야. 어디 한번 맛볼테야.' 그러면 정민은 " 잘못했어. 내가 이 나무에 매달린 꽃들 다 씹어먹으면 용서해줄거야?"

개선문 235 조앙- 저는 사랑에 콕콕 찔려 구멍이 송송 났어요. 사랑 때문에 전 아주 훤히, 제 속이 들여다보이게 됐어요. 너무 당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제 마음이 부풀어 올라와요.
 

10. 당신에게 '인생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인생의 책이라고 하니까 좀 거창하지만.

책 읽는 즐거움을 특히나 소설의 맛에 빠져드는걸 신경숙의 외딴방에서 시작했다. 세, 완의 깊은 슬픔과 그녀가 잡아내는 찰나의 슬픔과 아름다움과 기억, 살갗을 타오르게 하는 기억들로 설레고 감탄하다 그만 죽을 상을 짓고 다녔다. 이 사람은 기억이 자원인데 난 술때문에 죽은 뇌세포들 때문에 어제 일도 기억이 안 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설이, 그녀가 만들어내는 풍경이 너무 좋았다. 그녀를 탐닉하다 바이올렛에서 엎어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나의 처음'으로만 인상깊을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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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24 0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로알드 달의 '맛' 내가 읽은 최고의 반전소설이었죠~ ^^

Arch 2008-07-24 18:42   좋아요 0 | URL
모든 단편이 다 그랬지만 그, 사막.은 최고였어요.

웽스북스 2008-07-24 19:24   좋아요 0 | URL
어후~ 그 사막! ㅋㅋㅋ

Arch 2008-07-24 20:26   좋아요 0 | URL
어후, 그 막... 사막을 기억하시는구나. 전 온몸에 소름이 쫘악! 대체 어디서, 이런 부비드랩을 난 왜 놓쳤을까.

비로그인 2008-07-24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옮겨 적으신 김연수님의 문장들을 보고 큭큭 웃었네요. ~테야,라니. 하하.

김훈님께 그 책을 보내드리고 싶으신 거군요. 음... 저라면 그 책 대신 토니 모리슨의 책을 보낼 것 같아요.
Beloved나, The Bluest Eye 같은 거요. 소설가는 소설로 설득하지 않으면.

정희진님의 책은, 스무 살 딱 그 무렵에 읽어야 알맞는데... 그래야 빨리 정신차릴 수 있는데 말이지요.

Arch 2008-07-25 11:19   좋아요 0 | URL
저도 큭큭, 소설 속에 김연수씨가 들어있는 것 같아 혼자 청춘의 문장들의 느낌을 떠올렸지 뭐에요.
김훈씨는 소설가 전에 기자였고, 기자였는데도 그러셔서. 알스님이 말씀하신 책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분명 권해주고 싶을만한게 아닐런지 싶어요.
정희진 선생님. 스무 살 이후라도 퍼뜩 읽어야 된단 생각이 들죠. 내 댓글 너무 재미없다.ㅡ,.ㅜ

nada 2008-07-25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세상엔 멋진 책이 정말 많아요.
1984년에 저렇게 정신 번쩍 나는 구절이 있는 줄 몰랐어요.
뼛속까지 썩고 싶네요. -.-

Arch 2008-07-25 21:58   좋아요 0 | URL
제가 저렇게 정신 몽롱해지는 구절을 좋아하는지라.^^ 몇개 더 올려야하나, 손이 근질근질.

다락방 2009-07-01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에 땡스투를 했어요. 무얼 사면서 했을까요? 후훗

Arch 2009-07-02 13:1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뭘까요? 몇천년만의 땡스투군요^^ 후후

다락방 2011-04-05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또 했지롱요~ 2011년 4월5일, 식목일에.
:)
 

 
자, 가볼까요.

  먼저 계단을 올라야해요. 햇살이 정면에서 비친다고 너무 눈을 찌푸리진 마세요. 사진보다 더 살가운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냐구요?
 글쎄요. 자전거만큼의 속도도 좋지만 산은 발로 디디는 맛이 그만이거든요.

 

  높게 솟은 나무도 보이고
  깊은 골짜기도 볼 수 있어요

 운이 좋으면 다람쥐, 청솔모랑 인사를 할 수 있어요. 다람쥐가 작은 다리로 나무 사이를 옮겨다니는 것보다 더 괜찮은 일은 다람쥐를 보는 다른 누군가의 시선과 마주쳐 인사를 나눌 수 있는거죠. 산에 있으면 사람들이 착해져요. 산에 있을때면 사람들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요. 가만히 바람 소리를 듣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죠.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따사로운 느낌에 그냥 몸을 맡기는거에요. 단순한건 더더욱 괜찮은 관점이 되죠.

 잠시 좀 쉬어볼래요?
 봄에, 동백꽃이 한창일 때 제가 나무 등걸을 쓰다듬으며 쉬었던 곳이에요. 동백꽃은 활짝 핀 순간만큼이나 지고나서도 쭉 예쁜 꽃이 아닐까 싶어요. 꽃이 진 자리가 참 화사하죠?



헥헥,  거즘 정상인 월명 공원에 도착했어요. 저 멀리 바다 보이세요?

 
또, 잠시 쉬어야겠어요


 벚꽃이 지고 있는 저곳에서 벚꽃비를 맞으면서 책을 읽거나 좋은 사람과 두런두런 얘기를 한다면 참 좋겠죠?

 더군다나


모양 안 나는 산행 후 묵직한 음주만큼 맛있는게 또 있을까요

 산에서 내려오다 보이는 휴게실의 파전과 뻥튀기는 정말 끝내줘요. 맥주에 먹는 치토스가 새우깡보다 2.5배 맛있다면 믿어지시겠어요? 알딸딸한채로 내려오다 보면 이제, 월명동입니다.

그저 슈퍼일 뿐인데  전 이 슈퍼가 참 좋아요. 낡고, 낡아서 장사는 될까싶은데 괜히 가서 군것질하고 싶게 만드는 곳.

 그리고

 
예인촌 뒷뜰
  
 산에서 먹은 파전과 취기가 좀 부족하다 싶으면 이곳에서 도토리묵이나 칼국수로 요기를 해도 좋아요. 직접 담근 술도 술이지만 대추살이 씹히는 대추차는 정말 일품이죠.


  저는 도시마다 먹거리나 교과서에 나온 몇가지 정보로 기억되는 것보다는 각각의 색이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봐요. 그러면 사람들이 여행을 떠날 때마다 쉬면서 다채로운 색의 더미에서 춤을 추고 싶을테니까요.

 그리고 군산은 단순히 내가 사랑하는 곳이야라고 말하기 부족한 곳이에요. 군산은 바다이고, 산이고, 논이고, 내가 어릴적 모습이고, 내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곳이니까요.

 날마다 월명산을 오르내리다보니 가까운 곳에 산이 있다는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나무 껍질을 손으로 어루만질때면 나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눈에 잡힐 듯도 하고, 하늘과 나무들이 주는 편안함이 단순한 휴식일 뿐인지, 등등 여러 생각이 들곤해요. 물론 대부분의 걸음에선 땀과 숨소리만 남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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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7-0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마다 월명산을 오르내린다구요? 우와
근데 나... 맥주에 치토스... 맛있겠다... 쓰읍 질질 ㅜㅜ

Arch 2008-07-09 08:56   좋아요 0 | URL
언니, 침 흘리는거에요? 습습. 월명산이 산이긴 한데 그렇게 높은 산도 아니고, 파워(?)워킹이면 금세 올라갔다 내려와요. 괜히 튼튼 종아리겠습니까. 언제, 치토스에 맥주?^^*

무스탕 2008-07-09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사진을 보고 제가 산에 와 있는줄 알았어요. 참 좋네요.. :)
저희 집 앞에도 야트막한 야산이 있는데 가본지가 언젠지 모르겠어요..;;;

Arch 2008-07-09 09:3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어딘가로 간다 이런게 있고, 그 중간에 산이 있다면 잘 오르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가끔 산 사진 올릴게요.^^

순오기 2008-07-1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 월명산, 군산 채만식 문학관 갔다가 기념공원(?)이 있어서 올라갔던 곳 같은데...맞나요? 기념비를 들어다보는 회원들을 찍은 사진도 있어요. 나중에 찾아서 올려봐야지~~

Arch 2008-07-10 09:0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순오기님이 더 상세하게 올릴까 두근두근 ㅋ
 

본 이미지는 페이퍼의 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밝힙니다. 요새 알콩달콩질이 많이 줄어서. 옥찌의 체크무늬 원피스가 너무 예뻤던 날.

 친척들 모임에서 금기란 없다. 직장이 없으면 없는대로 결혼을 못하면 못하는대로 표적물은 민망함이 없는 무생물처럼 취급이 된다.

 어제 친척 모임에서 모임의 성격에 딱 들어맞는건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나였다. 노총각 친척 오빠까지 이번에 결혼을 해버리니 여자인데다 나이가 차가는 나야말로 아무 때나 나타나는 화제의 핵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요새 난 살까지 쪄버린 상태다.

 얼른 결혼해야지부터 돈을 벌어놓고 시집을 가야한다. 자기는 모르겠지만 그런게 알고 보면 부모한테 불효하는 거란 것까지. 너무 뻔해서 하품이 나올만도한데 당할때마다 어찌나 전투 의지를 치솟게 하는지 지치지도 않고 맞대응을 했다. 하나같이 결혼을 못하더니 애가 독해지나부다란 표정이었지만, 지금 그런거 신경쓰게 생겼어? 잔뜩 악을 품고 다신 모임이고 뭐고 안 나온다고 선포까지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리에 먹을게 다 떨어져서였지만.

 부엌에 가보았다. 그곳에선 새언니랑 친척 언니, 그러니까 친척 모임의 젊은피들이 동동주를 마시고 있었다. 동동주. 어화동동. 동동주에 신 김치를 살짝 싼 머릿고기를 먹고 싶었지만 웬만하면 끼고 싶지 않던 모임에 어거지로 들어앉은게 일테면 앉으면 술이신 아빠를 대신한 고작 대리운전 때문이었기 때문에 꿈도 못꿀 일이었다.

 젊은피들과 이런저런 얘기 끝에 왜 그리들 결혼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둥, 난 결혼이 무섭다는둥, 맨날 뻔한 소리만 한다는둥 아까 못했던 말들의 2절을 읊어대고 있는데 새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들도 결혼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면서.

-그치그치.

 그러자 옆에서, 이번에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동안 노총각 범버꾸 행세 하느라 수많은 걱정과 염려를 한 몸에 받아왔던 오빠가 한마디 했다.

-나도 한 이년동안은 명절 때 집에 안 내려왔잖아. 그 소리 듣기 싫어서.

 오호.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었구나. 새언니는 한술 더 떴다.

-아가씨. 아예 거짓말을 해버려.

-어떻게?

-남자친구 있다고 하는 거야.

-에이. 그럼 언제 결혼할거냐, 뭐하는 사람이냐, 집안은 어떤지 꼬치꼬치 물을거 아냐.

-사업 준비중이라고해. 자리가 잡혀야 결혼을 할거 같다. 이렇게 둘러대는거지. 아니면 공부한대던가.

-그래서?

-그런 다음에 한 몇 년 지나서 둘이 결혼하려니 하고 있으면 그때 뻥터트리는거야.

-뭘?

-사업 말아먹어서 결혼이 무기한으로 연기됐다고.

-그런 다음엔?

 그러자 아구탕의 살을 초장에 살짝 찍어먹던 친척 오빠가 거들었다.

-그때는 나이도 있고 하니까 유부남으로 갈아타면 되지.

 허허. 그들의 터무니없는 말이 그 시간의 피크였고, 뒷맛이 알싸한게 오래오래 남을 것 같았지만 그것보다 내 맘을 동동주 우린 물처럼 맹탕하게 만든건 우리, 별로 다를게 없다는 느낌이었다.

 집에서 결혼해라, 잘 살아라, 애는 언제 낳느냐, 애가 공부는 잘 하느냐. 나는 죽어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말들이 나이 들면서 의식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나올 말들이 되고, 정말 하고 싶은 일보다는 사는 것에 관성이 붙어 어쩌면 그냥 살아가게 될지도 모를 어느 날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지 않다는 느낌. 언니와 오빠가 내 나이였을 때 나와 마찬가지로 어른들의 잔소리를 피해 나만의 공간, 나만의 것들을 자꾸 찾게 되었을지도 몰랐겠단 상상. 때가 묻는게 아니라 세월의 움이 자라나고, 그 안에서 유머를 잃지 않았구나란 이 정도 나이 먹어서 느끼는 풋내나는 동질감.

 극악을 떨 필요도 어깃장을 놓을 이유도 없었다. 잠깐 웃어줘도 좋고, 딴청을 피워도 됐다. 어른들은 내 안에 어떤 싹이 있는지 다 알고 계시니까. 나는 가끔 우스개를 늘어놓거나 남자 앞에선 죽었다깨나도 안 나오는 애교로 어른들의 뭉친 근육을 푸는 수 밖에.

 그런데 이게 또 내 전문이니까 부지런히 전문 분야에 몰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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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7-06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꽤 찼는데도 시집 안 가냔 성화가 안 들리는 것은, 내 위로 나보다 훨씬 꽉 찬 언니가 버티고 있는 까닭이지요.
뭐, 내가 최전방에 서도 좋으니까 제발 시집 가주는 게 더 간절한 소원이긴 하지만요^^;;;

Arch 2008-07-07 22:03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슬프긴 하지만 그게 좋은 방패막이 되기도 해요.^^ 결혼, 꼭 해야하는거 아니잖아요. 꽉 찬 언니도 나름 생각이 있을거라고 비혼하고싶은 일인으로서 항변 해봐요.

순오기 2008-07-0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나도 스물일곱까진 오빠가 버티고 있어서 그래도 나았어요~ 스물아홉에 결혼했고요.^^
어른들은 저런 말 할 일 없으면 또 뭔소리를 짜낼까? 이제는 나도 저런 어른들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고욧!ㅜㅜ

Arch 2008-07-07 22:0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강하게 어필하진 않을거라고 믿는다구욧!
 

 배가 ET처럼 나왔다. 그런데도 난 지금의 몸이 내 인생에서 제일 좋다. 배가 나와서 좋다기 보다는 내 몸을 인정하기로 했으니까. 이제 ET배라고 놀리면 더 내밀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줘야겠다. 스티븐 스필버그 뺨치는 환상의 셀룰라이트 세계로 초대해요.

 쟤도 있는데 내 똥배야 하찮지. 남에게 위안도 주니 일석이조다.

 예전엔 푼수라거나 촌스럽단 소릴 들으면 무진장 화를 냈다. 듣기 싫었으니까. 싫어서 발악을 한다고 그들이 조심하는건 아니었다. 너무 재미있는 먹잇감. 발끈녀. 왜 발끈했지? 진짜 푼수인데다 촌스러웠기 때문이다. 조금 촌스럽거나 약간 푼수였다면 뭐 그런걸로 놀릴까하고 말 것을 진짜인걸 생것으로 알아차리니까 낯설었다. 낯선데다 듣기 싫어서 생지랄을 했던거다.

 지금은 그냥 인정이다.

 대세는 인정. 인정하면 사람 대하기가 한뼘 정도 쉬워진다. 그래도 여전히 어려운거 투성이지만. 배가 나왔구나. 인정. 점이 참 많구나. 인정. 이젠 늙었구나. 그럼 인정. 팔뚝살 봐. 인정. 넌 왜 그 모양이냐. 그러게. 인정. 다 인정하는건 아니지만 바로 반발하기보다는 한꺼풀 인정하고 들어선다. 우선 그의 말을 찬찬히 들어본다. 대개는 그냥 해보는 소리거나 발끈녀의 과거를 추억하려는 수작인걸 이젠 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예쁘고 멋지단 생각을 해도 대개는 싫은 소리에 인정을 한다.

 듣기 싫은 소리 뿐만 아니라 칭찬에도 인정 모드다. 오늘 예뻐보인다거나 살이 빠졌다는 얘기에 쉽게 수긍하는 편이다. 정말 그래서 그렇다고 하기보단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거라는걸 알아서이다. 그런데 그게 참 재미있다. 칭찬에 인색하고 받는 것에 어색해하는 나로선 좀 간지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엔 바득바득 그렇지 않다고 하거나 증거를 대라고 상대를 협박했었다. 그냥 해본 소린데 죽자고 덤빈 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마워한다. 실없을지 모를 그의 말에 내가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졌으니까. 잘 안 나오지만 나도 가끔은 칭찬을 한다. 

 와. 오늘 정말... 세수하고 나왔네.

 아직 칭찬 초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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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공주 2008-07-05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 글 재미있어요.

Arch 2008-07-05 22:57   좋아요 0 | URL
도넛공주님. 저도 누군가를 웃길 수 있다니.ㅋ

hnine 2008-07-05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에 벌써 이런 요령을 터득하시면 너무 앞서가시는거 아닙니까? 인정하면서 사는 요령이요. ^^

Arch 2008-07-05 22:58   좋아요 0 | URL
hnine님, 아, 뭐 그렇기까지한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