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줄로 묶여있는 것처럼 뼈마디가 욱신거리고 한계치에 다다른 잠수의 끝처럼 숨이 가파왔다. 숨은 가프고 가슴을 커다란 손으로 누르는 듯 아팠다. 아프다고 소릴 지르고 싶은데 목안에선 굵은 손아귀가 성대를 움켜쥐고 놔주질 않는다. 말과 울음을 뺏긴채 몸부림치다 그만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사과 먹고 씩씩하게 잘 자라는 말을 해주던 그. 그가 나온 꿈. 한동안 꾸던 행복 컬렉션 제품 번호 1호처럼 방실방실 웃는 가족과 나오는 모습보다는 생생하지 않았다. 멋쩍은 턱시도를 차려입고,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엉거주춤 꿈 특유의 뿌연 배경 앞에 서 있던 그. 나에 대해서, 혹은 그에 대해서 얘기를 했던가. 나는 그를 보면서 지금은 괜찮은거지, 별다른 감정이 안 남은거지, 난 가끔 이렇게 꿈까지 꿀정도로 그립... 더라는 말을 주억거렸던가. 목울대가 울렁거릴 뿐이다.


 턱 아래에 깊은 우물이 있어 한동안 푹 잠길 수 있었더라면... 그를 잃어버린 상실감이나 미진한 얘기를 채우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 아니었다. 한창 어린 나를 한창 바쁜 그가, 고만고만한 거리를 놓고 바라봐준 사실. 두려워서 멀어진 것도, 너무 가까워서 얼굴에 난 점까지 셀 지경도 아닌 딱 일정한 자기력이 둘 사이를 배회하게끔 만든 거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게 처음으로 강준만 선생님을 알게 해주고, 다짜고짜 화이팅이 아니라 공감하고, 어쩌면 부질없을 일들에 대한 말을 아껴두며 힘내란 말을 해준 것. 젊은, 소용없는 변덕에 마음 쓰며 선의로 해석해준 맘 씀씀이. 그렇게 사소했던 일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아침을 무겁게 열줄이야. 가끔 이렇게 예고없이 그가 찾아오는 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오늘 내리는 이 비가 내가 내리는 날이란 유치한 비유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매번 꽃꽂고 고개 살랑살랑 흔들며 뛰어다니는 것마냥 비맞기 좋아하는 주제에 오늘은 울적하다며 우산까지 챙겨갖고 나서는걸 보면 wish가 아닌 dream의 부작용에 대한 생각까지 날 정도이다.

 비가 내리고, 다시 또 내리고 기온이 내려가면 가을이 오겠지. 가을이 오면 가을 타는 여자가 돼서 낙엽이 쌓인 거리를 휘젓다가 우연인듯 내 손가락 닮은 나뭇잎을 주워와 책 속에 묻어둬야지. 많은 날이 지난 후 나뭇잎을 꺼내보면 종이 사이에 잠자고 있던 꿈들이 되살아날런지도. 그때쯤이면 나의 우물도 낡은 두레박이 자길 퉁퉁 울려대도 그저 그런, 혹은 참 괜찮은 두레박이군 하며 웃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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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8-18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순오기 2008-08-18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은 알겠는데~ 글이 너무 이뻐요!^^

Arch 2008-08-18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그저 웃으시니 저도 뭐^^/ 순오기님 제가 글만 이쁜게 아니랍니다. (이런! 닥쵸! <--정말 이거 해보고 싶었어요.)
 

 듀나 게시판의 정회원이 되려면 꼭 거쳐야하는 관문이 이 프루스트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거래요. 답변을 작성하다 올려봅니다. 알라디너들도 한번씩 해보세요. 전, 설문하는거 좋아해서.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질문
14살 때, 프루스트는 <고백: 사고와 감정을 기록하는 비망록>이라는 영문책을 받았다. 7년 후 그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펴냈다. 이 묻고 답하기 놀이는 19세기 파리의 문학 살롱의 인기 있는 여흥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당신 성격의 특징은
 오지랖퍼. 잔소리가 심하다.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도 뱉어놓고는 아차 싶어진다. 계획을 세우거나 무슨 일을 할 때 의욕은 최강이지만 실행력과 의지는 거의 빵점 수준. 가족내에서는 쪼잔하고 잘 삐진다, 혹은 그만큼 믿음직스럽다란 평가를 받는데 밖에선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족내 믿음과 상반되게 줄곧 덤벙대고, 믿음 안 가는 면모를 보여주고 다닌다. 예전엔 웃겨자빠지는 상황에서 자제가 안 돼 여러 사람한테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조금 정말 조금 나아졌다. 수줍어하는 경향이 있기도 한데 가끔씩은 한번 나서고 싶어서 간질거려 죽을 지경이 되기도. 대체로 관통하는 성격은 청개구리 심보.
 
*남성에게 기대하는 자질은
 아무래도 여전히 남성위주의 사회이다보니 다른 시각으로 성별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조금 깨인 감성이 있다면 좋겠고, 가사를 자기일로 생각하는 마인드가 있다면 다른건 뭐. 요리를 잘하면 금상첨화.

*여성에 있어서는?
 착하지만 않으면 된다. 싸울 의지와 알아서 죄책감을 각인하는 짓만 안 한다면. 너무 부정적인 바람이다. 바람처럼 자유롭고, 장대비처럼 시원하게 뿜어대는 유머 감각을 지닌 여유로운 사람.

*친구들 간에 가장 고맙게 여기는 것
 추억을 환기시켜서 주는 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지만 나를 좋게 보려고 애쓰는 점. 나에게 쓴소리를 할때는 유머 감각을 발휘할줄 아는 센스.

*당신의 최대 결점은
 자기 합리화에 지극히 능하다.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의 부재. 언행불일치의 표본

*좋아하는 일
 한시간 정도의 산책과 도서관에 드러누워 책읽기. 멀쩡한 재료로 나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하는 것. 반짝이는 것들을 사진으로 찍는 것. 약간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얼음을 아삭아삭 씹는 것. 친구랑 껄껄대며 웃고 수다떨기. 싸고 맛있고, 밥을 많이 주는 식당에서 근사한 식사를 하는 것. 알라딘 서재에서 놀기. 놀이터에서 조카들과 놀기. 옛날 댄스곡 틀어놓고 몸 흔들기(이건 절대 춤이 아니다) 잡지나 신문 스크랩하기, 아저씨들 유머 엿보기, 엄마 아빠한테 내가 어렸을 때 어땠는지 얘기 듣는 것, 뭔가를 부단히 배우고, 깨닫는 것 등등.

*바라건대
 나의 길에 올인했으면, 그게 아니라면 밥벌이라도 좀, 그것도 어렵다면 자기 인식이라도 좀.
 대통령이 큰 실수 안 하고 임기를 마쳤으면
 조카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랐으면 
 우리 가족 뿐 아니라 모두가 행복했으면
 전쟁이나 기아로 아이들이 죽지 않았으면
 착취와 자원 낭비가 더 이상은 없었으면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불행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게 되는 것. 내가 정말 이렇게 삽질하다 느닷없이 죽는 것.

*되고 싶은 사람
 나의 멘토처럼 성찰과 자기 인식이 분명한 사람.

*살고 싶은 곳
 강원도의 산골, 슈바빙의 으슥한 골목에 있는 샛방, 남미의 분홍색 집.

*좋아하는 색
 연보라색

*좋아하는 꽃
 황금 달맞이, 샤스트 데이지, 목련

*좋아하는 새
 참새, 산속의 이름모를 새들.

*좋아하는 작가
 프루스트, 여전히 알랭 드 보통, 아베 코보와 조지 오웰, 레마르크, 폴 오스터, 카뮈, 마루야마 겐지, 톨스토이, 은희경, 김연수// 문학에 국한되는게 아니라면 강준만, 진중권, 박노자, 서경식, 정희진, 시네21의 김소희 기자, 바자의 에디터 김경씨의 글들. 써놓고보니 역시나 얕다. 넓은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시인
 이성복, 윤동주

*픽션 속 인물 중 당신의 영웅을 뽑는다면
 토지의 주갑, 버팔로66의 남자 주인공 , 조르바, 아하!!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픽션 속 여성들 중에서는?
 생의 한가운데에서 니나

*좋아하는 음악가
루시드 폴, 피아쏘야, 조빔, 김광석, 유재하, DJ DOC, 쿱, 에디 하긴스 트리오, 빌리 할리데이

*좋아하는 미술가
 르네 마그리트, 피카소, 샤갈, 김홍도, 이중섭

*실제 세계 속 영웅은
 영국 사람인데 팔레스타인 협상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역사 인물 중 당신의 여신을 꼽는다면?
 이제는 역사가 된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나혜석

*좋아하는 이름
 이름 속에 민과 섭이 들어간 이름. 나는 아이디를 지을 때 머릿 속에서 떠오르는 말들을 조합하는데 그게 대개는 일본식 이름일 때가 많다. 내가 짓지는 않았지만 엘로이즈란 이름을 좋아한다. 이건 밀리언 달러 호텔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탐탐 역시 좋다.

*가장 싫어하는 것
 습관적인 불친절함. 잘난체(내가 많이 저지르고 다녀서)

*가장 혐오하는 역사적 인물
 연개소문, 대조영 등 사극 속 인물들. 요즘 아버지가 하나 티비로 계속 보시는 바람에 노이로제가 걸려서 배경 음악만 나와도 으윽. 이건 정말 농담이고.
 히틀러와 부시, 네로 황제, 전두환과 박정희

*가장 좋아하는 군사적 사건
 흠, 관심이 없어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혁신이 있다면
 호주제가 가족관계법으로 바뀐 것. 혁신이란 말을 한번도 써본 적이 없다는 것?

*하늘이 내려주었으면 싶은 선물
 창호지로 문풍지를 만든 방에 쨍하고 해가 비치고 라디오가 있고, 삼면은 책으로 쫙 둘러싸인 내 집. 문을 열어놓으면 먼데 바닷가에  떠돌던 냄새들이 바람에 실려 짭쪼름함을 전해주고, 솔향도 나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듯. 

*어떻게 죽고 싶은가?
 스코트 니어링처럼 내가 죽고 싶은 순간, 서서히 굶으면서. 과연 내가 그런 의지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당신의 정신적 상태
 무직자의 정신 상태. 자포자기 했다가 느닷없이 의욕이 불끈불끈 솟아대고, 그러려니 했다가 버럭버럭 화가 나고. 대체적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편. 말하는거봐선 상태가 심각하지만.

*참을 수 있는 결점
 약간의 무심함, 멋있어 보일려고 심각한 포즈를 취하는 것. 내가 웃겨자빠지는 표정과 에피소드를 많이 알고 있으니 커버가 된다.

*당신의 모토
 넓게 보고, 충분히 느끼고, 깊게 이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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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8-05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도 의외로 질문은 평범하게 만들었군요. 대답은 평범하지 않게 했을 것 같은데...
시니에님의 답변도 질문보다 열배는 멋집니다!

Arch 2008-08-05 22:28   좋아요 0 | URL
hnine님 말씀만 그렇게 하시지 말고, 답변 해주실거죠? ^^ 막 강요한다.
 

 승주나무님의 페이퍼, 박노자의 '숫자력'을 보다가 제목이 떠올랐어요.

 다들 궁금하시죠. 21%가 뭘까. 이거 웃긴 얘기 한답시고 혼자 먼저 웃어버리는 짓 같단 생각이.

 목요일에 교육감 선거가 있었는데 저희 전북은 투표율이 21%였답니다. 점점 투표율이 높아지고 있으니 곧 다른 지방에서 열리는 선거에도 높은 수치가 나올거라 생각해요. 비록 제가 투표한 사람이 안 되긴 했지만, 소중한 한표를 아낌없이 주고 와서 기분이 좋았답니다.

 더군다나 그런거 해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없다는,

울 아부지가

어디 같이 나가봅시다 하면 족히 4-5번은 조르고 윽박지르고, 퍼졌다가 다시 일어나 졸라야 그럼 한번 가볼까가 되시곤 하던 울 아부지가

-아빠 선거하러 가게.

라는 한마디에 바람같은 속도로 옷을 챙겨입으신건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은 사건이었죠.

물론 제가 선거 전에 옆에서 뽐뿌질을 좀 하긴 했습니다.

 교육의 미래가 어쩌고 하는건 너무 뜬구름 잡는 것 같아 옥찌들이 나중에 학교 다니는게 정말 행복했음 좋을텐데란 얘기랑 예산이 엄청 많다는데 이상한 사람 뽑아놓으면 명박이때처럼 두고두고 후회하고. 이게 다 국민 세금인데 블라블라 얘기를 했더랬죠.

 투표가 끝나자, 뭔가를 부지런히 기다리다 끝나서인지 약간은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빠랑 같이 옥찌들 손을 나란히 잡았습니다. 시원한 수박이라도 달콤하게 쓱쓱 베어물고 싶을 정도로 무더웠지만 맘만은 정말 가벼운 하루였죠.

 전북 뉴스에서는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니지만 다른 지역 교육감 선거에 비해꾸준히 투표율이 올라가는 것이 촛불집회로 시민의식이 향상된데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과 방향을 달리하는 지방의 고유 노선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한다는 논평이 나왔어요.

 다들 후보자 공약이나 면면을 잘 살피셔서 꼭 투표하세요. 평일이라고 아침 6시에서 밤 8시까지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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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7-2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도 아자아자예요! 제대로 된 교육감을 뽑아야 해요ㅠ.ㅠ

Arch 2008-07-26 23:15   좋아요 0 | URL
그럼요. 벌써들 말들이 많던데, 말 말고 실행으로. 아자아자! 마노아님은 따로 블라블라 필요없는걸요.
 


 이건 알라디너들도 많이 많이 올리시면 좋겠어요. 책이 꽂혀있는 어딘가, 사진이랑 같이-이건 좀 나중에-. 릴레이로 말이죠. 아마 울 웬디양님 슬쩍 먼댓글 달거라고 조심스레 점쳐보는데^^ 부지런한 순오기님도 잊진 않았어요.

윤광준의 생활명품을 보다보니 내겐 어떤 명품이 있나 두리번두리번거리다 찾아냈다. 내겐 몰스킨 버금가는 육심원의 바램이 있다. 하드커버이고, 다이어리용이라기 보다는 단순 노트. 동물원 옆 미술관에서 고르고 골라 산 것. 2년 넘게 사용했지만 심부분이 약간 흔들거리는거 말고는 튼튼한데다 종이도 여전히 붙어있다. 풀로 붙이거나 실로 꿰맨 종이들 중에는 뜬금없이 뜯어지거나 한번 뜯어지기 시작해 걷잡을 수 없는 놈들이 있는데 다행히 얘는 잘 붙어 있다. 거의 다 써가지만 아직 겉표지 그림만 다른게 하나 더 있다. 하나 은행에서 사은품으로 나눠줄 때 기를 쓰고 받아낸 것. 이럴때보면 참으로 집요해.



이 소녀, 뭔가 느끼는 표정이라고 나는 생각했지만 어쨌든 바램이다.



이곳엔 책에서 읽은 내용을 적거나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 이 유머를 나중에 써먹어야겠다는걸 주로 적는데 가끔은 저거 꼭 먹어봐야지거나 저 포즈 좋구려 싶은 것도 뜯어다 붙여놓는다.


옥찌는...
 옥찌가 그려준 그림을 붙여놓기도 하고, 곰돌이는 정성스레 오려서 살짝 내 손에 쥐어줘서 나도 살짝 붙여줬다.


영화에 나온 대사도 단골 메뉴. 어린 지희는 저랬어요.


 학창시절에 친구들이 다이어리 꾸미고 할때는 콧방귀도 안 뀌었는데 늙어서 주책은 아니고, 이렇게 소소한 즐거움이 될줄이야. 글씨가 작은데다 빽빽하게 쓰는 버릇이 있어 좀 팍팍한 느낌이 들어 그림을 그려넣다보니 지희보다 못한 그림 솜씨가 날이 갈수록 날개를 다는 듯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거 아닌거 나도 다 안다. 그래서 차마 발로 그린 그림은 못올리겠다.

 그리고, 오늘 옥찌가 앞으로 쭈욱 생활명품이 될 듯한걸 짊어지고 오셨다.


이 시계

 분명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반경 50m안에 다 들릴게 분명하지만 옥찌가 작은 손으로 조물조물 했을텐데 어떻게 장식으로만 놔둘 수가 있겠는가. 잘때만 건전지를 살짝 빼놓을 생각.

 생활명품은 결국 쓰면서 기쁨을 느끼게 하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육심원의 하드커버 노트를 볼때마다 괜히 므흣한 상상도 되고, 견고해서 그동안 노트에 쌓였던 불신감도 달아나 더없이 사랑스러워지는 것처럼. 옥찌의 작품이 심플하고 멋스러운 명품 시계보다 낫진 않다. 그런데 난 이 시계가 자꾸 좋아진다. 저렇게 붙어있는게 떨어지는건 시간문제겠고 굳이 시계를 안 보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란 시계 존재론적 고민까지-엄살은- 할 정도로 소리가 크겠지.

 그치만 좋은걸 어떡해. 자꾸 조물조물 옥찌 손이 눈에 선한걸.

그리고 하나 더!


바로 요놈

 여유돈이 있을때마다 자전거를 사야지 사야지 했었는데 동생이 먼저 질러버렸다. 내 인생에서 자전거는 두개였는데 두개 다 도난을 당하는 바람에 살 때 제일 염두해둔 부분이 디자인이나 무게보다 남들이 눈독 안 들일만한거였는데. 이 놈은 좀 무겁고, 다른 기능 전혀 없이 그저 산뜻하고 이쁜게 다긴 하지만 자전거 도난의 표적인 청소년용이 아닌데다 눈에 쉽게 튀니 훔쳐갈 일은 없지 않을까라고 점쳐보는데. 아마 입방정 때문에 곧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하고.

 자전거를 탄다.

내리막길에서 바람을 맞으며

다리에 들어간 힘을 온몸으로 전달하며

자전거를 굴린다.

바람은 자전거의 은밀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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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공주 2008-07-26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아 멋져요!

Arch 2008-07-26 19:39   좋아요 0 | URL
와아아, 도넛공주님도 멋져요.

웽스북스 2008-07-27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자전거 나도 사고싶어요 그런데 안탈게 너무 분명!
생활명품은 따라하고싶긴 한데, 제가 물욕이 없는 편이라 (어머?) 물건에 잘 집착을 안해요- 뭐 굳이 있다면 얼마 전 샀던 명품노트? ㅎㅎㅎ

Arch 2008-07-27 23:32   좋아요 0 | URL
혹시 그 명품 아저씨께 산거 아니에요? ^^ 나름대로 추측하고 앉았음
 

 군산에는 월명산 중간쯤에 있는 청소년 수련원과 시내 외곽의 작은 도서관이 있다.

 월명산으로 오면 월명 작은 도서관과 수련원을 지나치게 된다. 그날 그날의 입맛에 따라 한군데를 정하거나 두군데를 거쳐서 집에 오기 마련인데 오늘, 작은 도서관에 신착 도서가 있어서 입맛을 다시며 책을 살펴봤다. 내가 희망한 도서가 몇권 있어서 눈대중으로 점을 콕콕. 꼭 애인을 처음 사귀기 시작할 때처럼 괜히 들떠서 어쩔줄 모르겠다.

<하얀 가면의 제국>2003년에 나온건데 이제서야 눈에 띄었다. 눈에 늦게 띈게 아니라 내가 역시 뒷북임을 밝혀야겠지. 박노자의 책을 보면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나 여타의 책으로 타자의 시선으로 보는 대한민국의 모습과 다른 나라의 삶의 방식을 떠올려보게 된다. 이 책은 부제에도 나와있 듯이 서구 중심주의를 뛰어넘으려는 시도, 서양 위주 담론의 문제점에 대한 얘기를 할 것 같다.

67p에 섹스의 낙원, 연애의 낙원! 챕터에 당연히 눈길이 가서 읽어내려갔다.

72p  ...침실을 같이 쓰는 상대를 끝까지 타인으로 봐야 하는 스칸디나비아 성생활의 현실에서는, 부부를 '일심동체'로 보는 비서구에 존재하는 그 무언가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물론 나는 사창가에서 '총각 딱지'를 떼고 부인을 가사 노동자쯤으로 보는 한국 풍토를 이상으로 보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관계. 결혼의 상대자를 남이 아닌, 자신이 평생 돌보아야 할 존재로 생각하는 책임감에도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딷스한 무언가가 들어 있지 않을까? 사회 발전의 화려한 이면에는 따뜻함을 잃어버린 고독한 삶이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내용은 쉽게 진행되지만, 생각할거리가 많아질 것 같다.

 그나저나 이 분, 매번 느끼지만 참 잘 생겼다. ㅡ,.ㅜ

<몸으로 하는 공부> <주제> 누구의 책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A가 0.1초도 안돼 말한 강유원이란 사람. 철학을 공부했고, 직장을 다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 번역이며 글쓰기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인물이란 부연 설명이 있었다. A의 말에 혹해 신청한 도서. 목차와 내용을 보니 그렇게 꼭 '그'여야할까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열정적인 분위기가 감지되긴 했지만 기껏 몇장으론 A의 몰입에 이르지 못하겠나보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철학서가 아니라 그러겠지만 좀 더 읽어봐야겠다. 서문에 씌인 글귀가 인상적이어서 옮겨본다.

미셸 투르니에, [흡혈귀의 비상] 중에서

'잡문'이라는 단어는 논쟁들, 지엽말단의 문학, 지나친 자유, 언어의 가치 하락에서 유래하는 폭력들로 이루어진 무질서한 총체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시기에 하나의 인격이 자신을 드러내고 활짝 피어나는 것은 오직 비정상을 통해서, 다시 말해서 그 사회와의 대립 속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잡문의 시기에는 천재성과 범죄성 사이에 불가피한 친화력이 있다.

 <윤광준의 생활명품>우선은 제목과 을유문화사라는 것, 저자는 그 다음에 보였다. '잘 찍은 사진 한장'을 재미있게 봤는데도 저자보다는 사진을 어떻게 하면 잘 찍는 것 정도가 보였다면 이 책은 아마 '윤광준'이란 사람의 취향과 대면할듯.

 처음 나온 물건부터 관심집중이다. 몰스킨. 문구류에 환장하는 취미가 아니더라도 그 수첩이라면 옛 사람들의 아우라까지 고스란히 전해질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로 꿰맨 종이, 묵직한 느낌-무거운게 싫은데도 이 느낌은 좋다- 적당히 두꺼운 종이에 슥슥 연필이나 볼펜이 굴러가는 소리. 비싸서 명품이 아니라 오래두고 쓰며 물건 자체에서 빛을 발하기 때문에 명품이란 말이 허투로 나온 소리가 아니겠구나 싶었다. 물론 그 다음, 다음 물건들에 아. 이걸 어쩌나 싶은 참으로 안달나게 하는 힘들이 다 있는건 아니었지만.

 <섹슈얼리티와 공간>섹슈얼리티 강의 두번째에서 정희진 선생님이 쓰신 꼭지에 여성과 공간에 관련된 얘기가 나온다. 여성의 몸이나 여성이 점하는 자리가 공간과 연결되고, 이게 정적이고 수동적인 습성을 못박는 것 뿐만 아니라 공간의 근거지를 잃어버렸을 때는 여성 존립조차 어려워진다는 말씀.

 예전에 어떤 분이 자신은 죽었다 깨나도 페미니즘을 이해할 수 없는게 '여성이 정치를 하면 세상이 지금같지 않을 것이다'란 말이 너무 과하단 식으로 트집잡는걸 들은적이 있다. 누구 말이 옳은건지 몰라 이곳저곳을 쑤시다가 이런 소리를 들었다.

 만약에 여자 건축가가 많았다면 말야. 특히나 휴게실 같은데서 여자 줄만 오뉴월 개혓바닥처럼 늘어지지는 않았을거야. 

 두개의 측면에서 고른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심리학 책을 읽고 싶었는데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일러스트와 다양한 사례가 나와서 읽기엔 부담이 없을 것 같다. 재미있으면 좋겠는데.

 

 

 <한달 후, 일년 후>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단지 그 이유였다. 그런데 같이 읽는 인간 실격과 겹쳐지면서 묘하게 인간성을 상실한 인물들의 집합소 같다는 느낌이. 다 살아가는 기술이고, 누군들 안 그러겠어 싶지만 두곳의 인물들이 겹치고 서로 짐짓 모른척 눈길을 돌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연 어떻게 끝을 맺을까. 영화 속 조제는 소설 속 조제의 어떤점이 좋았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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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7-27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버색스책이 원하시는 심리학책의 범주와 맞아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저건 그야말로 독특한 케이스들 중심이어서) 저도 나름 신선하게 읽긴 했었어요 (저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말구, 화성의 인류학자 읽었었다는 ㅎ 슥삭슥삭 찾아보면 리뷰도 있을텐데 ㅋㅋ)

Arch 2008-07-27 23:33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특이한 짓을 종종 하는지라 혹시나 사례를 찾을까하고. 여러모로 똑소리나는 웬디양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