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하나 낼게요.
전국에 934개가 있습니다. 혹시 뭔줄 아시겠어요?

 바로 시,군을 가리지 않고 난립해있는 축제의 수입니다. 10월 17일, 참여자치시민연대 주최로 군산축제발전토론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난 그렇게 많은 축제가 있다는걸 처음으로 알았다. 물론 이런 축제가 각자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시민들의 즐거움을 준다면야 문제될건 없다. 하지만 앞서서도 말했듯이 거의 난립 수준에 지자체의 장이 바뀔 때마다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탓에 축제 본래의 기능은커녕 예산 낭비와 시민소외라는 문제를 낳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세분의 교수님이 발제를 했다. 군산 축제인 진포 문화제, 자동차 부품 엑스포, 오성문화제, 세계철새관광축제, 군산벚꽃축제, 쭈꾸미축제, 새만금해맞이축제의 문제점과 성과에 대한 내용과 축제의 의미와 문광부의 정책에 대한 내용이었다. 다른 시.도의 축제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훌륭한 선례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변별성이 없는데다 단순하게 이벤트로 그치기 때문에 관광효과도 시민들이 어울려서 즐길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예산확보의 어려움과 관주도형 축제 만들기, 지역인사나 시장 군수의 생색내기로 인한 철학과 스토리의 부재로 집약된다. 다른 시.도의 평창효석문화제나 진주위등축제, 춘천마임축제를 소개하며 그 축제들이 시민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방법과 다른 사람들이 다시금 찾을 수 있게 하는 동력의 내용을 소개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개론쪽에 가까운 발제이다보니 지루한감이 있었고, 군산축제발전토론회인지 한국의 축제 난립의 문제와 대안제시인지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물론 개론은 필요하고, 축제란 사안을 큰 틀에서 볼 수 있게 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어떻게 군산의 축제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란 질문에는 좀 부족한 면이 있었다.

 발제가 끝난 후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진 뒤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다른 분들 발제도 인상 깊었지만 정말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해야할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분으로 청소년문화의집 관장인 정건희씨를 꼽고 싶다. 정건희씨는 축제의 중요한 의제를 가치와 참여, 평가라고 설정한 후 지역, 관광의 문제로 축제를 한정시켜서 지역민은 객체로 보고선 외부인사의 수로만 축제의 성패를 가르는 현 축제평가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했다. 민간축제는 언급을 안 하는데다 시민참여가 아닌 단순히 먹고 마시기만 하는 동원이 되어선 안 된다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만한 조직 구조가 매우 취약한건 사실이지만 연예인 불러놓고 몇만명 동원하는게 축제는 아니다란 너무 뻔한데도 사람들이 간과했던 부분을 적확하게 짚어냈다. 군산시의원인 강성옥씨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춘천의 마임축제는 축제의 내용이 난장과 먹거리에 가려지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축제의 내용에 참여와 학습, 컨텐츠가 확보되야할 것을 당부했다.

 전주삼천문화의집 관장인 이준호씨의 경우 전주 사례를 말하며 6개동에서 주민참여로 축제가 진행됐고, 군산시에선 인력풀을 관리함으로써 충분히 시민의 힘으로 축제를 치러낼 수 있는 가능성을 얘기했다. 토론자의 발언이 끝난 후 호원대 관광학부 교수인 심인보씨는 세계철새축제가 교육적 목적이란 이유로 전망탑을 110억에 지어놓고선 전혀 효과를 못보는 문제를 제기하며 군산의 자연적 환경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홍보해야할 필요성에 대해 얘기했다. 전군도로의 벚꽃축제의 경우에도 신작로 1호라는 특수성이 사라진 후에 지속되는건 문제가 있고, 지금으로선 교통량으로 봐서도 의미가 없다는 말로 지금과는 다르게 군산축제에 접근할 것을 당부했다.

 그 밖에도 각자의 입장에 충실한 고민과 군산이란 의제를 바탕으로한 얘기들이 오갔다. 성실한 기록자는 못되는 편이라 이쯤에서 그날의 분위기 스케치를 마친다. 사실 나는 축제토론회에 참여하기 전에는 축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다만 몇 번 축제에 참여하면서 불편한 느낌이 들곤했다. 그건 축제로서 즐겁다기 보다는 생색내기 혹은 전시용 축제란 느낌 때문이었다. 진정으로 축제다운, 모두가 즐겁고 축제 기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할 수 있는 축제는 정말 요원한걸까?

 고은과 채만식의 생가가 있는 군산, 고군산 군도가 있고, 내항의 야경이 아름다운 군산, 월명산의 산책로와 늪지, 은파의 고요한 호수와 연꽃, 히로쓰 가옥 등 찾아보면 군산의 매력은 많다. 그게 꼭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유입시켜서 경제부양을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군산 시민들이 축제를 기다리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축제기간에는 2-3일 직장인은 휴무를 갖고 학생은 등교를 안 하는 방법은 어떨까. 굳이 군산에 대해서 알음알음 한 전문가가 아니라 군산에서 터를 닦고 살며 군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시민들이 주축이 된 축제발전위원회를 운영해보면 어떨까. 매번 무슨 행사에서 느낀 것이지만 꼭 외부의 시선으로 지역문제를 바라보려는 시각이 있다. 물론 필요한 일이고, 사안에 따라선 시사하는바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틀 안에서 전문가의 도움이 되는 것이지 시작에서부터 외부 시선을 상정하는건 문제적이란 생각이다. 왜 무슨 기획특집때처럼 전혀 한국에 관심없는 다른 나라 사람에게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는 느낌이다. 영화동쪽의 히로쓰 가옥지구를 바탕으로 일제시대를 재현해보거나, 지금은 폐쇄된 군산역 철도길을 축제구간으로 삼거나 축제기간에는 군산통화를 상품권처럼 구입해서 거래해보는건 어떨까. 지역화폐는 화천산천어 축제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군산축제토론회에 대한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그 친구가 아주 멋진 제안을 했다. 자신이 촛불집회를 할 때 차를 막아놓고 대로를 걸어보니까 단순하게 어디에서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해 존재하는 길이 아닌,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걸어다녔겠구나, 이 정도의 거리면 어떤식으로 물자가 교환이 됐겠구나란 지도가 그려졌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촛불집회가 아니라 어느 날을 정해서 도로 위에 모두가 몰려나와 각자가 말하고 싶은걸 발언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피켓을 들어도 되고, 구호를 외쳐도 되고, 희안한 복장이나 공연을 해도 되는 날. 누군가를 초빙하거나 누군가의 조언이 아니라 관과 축제관련위원회은 아웃라인만 잡아주고 한번 신나게 놀아보는 축제 말이다.

 그런 축제라면
 리오카니발을 위해 일년의 반을 준비하는 브라질 사람들처럼, 마쯔이의 인력거를 끌어보는게 영광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나도 나의 일상을 쨍하게 비춰줄 축제만을 기다리게될텐데. 그렇다면 단순히 경제적인 효과나 관광효과 등등의 효과로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축제가 아니라 행복 에너지가 쑥쑥 올라갈 수 있는 축제로 자리매김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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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출출할 시간.

오랜만이에요.

오늘의 메뉴는 도토리묵에 한산 소곡주랍니다. 소곡주는 한산에 계시는 할아버지가 직접 담갔다고 합니다. 제가 전에 올린 사진에 보았던 예인촌에서 먹었더랬죠. 담금술은 앉은뱅이술이라고 해서 먹을때는 달달하고 좋지만 일어설 수가 없다고 하죠? 주사인생에서 그토록 예민하게 땅바닥을 마주본 것도 바로 아빠 친구분이 담근 과일주를 야금야금 먹다가 생긴 일이었으니까요.

 약간 텁텁하면서 시큼한 소곡주에 직접 담근게 분명한 뭉툭한 도토리묵. 향긋한 들깨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나요?

저도 뭐라고 집어먹고 자야겠어요. 아니면 도토리묵 뭉개무덤에서 계속 간장 찾는 꿈을 꿀 듯.

모두들, 잘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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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0-13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딱 배고파져서 아 그냥 자나 뭐라도 먹나 고민중인데 말입니다. ㅠ.ㅠ

Arch 2008-10-14 00:09   좋아요 0 | URL
네, 그런분들을 위한 페이퍼라고 할 수 있죠.^^ 아, 언제 도토리묵 같이 먹어요. 저집, 알바생이 툴툴대긴 하지만 정말 맛있거든요. 게다가 대추차는 아, 냠냠.

웽스북스 2008-10-14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 저는 유혹당하지 않아요
(벌써 튀김만두를 먹었거든요 ㅜㅜ)

Arch 2008-10-14 00:46   좋아요 0 | URL
반전 있을줄 알고 있었어요. 반전의 웬디양님^^

웽스북스 2008-10-14 09:28   좋아요 0 | URL
No war!

Arch 2008-10-20 22:34   좋아요 0 | URL
난 no war가지고 한참 생각했네. 다시 보니까 아... 형광등 할아버지야.

hnine 2008-10-14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구장이 악동같은 시니에님~ ^^ (전 다행히 아침에 봤네요)

무스탕 2008-10-14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아침에 보길 다행~ ^^

Arch 2008-10-14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아침 안 드신분들을 위해 다시 하나 올려야하나? 곰곰... 다음엔 아침에 보실 분들을 위해서 파일을 준비해갖고 다녀야겠어요.^^
 
류승완 감독과의 만남 행사 후기

 먼저 조심스럽게 밝혀둘 것은 난 오래 전부터 류승완 감독을 좋아했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건 류승완 감독과의 만남에 대한 얘기에서 사견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혀두는건 '단지 그를 만나기 때문에'란 이유로 그 순간의 모든 의미가 꿈처럼 황홀해질만한건 아니란 소릴 하고 싶어서이다. 그가 우스개소리로 자기 영화를 본 사람보다 무릎팍 도사를 본 사람이 더 많단 사실이 아이러니라고 말했지만 나 역시 그의 영화보다 인간 '류승완'을 더 먼저 봤다. 그래서 다른 작품보다 '다찌마와 리'를 보면서 이 사람, 정말 영화를 만들면서 얼마나 행복할까, 이 영화를 얼마나 만들고 싶었을까란 생각에 장면이나 대사와는 상관없이 킥킥대며 웃었다. 이번 만남은 킥킥댐의 연장선에서, 직접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희망에서 신청한 것이었다. 물론 설마 당첨되겠어란, 경품 추천에서도 144번 들고 있으면 143번과 145번이 죄다 불려나가는 저주받은 운이라 가벼운 맘에 신청한 면도 있었다.

 상상마당 6층으로 올라가려고 계단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에는 사람이 밀려있었고, 아직 시작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천천히 걸어볼 생각이었다. 계단에 전시된 작품은 오후 햇살을 받아 쨍하고 빛났다. 가픈 숨을 몰아쉬며 6층에 도착. 스텝으로 보이는 분이 관계자냐고 해서 아니라고 했더니 데스크 가서 확인을 받으라고 했다. 안내가 아니라 지시였다. 뭐, 계단 출입이 정신사나울 수도 있지. 알라딘에서 왔다고 말하고선 자리에 앉았다. 파랑색의 등받이는 커녕 엉덩이 간신히 붙일 수 있는 의자. 징조는 스물스물 다가왔다.

 모임의 얼개는 명로진씨의 EBS라디오 프로그램의 공개방송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고, 마음산책이 후원하는듯 했다. 사전에 고지받은게 없었으므로 전에 최규석씨의 북콘서트와 비슷할거란 생각이었다. 사전에 질문자를 정하자며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서 하는 소리가 녹차 티백이랑 많이 있단 소리였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질문자들이 저자의 사인본을 탐을 내는걸 감안할때 꽤 저렴한 제안이란 생각이 들었다.

 류승완 감독이 도착하고, 공개방송이 시작되었다. 류승완 감독은 시종일관 진솔한 대답을 해주었다. 그게 이미지 메이킹이라면 짝패에선 접할 수 없었던 느닷없이 발전한 연기로 밖에 볼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액션키드였지만, 약간 어리둥절해보였다.

질문 몇가지.

Q 어려서부터 감독이 되려면 어떻게 하나요?

A 어렸을때부터 영화를 찍으면 되죠.(우문현답이란 이런거지)

Q 레이몬드 챈들러란 사람이 그런 말을 했죠. 당신이 그런 얘길 해줄거란걸 나도 알고, 당신도 안다.

A 다찌마와리가 아니면 못써먹을 대사죠.(무슨 맥락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Q 책을 내니 영화와는 어떻게 다른가

A 소설 속 세계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Q 직업병이 있다면

A 보통 겪는 일이 아니라면 저장하고 확장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명로진은 자신이 한 영화감독과 야간산행을 한 이야기를 하며 그걸 자기 영화에서 써먹었단 부연설명을 하는데 난 갑자기 바람난 가족의 장면이 생각났다.)

Q 역시 류승범에 관한 질문

A 직업으로서 갖을 수 있는 선을 긋는다. 공식적인 캐스팅은 회사대 회사이므로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좀 더 싸게 한다거나 그런건 없다. 일하는 방식은 크게 차이가 없다. 현장에서의 위계질서를 존중하는 편이다.

(영화를 하는 목적에 대한 질문)

A 없어도 되는 일을 하는거라면 뭔가 더 절박하게 있어야할 이유를 찾게 된다.

Q 1년에 신간이 6만종 이상 쏟아져 나온다. 아무래도 책을 내면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맞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

A 우선은 살림에도 보탬이 되고, 제가 우리 애들 얘기도 쓰려다가 그건 좀 그래서(웃음)

(질문은 거의 명로진씨가 했는데 추가열씨도 축하공연 하면서 짝패를 보면서 충남 보령의 사투리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고 좋아했다. 류승범 감독도 방청객의 질문에 답하면서 충청도만의 '좋은 말 같기도 하고, 아닌 말 같기도 한' 사투기가 좋다는 소회를 밝혔다.)

 류감독은 홍콩 느와르와 갱스터 영화를 봐오며 개인이 몸부림쳐도 이겨낼 수 없는 비극성에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설렁설렁 일하면서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 레마빈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현존하는 배우로는 숀펜.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난 류승완이라면 언젠가는 숀펜과 같이 영화할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도 탐색기간이 꽤 갈 듯하고 맷집을 기르는 자신만의 시간이란 얘기도 했다. 류승완 감독의 작품을 보다보면 통쾌한 신남의 여운이 오래가지 않고 류감독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의 최대치를 끌어내지 못했단 생각이 들곤한다. 아마도 그런 느낌의 한부분을 감독 역시 놓치지 않았을거란 생각이다.

 방청객과의 대화에선 어느 분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본 방청객이 외상후 스트레스처럼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다가 디즈니 영화를 보며 치유했단 소리에 모두들 박장대소했다. 류승완 감독을 볼 생각에 일주일을 설렜다는 한 남자분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 이 영화의 이 상황은 나 같으면 이렇게 바꿔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면에 자신이 조감독으로 일했던 삼인조의 몇몇 장면이 그렇다며 크게 모험을 도발하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로드리게즈처럼 아이들도 볼 수 있는 스파이키드같은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사실 다찌마와 리를 보는 아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연령층을 계산할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스폰지밥 시리즈를 좋아하고, 그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책과 관련된 질문에선 '책을 잘 안 보시는 분은 영화라도 보시고, 책을 잘 보시는 분은 영화도 가끔 보세요.'라고 해서 깔끔한 끝맺음을 보여줬다.

 사실 여기까지는 메모를 해서 간신히 추린 것이고, 류승완 감독과의 만남에서 처음에 언급한 징조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한다.

 꾸준히 신경을 거슬리는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상상마당 상주 스텝들의 소음과 북캐스터인지 마스터인지 모를 분의 인상씀, 방청객을 개의치 않는 그토록 소중한 방송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 과잉. 라디오 방송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 소음이 나면 귀에 거슬리는건 이해한다. 그렇다면 공개방송 전에 상상마당측과 사전 조율을 하던가 양해를 구했어야 한다. 얘기 도중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류승완 감독 위쪽의 에어컨을 조절한다고 무려 세번이나 왔다갔다하는데 대체 에어컨 바람을 세게 나오려고 하는건지 끄려는건지 저게 그토록 중요한건지 생각에 정작 류감독의 말은 듣지도 못했다. 그걸 보는 앞서 말한 분은 인상을 쓰며 라디오 스텝을 쳐다보고, 간간히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그럴때마다 스텝들 보라며 눈짓 손짓을 하는 진행자. 그럴거면 차라리 스튜디오 녹음을 하지 왜 굳이 통제도 안 되는 상황에서 방청객에게 불편함을 주며 진행을 할까란 의문이 들었다.

 '니네 류승완 감독 보는데 이 정도도 감수 못해?'란 뻐김이 감지되는건 내가 유독 몰입이 더딘 인간이어서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분명 팬심을 자극하면서도 팬심은 흔들리지 않을거란 허무맹랑한 계산이 들어있을거란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면 '초대석'인데 어디서 공수해온지 모를 의자에 '거 신선하지 않은 질문 할거면 하지 말라'는 소리나 듣고 있는게 제대로된 방청객 대우인지 묻고 싶다.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거라면 농담의 공감대라도 마련해놓던가. 농담은 뜬금 없었고, 나는 좀 주눅드는 기분으로 다리는 바꿀 때마저 이건 어떤 소리를 내서 진행자들을 불편하게 할까란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세심한 배려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스튜디오 진행이 아니었던만큼 상식적인 선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녹음해야한다는 정도.

 류승완 감독과의 만남은 내용이 형식에 의해서 얼마나 뭉개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흔한 사례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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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9-30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팬심 훼손하는 민이 망가진 사진 기대하고 온 1인. 아, 나 팬심 훼손당했어요 ㅎㅎ

형식이 전부라고 믿는 것도 문제지만, 형식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특히 기본적인 예의에 해당하는 형식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싫어요.

Arch 2008-09-30 09:06   좋아요 0 | URL
민이가 요새 어찌나 말도 잘 듣고, 어여쁜지 악의적인 팬심용 사진은 못올리겠지 뭐예요. 으흐흐...가끔 이불에 지도를 그려 울화통 터지게 하지만. 웬디양님 말 들어보니까 그렇게까지 아주, 아니었단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아쉬운게 있었죠.
 


 어쩌자고 밤에, 그것도 비가 질척거리게 오는 밤에 산길을 걸을 생각을 했을까. 모든 것은 터무니없는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낮에도 걷던 길을, 세상에 내가 여자라고 못걸을 수 있나. 아주 금방이라고. 빠른 걸음이면 20분 안에 갈 수 있어. 비가 오지만 사람 하나 없겠어? 사람이 없으면 또 어때. 이런 날 누군가를 기다려 해꼬지라도 할라치면 이 비에 벌써 감기에 걸려서 집에 들어갔을거야.

 들어가긴 누가 들어가고, 사람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새소리 풀벌레들도 다 숨어버렸는지 빗소리에 묻힌 발자국 소리만 뭉개져 들려왔다. 한번 실없이 웃으며 허허, 밤공기 좋군. 하고 싶은데 걸음만 재촉하게 됐다. 누구라도 만나면 나도 몰래 으악 소리를 지를만치 밤은 깊고, 산도 깊었다.

그때,

 저벅저벅 누군가의 소리가 났다. 슬쩍 뒤를 돌아다보니 등치가 큰 남자 한명이 보였다. 그치가 내가 뒤돌아본걸 못봤길, 내가 자기를 의식하고 있다는걸 눈치채고선 힘을 쓰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길. 제발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는 행인1이길. 남자의 걸음은 빨랐다. 그런데도 좀체로 나와의 보폭이 좁혀지지 않았다. 내가 표시 안 나게 걸음을 늦추는데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게 느껴졌다. 남자는 왜 한밤중에 산속을 걷는 걸까. 밤중에 돌아다니는 여자를 보면 이상하게 흥분하거나 그러는 사람은 아니겠지? 살인의 추억이 자꾸 생각났다. 빗소리와 음악 소리 그리고 살인. 안 돼. 다른걸 생각해! 지금 어디쯤 따라온걸까. 수작을 걸면 어떡하지. 아냐, 그냥 행인1일거야. 그냥 밤중에 산속을 그것도 비오는 산속을 걷고 싶어하는 사람일거라고. 그런 사람이란게 더 이상해. 그런데 왜 하필 지금 내 뒤에서 걸어오는거냐고.

 그러다 어느 지점에선가 훅

 그가 나를 스쳐지나갔다.

 그러니까 아무런 사심도 별다른 의식도 없었던거다. 그 역시 나에 대해 행인2정도의 감정을 가진, 어쩌면 아무런 의식도 안 한 사람이었던거다. 게다가 뒤돌아봤을 때 봤던 커다란 체구가 아니었다. 나만한 체구에 운동복 차림. 운동하다 비를 만난거군. 아냐, 체구가 작은 사람의 독특한 성적취향을 아는데, 아냐. 상황 종료. 스쳤을 뿐이라니까! 과대망상과 상상력을 탓했다. 그의 빠른 걸음을 뒤쫓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같이 걸었다. 행여 대사가 있는 행인3이 등장했을 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허벅지에 쥐날 정도로 잰걸음으로 그를 좇다보니 내가 사는 동네로 가는 산의 출구가 보였다. 숨을 몰아쉬곤 하마터면 빠르게 걷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고맙단 말을 할뻔했다.

 비르지니 데팡트는 '킹콩걸'에서 여자들이 밤에 돌아다니려면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야한다고 했다. 애초의 의도는 감수였는데 돌이켜보니 감수의 대상도 내가 어떤걸 감수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는 상태였다. 이래서 '우물안 개구리'라니까.

한때 난 우스개 소리로 만약에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입을 아, 벌리고선 아무런 행위도 못하게 한다거나 상대방의 성기를 입으로 물어뜯어 흡사 쇼생크 탈출의 앤디가 구사했던 협박도 해볼 생각이었지만, 과연 그런 상황에서 내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폭력적인 상황에 맞서 싸우거나 내가 가진 한계치까지 끌어올려 저항하기보다는 비굴하고, 형편없이 헛된 거짓말만 늘어놓았던 난데 그토록 충실하게 성기적인 폭력 앞에서 어떤식으로 나올지 어떻게 예상할 수 있단 말인가.

 한밤중 비오는 산속의 발자국은 호신술이라도 익혀야하는건 아닐까란 꽤 저급한 해결책만 남겨놨다. 어쩌면 그건 어디든 갈 자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가져야할 그렇게 저열한 것만은 아닌 일이란 생각도 따라붙었다. 안 가면 그만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싶은 순간에 갈 수 있는 자유는 어떻게 갖을 수 있을까란 지점에서 생각은 다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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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네스잔은 신기도 하여 자꾸 맥주 생각이 나게 한다. 금요일 밤, 전날과 다음날과도 다르게 시원한 맥주 한잔 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들썩. 지인들을 소환해 집에서 조촐한 모임이라도 갖으려고 했더니만 불발이 되고, 복분자와 얼음을 믹서에 갈아서 먹는데 자꾸 맥주 생각이 간절해진다. 딱 한잔만 여한없이 딱 한잔만 먹으면 금세 행복해서 발을 맨땅에 통통 굴려대며 징징 나 이렇게 금요일에 기분이 좋아도 되냐고 할판인데, 그래서 술술 노래라도 흘러나와 그만 먹은 술보다 더 취해 쳉쳉 먼 하늘 보며 넋나간 웃음이라도 흘릴텐데......

기네스잔은 그립감이 좋다. 다섯 손가락으로 살며시 잡아도 금세 다정하게 안겨온다. 새끼 손가락을 살짝 엄지 방향으로 돌려도 너끈하다. 자, 이제 준비가 됐으니 날 부드럽게 마시기만 하면 된다는 투다. 복분자와 얼음 알갱이는 폴라포 포도맛이 난다. 그런대로 나쁘진 않다. 이 밤에 초췌한 몰골을 24시간 형광등이 쨍한 곳에 들이밀고 맥주 사먹을 맛이 나야 말이지. 기네스잔이라면 복분자 샤베트 10잔이라도 문제없다. 뭐든 자꾸 먹다보면 감각은 무뎌지고 이내 취하는건 똑같을테지.

 작년까지만해도 어느 순간 일정량의 알코올이 필요할 때가 오리라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인생이 적당한 것처럼 주량도 적당했고, 적당할 정도로 마신 술은 내게 적당한 만족감을 줬다. 적당함을 벗어나는건 지금이 적당하지 않다는 뜻일까? 실은 적당한 세계는 곧 붕괴되니 어서 기네스잔이라도 잡으란 마음의 소리를 무의식 중에 느낀걸까?

 혼자 마시면 술은 당췌 늘지를 않는다.  한손엔 복숭아를 다른 한 손으론 시를 쓴다는 시인이 키츠였던가, 그가 표현한 농밀한 감각의 순간을 따라갈 수야 없어 '첫 맥주 한 모금'은 들레르 씨에게 맡기겠다.
  

첫 맥주 한 모금
                             필립 들레르

 

 중요한 것은 딱 한 잔이다. 그 다음에 마시는 맥주는 마시는 시간만 점점 더 길어지고, 평범해 진다.

그 다음 잔들은 미지근하고, 들척지근하고 지리멸렬하게 흥청댈 뿐이다.

마지막 잔은 어쩌면 끝낸다는 환멸의 감정 덕택에 어떤 힘같은 것을 되찾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맨 처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첫 잔은! 목구멍이라고?

첫 잔은 목구멍을 넘어가기 전에 시작된다. 입술에서부터 벌써 이 거품 이는 황금빛 기쁨은 시작되는 것이다.

거품 때문에 맥주는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리고는 쓴 맛을 걸러낸 행복이 천천히 입천장에 닿는다.

첫 잔은 아주 길게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벌컥벌컥 금방 마셔 버린다.

첫 잔은 본능적인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맥주 첫 잔이 주는 기쁨은 하나의 문장처럼 모두 기록된다.

이상적인 미끼 역학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많지도, 지나치게 적지도 않은 적당한 맥주의 양이다.

맥주를 들이켜면, 숨소리가 나고, 혀가 달싹댄다.

그리고 침묵은 이 즉각적인 행복이라는 문장에 구두점을 찍는다.

무한을 향해서 열리는, 믿을 수 없는 기쁨의 느낌..

동시에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가장 좋은 기쁨은 벌써 맛보아 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술잔을 내려놓는다.

네모 난 압지로 만들어진 컵 받침 위에 올려 놓은뒤, 저만치 밀어놓기까지 한다.

우리는 맥주 색깔을 음미한다. 가짜 꿀, 차가운 태양, 우리는 모든 지혜와 기다림을 동원해서 지금 막 이루었다가

또 지금 막 사라져 버린 기적을 손에 넣고 싶어한다. 우리는 유리잔 바깥에 씌어 있는 맥주 이름을

만족스럽게 읽어본다. 컵과 내용물이 서로 질문을 던져대고, 텅빈 심연속에서 서로무언가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우리는 순금의 비밀을 간직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비밀을 주문으로 만들어 영원히 소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태양이 와서 빛의 방울을 흩뿌려 놓은 하얀색 작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실패한 연금술사는 황금의 외양만을 건져낼 수 있을 뿐이다. 이제 맥주를 마실수록 기쁨은 더욱더 줄어든다. 그것은 쓰라린 행복이다. 

우리는 첫 잔을 잊기위해서 마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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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9-20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커피도, 첫 한모금이 최고

무스탕 2008-09-20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소주도, 첫 잔이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