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하자면 난 영어를 싫어한다.
영어 공부하기를 싫어하고, 영어로 말하는 것, 영어 단어가 나오는 것, 말을 하면서 영어 단어를 섞는 것, 영어를 배워야한다는 강박, 영어 몰입교육, 영어 공용화란 되먹지도 못한 주장, 영어 학원, 영어 유치원, 죄다 싫어한다. 내가 영어를 배우는 날이 있다면 떠밀리듯이 마지막 보루라는 심정으로 억지 춘향을 하거나, 오늘 '성'이 말한대로 비굴한 인생을 체득하는 비결쯤으로 생각하고 배울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성'과 얘기를 하다 정말 내게 영어는 뭘까란 생각을 다시 해볼 수 있었다. '성'은 요새 영어학원 기초반에서 회화를 배우고 있다. 자기 입에서 여태껏 입에 익은 한글이 아닌, 영어가 튀어나오고, 그게 썩 괜찮은 기분이란 것도 반가운데 오늘 본 예문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문에는
네 취미가 뭐냐란 단순한 질문에 대답 예문으로
My hobby is studying language.라고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이 예문이 틀린거라면 전적으로 몇번씩 입에 익게 발음을 했음에도 워낙에 짧고 가망없는 아치의 영어실력 탓이 되겠다.- 자신으로선 언어를 취미로 배운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보란듯이 취미취미인 영어, 재미있는 영어, 내 입에서 다른 나라 말과 문화를 얘기할 수 있는 영어도 가능하단 생각이 들었단거다. 그러고보니 나의 영어반감 역시 공부해야한다는, 지리한 문법과 제대로 된 영어발음일까란 의문, 이 나이에 무슨 영어란 것의 범벅이었지, 새로운 문화에 능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언어, 좀 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로서의 언어인 영어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란 생각이 들었다. 유레카라고 외치기엔 경박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은 들었다.
그러면서 덧붙여지는 생각은 김어준이 어디에선가 했던 말처럼
영어 못해도 상관없다, 자기가 영어 할 필요 없을 정도로 멋진 사람이 돼서 통역을 붙이면 될 것 아니냐란 전혀 모르겠단 포즈의 말. 그 포즈와 비슷한 것으로 신해철이 고대 학생들한테 욕을 하며 젊으니 꿈을 갖아라, 자기계발서의 꿈을 품고 어쩌고 블라블라의 말들. 그런데 정말 꿈만으로 된다고 말하는 이들의 위치는 더 이상 꿈을 안 꿔도 되고, 꿈 접근치에 다달았으니 할 수 있는 말들 아닌가. 그들이 정말 평범한 삶을 견디는 일들에 알 수 있을까. 안다고 쳐도, 감히 욕까지 하며 누군가에게 말을 할 수 있을까? '성'과 얘기를 하다 꿈대로 산다는 사람들이 폄하하는 평범한 사람이 얼마나 되기 힘든지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았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의 비굴함과 고됨, 결혼이란 어마어마한 일로 직진할 수 있는 결단력, 혹은 미끄러지듯 들어서는 순간들. '성'의 경우는 직장과 집에 동시에 출근하는거라고 했지만, 난 여자라면 출근보다는 이중 노동의 부담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노동력을 팔아 돈을 만들어내고, 누군가를 부양하고, 부양이 보장 안 되는 노후를 기다리고. 헉헉. 그래, 이건 너무 비관적인 전망이지.
내가 흔히 안락한 가정 생활의 표본이라고 막연하게 상정하는 기준은 '홈 플러스'에서 주말에 같이 카트를 밀며 장을 보는 것이다. 누구는 백화점일 수 있고, 누구는 시장일 수 있고, 다른 누구는 드러누워 배를 긁으며 홈쇼핑으로 물건을 사는 것일 수도 있다. '홈플러스'에서는 강박적으로 happy송을 틀어주며 사람들을 환각상태로 몰아가고, 사람들은 자신들 풍요의 상징으로 누가 누가 카트를 많이 채우나를 경쟁한다. 봐, 이런식으로 걸러내고 홈플러스니 마트니하는 사람 북적이는 곳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내겐 상징적으로나마 행복을 가장한 공간에 대한 환상이 조금 있다. 행여 홈플러스에 들어선다면 이 많은 포장지를 어떻게 처리할거냐며, 시장이 훨씬 쌀거라며 투덜투덜, 이런 묶음 상품이니 자사 상품은 다른 영세업체를 쥐어짠거라는둥, 매장 직원들은 비정규직일거라는 둥, 그들의 처우에 관심 없는 업체의 상품을 이용하는건 문제라는 둥 심통난 아치처럼 불퉁댈게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환상을 가끔 퐁퐁 띄우는 것처럼 꿈 역시 마찬가지겠구나,
이걸, 이렇게 오래 산 내가 어렴풋이 느낀다.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늘 자신의 입장을 증명해야하고, 설명해야하며, 4차원으로 매도당하기 싫다면 배로 '일반 사람'처럼 굴어야한다. 꿈 나름의 층위상 하위권에 머문다면 왜 하위권인지, 상위권으로 가야지 않을까란, 상위권으로 가는게 꿈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지 등등, 그럴때마다 한번씩 홈플러스를 머릿 속에 그려보고. 다시 나름의 합리화와 별거없다란 것으로 위안을 삼고.
그래, 영어 얘기였는데 이런 황당무계한 범벅은 뭔지.
로쟈님 말이 맞다. 전에 신학기 대학생 추천도서를 소개하면서 말미에 이런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걸 기억한다.
물론, 이 책들을 읽기 전에 자신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겠구요. 윽!
자원이 없는 내게 날개일지, 겨드랑이 살일지 모를 아무튼 뭔가 다른걸 달아줄 것만 같은 꿈과 영어에 대한 이야기들은 좀 더 정리된 후 쓰는 날이 오긴할까? 그런데 정말 신기하지 않을까? 문법이나 단어가 아니라 나와 다른 나라의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건.
난 스무살처럼 조금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