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2번 출구 앞에 있었다. 많이 봐온 뒷모습. 그는 가만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심한채 있는 사람의 모습은 얼마나 애틋한지. 누군가를 기다렸던 나와 나를 기다렸던 다른 사람의 막연한 기대와 실망, 기쁨에 대해, 뒷모습은 또한 얼마나 많은걸 설명하는지, 뒤태만 봐도 알아버릴 것만 같았다.

다가가 손을 툭 건드리자 그가 나를 바라본다. 왜 하필이면 그였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손때문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얗고 부드러운 손. 그를 처음 봤을 때 그 손으로 내 몸을 만지는 상상을 했다. 그런 손이라면 심술궂은 장난을 치더라도 용서가 될 것 같았다. 오직 손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여서 괜찮은 경우가 더 많았지만.

손을 잡고 밤거리를 걸었다. 달이 밝았다. 손이 따뜻해서 잡은 손에 힘을 주자 그가 다시 나를 바라본다. 주절주절대며 달밤에 어울리지 않는 얘기들을 했을거다. 옆에서 그가 바스락거리며 웃고, 난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며 웃고. 한밤의 공원은 어린 친구들이 있어서 위험할거라길래, 으슥한 곳은 나 때문에 그에게 더 위험할지 모른단 얘기를 했던가.

무슨 말의 끝에 그가 조금 크게 웃자, 기분이 좋아졌다. 웃음이 헤프지 않고, 가끔씩 아껴뒀다가 나를 위해 웃어주는 사람. 멋있게 보이기가 컨셉이냐고 묻자, 본래 한 멋 한다고 농을 친다. 손을 다시 잡고 한 발짝씩. 달빛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호숫가로 달이 비추는 공원. 공원에서 달콤한 키스라도 하길 바란건 아니었다. 정말 순수한 의도였다고 아마 아주 오랜 뒤에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밤에 아무것도 안 하는건 정말, 직무유기였다. 조잘댄 탓에 까칠해진 입술을 보드라운 그의 입에 갖다 대었다. 젤리같이 말랑거리는 입술, 버석거리는 얼굴, 달빛 속에서 여전히 하얗게 빛나는 손. 차가운 손으로 하얀 손을 잡고 아주 오랫동안 마땅히 해야할 일을 열심히 했다.

하, 좋구나.

좋은건 이런 상상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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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4-19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니깐 좋죠-
여름이었어봐, 손 따뜻했으면 당장 놓고 달아나고 싶었을걸요 ㅋㅋㅋ

첫만남은 언제나 설레죠.
언제나 첫만남만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중이에요. 진짜 미운정고운정눈물콧물 쏙빼도록 오래만나면서 아주 가끔씩 갖는 소중한 느낌을 생각하면 또 모르겠고.. 에고

Arch 2009-04-19 23:47   좋아요 0 | URL
상상이래도.

첫만남만 그러겠어요. 첫키스, 첫포옹, 처음으로 손을 잡던 것까지 다 설레죠. 으응, 오래 만나면서 아주 가끔씩 그랬지, 그랬어란 것도 좋아요.
 

 여행에서 만난 사람과 산에 오른적이 있다. 이 분은 너무나도 가볍게 오르는 산을 나는 내 다리가 아닌 듯이 질질 끌며 오르는데 애시당초 정상은 꿈도 안 꾸고, 오로지 약수터까지만 가는데 목표를 두며 부지런히 라마즈 호흡법을 구사했다. 그때 내가 라마즈를 알리는 없었고, 계속 미친듯이 헥헥댄 것 정도가 되겠지. 그래서 몇걸음도 안 걷고 계속 쉬면서 지나가는 분들에게 계속 물어댔다. 왈왈.(하이 유머랍니다.)  

- 저기, 약수터, (헥) 정상말고 약수터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헥) 가야하나요. 

 등산객들은 하나같이 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냥 내려가라고, 약수터는 택도 없을거라고 못을 박았다. 너무 숨차하니까 그런가보다 싶어 온건한 숨소리로 다시 여쭤도 같은 대답만 들려줬다. 산을 자주 타는 사람들은 한 눈에 약수터 체력, 정상 체력이 나오는걸까? 아니면 어디냐고 묻는폼이 믿음이 안 간 걸까? 아니면 또 약올릴려고 그러시는걸까. 등산객들의 말뿐 아니라 산 근처에서 사시는 분의 말씀도 웃겼는데, 

 산의 초입 부분에 빈집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길래 꿈만 야무지게 나중에 산 속에 산다는 아치인지라 선뜻 여쭤보았다.

- 빈집인가요. 

 그랬더니 그분은 빈집인지 아닌지를 알려주지 않고, 혼자 웃으시면서 등산로가 아닌 길을 가리키며 저기로 가보라고 하셨다. 이건 무슨 놀림일까 생각하다, 아차, 우리가 빈집으로 숨어들어 뭔가를 하려는 등산객 남녀로 본거구나란 생각에 미치자 산에 살면 센스도 좋아지는구나 싶어 더더욱 산 깊숙히 들어가보고 싶어졌다.  

 아무튼, 다시 호명산으로 돌아와서 

 계단을 오른 후 가파른 산을 다시 올랐다. 무릎이 당기고 턱끝까지 숨이 가파오기 시작했다. 맥박이 귀에서 뛰다가 머릿 속으로 곧장 돌입, 머리까지 쿵쿵 울려댔다. 게다가 날은 오지게 추워 손이며 얼굴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수족냉증이 있는지라 조금만 차가워지면 머릿 속까지 하얘졌는데 그날이 딱 그랬다.  

 이런 얘기를 그날과 다음날에 쓰려고 해놓고선 미루다가 임시저장된게 날라갈 것 같아 지금에서야 부랴부랴 마무리 중이다. 요약하자면 난 정상은 커녕 두번째 쉼터에서 그래도 호수를 봤다고, 너무 무리하면 건강에 안 좋다고 이것저것 갖다붙인 이유를 대고선 산을 내려왔다.  

 산의 초입에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고, 분별없이 짖어대는 유원지의 개들과 누군가 버린 그 아이들을 키우는 아저씨랑 산 얘기를 했고, 오랜만에 문방구에 들려 옥찌에게 쓸 편지지를 사기도 했다. 누구가 청평에 간다면 쁘띠 프랑스나 아침고요수목원을 구경하면 좋을거라고 소개를 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난 조금 힘에 벅차게 호명산을 올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연의 숨결을, 대지의 기운을 받아서란 식의 수사는 낯간지러운데다 내 자신이 미력해 그렇게까지 느껴보진 못했으니 거창한 이유를 대기는 곤란하다. 이제 막 캠핑족들에게 들켜서 여름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산을, 여름이 되기 전 시간을 내서 찾아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란 생각 정도.  

 유원지를 관리하는 아저씨가 인생의 굴곡을 비켜선 몇십년을 그 산에서 함께 했듯이 묵묵히 산을 오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흔한 편의시설도, 친절한 표지판도, 까딱하면 멧돼지에게 습격당할지도 모르지만(멧돼지가 다니는 길에 들어서지 않으면 문제 없다고 한다.) 예전에 있던 모습 그대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을 내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따로 살갑게 끌어안아주지도 않는 호명산. 산 중턱 즈음에서 숨을 몰아쉬면 바람에 실려 무심하게 하품하는 호랑이 소리를 들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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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잡한 지하철이었다. 대개는 러시아워를 피했는데 그날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입성도 칠칠치 못한 채로 지각 면피용 달리기 끝에 가까스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은 사람들로 미어터질려고 했다. 신촌에서 신도림을 걸쳐서 신림까지. 신자로 시작하는 2호선의 난코스. 신촌에서부터 갑갑했던 지하철은 신도림쯤에서 좀 나아지려나 했더니 더 밀려선 옴쭉달싹도 못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옆사람의 입김까지 거칠게 전달되는 순간, 어? 이게 뭐지. 하반신 근처에서 어떤 움직임이 감지됐다. 슬쩍 부딪힌게 아니라 노골적으로 비비고, 비트는 느낌.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성추행? 에이 아니겠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리고 내가 고개만 들면 얼굴을 볼 수도 있는데 그럴 수 있겠어?

 움직임은 끈덕지게 계속됐다. 정말이지 대놓고 손이었다면 손을 꺾거나 손을 꽉 잡아서 이제껏 암기해온 욕들을 한바가지로 해줄 생각이었지만 대체 이 움직임을 뭐라고 말해야한단 말인가. 슬쩍 팔꿈치에 힘을 실어 그 ㅅㄲ의 몸을 제쳤다. 다른 쪽으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어떻게든 해야해. 나만 당하는게 아니잖아. 누군가는 또 피해를 당할거라고. 증명할 수 없다는건 말이 안 돼. 어서. 악이라도 쓰라고.

 나는 살아오면서 작게든 크게든 많은 성추행에 노출돼 왔다. 그럴때마다 호기심이거나 별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해왔다. 내 불쾌감이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아무리 악을 써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이 더 크게 작용했다. 비겁했고, 무지했다. 추행의 기억이 차곡차곡 포개지면서 다음번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 결심을 하며 질펀한 욕들도 외워보고, 강제로 키스하려고 하면 입을 쫙 벌려서 틈을 안 보이게 하는 방법이 있다는 기상천외한 방어에 대한 후문에도 귀를 기울였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목소리도 좀 커졌으니까 행여나 성적인 바운더리를 훼손하는 일이 생긴다면 간과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침묵했다.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지도 못했고, 고함을 지르지도 못했다. 다만.

 신도림에 도착해 사람들 틈에서 뻥소리나게 튀어나와선 그 사람을 노려보는 것 밖에는 할수  있는게 없었다. 눈이 작고 날카로운 사람이었다. 그가 나를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과 섞이면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평범한 얼굴에 조롱을 담은 표정. 성추행을 당한 순간보다 더 지독한 무기력과 분노가 밀려왔다. 욕이란게 난생 처음 입 밖으로 나왔다. 분해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를 향하기보다는 내 내부로 불쾌함이 쌓여갔다. 왜 나는 대항하지 못했나. 왜 제발 네 욕망을 내 몸에서 떼라고 왜 말하지 못했나.

 성적인 훼손을 받은 사람의 가장 큰 자괴감 중 하나가 자신이 아무것도 못했다는 무기력이라고 한다. 난 힘이 센 여자였을 수도 있고, 괴력의 소녀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번연히 성추행을 할 수 있었던건 아저씨가 용가리 통뼈여서가 아니었다. 나 스스로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틀 안에 갇혀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살아보면 엉덩이를 바짝 앞으로 당긴 후 발 뒤꿈치로 걷어차 상대방의 급소를 공격할 수 있을까? 두꺼운 머리로 박치기를 시도해볼 수 있을까? 고함을 지를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성적인 수치심과 노골적인 추행에 노출되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혹은 이건 네 잘못이 아니라, 상황이 좋지 않았단 위로라도. 그래, 혹은 정말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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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4-0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추행의 기억이 더 끔찍해지는 건, 말씀하신 대로 무기력했던 나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오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보거나 듣거나 할 때도 그때의 기억을 반복해서 재생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그러니 정말 엿같은 일이죠.

Arch 2009-04-01 23:53   좋아요 0 | URL
평안의 마노아님에게서 엿이란 소리가 나올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킹콩걸의 비르지니 데팡트의 말처럼 이런 엿같은 일은 빨리 잊을수록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아요. 자기 책임을 묻는건 너무 어처구니 없는데도 성적 침해에 있어서 피해자들은 늘 셀프플레임으로 더 지난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뷰리풀말미잘 2009-04-01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기억에는, 더 어린시절의 지저분한 기억도 몇 개 있지만 언제 어디서라고 확실히 기억나는 수준은 아니고, 저도 성추행을 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번은 펍에서 일할때 서빙하는데 어느 놈(인지 년 인지) 뒤에서 엉덩이를 만지더군요. 오, 그 지저분한 느낌이란.. 하지만 너무 피곤했고, 바빴고, 정신이 없어서 그 순간엔 별 생각이 들지도 않았습니다. 또 한번은요 한적한 길을 걸어가는데 어떤 남자가 달려오더니 뒤에서 꼭 껴앉는거에요. "흐흐 * **** **"(자체심의) 라고 하면서요. 허허허허허허허.. 그런 노땅 손목 관절 하나쯤 뽑아버리는 거나, 콧잔등 몇 센치 주저앉히는건 일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머릿속이 하얘지더군요. 아무것도 못하고 한 5분쯤 멍때리고 서 있었던 기억이 있네요.

성폭력이 (어쩌면 모든 종류의 폭력이) 여성들만의 문제는 아닌데 왜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을 더 혐오스럽게 느끼는 걸까요? (따지는 거 아닙니다.ㅋㅋ) 아마, (사회적이고 육체적인) 약자에게 상대적 강자가 행사하는 폭력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왜 어릴때도 고만 고만한 녀석들이 싸우는 것 보다 쎈 놈이 약한 놈 괴롭히는 게 더 재수없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군대의 성 폭력은 참 심각한 문제죠. 아, 전 정말 그런 건 못 참아요. 애 새끼건 어른 새끼건.

하긴, 약자가 강자를 추행하는 일은 별로 없겠죠. 제가 최홍만같은 덩치에 그런 외모를 가졌다면 감히 그 녀석이 저를 뒤에서 껴앉았을리는 없었을거에요. 제가 서빙 알바가 아니라 지배인이었다면 제 엉덩이가 안주거리가 됐을 일은 없었겠죠. 흐..

마노아님 말씀처럼 성폭력은 참 엿같은 일이에요. 그 자체도 고통스럽지만 내 사회적, 육체적 위치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거든요. 미모로운 우리에게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대안이란게 겨우 급소공격과, 박치기와, 고함밖에 없다니 역시 '엿같은' 일입니다.


Arch 2009-04-02 00:06   좋아요 0 | URL
미잘님, 사회적 약자 가운데 여성에 대해 쓴거라 그렇게 봤을 수도 있겠네요.
글을 올리고나서 좀 더 생각을 정리해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모든 폭력, 특히 자신의 우월한 힘을 과시하려는 폭력은 모두 혐오스럽죠. 성폭행이나 성추행은 자기 바운더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치졸한 폭력의 일종이고, 실은 성폭력이나 성추행의 주체가 여성이 될 수도 있는거겠죠. 그런 의미에서 그간 관습적으로 행해졌던 폭력적인 행동에 대한 다른 입장을 써보고 싶었는데 말씀했던 것처럼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네요.
군대내 성폭력과 문화에 대해서는 경험해보지 않고,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어요. 이건 여성주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을 볼때의 시각이랑 비슷하다는 것 인정해요. 잘 알 수는 없지만, 미잘님이 제 페이퍼에 공감했던 것처럼 이 문제에 있어서도 동의해주고 지지해주는게 시작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섣부르게 그러면 모병제 하자느니, 군대문화를 전면적으로 바꿔야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보다 말이죠.
성폭력의 가해자는 쾌감보다는 상대방을 굴종시키고, 지배했다는 만족감, 자신이 물리적 힘에서 우위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변태(다른 의미의 변태는 환영함^^)란 의미에서 정말 shit이죠. 자꾸 어떤 대안이 있을까, 이런쪽으로 생각이 흐르고, 그런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란 위악도 떠오르지만 지금으로선 그냥 좀 놔두려구요. 그냥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려구요.
 

 약간 지루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모처럼 짧은 치마를 입어 다리는 시렵고, 좀전까지 마구 먹어댄 바람에 배는 무거운 상태여서 뒤뚱뒤뚱 걷고 있었다.  

 걸으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오늘 본 블로그의 주인이 예전 남자친구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짤막하게 써놓은걸 보고선 '왠 주책'인가 싶었다. 그가 여지껏 헤어져서 잘 됐다던가, 안 맞는 사람이었다라고 떠들었던건 둘째치고, 다 끝난 관계에서 하필이면 사과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밤엔, 나도 전에 만났던 분에게 사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쓰거나 누군가에게 말을 할때면 보이지 않는 눈이 나타나 '네 진면목을 알고 있으니 함부로 까불지마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으니까. 이제는 그런건 잊어주라고 혹은 상관없지 않냐고 말하고 싶어졌다. 상대방이 아무런 얘기도 안 했고, 어떠한 낌새도 없는데 혼자 찔려서, '왠 주책'처럼. 왜 연애할때마다 병증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극성인지 모르겠다. 이건 친구가 말한 것처럼 연애젬병으로 자신을 길들이는 수작일지도 모르겠다. 일테면 '나는 길치'로 자신을 규정해 길을 알려는 노력마저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처럼.

 아무튼 생각들을 차곡차곡 포개가며 걷고 있는데 누군가 옆으로 다가오는게 느껴졌다. 누구? 

- Where are you going?

 보니까 유색, 백인이 아닌, 아니 그저 남자? 이것도 아닌 어쨌든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분이 나와 보폭을 맞춰 걷고 있었다. 대체 백인이 아닌 사람은 어떻게 지칭해야한단 말인가. 황인종, 흑인종, 유색 인종. 정희진의 말처럼 피부색이 없는 인종이 어디 있다고. 

 밤이고, 안전한 인종이 아니란 생각에(이런 몹쓸) 무시할까하다 그의 눈이 머루처럼 새까매서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 집에 가는 길이야.  

- 왜 벌써 집에 가? 

- 왜? why라고 말한거야? 

- yeah. 난 너랑 얘기를 나누고 싶어. 

 지금은 밤이고, 나는 자야해. 브라질에서 온 산디는 여자친구가 없으니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브라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은 어떤지 내게 물었다. 봐서 알겠지만 기초적인 것에서도 아주 핵심만 골라잡은 단어만으로 대화가 진행되는 형편으로 그에게 제대로된 답변을 해줄 수가 없었다. 도리어 계속 잠, 잠을 외치거나 go home만 골라잡아 얘기를 하자니 약간 맥이 빠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 왜 친구가 된다고, 다시 보자고 하지 않았던거니?  

 안전한 대답은 있다. 밤이고, 남자고, 에 그리고 지어낼 수 있는 이유들은 퍽 많았다. 하지만 그런건 별로 염두해두지 않았다. 그렇게 피곤한 것도 아니었고 지금 당장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난 그가 see you라고 할 때 bye라고 단정을 지었고, 나 스스로도 다시는 그를 만날 일이 없다란 생각을 했다. 그래, 내가 봐버린건 그가 think를 딩코로 발음한 것과 우리보다 못사는 브라질에서 왔다는 것, 피부색이었다. 아, 졸라(이런 말을 쓰는 것은 졸라 창피하다.) 창피하다.  

 여기서 좀 더 생각을 넓혀보자면 발음 뿐만은 아니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미국 등 영어권 나라 사람들의 발음이 조금씩 차이가 나고, 케이의 경우도 d발음이 강하게 나는걸 알고 있다. 일본식 영어가 있는 것처럼 나라마다 다른 악센트가 있고, 작정하고 영어를 배우는게 아니라 친구를 사귀는거라면 발음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난 산디를 거부했다. 그가 흰색 피부에 유럽에서 온 사람이라면 과연 그랬을까?  

 나보다 더 갖거나 부당한 것에는 항의하고 불만을 얘기할 수 있지만 만약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굴거나 상처를 주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의 성찰을 할 수 있을까. 이건 산디의 경우에서 나온 생각이지만 이 경우와 정확하게 일치하는건 아니다. 외국인에 대해 막연하게 갖고 있던 감상과 실제가 마주치는 것에서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의 단면을 엿보긴 했지만 거부 자체의 속성 때문에 좀 더 문제적이란 생각이 없는건 아니다. 다만 나보다 약자에게 취하는 행동이 가끔씩 문제적이란 생각은 든다.  

 최규석의 습지생태보고서에서 나온 구절처럼, 

 이건 그저 헌팅일 뿐이라고. 미니스커트가 만들어낸 아주 드문 상황이었다고.  

 연애를 하고 돌아온 주인공에게 친구가 오늘은 얼마를 썼냐고 물었을 때 주인공이 '그저 연애를 한 것 뿐'이라고 한 것처럼  나도 이번에는 '그저 헌팅일 뿐이라고.'로 끝을 맺어야겠다. 낯선 상황이 가져다준 파동은 좀 더 지켜본 후에 정리를 해야할 것 같다.  

 내가 남미 쪽에 어필하는 얼굴, 아니 뒤태라니! 아치의 재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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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04-01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재밌는 체험기이군요.^^

Arch 2009-04-01 15:46   좋아요 0 | URL
^^
 

 전에 서비스직에 대한 얘기를 한적이 있다. 내딴에는 경험을 해봤고, 좀 더 안다고 생각해서 쓴 내용이었는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얼마든지 달리 보일 수 있는 사안이란 것을 잘 안다. 

 오늘 마트에서 장을 봤는데 숙주를 어떻게 담아서 계산을 해야하는지 몰라 옆에 계신 분에게 여쭸더니 건성으로 비닐에 담아 저울로 재라고 하셨다. 뭐, 하루종일 서있고, 방금 안 좋은 일이 있었나보지.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기분은 좀 안 좋았다. 모처럼 밖에 나와 장을 보며 봄날 딸기향이 좋다며 신나 있었는데 불친절한(그분이 나를 위해 친절해야할 필요는 없겠으나) 말 한마디에 무안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나 역시 이동통신 회사에서 일할 때 미칠듯이 쏟아지는 전화를 받다가 꼬치꼬치 묻는 고객에게 불퉁거린적이 있다. 학생이여서 만만하게 본 것도 있었는데(미친 상담원이었지. 아마) 그 분이 그때 그랬다. 

- 왜 이렇게 불친절해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려서. 행여 클레임 걸릴까봐 바로 자세를 고쳐앉고 응대를 했는데 고객은 화를 내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다시 전화를 할까하다 받아야할 전화수와 채워야할 전화 받는 시간 때문에 차마 전화를 할 수는 없었다. 사실 난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잘 몰랐었다. 배째라지, 이런건 아니었고,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는 순간, 바로 아차 싶다기보다는 얘가 괜히 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를 바랐으니까. 

 친절? 그건 너무 강요된게 아닐까란 생각이다. 익명의 블라인드로 가려진채 전화로만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서 가식적인 친절은 불편하고 그렇다고 진정을 원하는 것도 어폐가 있지 않을까. 게다가 콜센터 직원들은 유리벽에 갇혀있다. 8시간을 꼬박 전화를 받고, 목표하는 콜수를 채우고, 콜 시간을 맞춰야한다. 그 와중에 상담 내용을 정확하게 숙지해야하며, 오상담이나 시간을 지체할 경우는 성과급에서 하위에 머무르는 것도 감안해야한다. 모든 내용은 고객의 권익 보호라는 이유로 녹취가 되고, 행여 잘못 걸려 '진상'이라도 만난 날이면 도로 한가운데에서 섹스라도 해야할 것 같은 성희롱에 시달려야한다. 차라리 이런 사람이라면 낫지, 콜이란 소리만 들어도 원한이 있거나 기분 나쁜일을 괜히 콜센터 직원들에게 풀거나 고압적으로 지시하는 고객들, 무리한걸 부탁하면서 소비자의 권리라며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들. 친절이란 말은 이미 빛을 바랜지 오래고, 진심으로 대할때 자신이 가져갈 몫은 기본급 뿐이며, 자신의 친절만으로 회사 이미지나 고객의 기분을 좋게 하기에는 콜센터는의 규모는 너무 커져버렸다. 

 이건, 마하연님의 페이퍼를 읽고 쓴 글이지만, 그 분께서 문제가 있다란 얘기를 하는게 아니다. 그분의 일이 충분히 불쾌하고, 알라딘측에서 시정해야할 부분도 있다는 점에 대해 적극 동감한다. 하지만 단순히 한명의 상담원 문제가 아니라 구조 자체가 그렇게 된 것이라는데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혹시 그 사람은 전화를 받은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사람이 아닌지,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은 나는 어땠는지 생각해봐야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사정을 아는 내가 다른 콜센터에 전화를 걸 때면 제대로 하냐 싶으면 또 그것도 아니다. 나 역시 사정을 잘 안다는 이유로 무리한 부탁을 하기도 하고, 내가 제일 싫어했던 유형인 한번 전화에 모든 용건을 다 보려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건 나한테도 하는 소리다. 

 얼굴이 보이는건 아니지만, 전화선 너머의 그 사람도 분명히 놀랐을거다. 나로 말하자면 그저 나불나불 입이었지만, 아마도 그 분은 좀 더 성의를 갖고 일을 처리하다 문제가 발생했던 것 같고, 앞으로는 더 조심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트의 아주머니는 내가 숙주를 손으로 집어서 담아오니 저울에 잰 후 가격 택을 붙여줬다. 여전히 무뚝뚝했고, 아무말도 없었지만, 그 사람이 누구나에게 그런다는 것, 괜히 나한테만 그런게 아니라는 것, 오늘 좀 피곤했나보다 정도를 생각하니 상한 기분도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물론 좀 더 상냥하거나 재미있게 일하는 모습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것까지 바라기엔 난 그 아주머니에 대해 잘 모르니까. 

  나는 2002년 11월에 알라딘에서 처음으로 물건을 구매했다. 내가 운이 좋아서인지, 다른분들처럼 구매액이 크지 않아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알라딘에서 책을 사거나 책을 파는데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신기하다며 지하철 택배로 받은적이 있는데 이때 연락처를 잘못 적어 헤맸던 일과 가끔 배송이 늦어지는 일(그런데 요샌 배송 얘기가 많이 나와서 그런지 거의 일주일 정도로 텀을 둔다.)정도가 있을텐데 이것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둔해서 그런건지, 알라딘이라고 할 때 맘으로 먼저 점수를 주고 들어가서인지는 모르겠다.  

 도리어 난 알라딘이란 공간에 서재가 있어서, 서재에 글을 쓸 수 있고, 알라디너들과 얘기할 수 있어서 고마운 맘이 더 크다. 서재로 연결되다보니 알라딘이 가끔 보이는 별로인 것들에도 너그러워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계속 지적받고 있는 부분들은 알라딘측에서 시정해나갔으면 좋겠다. 다른 블로그나 누군가의 글에서 알라딘 이용하니까 정말 좋다란 소리가 나오면 나도 괜히 뿌듯하고, 누가 인터넷 서점이란 말만 꺼내도 알라딘, 알라딘이란 소리가 버릇처럼 나오니까.  

 알라딘이 아주 뛰어나고 멋진 기업인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좋고 멋진 서재가 있다란 것은 분명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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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2009-03-27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서비스업 아르바이트를 해본적이 있어서,(뭐..P빵집 아르바이트 정도라지만;) 공감가는 글이네요. 저도 제가 그 아르바이트를 하기전까지는 '손님은 왕이다' 라는 시각만 가졌지, 나를 응대하는 사람도 '감정있는 사람', 이라는 생각을 못했던거 같아요. 근데 제가 손님을 상대하다보니까, 손님의 태도에 울컥할때도 많고.. '사람들이 어쩜 이렇게 막대하나' 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십번씩 들면서 울컥하더라고요. 그 때 역지사지,를 정말 제대로 깨닫고 그 이후부터는 '왜 이렇게 불친절합니까!' 를 말하기보다는 '혹시 내 말투가 명령조라서 저 분 기분을 상하게했나? 하는 자기검열(?)까지 해보게 되는 습관을 가지게됐어요. 흠.. 좋은 서비스를 받을 권리는 당연히 지켜져야 하겠지만, 조금만 서로 배려하는 마음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생각할거리를 주는 글이네요~ 이런글을 읽을 수 있어서.. 저 역시 서재를 사랑합니다^^;

Arch 2009-03-27 18:04   좋아요 0 | URL
고꼬스님 반가워요. P라고 하셨지만, 프랑스의 수도 이름, 빵의 종류 가게란거 알아요. 미안, 썰렁했네요.
실은, 글 지우려고 온건데,그 사이에 댓글을 다셔서.
제가 아무리 온건한 어조로 얘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가르치려 든다거나, 당사자의 입장을 모르는 단지 오지랖일지 모른단, 나대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글 쓰기 전에도 그런 생각은 있었는데 그저 제가 글을 쓰게 만든 페이퍼를 쓰신 분을 공격하거나 문제 삼고자한게 아니란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행여 그분이 이 글을 보고 맘이 불편하면 어떡하나 노심초사.
늘 저질러놓고, 깨달아서 참 미안해요.

아, 고꼬스님! 저도 자기검열과인데 이게 내가 지불한 돈에 들어있는 서비스마저 비굴하게 바라고 있는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때도 있어요. 사람 관계인지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서비스를 해주는 입장의 간극은 참 멀기만 해요. 서재사랑人 한분 추가요^^

2009-03-27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turnleft 2009-03-28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박노자씨가 서비스 업종 종사자들이 "감정노동"을 강요받는다는 표현을 썼던게 기억나네요.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지켜보면, 전반적으로 한국사람들 무례하고 기분 나쁘게 행동해요. 일상 생활에서 이미 상대방에 대한 배려 따위는 몸에 배어 있지 않죠. 시각에 따라서는 미국인들 태도를 가식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저한테는 무례한 것보다는 가식적이라도 친절한게 차라리 낫더군요. 아무튼, 그래서 미국인들은 서비스업이라고 사람 대하는게 특별히 다르지는 않아요. 일상적인 삶에서 타인을 대하듯, 그 정도의 관심과 친절로 대하면 서로 감정 상할 일은 없더군요.

그래서, 만약 우리가 일상적으로 타인에게 불친절하게 대한다면, 과연 서비스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친절해야 한다고 요구하는건 과연 정당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요. 물론, 그들이 사람들을 대할 때 불친절해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건 아니에요. 친절해야죠. 하지만 그건 그들이 서비스업에 종사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 저는 참 천박하다고 봐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인데, 내가 손에 돈을 쥔 입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우월한 인간이 되는건 절대 아닐텐데 말이죠.

Arch 2009-03-28 13:45   좋아요 0 | URL
TurnLeft님 반갑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인권 책자에서 '감정 노동'이란 표현을 봤어요. 감정 노동의 핵심은 주로 여자들이란 얘기도.

저는 일상적인 불친절함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네요. 그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 좋겠다란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턴레프트님 댓글로 좀 더 다른 시각에서 친절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됐어요.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