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다. 반응이 썩 좋지만은 않다. 아빠에게 읽어드리고 엄마에게도 읽어드린다. 동생에게 읽어주고, 옥찌에게도 읽어준다. 아빠는 시인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엄마는 드러누워 좀 더 얘기를 해보라고 한다. 동생은 또 시작이냐는 표정이고 옥찌들은 살금 웃어버린다.  

 낭송, 고미숙의 책에서 고전읽기를 통한 낭송의 발견을 본 후로 탐을 냈고, 탐을 내면 바로 해버리는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내가 이렇게 코맹맹이 소리라니, 내가 이렇게, 이렇게로 시작되는 말들이 한무더기로 튀어나오고 입은 바싹 말라갔다. 그래도 낭송했다. 알라디너들 앞에서 낭송했다.

 낭송, 지상으로부터 몸을 1cm쯤 붕 뜨게 만드는 단어.  

 낭송, 기름기가 묻은 목소리가 아닌 낭송을 듣고 싶다는, 필사 의욕을 강하게 불러일으킨 당신께 드리는 선물. 

 낭송, 언젠가 밤의 목소리로 꼭 해보고 싶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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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작나무- Robert Frost
    from 기우뚱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2009-07-26 01:06 
    자작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꼿꼿하고 검푸른 나무 줄기 사이로 자작나무가 좌우로 휘어져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어떤 아이가 그걸 흔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흔들어서는 눈보라가 그렇게 하듯 나무들을 아주 휘어져 있게는 못한다 비가 온 뒤 개인 겨울 날 아침 나뭇가지에 얼음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려
 
 
hnine 2009-06-09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데요. 낭송에 딱 좋은 음성 아니신가요? 그리고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감정이 지나치게 실리지도 않은, 침착한 톤의 일관성. 정말 좋아요. 진짜로요.

Arch 2009-06-09 10:42   좋아요 0 | URL
히~ 고맙습니다.

hanalei 2009-06-10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데요.(2)
실제 목소리는 자기가 아는 것 보다 고음대역이 많이 감소된답니다. 맹맹맹,,,
더해서 섹쉬하기까지 하군요.

Arch 2009-06-10 01:56   좋아요 0 | URL
앗! 민망하여라. 코를 좀 뚫은 다음에 노래를 불러봐야겠어요.
 

 이즈음의 바람은 일년 중 가장 근사하다. 해는 터질 듯 내리쬐고, 초록은 위험할 정도로 반짝이는데 아, 이 바람은 무엇일까. 몸에 남은 마지막 수분기마저 남김없이 앗아가고 기분을 정신없이 들뜨게 하는 이 바람은. 자전거를 타고 월명동 작은 도서관에 들러 강준만의 현대사 산책, 정이현의 풍선, 옥찌들 책으로는 명화로 보는 미술을 빌렸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월명산길로 왔는데 전에 학원 다니면서 다녔던 길이건만 오르막길에선 예상했던대로 마지막 숨처럼 헐떡이고, 내리막길에선 첫웃음처럼 웃어제끼기 시작하는데, 정말 여름인가, 여름의 바람이 이토록 청량해서 어쩌나 싶을 정도로 시원했다.  

 연두색이 고와보이기 시작하면 늙었다는거라는데  난 이 말을 들었을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연두가 정말 곱게 느껴졌다. 애늙은이의 징후보다 친근한 연두, 누군가의 이름처럼 다정한 연두. 역시 초록은 위험하다.

  

 식구들끼리 모여서 술을 먹다가 아빠 어렸을 때 얘기가 나왔다. 전에는 아빠의 단독 진술만으로 사실을 추정했는데 고모의 추임새와 적확한 기억력이 한몫해서 미화된 아빠만의 추억으로 남을 일이 없어졌다. 아빠는 평소에 민이 너무 장난을 친다고 말씀하셨지만 장난꾸러기는 따로 있었다. 고모 말씀으로는 아빠가 어렸을 때 당신보다 여섯살이나 어린 동생보고 산길을 지나 당도하는 친구집에 데려다주라고 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어렸던 고모가 아무것도 모르고 아빠를 바래다 주고 돌아서서 다시 집으로 가려고 하니, 아빠가 각시 귀신, 몽당 귀신, 우물 귀신 등등 생활 주변의 온갖 잡귀신들을 다 만들어내서 자긴 쏙 빠진 무서움을 고모에게 한아름 선사해줬다는 얘기. 아빠는 얼굴이 빨개지셔서 웃으시고, 고모는 좀 더 실감나는 느낌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재현을 해주시는데. 으흠, 모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보았다.

 아빠가 집에서 설겆이를 가장 더럽게 하는 사람 일순위로 날 지목했다. 두번째는 엄마. 둘째의 증언에 따르면 그래도 엄마는 세제를 사용하니 양반이라고 하는데 엄마는 여전히 이순위라는게 믿기지 않는 눈치다. 아빠 말씀을 들은 아치의 반응이야 당연히, 

- 더럽게 해도 하긴 하잖아. 

 술자리를 치우다가 남은 반찬을 통에 담고 있는데 젓가락을 이용해서 (도구 사용을 까먹은드끼) 담기 귀찮아 뚜껑으로 어줍잖게 음식물을 담고 있으니 고모왈, 

- 네가 여자냐, 남자냐. 

- 고모, 그건 여자 남자의 문제가 아니라 술을 먹고 얼마나 손과 발이 마비됐는지 정도의 문제야. 

 고모는 웃었지만 웃음 끝에서 씁쓸이 툭툭 떨어졌다. 

 아빠와 민은 약간의 긴장 관계. 평소에는 집안에 둘 뿐인 남자라고 챙겨주는게 예사롭지 않지만, 민의 장난기가 도를 지나치거나 삐지거나 떼를 쓸때면 둘의 아슬한 긴장관계는 깨지고 바로 적대적으로 돌변한다. 내일 순천으로 매실 따러가는데 민이 말썽을 피울 것 같다며 옥찌만 데리고 간다고 공표를 하시길래 내가 냉큼 

- 그럼 민이랑 자전거 타고 다녀야겠다 

라고 했더니 둘째 녀석이 

- 언니, 전에 자전거 타다가 바퀴에 민 발 꼈잖아. 

라고 했고, 이것을 들은 적대관계의 여진이 남았던 울 아빤, 

- 그럼 내꺼 안전화 빌려줄게. 못이 박혀도 망치가 떨어져도 문제없어. 

 아, 아빠. 

 

 * * * 

 그러니까, 뭔가 벽에 쿵! 부딪힌 느낌이다.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끈기가 부족한 나로선 꽤 오랫동안 서재활동을 했다고 생각했는데(오래하신 분들 죄송해요, 고작 1년인데.) 이제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 전처럼 모임 얘기나 옥찌들 얘기만으로는 갈증이 난다. 더군다나 아치의 이중 생활을 친히 점검하는 가족의 눈이 있어 옥찌들 얘기 할때는 자기검열을 거쳐야만 한다. 알라딘 배포가 이 정도 밖에 안 돼서 한심스럽지만 나 혼자만 달아오르고 흥분되는 이야기들 말고 너에게도 즐거운 일, 너에게도 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혹은 이왕 달아오를거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용어와 긴밀한 논리 구조를 갖고 싶기도 하다. 요새도 일기를 쓰다가 이거 페이퍼에 어떻게 올릴까 생각해볼 정도로 꾸준히 달아올라있는 아치지만 전처럼 '톡톡 나를 건드려줘요.'식의 글은 지양하고 싶다. 하고 싶다고 다 되는건 아니겠지만.  

 매실 따러 갔다가 온갖 벌레들한테 물려서 '긁어줘, 긁어줘.'란 소리가 들릴 정도로 몸이 간지럽다. 뭘 그토록 원하는지, 어떤 글쓰기를 나에게 바라는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긁느라 전보다 더 어먼 소리만 뱉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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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때였다. 봉사부장인 S가 봉사활동으로 고아원에 갈거라며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고 있었다. 갈까 말까 하다가 난 안 가는 쪽으로 맘을 굳히고 S에게 얘기를 했다. S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왜냐고 물었다. 그러고보니 내겐 '왜'가 없었다. 나는 '그냥 싫어서'란 답을 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집으로 돌아와 방바닥을 굴러다니면서도 불편한 맘이 가시질 않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싫어의 끝에서 S가 나를 비난하는 눈빛을 읽었기 때문이란 것을 깨달았고, 난 S에게 전화를 걸어 변명을 했다. 

 - 그러니까 아이들이랑 금세 정이 들었는데 헤어지기가 어려울 것 같고,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누군가 앞에서 울거나 어떻게 헤어져야하는지 모르겠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제와 생각하니 곧이곧대로 반반은 아니었던 것도 같다. 변명을 위한 변명이었다. 난 그냥 가기 싫었던거다. 내가 댄 이유에 S는 공감을 표해줬고, 난 좀 더 굳히자는 생각에 악의적으로 내가 얼마나 표현에 서툰 사람인지를 강조했었다.  

 난 내가 의무감을 갖거나 해야한다의 궁지에 몰릴 때면 항상 그때 일이 생각난다. 

 노무현 전대통령을 추모하는 동안 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알라딘에 접속했다. 예전처럼 브리핑의 글들을 다 읽고, 화제의 서재글도 꼭꼭 씹으며 그들 슬픔에 공감하고 아파했다. 물론 달라진게 있긴 했다. 내 서재를 닫았고, 어떤 댓글도 달지 않았던 것. 처음은 추모의 표현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짓'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지만, 여전히 난 소통불능의, 어쩌면 내 스스로가 강요하는 틀 안에서 근근히 삭는 중학교 때 그 아이에서 한뼘도 자라지 않은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알라딘 뿐만 아니라 다른 사이트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즐거워하는 댓글을 보면서 부지불식간에 생기는 반감에 당혹스러워했다. 모두가 슬퍼해야할 때는 아닌데 왠지 스스로의 행위 자체의 보상심리까지 작용한 좀 더 집요한 거부감이었다. 물론 이런 감정을 표현하진 않았다. 엄연히 모두가 슬퍼할 수 있듯이 그렇지 않을 다른 쪽의 입장도 있는거니까. 게다가 일부에서 감지되는 '강요된 슬픔'의 기운이 분명히 월드컵 때의 것과는 다름에도 불편 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내가 슬퍼할 때라고 한 페이퍼가 무색할 정도로 난 그다지 슬프지 않았던거다. 이걸 문제라고 할 수 있겠냐마는 나는 누구보다 노무현을 좋아했고, 지금 상황에서 제일 절실한건 단지 대화하려는 그 시도 자체였다는 것임을 갈망하면서도, 글쎄,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지도, 맘을 한뼘씩 내려놓을 때마다 주저앉으며 망연자실하지도 않았다. 나의 상황에 기인한 열패감 때문일 수도 있고, 죽음 외의 다른 연관된 것에 맘이 쓰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 혹은 지금이 아닌 한참 후에 방학 숙제를 한꺼번에 해치우듯 속절없이 발을 동동 굴릴지도.  

 그래서 표리부동한, 슬퍼해야할 때라고 내건 맘이 무색할만치 밍숭맹숭한, 그럼에도 다른이에게 슬픔을 강요하는 내 맘의 영역이 감지되자 그건 참 어떻게 다뤄야할 감정일지 알 수가 없어진거다.  

 중학교 때의 내가 모든 것을 다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어쩌면 난 값싼 동정심과 자신의 기분으로 소비되는 자선에 반감을 갖았던 것 같다. 혹은 정말 도덕적 감수성이나 베풂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거나. 혹은 그 당시의 불안한 상황에 비춰 맘의 여유가 안 난다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시, 아무도 찾지 않아서 조금은 멋쩍게 다시, 돌아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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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3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3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3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그분을 자신있게 찍었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우리에게도 이런 대통령 한분쯤 있으면 참 좋겠다란 그저 순진한 생각으로 그분을 지켜봤다.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란 생각을 처음으로 불러일으킨 분이었고, 모든면이 흡족한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이었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믿을 수 있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었다. 

 산골의 안 터지는 전화기로 굳이 당도한 문자 한통에 어안이 벙벙해서, 그런데도 잘 실감이 안 나서 뜬구름처럼 동네분들과 얘기를 하다가 

 관절염 때문에 잘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께서 고통받더니 참 힘들었나보네라고 하셨을 때도, 

 노부부가 번갈아가며 사람이 참 힘들었겠지 싶었다라고 할 때도, 

 여전히 실감할 수 없었는데 

 생전 그분 모습을 보니, 손녀딸에게 꽝꽝 얼은 아이스크림을 손으로 말랑말랑하게 해주고, 차가울까봐 휴지로 싸주는 그 모습을 보니 이제서야 우리가 잃어버리게 뭔지 분명히 알 것만 같았다. 

 우리가 얻은건 정치적 우위도 아니고, 다시 투쟁할 수 있는 원동력도 아니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걸 물론 경계해야겠지만, 아직은 슬퍼할 때, 

 시골 촌부처럼 그저 당분간은 슬퍼할 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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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5-25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복을 빕니다.
 


 섹스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을땐 대부분 첫경험에 대해 상상하곤 한다. 누구와 어떻게 어디에서 할까. 뭐 육하원칙을 비켜난데도 상관없다. 단지 내 역사에 기록될 첫경험은 대체 어떤식일까란 궁금증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난 첫경험보다 그 후의 일들을 앞서서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섹스에 환장하게 되면 어떡하지?

 얼음중독말곤 중독 증세가 없는 난 섹스를 시작하기도 전에 섹스중독을 겁내고 있었다. 중독의 속성상 ‘적당한 외면에서 나오는 품격’-다다이스트 마르셸 뒤상에 관한 책에서- 도 유지할 수 없을 뿐더러 그건 일테면 온갖 상징으로 엉클어진 여자의 지위에 관한거였기 때문이다.


 밝히는 년은 치우기 안 좋아하는 성격이래도 걸레란 소릴 들어야만 하고 수순처럼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한다. 섹스를 한번도 안 했던 내가 간접적으로 사회적인 폭력을 예감했던 것은 예민한 오지라퍼의 재간일 뿐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알게 모르게 그런 기제들은 여자의 사고와 행동을 제약한다. 그렇다고 이게 면면히 모든 상황에서 적용되는건 아니다. 예컨대 성적인 담론이 왕성하게 교환되는 자리에서 태연하게 자신은 그다지 성욕이 없다고 말하는 여자는 십중팔구 생뚱맞은 반응을 마주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 아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네요.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지 못했나봐요.


 이어지는건 어떻게 자기는 안될까 싶어 끈적거리는 눈빛. 

 
 혹은,

-미개척지가 상당한 수준인가본데.


 라는 진단. 종알대는 입에다 주먹을 먹이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비폭력주의자이다.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든 신이 주신 섬세한 감각의 소유자로서 성생활이 화려하든 여잔 늘 이분법의 수사에 걸려들어 있다.

창녀와 성녀의 극점을 말하는게 아니다.

 밝히지는 말되 너와 하는 상대와는 느껴라. 느끼지 못하면 느끼는 척이라도 해라. 여성은 사회적 관념을 수동적으로 답습하면서 성적인 역할극은 제대로 해내란 말씀이다. 슈퍼우먼은 결혼 전에도 통용되는 코드.

 무심코 던져대는 말들에 한번씩 발끈하는건 이 때문이다. 그게 어떤식으로 상처가 되는지 니가 아냐란 감정적이니 대응만은 아니다. 나도 고달프지만 그렇게 말하는 너도 대충 무슨 소린지 알거 아니냔 인간적 호소다. 뭐 대개는 자궁의 습기가 많은 히스테리 정도로 씨부려 감정적으로 개거품 물며 덤비게 하지만.


 나는 좋은게 좋은거다란 말을 정말 싫어한다.

 
 좋은게 좋은 것이 되기 위해선 좋은 것이 선결이 되어야는데 한번도 그 부분을 제대로 환기시킨 적이 없다. 나도 좀 별론거 알지만 뭐 어쩌겠어, 한번 웃고 넘어가는거지란 태도가 읽혀지는 말, 총칼 들고 싸울 정도로 격한게 아니라 버럭대며 대들 수도 없는 일. 정말이지 잠깐만 생각하면 될 일인데도 말이다. 헌데 아무 것에도 눈뜨지 않고, 암흑을 태초의 진리처럼 맹신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라...... 긍정의 힘을 믿긴 하지만 이건 별로다.


 나 역시 긍정적이고 사회순응적인 지표를 행운처럼 이마에 붙이고 다녔다. 하지만 요게 자꾸 내 맘을 헝클어 놓는다. 주체적이란 단서가 붙어 막 되먹게 몸을 굴리진 않으나 여전히 남성욕구에 부합하는 여성성과 안락한 가정을 요새처럼 지키는 여성성. 다양한 욕구와 감정들이 엉키고 분발하고 누락된다.


 정해진 길은 없지만 가고자하는 방향은 있다.

사랑에 씌워진 환상성과 관음적인 시선을 벗어던지고 솔직하게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가짐 갖기. 개별적인 성을 존중하며 다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강박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고 조화롭게 발전하는 관계.
이거 좀 이상하다고 인식하는 순간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진 분명해진다. 그건 이렇게 해라란 강권이 아니라 이건 어때란 질문 내지는 대안.
 

 첫경험을 우습게 시작했던 난 나날이 밝히고 밝히는 여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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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2009-05-21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적당한 외면에서 나오는 품격'을 외면하기는 정말 힘들지요. 저 같은 경우는...

뷰리풀말미잘 2009-05-2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추천!

무해한모리군 2009-05-21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나도 밝히는 여자가 되고 싶소..
그러나 현실은 내눈에 섹쉬한 남자가 발견되지 않이하는 고통.. 삼고에 더해 삶의 네번째 고통으로 넣어주소서..

Arch 2009-05-2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처럼님, 그러니까요. 저도 배우고 싶은 태도 중에 하나예요.

미잘, 씨익^^

휘모리님, 음... 밝히는 여자에 대한 개념과 어떤 대상에 홀리느냐는 상관없는 것 같아요. 왜 내가 굳이 '밝히는 여자'운운을 했는지는 글에 잘 나와있으니까요.

무해한모리군 2009-05-22 09:16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성이 아니라 모든 관계가 상호 존중과 자기 감정에 솔직하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저 요즘 나의 고충은 의욕상실과 게으름에서 비롯된 관계맺기 부제에 있는듯해서 단 댓글이라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