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는 아직 멀쩡하다.
 

J씨가 자리를 옮겼다. 사장실에서 좀 더 가까워져 결제 맡기 편하겠다고 하자,
- 편하게 까려고 나 여기 갖다놓은거야.
한다.

J씨가 팀장이 돼서 축하한대니까.

- 빨리 들어와서 팀장 된거야.
하고,

새로운 제품이 보이길래
- 이 제품 새로 만든거에요?
라고 묻자,
- 몰라, 사장이 사온건지, 만든건지
라며 툴툴댄다.

그 사이, 우리 참견맨. 제품 사진을 찍으면서 아무도 물어보지 않고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 이거 혼날까봐 찍어놓는거야. 가만 있잖아. 그럼 나중에 혼나.
한다. 어쩌라고!

 처음, 특히 이틀 전에 미친 듯 농땡을 핀 후에 회식이 있었고, 회식을 하면서 사장님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유한킴벌리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회사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얘기했다. 문득 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시간을 보내는거라면, 다른 누군가가 끌어야만 움직여야하는거라면 내가 의욕적으로 일을 하고, 좀 더 잘하는건 어떨까. 다들 그렇게 하고 있다고, 역시 뒷북이라고 하면 쓰윽 웃으면서 안 들리는척 할거다.

 아무것도 열심히 해본적이 없다. 이 회사에 뼈를 묻는다거나 성공해야겠다는건 아직 모르겠다. 난 그저 이면지 활용하길 원하고 전기세를 공용으로 사용한다고 에어컨을 막 틀자는 것에 반대하며 내가 보내는 시간이 좀 더 재미있거나 의미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런 생각이 어줍잖거나 뜬금없다고 배척당하는게 아니라 '너 알아서 해봐라'정도의 허용도 괜찮고. 내가 내 바로 윗사람을 배제하는건 아닌지, 이건 그저 의욕에 지나지않는건 아닌지 등등을 고민하자 친구가 말해줬다. 

- 제대로 해보고나 말해. 

 제대로, 잘 하고 싶다. 앞으로는 밥 먹고 저렇게 쓰러지듯 자진 못하겠지만, 이게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Arch, 잘 할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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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2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2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2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2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주미힌 2009-08-02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오른 손을 지지대겸 받침대로 사용하는 기술을 사용하시다니;;;
보기만해도 팔 저리네용;;;

Arch 2009-08-02 09:09   좋아요 0 | URL
그런데 생각보다 편해요. 엎드려 자는 기술이 좀 있는데 그중 으뜸이에요!

2009-08-02 0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2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2 0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2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09-08-02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찍힌걸까?? 찍은걸까??

Arch 2009-08-02 09:15   좋아요 0 | URL
사무실 B씨가 찍어줬어요. 머큐리님 혹시 김영하의 포스트잇인가, 암튼 에세이집에 보면 자길 따라다니면서 찍게 하는 사람 얘기가 나와요. 나도 그런거 해보고 싶었거든요. 내가 아는, 나만 알 수 있는 각도나 얼굴이 아니라 신경 못쓰고 방심할 때 찍히는건 어떨까란. B씨가 요즘 그러고 있어요. 재미있어요. 난 저렇게 위험하게 자는구나, 난 정말 뒤태가 그나마 좀 낫구나 등등^^

머큐리 2009-08-02 10:51   좋아요 0 | URL
앞태도 훌륭해 보이시던데요...ㅎㅎ

다락방 2009-08-02 14:07   좋아요 0 | URL
앞태도 훌륭해 보이시던데요...ㅎㅎ 2

Arch 2009-08-02 23:42   좋아요 0 | URL
푸후~ 이 기분 만끽하다 고개가 뒤로 꺾여버렸어요.

비로그인 2009-08-0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연하세요

승주나무 2009-08-0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도가 좋네요 ㅎ

Arch 2009-08-02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물님 반갑습니다. 감사해요.
민준아빠^^ 히~
 

*  

 노래를 듣거나 보는 것 말고 부르는건 어떨까.  

 나의 아버지는 일찍이 내가 언젠가는 노래를 부를 것으로 예상을 하셨던지 닭을 먹을때면 담백한 가슴살도 아니고, 뜯는 맛이 있는 날개도 아닌 목을 먹으란 지시를 내리셨다. 아버지의 말씀을 지고의 진리로 숭상하여 받드는 아치는 당연히 아니지만 닭 목을 많이 자주 먹으면 노래를 잘한다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살도 없고 맛도 없는 닭 목을 뜯길 어언 몇 년. 노래 실력은 나아지질 않고, 닭을 먹을 때면 잔반 처리기처럼 돌아오는 '목은 아치꺼'에서 벗어나고 싶어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 아버님. 제가 닭 목을 복용한지도 어언 10여년이 넘어가는데 어찌 제 노래 실력은 이 모양입니까. 

- 허허, 그러하느냐. 너는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으나, 네가 닭 목을 안 먹었다면 이 정도도 힘들었을 것이다. 

  장성한 아치는 이 정도가 어디냐며 오늘도 부실한 성대를 가지고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는디, 얼쑤!  

*  

 그러니까 듣거나 보는 것 말고 내가 직접 불러보는거지.  

 자전거를 탈 때나 혼자 있을 때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산이나 조용한 곳은 괜찮은데 자동차 경적 소리에 사람들 소음에서 비껴나고 싶을 때는 몸이 간지러울 정도로 음악이 듣고 싶었다. 하지만 MP3라는 요물은 나와는 원거리에 존재하는 행성처럼 고고하게 자신의 궤도만을 돌고 있었고, 선택에 있어서 가장 큰 좌절은 선택한 그 물건보다 좋은건 항상 그 다음에 출시된다는 것. 이용할줄도 모르고, 사고 싶지도 않은 MP3대신 입을 쓰기로 했다.  

 조심스럽게 불러봤다. 태연하게 녹음을 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노래 잘 한다고 개뻥을 치고 다니기도 했다. 

 *  

 무언가를 부르는건 예술가만 하는 일이 아니니까. 

 나는 내가 가끔(그렇다, 꽤 자주) 터무니없이 멍청한 소리를 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다른 누군가가 앞서 현상을 분석해 결론을 내리고 현실에 적용을 시키고 독보적인 활용까지 하고 있는 내용을 마치 나 혼자 알았다는 듯이 설레발을 쳐가며 환호할때가 있는거다. 노래 역시 마찬가지다. 듣거나 감상하거나 보는 것 말고 내가 직접 한다는건 예술사나 철학적, 인간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정리를 해왔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노래를 불러요라고 말하는건 좀 그렇단 생각을 안 한건 아니다. (이게 뭔 말이냐!)

 그렇지만 무척 즐거운걸, 게다가 난 언제나 페이퍼가 고픈걸, 나도 질보다 양인걸. 흐~ 그리고 당신들도 몇곡의 노래쯤은 흥얼댔으면 하는걸. 자작곡도 아니고 누군가가 그 곡에 맞는 목소리와 분위기로 불러놓은 노래를 부르는, 창작이라고 하기도 뭐한, 그저 흥얼흥얼 수준이긴 하지만 취미 중에 '노래 부르기' 하나 정도 있는건 왠지 노래방에서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고 바이브레이션을 죄다 끌어모아 몸을 뒤흔드는 것보다 몇배는 짜릿한 일이니까.  

 자전거를 타고 아직 건물이 들어서기 전의 도로를 돈다. 바람이 불고, 헐렁한 티셔츠 사이로 바람이 비집고 들어오고, 노랫 소리가 들리고, 다리 근육이 팽팽하게 움직인다. 내가 멋대로 지어부르는 가사 대신 다른 누군가가 몇백번씩 입으로 달싹이며 만들었을 가사를 외워보고 오호 이건 당김음이라며, 당김음을 알아본 내 센스에 흐뭇해지기도 한다.  
 
 노래를 한다. 으흠. 어린 옥찌를 꼬옥 껴안고 아기 분냄새를 맡는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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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07-27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은 아치꺼였군요. ㅎㅎ

Arch 2009-07-28 00:13   좋아요 0 | URL
으응^^

무해한모리군 2009-07-2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
전요 오늘 감기로 기침을 많이 해서 목이 쉰 참에, 그동안 못불렀던 허스키 보이스의 노래를 불러 보러 노래방에 갈려고 해요~
아치는 거기서 난여기서 불러요

Arch 2009-07-28 00:13   좋아요 0 | URL
그래요, 히~

2009-07-28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9-07-28 12:50   좋아요 0 | URL
ㅋㅋ 나도 사람들 앞에서 부른다고는 안 한거 같은데요~

2009-07-28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향연이라고 불릴만한 곳이다. 밥을 물에 말아서 삼키듯이 먹을 정도로 성격이 급하고 아이를 보기 싫어 일도 없는데 주말에 회사 나오는 J씨, 객쩍은 남성용 유머를 해대지만 볼펜 및 사무용품을 잘 빌려주는 K씨, 빨리빨리 모든걸 해치우는, 단 다른 사람과의 약속만은 철저히 자기 위주로 무한정 늘이는 사장님, 은근히 사무실에서 담배 피우고 은근히 바둑두기를 즐기는 A씨, 오만간데 다 참견하고 다니는 E씨, 약간 시니컬한데 저번에 한번 사진을 본적 있는 내 여동생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고 장난을 치는 눈이 깊은 B씨. 

 이들을 관리 감독은 아니고 관찰하며 혼자 히죽거리는 아치까지. 평소에는 약간 조용하지만 지금은 인도로 출장 다녀온 사장님한테 끌려가 다 큰 어른들이 고개를 숙이고 혼나기도 했고,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냐 하겠으나 커피 심부름을 하는 아치의 둔탁한 움직임이 있어왔다.  

 점심을 먹고 어떻게하면 안 걸리고 잘 수 있을까, 이걸 빨리 끝내고 뭐하고 놀지 등등으로 큰머리를 굴리고 있는 아치 옆으로 검은 그림자, 참견맨이 다가왔다. 

 일을 빨리 끝내면 안 돼, 또 주니까. 
 다들 적당히 하는거야. 일부러. 일을 못하는게 아니라니까. 더 하잖아~ 그럼 일을 더 시켜. 눈치껏 해! 절대로 열심히 해선 안 돼.
 이 나라의 국가 경제(왠?)는 어떻게 하라고 참견맨은 나에게 느긋하게 일을 하도록 종용했다. 혹시라도 내가 열심히 해서 사장이 자신들의 작업 속도를 눈치채기라도 할까봐 안달이 나는 모양이다. 뜬금없이 느긋한 삶을 예찬하기까지 한다. 회사를 몇주 다니지 않았는데 망할까봐 벌써 걱정이다.
 전에는 군기를 바짝 들게 해서 주눅들어 살았는데 여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놔주다 갑자기 미친 듯이 몰아친다. 얼마 전에는 사무실의 ‘각’을 걱정하는 사장님 덕분에 책상 아래 있는 본체를 위로 옮겼다. 모니터는 오른쪽에 있는데 키보드랑 마우스 선은 짧아서 몸은 왼쪽에. 반쯤 몸을 비틀어 일을 하면서 할건 다 하지만 본체 하나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짜증스러웠다. 몇몇 사람들이 사장이랑 싸우고 회사를 나갔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가끔 사장이 히스테리를 부릴때면 주눅 든 아이들처럼 군다. 아이들의 속성처럼 얼마 안 가 다시 느슨하게 풀어지지만. 조직 문제점의 모든 요소들을 응축해서 지니고 있는 사장을 거쳐 모든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맘에 안 들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밥벌이는 해야하고, 나도 뭔가를 오래 다녀봤다 정도 하나는 있어야겠는걸. 

 물론 그것만은 아니란걸 잘 알고 있다. 사장이 지맘대로 하려고 해서 문제지 내 의사가 잘 반영 되고, 유능까지는 아니어도 별다른 무리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받으니 나쁘지 않은거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이 제일 우울하다는 직장인처럼은 절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 나 역시 일요일은 한정없이 늘이고 싶은 직장-인이 된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거다.  

 주말에는 외근 나갔던 직원들을 달달달 볶아서 출근을 시키고 나에게 전화까지 하도록 종용한 우리 사장. 아직 나에게까지는 그의 자장이 미치지 못해 안심이지만 글쎄, 얼마나 갈지. 그땐 이 모든 스트레스와 피곤함을 극복하고 계속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안 다니면 안 되는 이유가 돈 때문만이라면 씁쓸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일을 하지 않았을테니 이유의 이유를 만들어내도 한계는 있을 듯하다.

 그래도 가끔 알라딘을 돌아다니는걸 일하는걸로 착각해서 천천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참견맨을 보는게, 인쇄 버튼을 누르자마자 프린터기에 손을 대고 종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성격 급한 팀장을 보는게 나쁘지만은 않다. 아주 좋다가 아닌게 애석하지만 '아주 나빠'보다는 괜찮으니까, 차선의 선택은 어느 순간엔 최선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쌓이다보면 나도 한뼘쯤 자랄 수 있을까? 

  퇴근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히~ 
약간은 야하고, 약간 흥분되는 노래 들어볼래요? 

 

 

 

전 Nouvelle Vague게 더 좋던데, 뭐랄까. 진짜 한잔 한 것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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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7-2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사무실에서 왜케 행복해보여요? 나랑 넘 다른데.. ㅋㅋㅋ
이벤트 콜~!

컴퓨터 틀자마자 꿈얘기 올렸어요 ㅋㅋㅋㅋㅋㅋ 로맨스 꿈은 아니지만 ㅠㅠ 이런 꿈이 내 일상이라는 ㅎㅎ

Arch 2009-07-28 00:15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으흠..^^
신기한 꿈이었어요, 무척

머큐리 2009-07-27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은 웬지 잘 상상이 안간다는...ㅎㅎ 정말 일은 하고 있는거죠?? -,-;

Arch 2009-07-28 00:16   좋아요 0 | URL
왜 그럴까? 일은 잘 안 하고 농땡이 피죠^^

2009-07-28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8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8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8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9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9-07-29 11:31   좋아요 0 | URL
그건 알거든요. 나도 궁금한거 있었는데 마침 잘 됐어요^^

2009-07-29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9-07-29 13:08   좋아요 0 | URL
댓글로 달기는 좀 길어.

2009-07-29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국장을 처음 봤을 때 난 전에 만났던 울퉁불퉁하게 생긴 남자가 떠올랐다. 국장은 과거의 남자와 골격도 비슷하고, 흥분할때면 하이톤으로 변하는 목소리며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완력까지 구석구석 닮아 있었다. 어쩜! 산만큼 커다란 얼굴에 새겨진 주름의 골까지 비슷했다. 손을 뻗어서 얼굴을 더듬으면 완강하게 닮아버린 깊은 주름들이 와락 달려들 것만 같았다. 그러면 그동안 묻어놓은 그리움이라던지 아련함이 찰랑대며 귓속말을 해줄 것만 같았다.
 그럼, 그와 국장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국장은 너무 늙어버렸고, 말이 많았으며, 끊임없이 떠들고 웃었지만 전혀 즐기지 않았다. 그는, 그래 그는 남들을 즐겁게 해주는만큼 자신도 즐거워했지. 아, 그랬던 사람이었지. 노을 지는걸 보면서 이대로 사라져도 억울할게 아무것도 없겠다란 얘기를 하기도 했지. 그럴때면 옆에서 코를 손끝으로 톡 치면서 내가 있는데 어디로 사라지냐고 퉁을 주기도 했고. 아, 정말 그랬던가.

 냄새. 코는 금세 알아챈다. 내 옆의 남자는 예전에 만나던 친구와 같은 향수를 쓰고 있었다. 난 단박에 남자의 몸에서 나는 향이 내가 막 샤워를 끝낼 때보다 백배쯤은 좋았던 그의 몸에서 나던 냄새임을 간파했다. 파란색이 감도는 느낌이 시원해서, 그의 맥박이 뛸때마다 톡톡 솟아오르는 향기가 무척 좋았다. 그에게 '그 향수'를 선물했을 때  난 자꾸 재촉했다. 또 뿌려봐. 내쪽으로 몸을 좀 기울여봐. 이렇게, 이렇게. 귀찮았던거야. 아무렴. 코는 더 기민하게 다른 남자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간파하는데 그는 이 자리에 없다. 언제라도 닿을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우린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

  노래방에 갔다. 왼쪽엔 바위처럼 우람한 얼굴의 남자가, 오른쪽엔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조일 듯 미혹하는 향기를 지닌 남자가 앉아 있다. 아, 나의 옛남자들은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있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뭐, 밤에 잠도 안 오고 누가 댓글놀이 하자고 꼬실까봐 기다린다고. 히~  
 아치는 페이퍼로도 댓글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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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7-2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날은 그냥 저처럼 10시부터 자버리세요;;;;;;;

흑 어제 하루종일 낮잠자다가 어제 10시부터 자버렸는데 지금 막 허리아프고 밤새 가슴졸이는 악몽꿔서 씁쓸-_-
친구들이 거미인간이 되어서 제가 다른 친구를 미끼로 던져주고 도망가는 매우 박진감넘치고 우정은 바닥을 드러내는 좀비꿈에서 깨어난 화창한 일요일입니다.. 하하하;;

제 신조가 흔한 향수 쓰는 남자랑은 만나지 말자에요. 돌아다니는데 이남자 저남자에게서 그남자 향수냄새가 나면 좀 그렇더라구요 ㅎㅎ

Arch 2009-07-27 00:25   좋아요 0 | URL
ㅋㅋ 뽀님, 자느라 댓글 못 달았구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니까. 꿈을 버라이어티하게 꾸는 것도 재능이다^^
제 신조는 흔한 모델의 차를 모는 남자랑 만나지 말자였어요. 전에 헤어지고난 후 징그럽게 운전자들 얼굴 확인하고 다녀선 진이 다 빠져 버렸어요. 그런데 이 향수는 내가 더 좋아하니까, 이건 신조 못하겠다.

2009-07-27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7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7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7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 아픈 낮 - 파블로 네루다

 

자작나무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꼿꼿하고 검푸른 나무 줄기 사이로 자작나무가 
좌우로 휘어져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어떤 아이가 그걸 흔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흔들어서는
눈보라가 그렇게 하듯 나무들을 아주 휘어져 있게는 못한다
비가 온 뒤 개인 겨울 날 아침
나뭇가지에 얼음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려 딸그락거리고
그 얼음 에나멜이 갈라지고 금이 가면서
오색 찬란하게 빛난다
어느새 따뜻한 햇빛은 그것들을 녹여
굳어진 눈 위에 수정 비늘처럼 쏟아져 내리게 한다
그 부서진 유리더미를 쓸어 치운다면
당신은 하늘 속 천정이 허물어져 버렸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나무들은 얼음 무게에 못 이겨
말라붙은 고사리에 끝이 닿도록 휘어지지만
부러지지는 않을 것 같다. 비록
한 번 휜 채 오래 있으면
다시 꼿꼿이 서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리하여 세월이 지나면 머리 감은 아가씨가 햇빛에 머리를 말리려고
무릎꿇고 엎드려 머리를 풀어던지듯
잎을 땅에 끌며 허리를 굽히고 있는
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얼음 사태가 나무를 휘게 했다는 사실로
나는 진실을 말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소를 데리러 나왔던 아이가
나무들을 휘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시골 구석에 살기 때문에 야구도 못 배우고
스스로 만들어낸 장난을 할 뿐이며
여름이나 겨울이나 혼자 노는 어떤 소년
아버지가 키우는 나무들 하나씩 타고 오르며
가지가 다 휠 때까지
나무들이 모두 축 늘어질 때까지
되풀이 오르내리며 정복하는 소년
그리하여 그는 나무에 성급히 기어오르지 않는 법을 
그래서 나무를 뿌리째 뽑지 않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나무 꼭대기로 기어 오를 자세를 취하고
우리가 잔을 찰찰 넘치게 채울 때 그렇듯
조심스럽게 기어 오른다
그리고는 몸을 날려, 발이 먼저 닿도록 하면서
휙 하고 바람을 가르며 땅으로 뛰어 내린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자작나무를 휘어잡던 소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도 돌아가고 싶어한다
걱정이 많아지고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같아서
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얼얼하고 근지러울 때
그리고 작은 가지가 눈을 때려
한 쪽 눈에서 눈물이 날 때면
더욱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이 세상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운명의 신이 고의로 오해하여
내 소망을 반만 들어주면서 나를
이 세상에 돌아오지 못하게 아주 데려가 버리지는 않겠지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자작나무 타듯 살아 가고 싶다
하늘을 향해, 설백의 줄기를 타고 검은 가지에 올라  
나무가 더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늘어뜨려 다시 땅위에 내려오듯 살고 싶다
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자작나무 흔드는 이보다 훨씬 못하게 살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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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6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6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6 0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6 01: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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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6 02: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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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6 0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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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6 0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6 0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9-07-26 02:16   좋아요 0 | URL
ㅋㅋ 비밀 댓글이 난무하는군요! 촉촉에 반대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7-26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켜놓고 자야겠다. 너무 좋아요..
왠지 부러운데 나도 비밀 댓글로 해야할까?
말미잘님 서재에 오늘 내꿈에 말미잘님 나올거 같다고 했는데,
이거 틀어놓고 자면 아치님 나올까? ㅎㅎㅎ

Arch 2009-07-26 02:34   좋아요 0 | URL
으흠, 나도 좋은데요. 난 내 목소린데 좋다고 듣고 앉았었는데.
자뻑도 이 정도면 치명적이지 않아요? 히~
숲과 야, 구에서 버벅댔지만 모른척하면 잘 안 들려요.
제가 꿈에 나오면 너무 행복해서 깨기 싫을지도 몰라요.

hnine 2009-07-26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소리에 윤기가 있네요. (촉촉한 윤기라고 썼다가 '촉촉한' 은 지움)
좋습니다 ^^
저도 언젠가 어디엔가, 적어놓았던 시인데, 오랜만에 이렇게 다시 만나니 그 또한 좋습니다.

Arch 2009-07-27 00:26   좋아요 0 | URL
히~ 칭찬이 쑥쓰러워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