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좀 불편한 A라는 친구가 있다. 며칠 전, 친구들끼리 놀러가는 얘기를 하면서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설왕설래하고 있는데 A가 자기는 어디 가든 못노니까 아무데로 가도 상관없단 소리를 했다. 순간 모두들 합죽이가 된 듯 입을 다물어버렸다. 누군가 나서서 말하진 않았지만 모두들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까지는 아니길 바라지만.

 내가 느끼는건 이런거야, 난 조금 다르니까.
당연하다. A가 말하는 것에서 빈틈을 찾기란 내게서 장점을 찾는 것 만큼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불편했다. 

 한번은 말을 잘 못하는 B가 자신은 입이 장애라는 말을 한적이 있다. 그때도 A는 나같은 사람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상처받는다는 소리를 했다. 불관용, 혹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얘기할 수 있는 차이. 그런데 이때도 난 불편했다.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난 그가 호소하는 '나를 알아봐줘, 나는 이런 사람이야.'란 선언이 불편했던 것 같다. 

 친구 중 한명은 A가 산에 가든 강에 가든 땅굴을 파서 거기 들어가 있든 우리가 알아서 배려할텐데 말의 앞뒤를 잘라먹고 얘기를 해서 싫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방관하거나 모른척하는게 얄밉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자기 입장을 얘기하는게 왜 싫은지, 그럼 우리 눈치를 보면서 행동하길 바라냐고 물었지만 말을 하는 나 역시 확신할 수 없었다. 나도 그들처럼 생각했으니까. 

 나는 왜 누군가의 적극적인 도움 요청에 냉담해질까. 
 누군가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난 자발적으로 나서서 도와준다. 선의는 나 자신의 뿌듯함을 담보한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나에게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고, 지금 자신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몸짓을 보이면 도와주려던 맘이 깨끗이 사라진다. 특별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도움도 아니면서 말이다. 선의는 자족과 동반해야만 하는걸까?

 얼마 전에 다른 친구는 중국 사람들은 더럽고 시끄럽단 얘기를 한적이 있다. 친구는 아주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친구 말에 따르면 자신이 겪어봐서 다 안다는 식이었다. 네가 이유없는 편견으로 피해를 봐도 괜찮겠니, 그러는 너는 잘 씻니 정도는 맞받아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건 중국 사람들이 정말 그런지, 친구의 생각이 틀린건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였다. 직접 겪어봤다는 것에 대해선 달리 반박할게 없었지만 다른 방식으로 꾸준히 친구를 설득하려고 했다.  물론 사람의 생각이 쉽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지만.

 현명한 나의 친구는 말해줬다.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다보면 그 자체가 불관용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각자 다른 이유로 차별을 받을 수 있고, 그 차별에 대해 설명해야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면 난 A처럼 내 입장에 충실하기만 한 대답을 할지, 아니면 알아서 배려할 수 있도록 가만히 일을지 모르겠다.

 여자가 이렇네, 저렇네라는 말에는 발끈해서 죽을 듯이 덤비는 주제에 자기로선 최선인 방법을 쓴 A에게는 불편한 느낌을 갖는건 정말 병맛이다. 불편한 느낌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나 역시 타인의 불편함을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강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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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에서 일한지 한달이 다 되어 간다. 그 사이 내 자리는 연필과 볼펜의 연필꽂이 서류함으로 채워졌다. 파티선엔 포스트잇과 업무 관련한 내용들이 핀으로 꽂혀 있고, 다이어리엔 이번 달 계획이 적혀 있다. 나는 내 자리에서 일하고 자고 알라딘을 들여다보는게 좋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 어느 날 영문도 모르게 해고 당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세상이 원래 가진 자들 논리로 움직이는거니까 체념하고선 다른 직장을 구해야할까, 노동부에 신고해서 떼인 월급을 받고 깔끔하게 정리해야할까. 월급을 받는 것만큼이나 곧 다른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마 내가 쫓겨난다면 난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아마 그보다 먼저, 왜 내가 쫓겨나는지 이유를 알아내려 할 것이다. 이유가 합당하지 않다면 싸워서라도 내 자리를 지키려고 할 것이고. 내가 악독하거나 이해심이 없는게 아니라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회사에 고용됐지만 곧 나 역시 회사의 운명에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철거민들에게 사람들은 말한다. 거기보다 더 좋은데 가서 살면 좋지 않냐고. 돈은 중요한 문제지만 그들이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그곳은 그들이 살았던 곳이며 앞으로 살아갈 곳이다. 잘 가는 슈퍼와 자주 보는 이웃들이 있다. 봄이면 눈을 맞추던 화단의 꽃이 있고, 골목의 좁고 들큰한 냄새가 몸 깊숙히 박혀 있다. 단지 오래됐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나가라고 하는건 정말 말도 안 된다. 그런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글샘님의 서재에서 종잇장처럼 구겨지는 노동자들을 보았다. 비참했다. 마치 처음 알았다는 듯이 비참했다. 무기력해지는건 순간이었다. 손에 잡히는게 아무것도 없다.

 용산 참사에 대해 친구가 자신은 모른다고 말했을 때 난 속으로 생각했다. ‘어쩜, 그것도 모를 수가!’ 그런데 안다고 생각한 나 역시 모르고 있었다. 사실 관계뿐 아니라 그들이 느꼈을 감정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눈물이 나오고 맘이 답답하다.

 대한민국 희망 보고서 ‘유한킴벌리’를 읽었다. 아, 이토록 낯선 희망을 책은 태연하게 인용하는구나. 서로가 자극제가 되어 주고, 노동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회사. 결정을 따르라는 통지가 아니라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몇일이고 노사간에 대화를 할 수 있는 회사. 평생 고용이 보장되는 회사. 노동조합의 활동이 무색할 정도로 노동자와 회사가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는 회사. 희망이란 말은 참 아득했는데......

 책 속에만 있는 희망이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도 희망이 좀 보였으면 좋겠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그들에게, 그들을 바라볼 용기가 안 나는 우리들에게도. 미디어법 반대 시위를 며칠 나갔다고 할 일 다 한 것처럼 방관했던 내게는 얄팍한 희망이라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에 지금 대한민국은 곤혹스러운 것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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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9-08-06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순간에 희망을 얘기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순오기 2009-08-06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ㅜㅜ

Arch 2009-08-0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머큐리 2009-08-07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몇일... 할 수 있는것이라도 하자고 마음 먹고 있어요... 정말 할 말이 없어지는...에휴

Arch 2009-08-07 12:53   좋아요 0 | URL
으음... 힘내자구요!
 

 나는 평소에 주로 단화나 운동화를 신는다. 옷을 조금만 예쁘게 입었다가는 영락없이 불편한 신발을 신어야하기 때문에 나는 주로 신발을 골라놓은 다음에 옷을 선택한다. 운동화에 맞는 옷은 활동하기 편하고 걸어다니기 좋다. 하지만 옷은 캐주얼한 것만 입어야하고, 조금만 신경을 덜 쓰면 영락없이 집 근처 가게로 아이스크림 사러 나온 거친 Arch 행색이라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마침 꽃무늬 스커트가 보였다. 오랜만에 좋은 사람을 만나니까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신발 생각 안 하고 바로 옷을 입었다. 하이힐도 아니었다. 검지 손가락만한 굽이었다. 이 정도쯤이야, 근거없는 자신감까지 언뜻 굽 사이로 새어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타협을 해도 그 옷에 운동화는 정말 아니었다. 게다가 운동화는 아치의 아찔한(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일 것이다.) 다리선을 가린다. 며칠동안 잠깐씩 신었으니 길이 좀 났겠구나 싶기도 했다. 키가 조금 커졌고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폼난다. 맞아, 맞아. 여기에 운동화는 별로였어. 혼잣말로 응원해주는 것까지! 게다가,
 얼핏 보이는 실루엣은 예.쁘.기.까.지 했다. (방점을 유의해야함)

 여성성에 있어서 난 늘 외야였다. 화장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늘 화장 안 했단 오해를 받고, 점점 아줌마로 불리는 횟수가 많아지며(제 3의 성인 아줌마에 대해서 다음에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늙어서 못쓰겠단 소리는 몇년 전부터 들어오고 있으니까. 나도 꾸미면 이쁘겠다거나 왜 자기 관리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 정도는 약과였다. 총체적인 관리의 필요성은 내가 점점 인간으로 살기보다는 '여자'로 살기만을 강요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동안 하이힐을 안 신었다면 개뻥이고 그저 불편할 뿐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신는 구두는 얼마나 멋지던지.
 
 무사히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이건 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쓰라리고 불편한거다. 야심의 꽃무늬 치마는 바람 난 옆집 이씨처럼 미친듯이 휘날리고 화장은 번지고 들뜨고 뜨고 계속 뜨고 뭉개지고 난리가 아니었다. 이래서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안 되는거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닥에 앉고, 바람에 날리는 치마를 움켜쥐고, 절룩거리다 뒤뚱거렸다. '저기까지만 가면 돼'라면서 주문을 외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에라이 모르겠다면서 치마고 신발이고 다 집어던져 버리고 싶었다. 나는 상식은 없지만 그래도 눈치는 조금 있던터라 신발을 집어던지는 대신, 발을 살펴봤다. 물집 사이로 빨간 속살이 뭉개져있었다. 밴드를 붙였다. 좀 괜찮다. 뭔가 잡아채듯이 자꾸 발이 앞쪽으로 쏠렸지만 그래도 좀 괜찮아졌다.
 다음날 아침 발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 한게 어디냐며 발과 아치를 칭찬해주었다. 자, 이제 여유있게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면 되는데......

 우연히 친구를 만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교대로 북어국을 먹으러 간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교대에서 센트럴 시티까지 걷는건 좋지 않았다. 좋지 않았을 뿐더러 당황스러웠다.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면 아치 말로는 '껌인데' 말이다. 오르막길은 숨이 찼으나 견딜만했다. 문제는 내리막길. 체중이 온통 앞으로 쏠리자 발바닥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밴드는 밴드대로 벗겨지려고 하지 내리막은 끝이 없지.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 돼서 친구를 바라봤다. 친구는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하이힐에 얽힌 무서운 음모를 들려줬다. 나는 깜짝 놀라 신발 위에서 내려왔다. 먼지에 찌든 인도가 이토록 좋고 편하고 멋지다는걸 처음으로 알았다. 발바닥이 보도에 탁탁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친구에게 살짝 말해줬다.

 하이힐의 필수품은 자동차라고.
 
 친구는 빙그레 웃으며 나나 되니까 아치꼴이 창피해도 같이 다녀주는거란 얘길 해줬다. 참 좋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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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8-06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말이죠. 예쁘게 보일려고 구두신고 나갔다가 도저히 못참고 지하철 매판대에서 슬리퍼를 산 적도 있어요..

난 쉬크하게 입고 싶어서 입는게 아니라 운동화에 맞춰 입을 수 있는 스탈은 케쥬얼 아니면 직선적이고 단순한 것 밖에 없어서 취향을 운동화에 맞췄어요 --;; 나도 편한 구두가 개발 된다면 샬랄라 원피스 입을 수 있을텐데..
우주로 비행선만 보내면 뭐하냐구욧, 내가 신을 수 있는 구두도 못만들어주면섯!!

글고 보는 눈도 없군.. 섹쉬하기만 한 아치가 어디가 무성적 아줌마란 말이양!!

Arch 2009-08-06 09:50   좋아요 0 | URL
제가 휘모리님을 알죠~ ^^ 저라도 개발해야할까봐요., 16년 동안 편한 구두 만들기에 전념한 물집 아치 선생, 뭐 이런걸로.
섹시가 아니라 섹쉬라 다행이야^^ 약간 쉰내 난달까 히~

조선인 2009-08-06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증언) 내가 다녔던 여대에는 15cm 굽을 신고도 경사 45도가 넘는 언덕을 자유자재로 뛰어다니는 여인이 적어도 1천명은 있었음. 거짓말 아님.

Arch 2009-08-06 09:51   좋아요 0 | URL
갑자기 1천여명의 여인들이 하이힐을 신고 언덕을 야마카시처럼 뛰어다니는 장면이 떠올랐음. 암요, 놀라울 따름이죠. 하이힐을 잘 신는 유전인자가 따로 있나봐요.

Forgettable. 2009-08-06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엄청 잘 뛰어다녀요. 오히려 힐을 신어야 더 잘 뛴다는 속설이-
그러나 그건 대학생 시절, 학점에 목숨걸었기 때문은 아니고 16번 수업 중에 한두번 쯤은 지각하지 말자는 일념하에 뛰었었는데 오히려 좀 나는 듯 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알바갈 때랑.. 힐신고 경마장 아저씨들보다 더 잘 뛰다가 도착해서 토했다는 소문도-_-

지난봄에 킬힐 사려고 한 1주일 고민했었는데 포기- 킬힐은 자동차 없으면 진짜 못신는다며 ㅋㅋ

Arch 2009-08-06 09:52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에 이어서 막 상상하게 만드는 뽀님의 댓글. 토했으니 무효!

자동차 사면 킬힐 사도록해요. 정말 그거 신다가 죽을지도 몰라요.

2009-08-06 1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6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6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6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9-08-06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발목이 아파요.


먼 산을 바라보며.

Arch 2009-08-06 14:11   좋아요 0 | URL
제 발목은 진즉부터 문제가 많았죠. 먼 산을 바라보며, 이거 있잖아요. 귀여워요. 쥬드님이 하니까 더~

Forgettable. 2009-08-07 17:53   좋아요 0 | URL
아무리 봐도 귀엽다는

Arch 2009-08-07 22:06   좋아요 0 | URL
그쵸, 뽀님^^
 

 * 동생은 선덕여왕을 볼때면 맥주를 꼭 마셔야 한단다. 긴장감 때문에 목이 탄다나 뭐라나. 술 먹는 핑계도 가지가지라고 했지만 한 캔 남은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 먹으면서 나도 선덕여왕 덕을 보는거라고, 선덕여왕은 후세의 아치까지 즐겁게 해주는구나란 생각을 잠깐 했다.  
  

* 김영하의 도쿄 여행자에 보면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생맥주의 거품층을 만드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에게 맥주 거품이 술이 아닌 술을 사칭하는 '거품'에 불과하다면 일본에서는 맛의 풍미를 높여주는 하나의 잉여라는데, 그 잉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일본인의 충만한 자의식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한 숙련, 무가치한 초과, 장인은 그 모든 것의 '거품' 속에서 위태롭게 존재하는 눈부신 잉여이다.' 멋지다. 내가 마신 거품은 약간 쌉싸름했다.  

* 김영하의 책에서 본대로 사람들에게 생맥주와 일본의 상점에 대해서 그럴싸하게 귓뜸을 해주면 일본에 자주 다녀오냐는 반응을 접한다. 그럴때면 나는 짐짓 모른척 팔짱을 끼고 어떻게 말을 풀어볼까 생각하다 그냥 사실대로 말해준다. 왠지 상대방이 다녀온 일본과 내가 다른 누군가의 감각을 통해 접한 일본이 다르다면 그 간극에 대해서 설명해줘야할 것 같으니까. 거짓말을 잘 하지만 이어나가지는 못하고, 이어나간다고 하더라도 내것이 아니기 때문에 별로 재미있지 않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게 재미있다. 나를 콘텐츠화하는 것은 다른 것을 체계적이고 심도있게 풀어낼 재간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나처럼 남도 나를 재미있어 하지 않을까란 가끔씩 발작적으로 생기는 착각도 한몫한다. 

*  한잔의 맥주는 늦은 밤을 풍요롭게 한다. 

* 호가든을 처음 먹어봤을 때 달콤한 오렌지가 목 안쪽에서 퍼득거리면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이건 뭐냐고 호가든을 권한 사람에게 눈짓으로 묻자, 상대방은 그럴줄 알았다며 어깨를 으쓱하고선 다른 맥주를 골라줬다. 나의 맥주 연대기는 그때 새로 시작했다. 

* 어제는 저녁도 든든히 먹은 주제에 앉은 자리에서 닭날개 다섯개를 먹어치웠다. 그 전날은 속이 더부룩하다면서 자정이 넘어 포장마차에서 사온 갈비와 소면을 양껏 먹었다. 오늘은 삼겹살로 배에 기름칠을 해놓고선(아, 이런 값싼 표현) 감자튀김이 무척 당긴다면서 말끔하게 다 먹어치우고. 그때의 술은 모두 맥주였다. 맥주는 먹을수록 배가 불러야 정상인데 얼음통에 담긴 맥주, 잔을 꽝꽝 얼린 곳에 따라 마시는 맥주, 집에서 간단하게 컬린스에 따라 마시는 맥주, 모두 기분만 좋게 하고 배를 부르게 하진 않았다.
 아, 어쩜 좋니. 배야 그렇다치고 얼굴 윤곽이 제멋대로 되는 것도 그렇다치고 여름이 다 가는데, 맥주가 그다지 맛있을 것 같지 않은 계절이 돌아오는데 어쩌면 좋니.(이건 반전이다라고 우기는 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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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8-03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텨뷰가 너무 재미있던데요... 기대할께요 (이건 반전아님)

Arch 2009-08-03 15:12   좋아요 0 | URL
ㅋㅋ 머큐리님 그런거 좋아하시는구나. 감사합니다. 반전 아니길 바랄게요~
막 댓글 달다가 오늘 바람구두님이 올려놓으신 '착한 블로거'증후군이 떠올랐어요.
오늘만해도 벌써 세번째 알라딘에 들어와서 이러고 있는 아치. 무려 휴간데 말이죠.
 

 오묘한 색이었다. 다른 게들처럼 잿빛이거나 무채색이 아니라 발그레한 분홍과 연한 보라색이 합쳐진 몸체에 자꾸 건드리고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다리. 조개 캐는 것도 잊고 난 자꾸 이 아이, 이름도 보르는 귀여운 게에 꽂혀서 갯벌에 코가 닿을 정도로 몸을 숙였다. 아가미인지 입인지 (생물 시간에 배운 것중에서 곤충은 머리, 가슴, 배가 다라는걸 아는 정도면 우수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무지렁쟁이 Arch) 모를 조그만 구멍을 뻐끔거리며 숨을 쉬고 손을 대자 집게로 한번 건드려보는 이름 모를 게. 한낮의 갯벌은 그들의 숨결로 반짝이고 있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이름을 제대로 아는게 없어 통틀어 조개인, 달팽이 모양을 닮은 무엇인, 지렁이류라고 짐작되는 역시 무엇인 생물들은 내 발과 손가락을 간지럽힌다. 갯벌 속에 숨고, 자기들끼리 할말이 있는지 한군데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다. 옥찌들을 따라온 부안 갯벌 체험에서 난 아이들보다 더 신이 났다. 신이 나면서도 자꾸 미안해져, 미안하면서도 혹 이곳까지 기름이 흘러들었던건 아닌지 의심이 생겨, 단순히 게만 보고 헤벌쭉 하며 웃을 수만은 없었다. 

 언론학 수업을 받을 때 지역 사안을 주제로 기사를 작성해오는 리포트가 있었다. 나는 새만금 사업에 대한 내용으로 리포트를 작성했다. 환경이 파괴되는건 동의하지 않지만 전라도 특히 전북이 갖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과 정치 논리로서 추진을 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강준만 교수님도 '지방은 식민지다'에서 비슷한 논지의 말씀을 하셨다. (몇년 전 내 생각을 주장하기 위해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는 중) 그땐 순전히 내가 갖고 있는 얕은 지식과 감정만을 내세운 주장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 좀 더 공부하고 그래서 제대로 알았다면 난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레포트로까지 쓸 정도로 뻔뻔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난 너무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웬만하면 크게 신경쓰고 싶지 않았던거다. 갯벌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나서야 몇년 전에 단지 의견에 불과했던 그 생각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 깨닫게 됐다. 내가 결정권자는 아니었지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이었을지도 몰랐는데 난 너무 안일했다. 햇볕 아래서 투닥거리며 살아가고 감미로운 색감으로 날 감동시킨, 아니아니, 내가 감동지 여부는 상관없다. 난 이 친구들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우리도 발전해야한다며 그들 입과 몸을 차가운 콘크리트로 막은게 아닌가. 결국 '우리의 발전'-발전이란 말에 거부감이 들지만-보다는 가진 자들의 좀 더 다양한 투기지역 확보에 불과한 결과를 난 정녕 예상하지 못했을까. '우리의 발전'을 핑계로 이 친구들의 눈과 입을 막고,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몰아내는게 정당한걸까, 정당한걸 떠나서 가당키나 한 일일까. 

 지난번에 생태 기행을 가면서 만난 새만금 생태 조사를 하는 분의 얘기에 따르면 원래 만들어야할 세개의 둑 중에 예산 문제로 하나를 덜 만드는 바람에 예상보다 둑의 물 조절이 여의치 않아 조개들과 어패류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일 없이도 생명이 죽어나가는 판이다. 

 나는 이렇게 한나절, 따사로울 정도로 고맙고 행복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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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3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3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3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