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적으로 결정된 중국 출장이지만 어쨌든 가요.
CH한테 아빠가 태워준거 말고 태어나서 한번도 비행기를 안 타봤다고 했더니,
규정이 바뀌어서 국내선은 안 그런데 국제선에선 신발 벗고 탄다고 하던데, 맞나요?
히~ 녀석이 놀리느라 한 소린줄 알아요^^ 

잘 다녀올게요. B가 택시는 먼저 타지 말고, 밤길은 혼자 걷지 말고, 꼬박꼬박 자기한테 전화하라고 하는데... 무사하겠죠? 으~ 촌스러워!

일단 B 말은 유언비어 전문이니 제쳐두고, 사람들이 괜히 겁주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데 J씨가 지나가길래 살며시 물어봤어요.

- 여기 여행 안내서에도 시비 붙지 말라는 말이 나와있는데 중국에서 혹시 시비 붙다가 칼침 맞으면 어떡하지? 

- 사장님 같은 사람이나 맞지, 우린 아냐. 사장이야 아무한테나 시비 걸고 다니니까.

 안심하라고 하는 소리일까?

아무튼,
 별다른 일 없이 월요일날 뿅하고 나타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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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08-27 0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발벗고 타는 농담이 농담이 아니죠, 요즘은. 국제선은 신발 벗고 타는게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몰라도, 미쿡 같은데서는 벗으라는데 안 벗으면 시큐러티에 끌려갑니다. 중국은 미국보다 더 해서 묻지도 않고 잡아가니깐, 남들 벗을때 꼭 아치님도 신발 벗으세요.

순오기 2009-08-27 07:22   좋아요 0 | URL
진짜에요? 하이드님~~

조선인 2009-08-27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 함부로 기념품 사지 말아요. 가장 위험한 장소라지요.

별족 2009-08-27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학생때 제주도가 집인 선배가, 명절에는 비행기에도 입석 태운다고 해서 믿었다는.

머큐리 2009-08-27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탈없이 월욜에 뿅하고 나타나시길....

라주미힌 2009-08-27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여권이나 잘 챙기시길...
제일 잘 잃어버리는게 여권이라는데... ㅋ

Forgettable. 2009-08-27 17:33   좋아요 0 | URL
라님이 젤 잘 잃어버리는거 아니에요?
잃어버리기 대마왕인 나도 여권은 잘 챙긴다!!

비로그인 2009-08-27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물! 선물!!

바람돌이 2009-08-27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이 사람들이... 첫 비행기라는데 이런 뻥만 치고 말이죠... ^^
그냥 중국갈때는요 비행기 내릴때 활주로에서 횡단보도 건널때만 조심하심 돼요. 잘못하면 비행기에 치어요. ^^

프레이야 2009-08-27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사히 귀환하시길요.ㅋㅋ

라주미힌 2009-08-27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진짠데... 입국심사때 말 잘못했다가. 공안인지 뭔지에 끌려가서 3시간 조사 받은 사람 있어요;;; 크

무해한모리군 2009-08-28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건 큰 거 말고 맛난걸로 부탁해여~ ㅎㅎㅎ
 

*  

 어제, 책으로 다 읽었고, 이번주라도 텔레비전은 조금만 보려했기에, 안 보려고 안 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한비야씨의 목소리는 너무 또랑또랑하고 확신에 차있어서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1부와 2부의 앞부분을 못본게 안타까웠다. 그녀가 해준 말들은 멋진걸 넘어서서 감동적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삶에 강한 확신을 갖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은 자기 만족에 그치지 않고 타인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녀는 세계 시민 정신을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 좀 더 거창한걸 해야지 폼나지 않을까란 것 등등을 늘어놓을게 아니라 지금 내 자리에서 먼저 충실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했다. 그래, 맞아, 그렇게 하면 돼. 다시 힘을 좀 내도 될 것 같았다. B가 옆에서

'너는 전기 코드 뽑고 다니고, 물 잠그고 다니느라 바쁘니까 벌써 세계시민이었네'란 추임새를 넣어 아주 잠깐 뿌듯하기도 했다.

 이 일이 내 가슴을 뜨겁게 하니까. 이 말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지다. 오늘 나도 이게 내 가슴을 뛰게하는구나란걸 느꼈다. 잠깐 그러고 말 것 같아 따로 페이퍼로 쓰진 않겠다. 오래 지속되고, 지속되는데도 자꾸 내 맘을 뛰게하면 아마 이마에 붙여 동네방네 떠들며 자랑할 것이다. 

 한비야씨가 여성 할례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문득 그토록 치명적인건 아니지만 다이어트로 표준화된 몸매, 성형으로라도 예뻐져야한다는 분위기 역시 여성에게는 폭력적인게 아닌가란 생각이 떠올랐다.

 아침에 A가 밥을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잠결에 '밥을 하라고 시킬 때만 하지, 아침부터 대체 뭘 하느냐'는 말을 했다. 노예에게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으례 그렇듯 아무렇지도 않은척 휘적휘적 방 밖으로 나갔다. B가 내 말을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다. 무안해서 얼굴이 벌개졌다. 나는 왜 그랬을까.
 
 전에 가사 노동 분담에 대해 D와 얘기를 한적이 있다. 더러움을 느끼는 각자의 지표는 다르니까 서로에게 맞는 방식으로 맞춰간다는 D의 얘기에 살짝 성이 났다. 그럼 더러움에 예민한 사람만 계속 가사 노동을 해야하는건가? 그때는 아마도 내가 더러움에 예민한 족속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니었다. 

 집안의 A는 내가 한 청소도 B가 한 청소도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 나는 A가 어떤 일을 하는줄 알고 있고, 그 일이 A의 육체와 감성을 얼마나 갉아먹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B와 내가 가사를 전담해서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A의 생각은 다르다. A는 더러움에 나와 B가 갖는 역치와 비교도 안 될만치 민감하며 가사 노동 자체를 '자신의 일'로 생각한다. A의 생각이 틀리지 않는게 나는 A가 가사 노동에서 발군의 실력을(주로 많이 해서) 보여줘왔으니 으례 가사 노동은 A몫이라고 여겨왔다. 틀렸고, 잘못됐는데 A의 고지식한 면을 나는 이용해왔다.

 해결이 안 되는 상황에서, 피곤할텐데 아침부터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짜증이 난거다. 하루종일 고민했다. 방법이 없다. 내가 더 부지런해지거나 둔감해질 수 밖에. 조금 더럽게 살면 안 될까. 많은 가전제품은 집안을 좀 더 청결하고 제대로 관리하길 요구하고 있다. A스타일에 맞추려면 내가 피곤하고, 모른척하자니 맘이 불편하고. 어쩐담.

*   

 비를 쫄딱 맞았다. 비 맞는거 좋다고 했지만, 퇴근길에서는 아니었다. 책이며 소지품이 죄다 젖어버렸다. 젠장. 얇은 소재의 옷 덕분에 몸매가 그대로 노출이 됐다. B가 한마디 해줬다.
- 비 맞은 생쥐꼴인데 배가 볼록 튀어나와서 거, 보기 좋수다.
 난 보기 좋은 배인거다.

*  

 박노자씨의 책을 읽다가 군입대를 피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영주권을 얻는 사람이 나오는 부분에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볼 때 그들이 폭력적인 군대를 피하는 방법이 그렇게 비난받아야하고, 범법자로까지 규정해야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납득은 되지만 뭔가 이상했다. 군대를 안 보낼 수 있는 자격이란 것도 실은 어느 정도 사회적 인식과 개인적 자원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내가 불편한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국가 안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는 선택의 기회도 없는 사안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고 할까. 이건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유승준을 외국인이라며 입국을 거부시키는 방법은 치졸할지 모르지만 빽도 없고, 힘도 없어 자신의 시간을 암울하고 폭력적인 군대에서 보내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해야하는게 아닐까.

 연애를 안 하니 시간이 남는다. 시간이 남는데도 늘 잠이 부족했다. 연애 대신 서재질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서재질은 문득 서방질로 읽힌다.
 며칠 서재를 쉬니 시간이 남는다. 공부도 하고, 책도 보고, 드득드득거리며 생각도 했다. 아침에 잠깐 팔뚝을 내놨는데 금세 타버렸다. 밤공기가 점점 선선해진다. 내 팔뚝은 본래 색으로 돌아올까?

 * 

주말에 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 되지만 걱정하는 만큼 기대하고 있다. 어떤 느낌일까, 어떤 만남일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 

일 때문에 찍은 사진이다. 다음엔 여기서 이벤트를 하자고 할까란 생각이 정말 아주 잠깐 들었다. 몹쓸 이벤트쟁이.


임피에 있는 정자. 나무가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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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8-21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릎팍도사 - 한비야씨편 저도 즐겁게 봤어요. 그 분이 그러더라구요. 저는 아직도 제가 앞으로 뭐가 될지 너무너무 기대되고 궁금해요라고... 50문턱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그분이 너무 멋져보였어요. 그리고 대학입시에 모든 인생이 걸린것마냥 조급해하며 아이를 억박지르는 게 과연 옳은건가 생각도 하고요. ^^

Arch 2009-08-21 00:50   좋아요 0 | URL
나도 너무너무 궁금한데, 내가 뭐가 될지^^ 저도 그 부분 정말 좋았어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단 소리는 좀 뻔하지만, 한비야씨만큼 뻔하지 않고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도 드문거 같아요. 대학 입시에서 비켜나면 좀 다른게 보일 수도 있을텐데, 안타깝죠.

순오기 2009-08-21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딸은 한비야씨 방송보고 건강관리를 잘해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팍팍~ 왔답니다.
그래서 그 밤에 나가서 뛰었대나 달렸대나~~ ㅋㅋㅋ

Arch 2009-08-21 10:03   좋아요 0 | URL
멋진 엄마에 멋진 딸이로군요^^ 귀엽네요.

다락방 2009-08-21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ch님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기가 다야 여기서 끝이야 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서도 되새겨 보곤 하니까요. 가끔 저는 제가 생각하는 것들이 Arch님을 따라 잡으려면 멀었다고 생각해요. Arch님의 그 생각들과 의식들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그동안에 찾아오지 못했고 갖고 있지도 못했던 면들이죠.

저도 오늘 이 페이퍼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는데 특히 군대에 대해서도 불끈했어요, 지금. 제 남동생은 군대를 다녀왔어요. 정말 보내기 싫었죠. 부모님도 늘 말씀하셨어요. 돈 있고 빽있고 안보낼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뭐 어떻게 손써볼 것도 없이, 손써볼 능력(?)이 없으니 그저 보내야 했지요. 이 땅에서 살기엔 정말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연애를 안하니 시간이 남나요? 저는 연애를 안하니 성질만 괴팍해져요. 어휴.

Arch 2009-08-21 10:24   좋아요 0 | URL
제가 2NE1이거든요(역시 썰렁해) NE는 new evolution이라죠? 사람이 겸손해질줄도 알아야는데 말예요. 제가 다락방님의 이와 같은 댓글을 받으려고 서재질을 한다는걸 아실라나, 모르실라나^^

전 군가산점 문제 때 남자들이 참 찌질거린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어요. 그까짓거 줘버려란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일상적인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잠시 군대 갔다오는게 뭐가 어때서란 생각도 했죠. 더군다나 그들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여성적인 것을 강요한다고 생각하기까지 했어요. 엄마처럼 넓은 품, 이런거 믿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친구랑 군대 얘기를 하면서 (축구나 후일담류가 아니라) 몰이해가 엄청났구나란 자각이 드는거예요. 내가 이해받지 못한다고 답답했던만큼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겠구나. 대체 어디서 저런 생각이 나오는지 서로의 머리를 까보고 알아낼 수 없으니까 자꾸 생각하고 읽는 것 같아요.

연애 역시 계급적으로 위계화되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봐요. 그런 분류법에 따르면 저는 지방에 살고, 돈도 없는데 나이는 많고 말이 많아서 최하층 정도 될까? ^^ 다락방님에게 다른 재미가 생기면 좋겠어요.

다락방 2009-08-21 13:04   좋아요 0 | URL
저는 Arch님보다 나이가 '더'많으니 완전 밑바닥요. ㅎㅎ

저는 있잖아요, Arch님.
서재질 잼나요. ㅎㅎ
서재질도 잼나고 Arch님도 좋고, 뭐 그래요. 씨익 ;)

Arch 2009-08-21 13:31   좋아요 0 | URL
그 아래 배 나온 저 있어요^^

맞아! 다락방님은 서재에선 우아한 이미지이면서 괴팍하다니! 안 어울려요^^ 저도 서재에서 좀 더 재미있는 일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 얘기가 아닌가? 뭐 암튼. 저도 다락방님이 좋아요. 히~

머큐리 2009-08-2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의 꿈속의 D님이 다락방님이지요..ㅎㅎ (웬 뒷북?) 아 글구 저도 낼 만남을 많이 기대하고 있어요...아치님 얼굴 보면 알아보려나...하는 걱정에 사진을 30초 뚫어져라 쳐다봤어요 ^^ (아~ 눈아퍼라)

Arch 2009-08-21 15:16   좋아요 0 | URL
사진은 최고의 각도와 온화한 빛의 조화로 보여지니까, 에~ 그러니까 봐도 소용없다는 소리예요^^ 머큐리님이랑 뽀님은 터미널에서 마주칠 수도 있겠네요. 기대는 조금만 해요. 응?

다락방 2009-08-21 21:27   좋아요 0 | URL
앗. 뽀롱났어요 ㅋㅋ

순오기 2009-08-22 00:49   좋아요 0 | URL
앗~ 그럼 다락방님도 오신다는 말씀? 히~~~ 좋아라!^^

다락방 2009-08-22 14:29   좋아요 0 | URL
앗, 아녜요 순오기님. D는 제가 맞겠지만, 저는 오늘 다른 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해요 ;;

여러분들 모두 재미있게 보내시고 사진도 많이 찍으셔서 다들 후기 올려주세요! :)
 

 회사에 들렀다가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 뮤지컬을 보러 전주에 갔다. 옥찌들은 박수를 몇번 치더니 심드렁해졌다. 내가 봐도 여러 목소리를 변조해서 내가 읽어주는 책이 훨씬 재미있겠다 싶었다. 이야기만 좀 더 첨가된, 다른 이야기들과 상상력보다는 그저 조금 긴 책을 읽는 느낌이었으니까. 아이들이 재미있게 생각하는게 똥이나 방귀라고 그걸 소재로 쓰면 어떻게 하든 먹힐거라는 안일한 기획 자체가 별로였다. 물론 흥행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고 싶진 않다. 배우들의 역량에 그 정도 무대면 더 멋진 공연을 할 수 있었을텐데......

 뮤지컬을 보고 나와서 덕진공원에 갔다. 오오~ 이 좋은 냄새는 뭐지? 연꽃이다. 호수 가득 연꽃이 피어 있었다.


사진기를 놓고 온게 한이 됐다.

더운 날씨였지만 물을 보니까 신이 났다. 우선 간단하게 두유를 한잔씩 마시고선 공원 탐색을 시작했다.


이때까진 약간 심드렁해져선 몸이 배배 꼬였던 옥찌들.

 옥찌들이랑 손잡고 다리를 건너 음악 분수도 구경하고 긴줄에 매달린 그네도 타봤다. 지희는 송이라는 언니를 만나서 잡기 놀이를 한다며 신이나 있었고, 민은 비둘기떼들을 보더니 신기한지 자꾸 쫓아다녔다. 애처럼.(이봐, 민은 애라고!) 
 

요 아이예요.

 한참동안 개미며 비둘기를 잡고 쫓고 같이 장난치던 민이 비둘기가 안 잡힌다며 내게 왔다. 나는 민에게 살짝 말해줬다.
- 민아, 오늘 집에 가서 비둘기국 끓여먹게 한마리는 잡아와야지. 
-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응?
- (굳혀야겠다는 생각에) 민아, 그거 알아?
- 뭐?
- 누나는 5살 때 비둘기 두 마리를 잡아왔어.
- 누나 진짜야?
-(능청 옥찌) 그럼. 그래서 맛있게 먹었어.
- 살금살금 다가가서 두 손으로 와락 잡는거야. 알겠지?
- 그런데 얘네들이 자꾸 날아가.
- 그러니까 살금살금. 응?
 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비둘기를 잡는다며 와하고선 양팔을 벌리며 뛰어다녔다. 그러더니 재미 없어졌는지 모래를 뿌리며, 발을 땅에 쿵쿵 찍어대며 비둘기를 쫓아냈다. 
 
 난 벤치에 앉아서 당신들의 대한민국 02를 읽었다. '체력은 국력' 부분에서 진도가 느려졌지만 낯선 시선으로 보는 한국인, 한국의 모습에서 여러가지 생각을 잡아낼 수 있었다. 전에 하얀 가면의 제국을 읽으면서는 내가 몰랐고, 관심조차 갖지 않은 다른 나라를 보는 눈을 갖을 수 있었다. 어떤 사안에서든 그만의 시선이 유효한 대목들이 있음을 늘 느껴오고 있었다. 어느 대목에선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박노자씨는 여남 문제에서 약간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란 느낌을 받은적도 있다. 고미숙씨에 의하면 그는 언어에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좋아지는건 규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딱 그렇다. 앞으로 얼마나 더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새것 증후군이 아니라 그만큼 그의 공부가 발전하고, 그 자신이 성장하는 것에서 내가 자극을 받길 바라는 역시, 욕심에서다.
 그의 책을 읽다보니 이건 내 욕망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부분들이 사실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길을 무비판적으로 습득한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하게 음모 이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체계적이고 복합적인 일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제대로 알고 싶다. 제대로 알아서 단정적이거나 선언적으로 내뱉는 말이 아니라 정말 내것인 말을 만들고 싶다란 (과도한) 의욕이 불끈, 한낮의 공원에서 생겼다.

 울 애기들 배가 고픈지 자꾸 칭얼대서 집에 가려고 일어섰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예쁜 연꽃이 좋아 옥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이런, 옥찌는 사진을 이모보다 더 잘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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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8-16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햇살이 따가운 날이었는데...즐거워 보이네요...ㅎㅎ 목소리를 변조한 아치님의 공연을 한 번 보고 싶어서 군산으로 고고씽할 예정입니다...ㅋㅋ

Arch 2009-08-16 12:20   좋아요 0 | URL
ㅋㅋ 라주미힌 때문이면서^^ 군산 오시는건 환영하는데, 제 공연은 무슨?

머큐리 2009-08-16 18:56   좋아요 0 | URL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군산이기 때문이에요..ㅎㅎ 거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 더구나 선남선녀들(?)이 모인다니 더 마음이 동하네용~~ ㅎㅎ

Arch 2009-08-16 20:37   좋아요 0 | URL
문득 군산에서 아마존의 느낌이 나는데요. 선남선녀들에 물음표는 아하! 알겠어요.ㅋㅋ

프레이야 2009-08-16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을 사진으로 뵙네요. 하이고 반가워요.^^
시원한 분수쇼도 잘 보고요~~

Arch 2009-08-16 12:21   좋아요 0 | URL
히~ 전 진즉에 프레이야님 얼굴을 뵌적이 있죠. 시원하셨어요? 감사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8-16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분수쇼도 보고 시원해 보이는 아치랑 꼬맹이도 보고 ㅎㅎㅎ

Arch 2009-08-16 12:21   좋아요 0 | URL
히~ 으흠^^

다락방 2009-08-16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정말 사진을 이모보다 더 잘 찍네. 그나저나 Arch님 얼굴 이렇게 보니 반가워요. 오랜만이야, 정말!! 이쁘기도 하지. 흐흣

Arch 2009-08-16 20:38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이쁘게 나왔지 뭐예요! 옥찌는 주로 신체 절단 사진을 잘 찍는데.^^ 고마워요. 다락방님.

웽스북스 2009-08-16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덕진공원.
아치님. 제가 전주 갔다와서 올렸던 페이퍼(http://blog.aladdin.co.kr/wendy99/2831194) 보면 덕진공원 사진이 있어요. 아무도 안간다는데 부득부득 우겨서 결국 혼자 쓸쓸히 산책했던. ㅋㅋ 연꽃을 보고 싶어서 갔는데 연꽃 피는 계절이 아니었던. (바보. 바보. 흑) 그래서 망연자실했으나, 그래도 혼자 하는 산책은 참 좋았었는데. 아치님도 다녀왔다니. 너무 반갑잖아요. 흑흑. (혼자 다녀서 그런지 저는 쓸쓸한 광경만 찍었어요. 흐흐)

Arch 2009-08-16 20:47   좋아요 0 | URL
저도 그 페이퍼 봤는데 쓸쓸한, 덕진공원 사진이 있어서 가셨는지 몰랐었어요. ^^ 그날은 햇살이 발끝에서 통통 튀어오르는 날이었고, 그네를 타려고 다들 순서를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었으며, 비둘기들은 모처럼 뻥튀기 호사에 얼굴에 웃는빛이 떠오르기도 했겠다 싶은 날이었어요.(이런 복문은!) 저도 반가웠고, 반가워요~

순오기 2009-08-17 14:21   좋아요 0 | URL
웬디니임~ 이번에 합류하면 일박도 불사할 수 있는데 쩝이에요.ㅜㅜ
덕진공원 연꽃은 못 봤지만 무안 백련지와 광주 상무저수지 연꽃은 원없이 봤지요.ㅋㅋ

어느멋진날 2009-08-16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너무 귀여워요^^ 저는 덕진공원 정말 지겹도록 봅니다 ㅠㅠ 학교 옆이 덕진공원이에요.
연인들끼리 산책하는 장소로도 많이 사용되죠. 아치님 연꽃을 보시고 온 것 같아 다행이네요,,
연꽃이 필 때가 제일 이쁘죠,,ㅎㅎ 맛있는건 드시고 가신건지 모르겠네요,,
전주 음식이 맛있잖아요^^

Arch 2009-08-16 22:2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어느 멋진날님.
가까운데 있어도 잘 보지 못하게 되기도 하잖아요. 연인들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가서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데라며 묻고 싶을 정도로^^ 전주 비빔밥 빼놓고 다 맛있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93858&PAGE_CD=S0200 
  

 지금, 당신이 필요해요.
 같이 해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하면 떼쓰는 것 밖에 안 될 것 같아 맘이 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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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08-1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려고 하면.

순오기 2009-08-14 16:57   좋아요 0 | URL
미투~~~

머큐리 2009-08-14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존경하면서 애증이 교차하는 분이에요...

Arch 2009-08-15 10: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paviana 2009-08-14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은 좀 더 우리곁에 계셨으면 좋겠어요.
한해에 두분이나 보내는 건 너무 아파요.

Arch 2009-08-15 10:4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비로그인 2009-08-15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버지는 내도록 한숨.
 

 돈을 많이 벌어서 평생 골프를 치고 싶다고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내게 골프를 왜 안 치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면 스키를 타본적도 없고, 해외여행을 한적도 없으며 명품백을 들어본적도 없다. 어쩐지 내 욕망은 주눅 든 아이처럼 길들여졌단 생각이 든다. 아이는 누군가로 인해 주눅든게 아니었다. 아이 스스로 원래 성격이 낭비란건 모른다고 덮어두거나 혹여 욕망의 사슬에 걸리면 자기 자체를 부정하게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소비와는 담을 쌓는 생활을 해왔던 거다. 혹은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먹을 수 없다’는 여우처럼 골프를 친다거나 스키를 타는게 그렇게 재미있을리 만무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일지도
  남자에게 골프는 환경을 오염시키고 운동효과도 별로 없고, 연고주의를 강화시켜 사회적인 의사소통의 비용을 크게 만든다는 대답을 했다. 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벌개졌다.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궁색한 대답이라고 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한 말은 골프에 대해 평소에 갖고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 사람에게 그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이유들이 주렁주렁 달린 고구마처럼 물 밖으로 딸려나오자 정말 굉장히 치고 싶지만 형편이 안 돼서 못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은 생각이 든거다. 말을 잘못했다기보다는 감기보다 더 빨리 눈치챌 수 있는 ‘나의 가난’을 대로변에 전시해놓았단 생각 말이다.
 가난을 부끄러워했을까? 그랬을지도. 어쩌면 부끄럽기보다는 낯선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좀 떨어졌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기도 하고. 안 좋아한다, 재미없다면 넘어갔을 문제를 굳이 나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드러나게 할 수 있는 유형의 답변을 피한답시고 구구절절 설명하다보니 도리어 궁색해지고 만거다. 
 
 모두가 이 정도는 해줘야한다거나 여자인데 괜찮은 구두나 백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말보다 더 나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렇게 살 수 있느냐' 혹은 '그래서 성격이 모났구나.'라는 거였다.  
- 골프 안 치고 살 수 있어? 그 돈으로 생활이 돼? 여유있는 사람들은 좀 편하거든. 그런데 없는 사람들은 악착같이 살아서 좀 팍팍한면이 있더라고. 
  사람들의 말이 불편한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확신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혹은 그런 반응에 일일이 나 자신의 느낌을 분석하는 습관 때문인지도.

 가난한 사람 나름의 '서민적 행복'은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하면 모든 게 불편하다. 택시 한번 타기도 몇번씩 고심하며 어쩌다 한번 탈 때는 그 정도도 호사라며 자족하다가 이게 습관으로 굳어지면 큰일일테니 언제든 '지금이 마지막'이라며 못박아둔다. 가난한건 더 이상 빵을 사먹을 수 없어 자주 가는 빵집이 있는 골목을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행여 주인이 빵을 사지 않는 자신을 보고 다른 집에서 빵을 사는줄 오해할까봐.  

 회사 일 때문에 중형차를 타고 다닌다. 기분이 색다르다. 행동 반경이 넓어진건 둘째치고 뭘 하나 해도 고급스러운 느낌이 든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는 더운 날은 더운 날대로, 추운 날은 추운대로 뭔가 처절하고 지독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해는 곧장 이마 위에서 부서지고, 자동차들의 경적소리에 오르막길에서의 난감함까지. 이를 악물로 페달을 밟아야만하는 상황들이 더할나위없이 내 시간을 팍팍하게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안다고 생각했다. 산에서 자전거를 타는 순간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동차를 몰고 다닐 경우의 비용부담에 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호사에 맘이 혹하는거다. 간단하게 '사람 맘이 간사해서 그렇지.'가 다일 수 있다. 

 돈이 없어서 그랬지, 내게도 무언가를 맘껏 소비하려는 욕망 한둘쯤은 갖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꾸 '자기 합리화'란 얘기가 떠오르는거다. 루저 의식이니, 열패감 등등을 소비하는 와중에도 소비가 곧 나를 증명하는 상황에서 버텨내가 힘드니까 자기 최면을 걸었던거다. 욕망을 막거나 자원낭비라며 둘러대지 않아도 될 것을 말이다.

 왼쪽편으로 갔던 동그란 은색 공이 다시 오른쪽으로 구른다. 오른쪽으로 갔던 공은 다시 왼쪽으로 구른다. 언제쯤 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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