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퍼 귀신이 붙었나보다. 임시 저장함이 꽉 차도록 보류된 페이퍼가 있는데 완성을 못하고 있다. 완성만 된다면야 희대의 살인마를 넘어서 서재에 두루두루 회자될 명작의 반열에 올라 세계명작동화로 팬이 늘었다며 자랑하는 미잘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을텐데......
* 삼성맨 친척 오빠를 만나고 왔다. 이건희 회장이 사면된 얘기를 꺼내자, 덕분에 보너스 나오게 생겼다며 좋아한다. 삼성이 왜 문제인지, 아는거 쥐뿔도 없는데 왠지 공감하면 안 될 것 같아 침 튀기며 얘기를 했다. 느닷없이 성아치란 호칭이 떨어지고, 나는 너무 이상적이며 공감 능력도 없고, 까칠하기만 한 사람으로 낙인 찍혔다. 삼성 신화는 동종업계 최고인 임금에서 결정된다, 노조가 없다고 하지만 노사협회가 있다, 복지가 엄청 잘 돼 있다, 이상이고 뭐고 나랑 내 자식 등 따뜻하게 지내면 최고다. 분위기는 전적으로 충실한 삼성맨의 입장을 대변했다.
등 따숩고 배부르면 정말 최고일까? 그것만 최고라고 믿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내가 삼킨 알약은 무슨 색이길래 이다지 지리멸렬한 고민만 해대는걸까. 그나저나 친척 오빠는 여론 조성할 땐 언제고, 내 옆구리 찌르며 자기 여기 다닐 날 얼마 안 남았으니까 퇴직 한 다음에 같이 불매 하자고 했다. 물론 아고라 그만 들어가란 농담도 빼놓지 않았다.
* 연말과 연초에 누군가를 굳이 만나려고 애쓰지 않았다. 명절이나 휴가 때면 꼭 만나던 친구가 있었는데 건너뛰었다. 달리 큰 이유가 있는건 아니고 어쩌다보니,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지난번에 그애 친구와 같이한 술자리 때문이었을까? 친구의 친구인 A가 궁해서 만난 여자 아이의 깨는 외모와 행동을 희화화해서 얘기를 했다. 친구와 A는 깔깔대며 웃고, 나도 분위기 맞춘다며 웃긴 했는데 뒤끝이 썼다. 왜 별로 재미있지 않은지 얘기를 하다가 정치적인 올바름에 대해 말했던가. 친구는 정색을 하며 대체 언제까지 그럴거냐고, 재미있어서 웃는건데 왜 그걸 정치적으로 해석하냐고 물었다. 달리 할말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웃는 것처럼 난 이제 자연스럽게 웃음 코드 외의 잡다한게 생각난다. 개콘을 볼 때면 짜증이 나고,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게 왜 아닌지 얘기를 하는거다.
여자는 시사에 관심없다는 고릿적 통념을 깬다며 정말 잘 모르면서 어딘가에서 아는체 하고 있는 나는 좀 좀스럽고, 좀스러운 내 말에 별다른 태클없이 웃어 넘기는 주변 사람은 대견하고, 뭐 그렇다. 그래서 안 보게 된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고 말았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질기게 미워할 때도 우리가 이렇게 연락 안 하는 사이가 될 줄 몰랐다. 미움보다는 무관심이 사랑의 반댓말이란 유치한 말이 유치하게 잘 들어맞는 순간.
* 어느 모임 자리.(굳이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면서 여러군데 엉덩이 걸치고 앉았던게 분명하다.) 그곳의 한 남자. 이 남자가 하는 말이 번번히 씹힌다. 사람들이 의도한건 아니다. 누군가는 그를 북돋아주려고 부러 개인적인 질문을 하는데 종결 어미가 시원치 않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변을 하는건 무슨 경우인지. 결국 그 누구도 애써서 구원 투수를 자처하지 않았고, 남자는 남자대로 자멸의 길을 치닫고 있었다. 추임새는 빗나갔고, 사람들은 서둘러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즈음에 문득 깨달았다. 아, 이 남자 내 애인이잖아.
* 재고 소진은 터무니없이 지체되고 있다. 이유는 세상엔 새 책이 너무나 많고, 그 중에 읽고 싶은 책도 너무 많다는 것. 알랭 드 보통의 신간과 사라진 내일, 한윤형의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뉴라이트 후기, 한국의 책쟁이들, 닉 혼비의 다른 책, 섹슈얼리티 강의 다시 읽고 정리해보기... 잡다하고 터무니없이 늘어지는 목록. 소진이 안 되는 이놈의 욕심. 작년까지 우디알랜의 인터뷰집만 간신히 마무리 했다.
그 밖에 읽은 책으로는
캣우먼의 발칙한 연애 관찰기
닉혼비-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촛불 세대를 위한 반자본주의 교실
화장품에 대한 50가지 거짓말
얄팍하다.(책 제목 아니다.)
1월엔 꼭 집에 있는 책 재고를 소진하겠다.
* 집에 아무도 없다. 프렌즈의 레이첼처럼 알몸으로 자연스럽게 집안 곳곳을 돌아다녀볼까? 난방비 절약한다며 추워서 보류. 친구들을 불러서 진탕 마셔볼까? 좀 귀찮다. 청소를 할까? 이 시간에, 대체 왜? 별.로.할.게.없.다. 집에 혼자만 있으면 엄청 좋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찌보면 뭐만 없으면 혹은 뭐만 있으면 뭐만 어떻게 되면 등등의 가정을 할 때가 더 괜찮은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가정을 현실화 시키며 가정의 가짓수를 소거해나가다보면 금세 권태로워질지 몰라. 아, 저 포도는 아주 시고 어쩌고.
* 며칠 전 일은 지금은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 분의 글 때문이었다. 두 분이 어떤 분인데 이깟 아치 때문에 나갔으랴만은 어느 분이 페이퍼에서 A란 이니셜을 언급하며 결과적으로 두 사람을 쫓아내놓고 다른 사람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한다는 글을 쓴걸 봤기 때문이다. 처음엔 '무슨 이런 글이 있담'하면서 지나쳤는데, 무서운 속도로 그 글이 추천을 얻는걸 보고 다른 분들이 따로 내게 말은 안 했지만 혹시 그렇게 생각하나 싶어졌다. 그분의 글을 붙여서 반박을 할까, 어떻게 할까 하다가 만약에 그분의 비아냥처럼 내가 문제를 일으켰다면 사과해야할 것 같아 페이퍼를 썼다.
결과적으론 내 기우에 불과했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느낀점 : 내가 실수하거나 멍청한 짓을 하면 제일 먼저 달레랑스님이, 달레랑스님이 너무 바쁘면 내가 알고 믿고 좋아하는 분들이 말을 해줄테니 잘 모르는 분의 넘겨짚는 말에는 너무 맘을 쓰진 말자.
친구가 말했다. 제대로 된 비판이고, 그게 날 성장시킬 수 있다면 인정 안 할거냐고. 충고나 단점 지적엔 민감하지만, 나만 옳다고 하는게 아니라 나도 멍청한 소리를 보통 하는게 아니니까 정말 그렇지 않냐고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단 생각을 하고 있다. 생각과 실재는 얼마나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 고백 : 자금이 필요해서 (급전 종류는 아니었으나) 책을 좀 팔고, 책이 아닌 다른걸 구매했다. 왠지 고백해야할 것 같다. 아치가 구매했다란 공지가 대문에 걸리는 꿈을 꿨다니까! 일시적 구매 후론 불매 계속 할 것이고, 논의되는 사안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겠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건 서재 효과-서재에 말하고 나면 꼭 지켜야할 것 같고, 말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효과(아치 사전)-를 누리기 위해 미리 적어보는거다.